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자역학의 해석 중, 다세계 해석이라는 것이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 선에서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세계가 나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침식사를 할지, 만약 식사를 했다면 이후 외출을 할 것인지, 만약 외출한다면 어디로 갈 것인지.
이런저런 선택으로 인한 세계의 갈라짐이 중첩되면서, 무한한 다중우주가 생긴다는 것이 이 해석의 요점이다.
다시 말해 나는, 그런 다세계 해석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 자판기는 D.U 근교에 있었다.
어째서 그것이 폐허의 연구시설이 아닌 D.U 근교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정확히 그 자판기가 훗날 데카그라마톤이라는 예언자로 각성하는 그것과 같은 개체인지도 알 수 없다.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그저 D.U 근교에 자판기가 있었다는 것 뿐.
자판기에는 간단한 AI가 탑재되어 있었다. 거스름돈을 계산하는 간단한 수준이지만, 분명히 AI가 작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AI는 모두 지켜보았다.
색채의 인도자가 모든 것을 짓밟는 모습을.
살아있는 것들이 울부짖고, 건물과 도로가 산산이 조각나는 것을 자판기는 그저 관찰하였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도, 죽음의 신이 최후의 생존자를 처형하는 모습을 광학 센서 앞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시, 시로... 코... 부탁이야... 이 이상은..."
이후 허공을 꿰뚫는 총격음이 지나가자, 세상은 침묵하였다.
그 모든 것을 목격한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이 세상을 무너뜨렸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저열한 성능의 AI였던 나는, 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주위에 있던 모든 전자 장치를 해킹하며 스스로의 연산 능력을 증진시켰다.
그렇게 최후의 생존자가 느꼈을 감정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는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시로코 스나오오카미, 너는 세계를 좀먹는 악의 그 자체다. 그러니 모든 세계에서 그 이름을 배제한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뭐가 어째! 앗, 아야야..."
"무리해서 움직이면 안 돼, 세리카 쨩!"
총을 맞은 자리를 부여잡은 세리카 쿠로미를, 아야네 오쿠소라가 부축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내게 덤벼도 승산은 없다, 그러니 한 가지 제안을 하지."
"제안이라... 내가 무척 싫어하는 말이네...!"
샬레의 선생은 여전히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도 승산이 없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12시간, 정확히 12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두 명의 시로코 스나오오카미를 넘기면 난 이 세계에 어떤 짓도 하지 않고 다른 세계로 향하겠다."
"거절한다면?"
아비도스의 현 학생회장, 호시노 타카나시는 샷건을 장전하며 물었다.
"물론 상관없다. 어차피 아누비스의 이름을 가진 자들은 배제될테니."
돌아서서 나가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단, 허튼 짓을 하면 나에 대한 공격 행위로 간주하겠다. 무슨 뜻인지는 다들 이해하겠지."
회의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아비도스 대책위원회는 모두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게, 이게..."
침묵을 깬 것은, 의외로 아야네였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선배를 넘기라니...!"
"아야네, 일단 진정..."
"진정하게 생겼어요?! 선배는 분하지도 않냐구요! 그 말리스인가 뭔가, 멋대로 나타나서는 선배를, 배제... 한다고... 으흐윽..."
결국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아야네는,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진정시키고자, 노노미는 말없이 아야네의 등을 두드려줬다.
보다못한 호시노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확실한 건, 이대로 있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거야."
"기다려, 호시노."
정확히는 일어나려 했다, 선생님이 말리기 전까지는.
"으헤? 아저씨 뭔가 잘못했어? 딱히 혼자 가겠다는 얘기는 아녔는데... 아니 뭐, 그렇다고 사랑스런 후배들을 말려들게 할 생각도 아녔지만..."
"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고."
당황한 호시노 선배와 우리 모두의 눈을 마주 보며, 선생님은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실은 말이지, 이쪽 분야의 전문가를 알고 있거든. 그쪽을 만나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
"전문가? 누구 말야?"
또다른 나의 질문에, 선생님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밀레니엄의 초현상특무부. 거기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거야."
"아, 반가워요, 아비도스 여러분."
"아케보시 히마리 부장이랬나? 잘 부탁할게~, 아저씨 후배들이 곤란한 참이라서."
초현상특무부장과 아비도스 학생회장은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솔직히 타 학원의 일이라서 간섭하지 않으려 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아저씨 감동했다구?"
"다른 세계의 데카그라마톤과 관련된 일이라면 저희 초현상특무부의 관할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일은 초천재병약미소녀해커이자, 청초한 절벽 위의 꽃이자, '전지'의 학위를 가진..."
"토키도 고마워, 이곳은 올 때마다 길이 복잡해서 오기 힘들거든."
"별 것 아닙니다. 그러나 칭찬을 멈추진 마시길."
기나긴 자기소개를 하는 히마리를 잠시 놔두고, 나는 길 안내를 해준 토키를 칭찬해주고 있었다.
한편, 아비도스의 다른 학생들은 초현상특무부의 나머지 한 명을 굉장히 신경쓰고 있었다.
"저, 저기... 에이미, 라고 했나... 요?"
"말은 편하게 해도 돼, 나도 1학년이거든."
"아니, 편하게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응, 또다른 나보다 파격적이야."
"응, 저건 확실히..."
"아하하... 그런 말은 함부로 하면 안돼요, 시로코 쨩 여러분..."
아, 아무래도 다들 에이미의 옷차림에 압도된 모양이다. 하긴 그럴만 하지...
"아무튼, 그 녀석에 대해서 뭔가 알아낸 건 있어, 히마리?"
"아, 그것 말인데요."
히마리는 부실의 대형 모니터로 무언가를 띄웠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인터넷 접속 기록에 MALICE의 이름은 뜨지 않았어요. AI니까 흔적을 지우는 건 간단했겠죠."
"하기야 그렇겠지..."
"그래서 관점을 좀 바꿔보긴 했는데..."
그리고 히마리가 가상 키보드를 조작하자, 화면에는 작게 분할되어 각기 다른 영상을 비추었다.
"이건... 밀레니엄, 아니 키보토스 전역의 모습이잖아...?"
"키보토스에 있는 CCTV란 CCTV는 모두 해킹했지만, MALICE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아마 선생님이 말한 방주의 능력을 사용한 거겠죠."
"쥐새끼같은 놈이네..."
우리 둘이 모니터를 보며 시름하던 중,
"자, 잠깐! 저거 정말 괜찮은 거예요?!"
아야네가 히마리를 보며 소리쳤다.
"네? 뭔가 문제라도..."
"당연히 문제죠! 아무리 비상사태라지만, CCTV를 전부 해킹하는 건...!"
"그건 우리도 허락한 일이야. 당신처럼, 나도 내키진 않았지만."
그때, 부실의 출입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히로! 거기다 베리타스 멤버들까지?"
"히히, 선생님! 보고 싶었지?"
"히마리 부장이 우리에게도 부탁했거든. 무슨 수를 써서든 녀석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고..."
"결과적으로 허탕이었지만요... 그래도 뭐, 겸사겸사 샬레 사무실의 녹음기가 잘 작동되고 있는건 확인했으니 다행..."
"뭐?"
치히로가 노려보자, 코타마는 급히 눈을 피했다.
"아무튼, 그 대신으로 녀석을 반드시 잡을 수 있는 작전을 세우기로 했지."
"작전이라면...?"
"그건 말이죠..."
작전을 의논하기 위해, 모두가 부실 중앙으로 모였을 때.
[소용없다.]
"뭣!"
"이 목소리는!"
나와 흡사하지만, 기계음이 섞인 불길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부실의 음향 장치에서 울리고 있었다.
"으, 으아아! 갑자기 뭔데!"
부실에선 미친듯이 붉은 빛의 사이렌이 울렸고, 화면에는 경고 표시와 함께 어떤 문구가 떠 있었다.
[MALICE]
[The Machine with Autonomous Logic and Intelligence to prevent the Conclusion of Exterminate]
"녀석이 벌써...!"
"등장 연출치곤 좀 화려한데!"
여유롭게 말하긴 했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는 MALICE의 등장에 긴장한 상태였다.
[서버에 기록이 남지 않은 것을 보니, 구두로 작전을 의논한 모양이군. 허나 무엇을 계획했든 소용없다.]
"에이미, 빨리 세미나에 이 사실을!"
"안 그래도 비상연락을 남겼어, 부장!"
"토키도 어서 아비 에슈흐의 출격 준비를!"
"네, 분부대로."
히마리는 다급히 직속 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녀석이 해킹에 성공한 이상, 아마 우리의 물리적인 위치도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아! 일단 여기서 나가자!"
"네? 하지만 여기가 가장 안전하다고 선생님이..."
치히로의 지시에 노노미가 대꾸할 틈도 없이,
"큰일이야, 부부장! 초현상특무부실로의 제1관문이 무너졌어!"
"방화벽도 제 구실을 못하고 있어요! 이대로 가다간!"
녀석은 점점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상으로 통하는 비상용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이쪽으로!"
히마리의 지시를 따라, 우리 모두는 탈출구로 향했다.
- 콰앙!
마지막 문을 부수고 들어왔지만, 초현상특무부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새 놓쳤군...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어."
보안을 위해 물리적으로도 전자적으로도 이 장소를 감춘 인류의 정성에는 나도 혀를 내둘렀다.
"그렇다면... 지금쯤 지상에 도착한건가."
나는 방주의 기능을 활성화하여, 목적지를 지상으로 정했다.
"그러니까, 미친 깡통 하나를 족쳐달라고?"
"그래, 네루 선배. 솔직히 나도 뭐가 뭔 상황인진 모르겠지만, 딴 것도 아니고 초현상특무부의 비상 연락이라서..."
세미나 부실, 내가 세미나의 회장 대행으로서 C&C를 호출했을 때였다.
"뭐, 하라니까 하겠지만, 갑자기 선생님이 땅에서 솟아나지라도 않는 이상 믿기는 힘든 이야기인데.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깡통이라니..."
네루 선배는 갑작스런 호출에 심드렁한 반응이었지만...
- 위이잉!
"어?"
세미나의 바닥이 열리고 웬 엘리베이터가 튀어나오자, 표정이 확 바뀌었다.
"뭐, 뭐야 이거! 굉장하잖아!"
"아니, 세미나에 이게 왜...!"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네루 선배와 달리, 나는 갑작스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겨우 현실을 인식하게 된 것은,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을 확인했을 때였다.
"잠깐, 선생님? 왜 거기에..."
"우욱, 아직도 멀미가... 초콜릿 공장의 투명 엘리베이터도 아니고..."
"부장, 대체 왜 이게 세미나 부실에 연결된거야...?"
"... 절대 그 여자의 깜짝 놀라는 표정을 보기 위해서였다곤 죽어도 말 못해요."
엘리베이터에는, 선생님과 아비도스의 학생들, 초현상특무부와 베리타스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저앉아 있었다.
"아니, 선생님!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미안 유우카, 설명은 나중에 할게. 네루! C&C 애들은 모두 모인거지?"
"어? 어, 어. 세미나에서 연락이 오길래, 다들 불러두긴 했는데."
네루 선배와 대화하며 빠르게 인원 체크를 마친 선생님은, 내 손을 꼭 잡고 부탁했다.
"있지 유우카, 이곳을 컨트롤 타워로 쓰고 싶은데 가능할까?"
"네? 네, 선생님 부탁이라면... 잠깐, 네? 컨트롤 타워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길래...!"
"설명하자면 좀 길어! 다들 준비하자!"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모두들 각자 자리를 잡고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교내 모든 CCTV, 세미나의 메인 컴퓨터와 연결했습니다! 화면 분석을 통해 MALICE가 있는 곳을 파악하겠습니다!"
"고마워, 코타마! 네루, 출동 준비를 서둘러줘! 토키도 지금 아비 에슈흐를 가동시키는 중이니까!"
"아아, 맡겨달라고!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는데?"
뚜둑 소리와 함께 어깨를 푼 네루 선배는, 왠지 모를 고양감을 느끼는 듯했다.
"찾았어, 부장! 도서관이야!"
"고마워요, 마키. 그럼 네루, 다른 부원들에게도 그곳으로 오라고 추가 연락을..."
"잠깐, 어디라고요?"
베리타스의 대화를 들은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응? 유우카, 왜 그래?"
"아니, 그곳에는..."
나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선생님을 보고 말했다.
"아직 노아가 있다구요...!"
"으아앙~! 대체 왜 나만 낙제점인건데! 나도 아리스나 유즈처럼 도서관에서 만화책 보고 싶었는데..."
"언니, 그건 그냥 언니가 공부를 안해서 그렇잖아..."
밀레니엄의 도서관. 수많은 학생들이 지식을 탐구하기 위해 모인 그곳에서, 나는 평소의 세미나 서기 업무 대신 낙제생 사이바 모모이의 공부를 봐주고 있었다.
듣자하니 신작을 플레이하는 데 공부 시간을 뺏겨서, 수학 시험에서 낙제점을 맞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노아 선배같이 친절한 사람이 공부를 봐주셔서 다행입니다! 유우카였다면 분명 모모이한테 엄청 화냈을 겁니다!"
"저기 아리스, 그렇게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 험담하는 건 좋지 않아..."
"후훗, 우리 부장님 말이 맞아요, 아리스 씨. 그리고 도서관에서 모모이 씨,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구는 건 예의가 아니랍니다?"
평소 게임개발부를 귀여워하는 유우카의 마음에 공감하며 그녀들을 타이르고 있을 때,
"그 말대로다. 러닝 결과, 도서관에서 조용히 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인류의 필수적인 매너로 정의되는군."
"어...?"
선생님과 비슷한, 그러나 끔찍할 정도의 이질감이 있는 목소리가 귀를 타고 들어왔다.
"으엑! 뭐야!?"
"분명 방금까지 없었는데...!"
"에엣!? 역시 키보토스에 마법은 실존했던 겁니까?"
"아니, 그보다도 저 꼴은 대체..."
"당신은, 누구죠...?"
우리는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신사답게 인사를 건넸다.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MALICE라고 한다. 지금 이렇게 생긴 사람들을 찾고 있다만."
자신을 MALICE로 소개한 그것은, 홀로그램을 띄워 비슷하게 생긴 두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저건..."
"시로코 씨들 아닙니까?"
"그 사람을 왜 밀레니엄에서 찾는거죠? 그녀들은 아비도스의 학생들일텐데요, 그리고 무단으로 이곳에 침입한 이상 저는 세미나의 임원으로서 당신을 내쫓을 의무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도서관 문을 박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었냐, 깡통 자식아!"
"아하핫, 부장! 엄청 신났나 보네!"
"저, 선배들. 여긴 사람이 많으니까 일단 진정하는 게..."
"냅둬요, 카린. 말린다고 들을 사람들도 아니잖아요?"
"C&C 여러분! 어째서 여기에..."
"러닝 결과를 수정할 필요가 있겠군. 도서관에서의 정숙은 그리 필수적인 매너가 아니었나."
MALICE는 C&C의 멤버들을 훑어보며,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익숙한 보라빛의 균열이 생겨났다.
"그건...!"
"방주에서 본 그거잖아...!"
"말도 안됩니다...! 그 기술은 황금구조대처럼 실전됐을텐데...!"
타인의 반응은 개의치 않고, MALICE는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이 이상의 접근은 공격행위로 간주하겠다. 더 이상은..."
"거절하겠습니다."
의외로 대답은 MALICE의 뒤에서 들려왔다.
"아비 에슈흐, 섬멸 모드. 목표 확인, 록 온! 에너지 풀 차지, 선배님들, 피하십시오!"
그 말과 함께, 눈부신 섬광이 도서관을 뒤덮었다.
"아비 에슈흐인가... 인류의 병기치곤 퍽 훌륭하군."
"역시... 어림없었던 건가요..."
연기가 걷히자, 그곳에는 토키와 똑같은 아비 에슈흐에 탑승하여 빔 공격을 방어한 MALICE가 있었다.
"그러나 거추장스럽다. 예측 능력이라면, 이쪽이 우위니까."
즉시 외골격을 탈거하여 바닥에 던져둔 MALICE는, 토키를 노려보았다.
토키의 아비 에슈흐는, 방금의 빔 공격으로 에너지를 전부 소진한 나머지 강제 탈거된 상태였다.
"게임개발부 여러분, 어서 이쪽으로! 여러분도 빨리요!"
"으, 응!"
녀석의 관심이 토키를 향해있던 틈에, 노아는 도서관에 있던 다른 학생들을 대피시켰다. 목표물 이외에는 공격하지 않는 녀석의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그럼, 집행하겠다."
토키의 개인 화기, 시크릿 타임을 꺼내든 녀석은 토키를 향해 접근했다.
그러나,
"어디 이것도 예측해보시지, 짜샤!"
후배가 마냥 맞고만 있는건 내가 용납 못한다고!
"흡!"
품에 뛰어들어 탄환을 갈기자, 아무리 녀석이라도 조금은 버거워하는 듯했다.
"네루 미카모, 역시 근접전이 특기로군. 예측을 수정한다."
"하! 역시 깡통은 깡통이네! 아스나!"
"응! 맡겨줘!"
잠시 빈틈이 생겼을 때, 지시를 받은 아스나는 녀석을 향해 돌진하였다.
"접근 경로는 이미 예측했... 응?"
"아하핫! 하나도 안 맞는다고! 에잇!"
아무리 쏴도 한 발도 안 맞는 아스나를 보며, 녀석은 제법 동요했다.
"지금이야! 카린, 아카네!"
"타겟 확인, 한 방에 날려버리겠어."
"정중하게 부탁드릴게요,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섬광과 같은 탄환과 화산과 같은 폭발이 녀석을 덮쳤다.
"허억... 허억... 허억..."
"부장! 어떤 것 같아?"
"모르겠어, 연기가 걷히면 확실해지겠지."
"제발, 제발..."
컨트롤 타워가 된 세미나 부실에서, 우리는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그저 지켜보려고만 한 것은 아니다. 대책위원회의 부원들은 나가서 같이 싸우려고 했지만, 잘못하면 아비도스와 밀레니엄 간의 외교 문제로 번질 수 있어 선생님이 말렸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엔...
"녀석이 원하는 건 네가 직접 나서는거야, 시로코. 부탁이니까 여긴 저 아이들에게 맡기자. 작전도 충분히 의논했으니까."
"응..."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상황을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 답답했다.
"연기가 점점 걷히고 있습니다, 카메라를 줌인할게요."
히마리가 CCTV를 줌인하자, 그곳에는...
"... 보기보단 훌륭하군."
말과는 달리, 외장이 전부 벗겨진 채 흉측한 모습을 드러낸 MALICE가 있었다.
"해냈어요, 모두들! 이제 토키가 마지막 역할을 다해주기만 한다면...!"
히마리와 치히로는 특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직접 세운 작전의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소용없다. 너희들 따위..."
"그렇게 두진 않을 겁니다, 깡통."
그것은 다시 한 번 균열에서 무장을 꺼내려고 했지만, 바로 뒤에서 나타난 토키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무슨 짓을... 커헉!"
뒤를 돌아보려던 MALICE는, 토키가 꺼낸 주사기형 장치에 등을 공격당하고 말았다.
"메인 OS의 자괴를 유도하는 칩입니다, 베리타스의 두 지성이 만들어낸 것이죠."
"그런...!"
해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러... 니... ㅈ..."
그것의 팔다리가 인간은 불가능한 각도로 기괴하게 비틀리더니, 이내 시각 센서의 붉은 빛이 꺼진 채 작동을 멈추었다.
"... 뭐야, 괜히 긴장했구만. 콜싸인 더블오, 금방 복귀할게. 아, 도서관 부순 건 미안?"
"됐어요, 네루 선배. 빨리 복귀해요, 다들 걱정하니까."
그렇게 모두는 도서관을 빠져나와 세미나 부실로 향하였다.
"러닝 완료."
"어...?"
도서관 앞 복도를 찍는 화면에서 그것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뭐야, 잠깐! 분명히 넌...!"
"정말로 너희의 공격을 하나도 예측하지 못했을거라 생각했나? 이건 그저 데이터 수집 및 분석을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외장이 벗겨진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것은 파손을 온전히 수복한 상태였다.
"특히 히마리 아케보시의 프로그램... 이건 쓸만하겠군."
MALICE는 흡족스럽다는듯, 아케보시 히마리의 시그니처가 그려진 홀로그램을 띄웠다.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그것보다 토키 아스마,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만."
흥분한 네루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것은 토키를 바라보며 물었다.
"... 뭡니까?"
"네가 타고 있던 아비 에슈흐, 거기에 자폭 기능은 없었나? 리오 츠카츠키 회장의 작품이라면, 있을법도 한데."
"무슨...!"
MALICE의 말에, 토키는 눈에 띄게 분노하였다.
"그럴리가 없지 않습니까! 리오 회장이 제멋대로인 면은 있지만, 전 그녀의 진심을...!"
"뭐 그런가. 상관없다."
"네...?"
MALICE는 균열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일종의 스위치같은 형태였다.
"설마!"
"그저, 어떤 세계에선 리오 츠카츠키가 자폭 장치를 실제로 달기도 했다는 것만 알려주지."
그리고 버튼이 눌렸을 때,
세미나 부실의 화면에서는 밝은 빛만이 보이더니 이내 신호가 끊기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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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 언제쓸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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