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은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하고도 성장 목표를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짜기 시작했다. 카카오게임즈는 최대주주가 바뀌는 격변 속에서도 하반기 대형 신작을 줄줄이 예고했다. 엔씨소프트는 오랜 침묵을 깨고 새 판을 준비 중이고, 크래프톤과 펄어비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수치만 보면 우울하다. 주가는 내려앉고, 구조조정 소식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위기를 직시하는 기업만이 다음 기회를 잡는다. 지금 한국 게임사들이 하는 일은 후퇴가 아니라 반격의 준비다.
게임와이는 주요 게임사들의 현재를 짚고, 반격의 조건이 갖춰지고 있는지 살펴본다.
크래프톤 CI
크래프톤은 지금도 잘 벌고 있다.
배틀그라운드는 출시 9년차에도 동시접속자 수를 끌어올리고 있고, 올해 1분기에는 창사 첫 분기 매출 1조원 돌파가 예상된다. 글로벌 IP로 자리 잡은 배그는 여전히 회사 실적의 중심에 있다. 라이브 서비스 기반의 안정적인 매출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크래프톤의 현재는 흔들림이 없는 상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시장이 크래프톤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성공한 회사'이지만 동시에 '성공을 유지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른 회사'다. 돈은 계속 벌고 있지만, 그 구조가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성과가 미래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현재를 만든 배그, 그러나 남아 있는 의존 구조
배틀그라운드 9주년 행사 현장 / 게임와이 촬영
크래프톤의 현재는 명확하다. 배틀그라운드 IP가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
PC와 모바일을 포함한 배그는 여전히 글로벌 이용자 기반을 유지하고 있고,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협업 콘텐츠를 통해 매출을 안정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장기 서비스 게임에서 흔히 나타나는 이용자 이탈 구
간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이 덕분에 크래프톤은 매 분기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흐름을 이어왔다.
하지만 이 구조는 동시에 한계를 의미한다. 배그 외에 실적을 책임질 만한 신작이 아직 뚜렷하게 자리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증권가에서도 크래프톤의 단기 실적은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신작 가시성은 2027년 이후로 밀려 있다는 평가가 반복되고 있다. 결국 현재의 안정성은 강점이지만, 그 자체로는 다음 성장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구조다.
외형은 커졌지만, 본업 성장은 여전히 질문
크래프톤 IR
최근 크래프톤의 숫자는 더 커졌다. 일본 광고·콘텐츠 기업 ADK 인수 등 외부 사업 편입 효과가 반영되면서 매출 규모는 빠르게 확대됐다. 사업 포트폴리오가 다각화됐다는 점에서 외형 성장 자체는 분명한 성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성장에는 구조적인 변화가 함께 따라왔다. 광고·콘텐츠 사업 특성상 게임 사업 대비 수익성이 낮은 구조가 반영되면서, 전체 영업이익률에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매출은 늘었지만, 그 증가분이 기존 게임 사업의 성장인지, 외부 사업 편입 효과인지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동시에 크래프톤은 ADK를 애니메이션 IP 확보와 트랜스미디어 확장,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한 거점으로 보고 있다. 게임과 콘텐츠를 연결하는 IP 사업 구조를 구축하려는 전략적 투자라는 설명이다.
이 지점에서 크래프톤의 과제가 드러난다. 단순한 외형 확대를 넘어, 게임 회사로서의 본질적인 성장 동력을 다시 입증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결국 매출 확대의 성격을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외부 사업 편입에 따른 외형 성장이라는 시각과, IP 확장을 위한 중장기 투자라는 시각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유다. 시장이 보고 있는 것은 '얼마나 벌었는가'보다 '어떻게 벌었는가'다.
M&A로 채운 성장…성과는 아직 확인 중
크래프톤 IR
크래프톤은 최근 몇 년간 공격적으로 스튜디오와 기업 인수에 나섰다. 단일 IP 의존 구조를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다. 다양한 장르와 개발 역량을 확보해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문제는 속도와 성과다. 다수의 스튜디오를 단기간에 편입하면서 조직 규모는 빠르게 커졌지만, 인수 이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준 사례는 제한적이다. 일부 프로젝트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개발 일정 지연이나 방향성 논란도 이어졌다. 조직 확장 속도에 비해 결과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인수는 시작일 뿐이다. 결국 시장이 보는 것은 결과다. 지금 크래프톤의 M&A 전략은 '많이 샀다'는 단계에 머물러 있고, '무엇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플랫폼과 AI…다음 카드는 준비됐지만
오버데어, AI 에이전트로 게임 제작 플랫폼 전환 본격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크래프톤이 꺼낸 카드가 플랫폼과 AI다.
배틀그라운드를 단일 게임이 아니라 이용자 제작 콘텐츠(UGC)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오버데어를 통해 누구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AI 기술을 결합해 제작 진입 장벽을 낮추고, 개발과 운영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리겠다는 구상도 함께 제시됐다.
방향 자체는 분명하다. 문제는 아직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UGC 플랫폼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가 자리 잡고 있고, AI 역시 효율화 도구를 넘어 실질적인 수익 모델로 연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략은 제시됐지만, 시장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로 이어졌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른 단계다.
콘솔 도전, 증명의 무대
크래프톤 신작
이런 상황에서 시장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신작이다.
크래프톤은 '눈물을 마시는 새' IP 기반 신작 '프로젝트 윈드리스'를 비롯한 콘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이는 단순한 신작 출시를 넘어, 회사가 직접 개발 역량을 입증할 수 있는 시험대에 가깝다.
외부 인수나 플랫폼 전략보다는 크래프톤 자체의 개발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하는 단계다. 콘솔 시장은 이미 경쟁이 치열한 영역인 만큼, 완성도와 차별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결국 크래프톤의 다음 단계는 여기서 갈린다. 새로운 IP가 성과를 낸다면 배그 의존 구조는 완화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현재 구조는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크래프톤의 변화는 게임 안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는 최근 몇 년간 서울 성수동 일대 부동산을 잇따라 매입하며 이른바 '크래프톤 타운'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는 이를 2028년 사옥 이전에 대비한 성수 클러스터 구축의 일환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투자는 단순한 사옥 이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통합 거점을 조성해 개발과 운영, 브랜딩 기능을 한곳에 모으겠다는 구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흩어져 있던 조직을 집결시키고 오프라인 이용자 접점까지 강화하려는 모양새다.
다만 이 역시 결국은 결과로 평가받게 된다. 대규모 투자가 조직 효율과 IP 확장, 채용 경쟁력 강화 등으로 이어진다면 의미가 커지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비용 부담만 키운 선택으로 남을 수도 있다.
현금과 주주환원…체력은 충분
크래프톤 IR
한편 크래프톤의 재무 상태는 여전히 안정적이다.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자사주 매입과 소각,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3년간 1조원 규모 환원 계획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투자자 입장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다만 이 역시 전제가 있다. 현금이 많다는 것은 동시에 투자처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확보한 자금을 어떤 영역에 투입하고, 이를 어떤 성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안정성이 향후 성장으로 이어질지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
크래프톤은 이미 성과를 만들어낸 회사다. 동시에 다음 단계를 증명해야 하는 시점에 들어선 회사이기도 하다.
현재의 실적은 배틀그라운드가 만들었다. 하지만 시장이 보고 있는 것은 그 다음이다. 플랫폼과 AI, 콘솔 신작, M&A로 확보한 스튜디오들까지, 크래프톤이 준비한 카드들은 적지 않다.
지금의 크래프톤은 다음 단계를 준비 중인 기업에 가깝다. 배틀그라운드로 구축한 글로벌 이용자 기반과 안정적인 수익 구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확보한 충분한 현금은 여전히 강력한 자산이다. 플랫폼과 AI, 콘솔 신작, M&A로 확보한 개발 역량까지 방향성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제는 방향을 제시하는 단계를 지나, 이를 결과로 증명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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