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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옥이 좋아요

운영자 2011.04.19 14:14:52
조회 349 추천 0 댓글 0

  빛 바랜 재소자 복을 입은 정민자씨가 다리를 절룩이며 면회실로 들어왔다. 기름기 없는 반백의 머리가 만지면 부서져 내릴 것 같이 푸석했다. 여자재소자들 중에 그녀는 큰언니라고 통할 정도로 유명했다. 평생을 감옥을 드나들며 징역만도 20년이 넘게 산 교도소의 여성 터주대감이었기 때문이다.


  “좁은 감방에서 열 다섯 명이 함께 생활하는데 거의 전부 신용카드 사기범이고 나만 절도예요. 정말 챙피해요.”

  순간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일생 좀도둑이었다. 좌판 위의 티셔츠 한 장을 일부러 가져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쇠고기 두 근을 훔쳐서 구속되기도 했다. 부모는 어린 그녀를 소아마비라는 이유로 버렸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도망치다 붙잡혀 맞기도 많이 맞았다.  그녀가 크자 고아원에서 나와 유명한 전도관을 찾아갔다. 거기서는 절룩이는 다리를 낫게 해 주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했다. 열심히 일해주고 아무리 기도해도 다리는 계속 불편했다. 그 전도관 마저 문을 닫게 되면서 그녀는 영등포역 부근에서 노숙자가 됐다. 보통 사람도 살기 힘들던 그 시절  장애인을 받아들이는 곳은 없었다. 그녀는 창녀마저 될 자격이 없었다.


  껌을 가지고 다니면서 팔기 시작했다. 반은 거지였다. 밥은 얻어먹고 역 구석에서 잠을 잤다. 단속반에 걸려 깊은 산 속 수용소에 서 생활도 했다. 도망치고 붙잡히고 하는 생활은 고아원과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차라리 겨울이 되면 감옥으로 가려고 의도적으로 좀도둑질을 시작했다. 파출소근무 경찰관들은 경미한 절도범인 그녀를 돌려보내기 위해 신원보증인을 찾았지만 없었다. 그녀는  감옥을 그녀의 거처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때가 되면 들어가고 나오는 징역생활만 해도 이십 년이 넘고 이제는 그녀도 육십대 말의 할머니가 됐다. 이번에도 그녀는 돈 9만원을 훔쳤다.


  “이번에도 감옥에 들어오려고 일부러 그랬어요?”

  내가 의아해서 물었다. 그녀는 내가 관여하고 있는 자활원의 식구였다. 먹고 자는 건 해결됐다. 또 한 달에 28만원씩의 정부가 지급하는 생계비도 있었다. 훔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떤 여자가 물건을 사고 거스름돈을 바지주머니에 넣는데 만원자리 몇 장이 삐죽이 나온 걸 슬쩍하다가 걸렸어요. 너무 오랫동안 버릇이 돼서 나도 모르게---미안해요-----”

  이제 그녀는 상습절도범으로 보호감호까지 받게 됐다. 아예 그녀의 소원대로 오랫동안 감옥에서 나오기 힘들게 된 것이다.


  “지난번에 교도소에서 내가 형기를 끝까지 살고 나가겠다고 우겼는데 억지로 먼저 내보내더라구요. 안나왔으면 죄도 짓지 않는데”

  그녀는 빨리 석방된 게 오히려 불만이었다. 그녀는 사십년전 처음 들어가 살던 감옥생활에 대해 이렇게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감옥이 좋았어요.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똑같이 취급해주고  저에게 잘해줬어요.”

  감옥이 좋다는 얘기는 그녀의 현실이 그 정도 비참하다는 얘기였다. 눈에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서 쓰레기같이 차별 받는 그 자체도 지독한 고통이었다. 똑같이 취급해 주는 감옥이 차라리 좋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매번 석방될 때가 되면 걱정이었어요. 앞으로는 어디서 자고 먹나 하고요.”

  그런 그녀도 인생에서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스물 두 살 때 역 앞에서 만난 남자와 살았던 추억이다. 그런 사랑도 3년 만에 그 남자는 세상을 떠나 버렸다.


  “지금도 감옥이 좋아요?”

  내가 씁쓸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작년에 쓰러져서 왼쪽 팔도 잘 움직이지 않아요. 이제는 손 밖에 못써요. 감옥생활도 몸이 괜찮아야 살만한데 늙고 병드니까 이 생활도 이제 못하겠어요. 죽을 때는 자유롭게 죽고 싶어요.”

  이제 그녀는 진실로 감옥이 싫은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제부터 정말 오랜 세월 그곳에 있어야 하는 운명이 지워졌다. 사회보호법은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 인물들은 청송의 보호감호소로 보내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싫어질 때 거꾸로 그녀는 젊은날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누구인생이나 정작 각오할 때는 오지 않던 불행이 피하려고 할 때 비로서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소설이나 삶의 이야기들은 이렇게 행복하기까지 굽이굽이 돌아온 고생길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 고생으로 현재의 화려함이 더욱 돋보이고 가치가 높았다. 그러나 변호사인 내가 보는 현실들은 그렇지 않았다. 힘들게 태어난 사람이 평생 고생하다가 어리석은 가운데 죽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성경 속에서 예수는 길거리의 구걸하는 소경의 존재이유는 뭐냐고 질문을 받는다. 예수는  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그가 있었다고 하면서 그를 눈뜨게 했다. 나는 평생을 불구로 죄수로 또 병자로 지낸 저 여인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세상에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여인들이 너무 많았다. 상대적으로 가난해서, 남편이 직급이 낮아서, 보증을 섰다가 재산을 날려서, 아파트 평수가 작아서, 삶이 공허해서 등등. 백은 흑과의 대비를 통해 더욱 자신의 색감이 돋보인다. 많은 여성들이 그녀의 존재를 안다면 현재의 넘치는 행복에 감사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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