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스 반 미리스 1세, Old Soldier Holding a Pipe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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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적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래. 넌 운이 좀 좋았지. 하지만 전장만큼 운이 많이 필요한 장소도 많이 없다.
더 말을 길게 하지 않겠다. 네가 운 좋게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면,
같은 상황이 다시 찾아왔을 때 실수를 두 번 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할 거다."
할 말을 다 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의무를 다하러 모닥물 너머로 다시 사라졌지.
그 인간의 말을 수십 년 지난 오늘날까지 또렷하게 기억한다.
여간 인상 깊은 일이 아니었지.
사람 죽이는 거나 잘 하는 줄 알았던 그 인간이 꽤 섬세한 언변의 소유자였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거든.
나는... 나는 그때 결심했다.
나는 그 장소, 그룬부르크 근교의 강변에서 이미 한번 죽었던 거라고 말이다.
나였어야 했던 누군가는 그때 비겁함을 죄목으로 알베르트의 총탄에 맞아 죽었고,
아직까지 붙어 있는 내 숨은 덤 같은 거라고... 그래. 그렇게 나는 만들어졌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병사로. 그 이후로 나는 다시는 비겁자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폐하의 본격적인 원정이 시작되었다.
분리주의자 토벌은 그분께서 꿈꾸시던 대원정에 비하면 정말 훈련의 일환에 불과했지.
그분께서는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계셨다.
지그마께서 이곳에 처음 제국을 세우셨을 때와 같이, 산산조각난 영지들이 언젠가 하나가 되어
다시금 위대한 인간들의 영역을 이룩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그리하여 북으로는 카오스 황무지, 남으로는 대 황무지까지 제국의 호령이 닿게 만드는 것이 그분의 목표였지.
그리고 내 감히 촌평하겠다만, 그분께서는 오직 그 일만을 위해 준비된 분이셨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원정엔 당연히 그만큼의 반발이 따르기 마련이지. 그리고 그 반발을 짓누르기 위해서는.
신임 황제가 자신이 따를 가치가 있는 자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주로... 전장에서의 승리로.
전쟁. 또 전쟁이었지.
처음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좀 조촐했어.
눌른 부근의 고블린 떼거지를 토벌할 때는, 무슨 산책이라도 온 것 같았지.
예상했겠지만 그것도 오래 가진 않았다.
그분께서 남부 회색 산맥을 올라야 한다고 명하셨을 때는 그분이 너무 이른 나이에 미치신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 뭐냐.
군장을 메고 깎아지른 산들을 올라가는 건 전혀 즐거운 일이 아니란다.
내 군생활 통틀어 몇십 번은 그런 일을 더 겪었지만, 마지막까지 익숙해지지 않더군.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머리가 고산지에서의 호흡 곤란으로 멍해졌을 무렵, 머리 위에서, 등 뒤에서 고블린들이 미친 듯이 튀어나왔다.
매복도 매복이지만, 실족 때문에 많은 병사들이 죽어나갔어.
매복? 매복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알고 싶으냐? 이 못생기고 작고 냄새나는 쓰레기들은,
작은 덩치를 활용해 온갖 기상천외한 곳에서 기습을 감행해 우리들의 사기를 깎아먹으려 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항상 척후조와 본대의 거리를 철저하게 유지하고, 정말 신중한 속도로 진군하셨지.
산악 지대 출신 유격대원들이 조잡한 함정들이나 똥으로 가득찬 토굴 등을 발견하면, 그것들은 즉각 메워졌다.
그리고 불가해한 솜씨로 수십 개 수색조들의 진로를 조율하시어 그 사이로 토끼 한 마리 새 나갈 수 없도록 하셨다.
우리가 상대하는 놈이 무엇이던 간에, 완전히 그것의 머리 꼭대기에 눌러앉은 게 틀림없었지.
실제로 이 산발적인 기습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족족 와해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의심스럽기도 했지. 고블린들이 약삭빠르다곤 하나 그건 보통 사악한 잔꾀 같은 것들에 국한된 일로,
전술적인 식견 같은 없다는 것이 제국 학자와 전술가들의 중론이었거든.
그런데 이건... 평지에서의 회전을 피하고, 지연전을 펼치고, 기습으로 소모전을 강요하고, 산악 지형을 이용해 숨는 건
고블린들이 할 만한 일이 아니었지.
고블린들의 소규모 주둔지를 수도 없이 많이 발견했지만 대부분은 최근 퇴각해 비어 있거나, 소수만이 남아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유격대의 기습을 미리 알아채고 도주한 게지.
이건 몹시 조직적이고, 잘 짜여지고, 목적이 명확한 움직임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알겠다. 알겠다고. 네 말이 맞다. 내 짐작이 아니라 알베르트의 짐작이었지.
알베르트는 우리가 예상과는 다른 무언가를 상대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긴장을 놓치지 말라고 했지.
이런 식으로 영특하게 움직이는 고블린 따위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고 말이야.
허나 그 '다른 무언가' 가 정말로 무엇일지는 아무도 떠올릴 수가 없었어.
야생 오크일까? 오크 워보스가 나타났다고 생각하기엔 이 산맥엔 고블린 뿐이었고 오크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폐하께서 이 저주받을 산에서 도대체 무얼 찾고 계시는 건지 알 수 없었지.
'고블린 무리의 수장을 찾아 죽여야 한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다들 그걸 가지고 별로 납득하진 않았다.
아니, 그 고블린 수장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고블린 따위나 잡아 죽이자고 폐하께서 직접 이 산에 행차해서,
친위대와 기타 잡것들이 산을 이 잡듯이 몇 달간 뒤지고 다니게 한단 말인가?
폐하 아래 속한 자들은 모두 못마땅해했고, 그걸 숨길 수도 없었다.
장교들은 새로운 폐하와 함께하는 자신의 기념할 만한 첫 원정이 이딴 산속 벽지에서 고블린 따위나 찾는 것이라는 데 기막혀했고,
병사들은 매번 똑같은 경계, 수색, 전진, 빈 주둔지 발견을 반복하다 목적 의식이 상실되었다.
보급품을 나르는 잡역부들과 지원 부대는 단순히 산 타는데 아주 지쳐 나자빠졌지.
하지만 이 모든 무지한 자들의 불평 사이에서... 폐하께서는 꾸준히 목적을 위해 나아가고 게셨다.
그리고 마침내. 길조차 없는 산맥 중턱의 절벽 사이에서 어떤 정찰대원이 신묘한 구조물을 발견했지.
대부분이 마모되고 풀숲과 나무에 덮여 있었지만, 그 웅장하고 정교한 만듦새는 고대의 난쟁이들 솜씨가 분명했다.
깎아지른 절벽을 큰 화폭으로 삼아, 사오십 피트는 족히 될 법한 거대한 양각의 쌍둥이 드워프 전사의 조각이 보였다.
완전 무장한 그 조각상은 풍랑과 절벽 위로 드리워진 나무 뿌리 따위에 깎여 나가 처음만큼의 위용은 간직하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갑주 위에 새겨진 장식들은, 그게 드워프의 조상 영웅들의 역사를 묘사한 것임을 아직 쉽게 알아볼 수 있었지.
어떤 인간 조각가들을 데려와도 그 솜씨를 흉내내지 못할 거다.
도대체 절벽 한가운데에 그런 구조물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
다시 말하지만 음각이 아니라 양각이었다니까.
그 절벽 자체가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통째로 깎여 나갔다는 말이야!
아무튼, 그것들이 교차해서 세운 도끼 자루 사이로 십오 피트는 족히 되는 입구가 나 있었지.
절벽 한가운데 난 입구엔 맞은편 절벽 위로 향하는, 한때 마차도 지나갈 수 있을 법한 도로들이 나 있었겠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엔 무너지고 흔적만이 남아 이제는 원형의 추측만 가능했다.
그리고 절벽을 가로질러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법한 위태롭기 짝이 없는 좁은 샛길만이 남아 있었지.
그래. 내 눈으로 드워프들의 버려진 산악 요새 일부를 직접 보고 있었던 거야.
폐하께서는 자신이 찾던 장소가 바로 이 곳이라고 확신하셨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속한 부대는 바깥에서 혹시 모를 기습이나 증원군 차단을 막기 위한 경계 부대에 편성되었거든.
바꿔 말하면, 그냥 서 있었다는 이야기다.
모르겠구나. 어쩌면 이게 우리 중대를 위한 일종의 배려였을지도.
첫 전투에서 중대가 입은 피해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시점이기도 했다.
전투에 지장이 갈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최고의 상태도 아니었지.
사상자는 결국 신병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하마한 기사들과 베테랑 검병, 가장 솜씨 좋은 사수들이 폐하를 따라 그 성채 안으로 들어갔다.
우린 밖에서 노가리나 까고 있었지.
"대장, 전 아직도 이해가 안 갑니다. 고블린을 잡으러 다른 누구도 아닌 폐하께서 직접 여기로 오셨어야 할 이유가 뭡니까?"
"그걸 알아내는 게 네 임무랑 무슨 상관이라도 있느냐?"
"그건 아니지만... 아니, 우리가 여기서 좆뺑이를 친 지 벌써 반 년도 훨씬 넘게 지났습니다. 대장도 말했었지 않습니까.
우리가 상대하는 게 보통 고블린이 아닌 것 같다고. 그럼 뭡니까. 고블린 나라의 왕이라도 있다는 겁니까?"
"제기랄, 궁금하면 직접 가서 폐하께 물어 보지 그랬느냐?
우리가 누구랑 데이트를 하고 있느냐고?"
"우린 병사들인데 등산만 허리 빠지게 하고 있잖습니까!"
"그리고 넌 정말 산새마냥 쉴새없이 재잘대고 있고 말이다.
산을 타라면 타는 게 네가 해야 할 일이지.
엄마가 늦기 전에 집에 돌아오라고 했는데, 산에 너무 오래 있어서 불만이라는 거냐?"
알베르트와의 대화는 보통 이런 식이었다. 내가 왜 처음부터 좆 같은 새끼라고 언급했는지 이해하겠지.
그리고... 하루가 꼬박 지나 폐하와 휘하 병력이 빠져나왔을 때는, 하나같이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었고, 휘하 병사들의 수는 많이 줄어 있었어.
그분께서 이상한 고깔 모자를 쓴 저주받을 피조물의 잘린 머리를 높게 들어올리며 외치셨지...
"오늘 우리는 라이클란트 남부와 위센란트를 끊임없이 어지럽히던 사악한 고블린의 수장을 직접 참살하였다.
그리고 이게 그것의 머리다!"
솔직히 말하마. 난 그때까지도 좀 시큰둥했던 것 같다.
그래. 고블린인 건 좋은데, 저 하잘것없는 대가리가 뭐라고. 저런 왜소한 놈은 나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겠다.
고작 고블린 따위나 잡아 죽인 걸로 폐하가 자신의 전공을 과시하고 싶으신 거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다고 말이야.
그러나 그 '왜소한 놈'의 부재가 가져온 결과는 몹시 극적이었다.
회색 산맥 근처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던 고블린들의 약탈이 순식간에 잦아들었고
지역의 소규모 경비대들이 상대할 정도로 조직력을 잃었다.
계속해서 말하겠지만, 내가 이 첫 번째 출정을 특별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여기서 제국이 얻은 이득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이건 전략적으로 옳은 원정이었다.
놈을 처리한 결과 주변 지역의 치안과 공공 질서가 순식간에 회복되었고,
이것만으로도 우버스라이크 주변 공납물과 세수의 산출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고블린들의 조직적인 약탈이 사라졌으니 소규모 호송대로도
상인들의 도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물류 이송이 훨씬 원활해졌고 물가가 안정되었지.
나중엔 다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때 그 잘라진 대가리가 실은 꽤 거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폐하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작전이었고, 폐하가 아닌 그 누구든 자신의 명성 때문에 선뜻 떠맡기 힘든 작전이었지.
다른 점을 보자면 정치적으로 옳은 판단이기도 했다.
우버스라이크에 일어났던 변화가 눌른 근교 마을들에도 일어났다.
이 원정의 결과 위센란드의 호의를 이끌어내고 리프비츠 선제후께서 폐하를 지지해 준 것을 보답할 수 있었지.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 모든 제후국 중에 으뜸 가는 화약 장인들과 포병학교가 폐하께 더 잘 협조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회색 산맥의 드워프 요새와 접선하는 길이 뚫려 그들에게서도 지역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지. 이건 고작 첫 번째 원정이었고, 폐하의 계획에서 밑그림만 겨우 그린 것에 불과했다.
실바니아 수복, 국경의 공들과의 협상, 드워프와의 '견고한' 군사 동맹...
하나만 해 내도 제국사에서 영원한 업적으로 칭송될 일들을 폐하께서는 그 자신이 살아 계신 동안 모두 해 내고자 하셨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지. 내가 '우리는 어디로 갔다'는 걸 한 마디로 일축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어마무시한 일들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 줬으면 좋겠구나. 사실 매 원정 하나하나를 구차히 풀어 쓴다면
그걸로 책을 만들어 펼 수 있을 지경일 테니. 그런데 나는 글 쓰는 재주가 없으니까...
동쪽으로 진군한 우리들은 무트의 근교에서 가장 지독한 악몽에서도 보지 못할 시체들과 해골,
그리고 날개 달린 어떤... 끔찍한 것들과 싸워 이겼다.
바로 실바니아의 환영 인사였지. 한때는 제국이었던 이 동부 지역을 어떤 사악한 것이 집어삼켰다는 이야기를
실제로 확인하게 된 순간이었어. 그곳은 폭군 같은 흔해빠진 누군가가 통치하는 지역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이질적이고 사악한 무언가가 있었지.
...사실 이 동네는 생각할 때마다 특별히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서 말이다. 게하임니슈나흐트가 일년 내내 지속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거기 시체와 늪, 무덤 말고 뭔가 다른 게 있기는 했나 싶다.
그리고 내가 싸운 건 그 악몽의 동산에 도사리는 것들의 맛보기에 불과했지.
난 드라켄호프로 향하지 않았어. 그걸 맡은 건 폐하의 총애받는 라익스마샬, 쿠르트 헬보르크 각하셨지.
폐하의 총력전 선포 이후 제국이 전시 체제로 들어가면서 폐하의 직할 부대 말고도 몇 개의 원정대가 더 편성되었거든.
바라건대 그분과 그분 뒤를 따른 병사들에게 축복이 있었기를! 분명히 거기선 그게 아주 많이 필요했을 테니 말이야.
황금 가면을 쓴 수상한 마법사도 그분과 함께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난 티루스 고르만 대종정 예하가 가셨더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지 뭐냐.
그분이 그 염병할 파리굴 전체에 불을 지르는 상상을 항상 했었거든.
아무튼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서나 더 들을 수 있을 것 같구나.
실바니아의 남쪽으로 바로 진군한 우리는 고블린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덩치를 지닌 그린스킨을 손수 쳐죽이고,
대기조차 증발한 대 황무지에선 건어물처럼 말라붙어 가며 끊임없는 소모전을 펼쳤다.
네가 믿지 않을 지도 모르나... 우리는 여기까지 오면서 한 번의 패전도 겪은 적이 없었다.
기적 같은 순간들이었지. 우리가 뭔가 차원이 다른 전쟁의 귀재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원정이 어떤 과정이었냐면, 첫 고블린 토벌에서 느꼈던 어중간한 위화감이 확신으로 바뀌어 나가는 과정이었지.
단언하건데 어떤 필멸자도 감히 그와 같이 우아하게 군대를 지휘할 순 없을 거다.
전열에 선 검병들의 사기가 꺾이고 와해되기 직전, 정확한 순간에 증원 보병대가 합류했다.
경기병대는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적 사격조와 마법사의 위치를 파악하고,
우리 사격조는 항상 적들보다 발빠르게 요충지를 선점하고 사격을 개시했다.
우리 진영에서 약하고 비어 보이는 곳이 있으면, 그건 틀림없이 함정이었지.
공세 중인 아군 병력의 후열을 타격하려고 했던 상대 기병의 시도들은,
정말이지 그보다 정확할 수 없는 타이밍에 맞부딪힌 기사단의 지원으로 번번히 무산되었다.
이 모든 질서 잡힌 작전 도중 후방의 포병 장교가 신들린 것처럼 사각과 화포의 장약량을 지시하면...
그 포탄은 그야말로 지그마의 인도를 받으신 것처럼 날아가 적에게 가장 치명적인 위치에 착탄했다.
전장을 쉴새없이 오고가는 전령들과 정찰조들의 힘으로 그분께서는 전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자신의
손바닥 모양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알고 계셨지.
아니, 가끔씩은...
난 그런 생각을 한다. 마법이나 축복 같은 무언가의 힘으로, 그분이 실제로 전투 지역을 조감도처럼 자유자재로 보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 능력에 비하면 전령들 같은 건 겉치레에 불과했던 것 같기도 해.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제기랄. 이걸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구나. 아니. 아무리 전령들이 유능하다고 해도,
전령들에게 보고를 받기도 전에 지시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느냐?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다.
우리 대대의 배치를 방금 확인하고 부대장의 보고를 들은 전령이 떠난지 1분도 안 돼서 또다른 전령이 폐하의 새 명령을 가지고 왔어!
난 아직까지도 그런 마법이 있다는 걸 들어 본 적은 없지만, 그건 정말이지 설명할 수가 없는 능력이었다.
속도만 놀라웠겠느냐?
처음에 난 이게 원래 이런 건줄 알았다. 그야, 그렇잖느냐. 난 이게 첫번째 삶이고 첫번째 전쟁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수많은 전투가 끝날 때마다, 바로 그 알베르트가 믿을 수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거야.
요사이 항상 뭐가 그렇게 얼이 빠져 있냐고 물으니, 알베르트는 그 질문 자체가 무슨 모독이나 다름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이 놀라운 전술적 식견을 어떻게 못 알아볼 수가 있느냐고 받아치더군.
얼마나 멍청해야 이 완벽하기 짝이 없는 지휘에 놀라지 않을 수 있냐면서 말이다.
모든 연대, 연대 속의 대대, 심지어는 대대 속의 중대까지,
각자가 완벽한 위치에 배치되고 완벽한 명령이 내려지며 완벽한 방식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더군.
이 지휘에 비하면 자신이 지난 몇십 년 간 해온 것은 일곱살 난 아이들의 병정놀이와도 다름없었다고 말이야.
우리는 패배라는 걸, 어떤 사소한 형태로든 경험한 적이 없어! 물론 그야, 죽는 사람은 꾸준히 생겼지. 전쟁이니까.
죽음이 대단찮은 것이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승리, 승리, 또 승리를 겪으면서, 우리들은 어떤 기묘한 확신 같은 것을 갖게 되었다.
우리의 승리는 처음부터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야만족 따위가 어찌 문명국의 군세에 대적한단 말이냐?
그리고 만약 우리가 이 '전쟁의 천재'밑에서 주어진 명령만 꾸준히 듣는다면,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말이야.
이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냐면, 명령에 완전히 복종하는 군대가 만들어졌다.
아 물론 군인은 명령에 복종해야지.
근데 그런 입버릇 같은 이야기가 아니야. 정말로 '지시하면 ㅡ 따르는' 과정만 밟는 군대가 탄생했다고!
말로는 참 쉽지. 하지만 지그마 이후 어떤 전쟁 군주께서도 만드신 적 없는 군대였단 말이다.
상대 포병과 사격조의 시야에 들어오는 위치로 진군하라는 명령을 들은 우리 대대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 위치로 진군했다.
조금만 더 늦으면, 조금만 뭔가 잘못되면 모두가 아무런 의미 없이 개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위치였고, 모두가 그걸 알 수 있었지만
그 명령을 들은 우리는, 틀림없이 아무런 질문 없이 그 위치로 이동했지.
집채만한 괴수들이 종말의 소음을 내지르며 달려들고 있어도, 우리는 그냥 자리에 서서 창대를 치켜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우리의 축복받으신 마법사가, 혹은 기병대가, 혹은 포병대가 우리가 박살나는 것보다 항상 한 박자 빠르게
선공이나 반격을 가했고, 우리는 항상, 제기랄. 항상 승리했다.
그리고 단언하건데 이건 씨발 결코 운 같은 것이 아니었단 말이다.
입 밖으로 섵불리 꺼내진 않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어쩌면 황제 폐하 이분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그토록 오래 기다려 왔던 분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
아니 어쩌면, 저분이 바로 지그마신게 아닐까?
인신이신 그분께서, 현 폐하의 육신을 빌어 전장의 화신으로 다시 태어나신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허무맹랑한 소리 같으냐? 신성 모독 같기도 하고? 하지만 전장에 있었던 모두가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와중에 어떤 피치 못할 전술적 필요성으로 인해, 조공이나 미끼로 던져져 죽어야만 하는 부대는 틀림없이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전쟁이니까.
이런 부대들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생존을 위한 투쟁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가끔씩 상기시키는 것이었지.
어쩌다가는, 그게 우리가 되기도 했다.
그래... 아직도 선명하군.
우리는 마침내 대 황무지, 그린스킨들이 그 끔찍하고 뒤틀린 언어로 배드랜드라고 부르는 곳의 남단까지 치고 내려왔었다.
난 이미 이 시점에서 아주 베테랑 병사였어. 운이 좋게 몇 년간 살아남은 나 역시 부사관이 되어 알베르트를 보좌하는 위치에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수많은 제국의 적들이 폐하의 망치 아래 스러져나갔다.
실바니아의 뒤틀리고 오만한 귀족들, 그린 스킨 무리 우두머리, 불충한 반역자들, 비스트맨 쓰레기들...
이 위대한 원정이 낳은 연이은 승전보에 고무된 선제후들은,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성실한 태도로 폐하께 협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제국의 역사라는 게 어땠느냐? 하나로도 그 힘이 모자랄 판에 열 개의 이득 집단으로 쪼개져서
누군가 무언가 해 보려면 다른 누군가가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훼방놓는 일들의 연속 아니었느냐?
그러다가 다 같이 확실하게 망하기 직전이 되면, 뒤늦게 불을 꺼 줄 영웅을 애타게 찾아 헤메고...
제국의 수많은 실패들이 거기서 온 게 아니냔 말이다.
까놓고 말해 제국이 그 따위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졸란트와 드락발트가 멸망했겠느냐?
그런데 처음으로 우리가 '열 개의 인간 국가 떨거지' 가 아닌 '제국'이 된 거야.
경이로운 일이지!
남부 왕국과 국경의 공국들로 말할 것 같으면, 중개 무역과 보급품 판매에서 나오는 엄청난 수입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느라 바빴지.
각 선제후국에서 도착한 신병들과 베테랑, 전리품을 찾아온 용병대가 매달마다 부대의 빈 자리를 빠짐없이 메웠다.
이때쯤 이 원정은 그야말로 영광의 정점에 달해 있었지.
그리고 난쟁이들이 여덟 봉우리 요새라고 부르는 그 저주받은 곳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마침내 우리 중대가 미끼가 되는 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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