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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다테 하루나의 경우
『선생님, 평안하신가요.』
「하루나, 안녕. 오늘도 뭔가 사왔어?」
『예, 물론이죠. 오늘은 특제 붕어빵이랍니다.』
나는 생긋 웃으며 가방에서 특제 붕어빵을 꺼내 선생님에게 내밀었다. 이것은 특별 주문품으로 선생님의 취향을 생각해 선택한 일품이다. 선생님이 단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함께 즐기면서 조금이나마 힐링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반응은 내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와아, 고마워. 근데 지금은 배가 안 고파서...... 나중에 같이 먹을까?」
선생님은 미소짓고 있었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흐려보였다. 평소 같으면 내 제안을 기꺼이 받아주는 선생님이 오늘은 조금 다르다. 내 가슴에 약간의 불안감이 퍼지기 시작한다.
『그런...... 가요. 그럼 나중에 함께 먹죠.』
나는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붕어빵을 포장에 다시 넣었다. 억지를 부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가슴 속에 약간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선생님의 미묘한 태도가 내 마음에 작은 잔물결을 일으킨다.
『그럼 선생님, 저녁 식사는 어떠신가요? 오늘은 제가 만들겠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나는 다음 제안을 했다. 선생님을 위해 손수 요리를 할 기회 같은 건 거의 없기에, 오늘을 특별한 날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의 대답은 또다시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어, 음....... 미안해, 하루나. 오늘은 조금 바빠서......」
선생님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나약하고 조심스럽게 들려온다. 나는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평소 같으면 내 제안을 기꺼이 받아줄 선생님이 분명히 나와 거리를 두려 한다.
『그렇습니까....... 그럼 다음 기회에라도.』
나는 실망을 감추면서도 미소를 유지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선생님이 나를 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커져 간다.
「하루나...... 미안해, 정말로 오늘은......」
선생님의 말은 어딘가 변명처럼 느껴진다. 나는 가만히 선생님을 바라보다가 그 눈 속에 있는 두려움 같은 걸 느꼈다.
『선생님......』
나는 조금 거리를 좁히고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 순간 선생님은 마치 무언가에 몰린 것처럼 몸이 굳었다.
『정말로 무슨 일 있으신가요? 최근 조금 상태가......』
나는 상냥하게 물었다. 선생님이 뭔가 고민하고 있다면 내가 힘이 되고 싶다는 그런 마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반응은 내 기대와는 달리 더 겁에 질린 듯 보였다.
「어...... 그, 그럴 리가, 조금, 최근엔 바쁠 뿐이라......」
선생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다. 평소 같으면 착실한 목소리로 대답해주는 선생님이 오늘은 어째서 이렇게 불안해하는 걸까. 나는 그게 이해되지 않았다.
『......선생님, 정말로 제게 숨기시는 건 없나요?』
나는 살짝 목소리를 높이고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나를 피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더욱 안색이 나빠지면서 시선을 돌린다.
「아,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어...... 단지, 지금은 정말로 바빠서......」
선생님의 말에는 설득력이 없어서 나는 그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 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생님이 뭔가를 끌어안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견딜 수가 없다.
『선생님......』
나는 조용히 묻는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계속 시선을 돌린 채. 그런 선생님의 태도에 내 가슴속에서 의심이 더욱 커져간다.
『......무리하지 말아주세요. 그렇지만 뭔가 곤란한 일이 있으면 부디 제게 알려주셨으면.』
나는 미소를 지으며 조금 거리를 두기로 했다. 선생님을 더 이상 몰아붙이는 게 좋지 않다고 느꼈기에. 하지만 그 가슴 속에는 도저히 씻을 수 없는 불안감이 남아 있다.
「응...... 고마워, 하루나......」
선생님은 간신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어딘가 약하고, 얼마나 무리를 하고 있는가가 전해져 왔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 긴장감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조심스레 붕어빵 포장을 꺼내 그것을 열어 선생님에게 내민다.
『......모처럼 사온 거니, 조금만이라도 드셔주시지 않겠습니까?』
선생님은 조금 주저하면서도 내가 내민 붕어빵을 집어든다. 하지만 그 손은 어딘가 떨리고 있었고, 선생님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전해져 왔다.
「응...... 고마워, 하루나. 그럼 조금만......」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붕어빵에 손을 뻗는다.
하지만 입으로 옮기려던 그 순간, 선생님의 손이 딱 멈췄다.
『선생님......?』
나는 놀라면서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표정은 갑자기 파랗게 질려 손에 든 붕어빵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에는 분명한 두려움이 비치고 있었다.
「......이거, 뭔가 들어있다거나....... 한 건 아니지......?」
선생님이 중얼거린 그 말에 나는 숨을 삼켰다. 설마 그런 말을 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나는 그저 선생님이 좋아해 주셨으면 해서 이 붕어빵을 준비했을 뿐인데.
『선생님...... 무슨 말씀을......?』
나는 동요하면서 선생님에게 물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굳은 채 붕어빵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 그 손은 떨리고 식은땀이 이마에서 흐르고 있었다.
「미, 미안...... 그런 일, 있을 리가 없지......」
선생님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그 미소는 분명히 경련하고 있다. 내 마음이 욱신거리며 아프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선생님...... 그런 일을 생각하실 필요는 없어요.』
나는 최대한의 상냥함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눈에는 아직 두려움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뭔가 결정적으로 이상하다. 선생님이 어째서 나를 의심하는 듯한 행동을,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선생님의 손에서 붕어빵이 떨어지며 철퍽이는 소리를 낸다. 그 순간 나는 가슴이 조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선생님....... 저, 뭔가 해버린 건가요......?』
나는 가만히 선생님을 바라보는 채로 물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나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숨기려는 것처럼 보였다. 가슴이 조이는 듯한 통증이 퍼지며 점차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제가, 두려운 건가요?』
자연스럽게 입이 열리며 나온 그 말. 선생님이 나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욱신거리며 아팠다. 언제나 온화하고 상냥한 선생님이 어째서 나에게 이렇게도 겁을 먹는지.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선생님은 희미하게 눈살을 찌푸린 채 어색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그렇지...... 않아, 하루나가 무서운 게 아니고....... 단지......」
선생님의 목소리는 떨렸고, 말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가슴 속이 싸늘하게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선생님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그럼, 어째서....... 그렇게나 겁먹고 계신 건가요?』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선생님과의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그 순간 선생님은 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눈을 감았다. 마치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다는 듯이.
「아니야, 하루나....... 그......」
선생님은 말을 찾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점점 약하고 가냘픈 것이었다. 선생님이 뭔가에 몰리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게 내 존재에 의한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선생님, 저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당신에게 미움받을 짓을 한 거라면, 부디 가르쳐주세요.』
나는 상냥하게 묻는다. 마음속은 불안과 슬픔으로 가득했다. 선생님에게 미움받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선생님의 반응이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싫어하는 건 아니야....... 단지......」
선생님은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그 말은 점점 의미를 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선생님 자신도 자신의 말에 자신이 없는 듯했다.
『......선생님,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선생님을 안심시키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해도 그 두려움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문득 시선을 내리자 선생님의 손이 아직도 약간 떨리는 게 보였다. 그 손에는 방금 떨어뜨린 붕어빵 포장이 들려 있다. 마치 그것이 선생님의 유일한 버팀목인 것처럼.
『붕어빵을...... 같이 먹어주시지 않겠나요, 선생님.』
나는 다시 포장을 집어 선생님에게 내밀었다. 만약 이 작은 행위가 선생님을 안심시킬 수 있다면, 나는 그것에 매달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손이 떨리지 않도록 살짝 힘을 준다. 선생님은 한순간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 포장을 받지 않았다.
「......하루나, 정말 미안해. 하지만, 지금은...... 잠깐 혼자 있게 해줘.」
그 말은 내 마음을 깊게 찔렀다. 선생님이 나를 멀리하려는 게 분명하게 전해진다.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나는 조용히 포장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섰다. 선생님의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서 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미안해, 하루나...... 마음은, 정말로 기뻐.」
그 말에 조금이나마 구원을 받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가슴 속에는 큰 슬픔과 불안이 남아 있었다. 선생님과의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 멀게 느껴진다.
『......실례해서 죄송했습니다, 선생님. 날을 바꿔 다시 오겠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미소를 짓고 조용히 방을 떠났다. 복도를 걸으며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 생각한다. 선생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 결과적으로 선생님을 몰아붙여 버린 걸지도 모른다. 내 행동이 역효과를 낸 걸까.
『......선생님. 저는...... 어찌하면 되는 건가요......?』
누구에게도 닿지 못할 그 말이, 조용한 복도에 공허하게 울려퍼진다.
아케보시 히마리의 경우
『...네, 이걸로 완성입니다.』
「빠르네. 역시... 어, 초천재 미소녀... 음...」
『초천재 병약 미소녀 해커예요, 정말이지...』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선생님에게 올바른 호칭으로 정정해준다. 선생님은 항상 이런식이라 기억하게 하느라 고생이다. 하지만 그런 대화도 싫지 않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선생님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기쁘고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이런걸......?』
이번에 제가 선생님에게 부탁받은 것은 「누구도 돌파할 수 없는 시큐리티 프로그램」의 구축.
밀레니엄의 청초한 절벽 위의 꽃이자 누구나 부러워하는 초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인 나에게 이런 의뢰는 식은 죽 먹기지만...... 어째서라는 의문은 내 안에 계속 체류하고 있다. 선생님은 평소 이런 말을 꺼내는 타입이 아니다. 샬레의 시큐리티는 간단하고 단조롭다. 학생이라면 학생증 하나면 들어갈 수 있고, 그 이외의 사람은 입구만 통과하면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계신 사무실까지 갈 수 있다.
몇 명의 학생이 계속 주의했지만 『샬레를 개방적으로 하고 싶어』라는 이유로 선생님은 시큐리티 강화를 계속 거부해 치쨩이 화를 냈던 걸 기억하고 있다.
이제와서 왜 이런 일을......?
『누군가 충고라도 한 건가요?』
너무 사람이 좋고, 한숨이 나올 정도로 자신에게 무른 선생님이 『개인실의 시큐리티를 강화해줬으면 한다』라고 말하는 건, 나에게 있어서 이상사태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응? 아, 아니...... 최근에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역시 방범 같은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선생님은 애매하게 대답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분명히 불안이 섞여 있다. 선생님이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뭔가 큰 문제를 안고 있는 건 틀림없다. 마음속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은 충동이 싹튼다.
『......선생님? 정말 그것뿐인가요?』
나는 조금 목소리 톤을 낮춰서 선생님에게 묻는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선생님에게 명확하게 전달되도록. 하지만 선생님은 일부러 웃으며 내 눈을 피했다.
「......그것뿐이야. 너무 신경쓰지마...... 그저 조심하자는 거니까.」
선생님의 그 말은 마치 나를 안심시키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무언가가 나를 불안하게 한다. 나는 선생님이 숨기는 일이 신경쓰여 견딜 수 없었다.
『선생님, 저...... 선생님이 걱정됩니다.』
「히마리......」
솔직한 마음을 전한다. 항상 냉정하고 우리를 지켜주는 선생님이 무언가에 내몰린 것처럼 보이는 게 가슴 깊은 곳에 날카로운 아픔을 안겨준다. 선생님은 내게 의지해주는 존재라 믿었는데, 지금의 상황은 그 신념을 흔드는 것이었다.
『확실히 저는 이번에 그야말로 「누구도 돌파할 수 없는 시큐리티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지문, 얼굴, 혈액...... 모든 신체정보를 집어넣고 변수식 프로그램을 겹겹이 쌓아 저조차도 해킹할 수 없는 싯딤의 상자를 메인 OS로 둔 완벽한 시큐리티......』
「다시 들으니 대단하네...... 역시 히마.....」
『하지만!』
선생님의 말을 가로막는다. 호기심과 불안이 뒤섞인 기분을 억누르지 못한 채 나는 다음 질문을 던진다.
『......전해드리기 전에 한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응, 좋아. 뭘까.」
심장이 묘하게 시끄럽다. 아직 의문뿐인 다음 말에 나는 이미 겁에 질려 있었다.
『...선생님은.... 학생을... 저희들을, 싫어하게 되어버린 건가요...』
선생님은 초인이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무한한 자애를 흩뿌리며 쉴 새 없이 계속 일한다. 과거의 총학생회장을 떠올리게 할 만큼 완벽하고 완전한 인간.
그런 선생님이 자신에게서 학생과 거리를 두려 하고 있다. 학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그 「학생」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버렸다.
「...그렇지 않아. 학생들은...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거야.」
선생님은 상냥하게 미소를 지어 주셨다. 그리고 그 미소는 어딘가 허망하고, 평소 같은 힘이 부족했다.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은 묻지 않겠어요. ...그럼, 오늘은 수고하셨습니다. 이건 자유롭게 사용해주세요.』
시큐리티 단말을 선생님에게 전한다.
선생님의 말로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선생님을 믿을 수밖에 없다.
「고마워, 히마리...... 정말로.」
선생님은 고맙다는 말을 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어딘가 그늘이 있었다. 그것이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선생님, 뭔가 곤란한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 주세요. 어떤 일이든 선생님의 힘이 될 테니까...』
나는 다시 한 번 제대로 전한다. 내 안에 있는 선생님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을 지키고 싶다는 강한 마음을 담아.
하지만 선생님은 애매한 미소를 지을 뿐, 다시 내 시선을 피하듯 눈을 돌렸다.
그 침묵이 이어진 몇 초 동안 나는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했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을 내가 선생님의 마음을 지킬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괴로웠다.
『......』
침묵 속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선생님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선생님을 돕고 싶은 마음이 깊어질 뿐이고, 초조함이 마음을 갉아먹는다.
『선생님......?』
내가 다시 말을 걸려고 한 순간, 선생님이 갑자기 일어선다.
「히마리...... 이 뒤에, 잠깐 시간 있어?」
주저와 불안이 섞인 눈을 하고 있다.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나 작아 보였다.
『ㄴ...네, 괜찮은데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시운전도 할 겸, 안에서 이야기할까.」
불안한 마음을 토로해버린 나를 염려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단순하게 볼일이 있는 걸까. 그대로 나는 선생님의 방으로 동행했다.
선생님의 침실은 살풍경한 모습으로, 침대가 하나 있고 옷장이 비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은 나를 부드럽게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겼다.
「잠깐만 기다려. 음... 좋아, 이걸로 오케이일까.」
선생님은 머뭇머뭇 화면을 조작하고, 완벽하게 보호받는 둘만의 공간이 완성됐다. 여기 있는 사람은 선생님과 나뿐.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다.
선생님이 조금 떨어진 위치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 소리가 조용한 방에 울렸다.
「하고싶은 말... 인데 말이지...」
선생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다. 나는 그 목소리가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항상 온화하고 냉정한 선생님이 지금은 어딘가 불안정하고 연약하다. 나는 선생님이 뭔가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걸 알았다.
『네... 대체 뭘까요......?』
나는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이 뭔가를 말하고 싶다는 걸 느꼈기에. 선생님은 잠시 입을 다문 채 시선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윽고 무거운 입을 열고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히마리...... 나(오레/俺)..... 실은.....」
생소한 단어에 정신이 팔린다. 선생님에게서 「俺」라는 말을 들은 적은, 과거에 한 번도 없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다. 그가 무언가를 말하는 걸 주저하고 있다는 게 전해져 온다.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고 선생님의 말을 기다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지만, 선생님이 이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건 가슴을 조이는 것 같았다.
「.....나, 최근에...... 어떤 학생에게...... 덮쳐졌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믿을 수 없어. 하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고, 그것이 거짓말이 아님을 전하고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다. 그저 선생님의 말이 내 가슴에 깊이 박힌다.
『네......?』
무심코 내뱉은 말에 나의 놀라움과 동요가 담겨 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덮쳐지다니, 그런 일이...... 어째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서...... 계속 잠자코 있었어. 하지만...」
선생님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계속했다. 그가 얼마나 그 사건에 시달렸는지가 말끝마다 전해졌다. 나는 선생님의 고통을 어떻게든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님...... 죄송해요...... 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자신의 무력함이 이렇게 분한 적은 없었다. 나의 천재적인 두뇌는 오직 두뇌일 뿐. 내 몸은 선생님을 보호할 수도, 그 학생에게 따질 수도 없다. 휠체어에 앉은 내 몸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뇌 속에 차례차례 대책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 아니면 선생님을 지키기 위해 뭔가 손을 써야 하나?
하지만 내 몸은 약해서 힘을 빌려줄 수도 없다.
『선생님...! 제가... 제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히마리...」
나는 쥐어짜듯 말을 꺼냈다.
선생님을 향한 말이 그저 무력한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는 게 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내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분노였다. 자신에 대한 분노. 내가 더 강했다면 선생님을 지킬 수 있을 텐데......
선생님이 덮쳐졌다. 그것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인데, 그 학생에게 따질 수조차 없는 자신이 한심하고 분해서......
『......죄송해요, 선생님...... 저, 정말로......』
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을 지키고 싶다, 돕고 싶다. 그 마음만 겉돌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그저 거기에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주셨다. 미소는 어딘가 슬픈 듯했다.
「히마리, 고마워. 하지만, 내(俺)... 내(私) 잘못이야...... 좀 더 빨리 대처할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은 되지 않았을 텐데......」
선생님은 자신을 나무라듯 중얼거렸다. 그 말이 내 가슴을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피해자예요! 선생님 잘못이......!』
나는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선생님이 자신을 책망하다니, 잘못됐다. 그 말을 전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답답하다. 자신의 무력감을 이렇게까지 절감한 적은 없었다.
『선생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말해주세요......』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지만 뭔가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조금이지만 미소를 지어주셨다.
「고마워, 히마리. 하지만 들어준 것만으로 충분해.」
선생님의 말에 조금은 구원받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 미소가 사라진 순간 다시 가슴속에 무거운 슬픔이 번졌다. 나는 어째서 더 선생님을 지키지 못할까. 어째서 이렇게 무력할까.
선생님은 침울한 표정으로 무거운 입을 연다.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고, 그 말의 무게가 아플 정도로 전달된다.
「사실은... 그날부터 여성이 무서워져서...」
그 말에 내 마음은 놀람과 동시에 아픔을 느꼈다. 선생님이 여성을 무서워하다니,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우리들 학생을 이렇게나 소중히 여겨주는 선생님이, 마음속에서 그런 공포를 안고 있었다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른 채 나는 그저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던 나에게 선생님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학생이 다가오면 떨림이 멈추지도 않고... 손을 뻗어 잡을 수도 없고... 정말로, 한심한 이야기야.」
그 말은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선생님이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듣기만 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분해서......
『선생님...... 제가 덮치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어요.』
나는 조금이라도 선생님을 안심시키고 싶어서 그렇게 말을 꺼냈다. 다음 말이 목구멍에 걸린다. 어딘가에 자조하는 마음이 섞이는 걸 주체하지 못한 채 조용히 덧붙였따.
『......저는, 움직일 수 없으니까요.』
선생님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을 되새기며,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휠체어에 묶인 이 몸이 여태껏 얄미워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선생님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걸 느꼈다.
「후훗...... 그러네... 나도, 히마리라면 안심할 수 있으려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에 작은 구원의 빛이 내려왔다. 선생님은 나를 믿어주고 있다. 움직일 수 없는 이 몸이기 때문에 선생님 곁에 있어도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선생님......』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울고 있었다.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안심해줬다는 사실이 더없이 기쁘다. 그 이상으로 자신에게 처음으로 이 몸이 쓸모있었다는 게,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고마움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계속 이 몸을 저주해왔다.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고,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킬 수 없다.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다. 천재적인 두뇌가 주어져도 납득 따위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몸에 감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선생님은 나를 믿어주고 있으니까.
『선생님......』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그 손을 내 어깨에 얹었다. 그 손은 조금 떨렸지만 어딘가 안심을 바라는 듯한 따스함이 있었다. 선생님도 역시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내게 다가와 준 거라고 느꼈다.
「내가 원래대로 돌아갈 때까지, 함께 있어줄래...?」
선생님의 말이 내 마음에 깊이 스며든다. 그 순간, 나는 내 존재가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움직일 수 없는 이 몸이 선생님의 마음을 지탱할 수 있었다고.
『네......! 제가 언제든지 선생님 곁에 있을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선생님을 지탱할 테니까......』
울면서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 말에는 지금까지의 어떤 감정보다 강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몸이 가벼워진다. 지금까지 미워했던 이 몸이 선생님을 안심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왠지 자랑스러워진다.
「미안해...... 잠깐만, 신세를 질게...」
『...네!』
완벽한 방에 보호받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약속.
움직이지 않는 나의 몸.
겁먹은 선생님의 마음.
약속을 이어가기에는 충분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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