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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FF] 슈퍼스타 장원영 -23

순풍만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6.07 17:55:27
조회 331 추천 13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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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선택 2020! 순풍돌 총선거!]의 학부예선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남자부 우승은 누구나가 예상했듯 압도적인 득표차를 내보인 서태검이 차지했지만, 박빙의 승부가 될 거라고 예상한 여자부 경쟁에서 의외의 반전이 무려 두 번이나 등장했다. 


하나는 최고 인기드라마 [THE 왕]에 출연함으로써 주가를 높인 원영이가 무난히 승리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갑작스럽게 배역이 안유진에게 넘어가면서 마지막 반나절을 남기고 모든 표를 빼앗겨 단 1장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당연히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로 몰린 장원영에게 온갖 비난을 쏟아내면서 안유진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고, 그것은 아마 장원영 본인 역시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러나 최종 발표에서 엄청난 이변이 발생했다. 장원영은 그 반나절의 시간동안 남아있는 모든 포카를 팔아치워 서태검조차도 해내지 못한 매진사례를 기록하면서 당당하게 안유진에게 승리한 것. 


물론 그 포카 대부분을 한 사람이 샀다는 금권선거의 무시무시함을 학부생들이 받아들이기도 전에, 장원영은 마치 자신의 승리가 오래전부터 예견되었던 것 마냥 당당한 모습으로 소감발표를 하고는 친히 팬미팅을 위해 총엠티에 행차하시겠다는 감개무량한 발표까지 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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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크흑..원영이가..크흑.. 이겼어요..크흑...”


민주는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 이 감격스런 장면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내 손을 잡았고, 나는 바로 저 장원영을 승리시키기 위해 무려 도합 299장의 포카를 구입한 그 손으로 민주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울지마 민주야.”


“그래두 크흑... 원영이가 너무 상처받았을 줄 알았는데.. 크흑... 어떻게 이럴수가 있죠 오빠? 도대체 누가 원영이를 위해 남은 포카를 전부 산 걸까요?”


민주는 그 당사자가 바로 자신의 남자친구인 나라는 것은 꿈에도 의심하지 못한 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어왔고,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딱히 답해줄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럴 때는 꼭 눈치 빠른 유리가 끼어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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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미팅 하는 거 보믄 알지 않을까여? 그 싸람이 음청 샀으니까 무조건 팬미팅 할거 아이에여?”


“그, 그렇네? 도대체 누굴까? 누가 원영이를 위해서 그렇게 큰 돈을 쓴거지?”


민주는 원영이와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우리조차도 눈치 채지 못하게 몰래 원영이를 흠모해 온 사람이 누굴까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단상에서는 채원이가 마지막 일정으로써 팬미팅 당첨자를 발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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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미팅 당첨자 발표하겠습니다. 먼저 단체 팬미팅의 4인과 1대1 팬미팅의 1인은 겹치지 않는다는 걸 먼저 말씀드리구요. 남자부 2등인 이예준 후보의 경우에는 포카 구입자가 없어서 팬미팅 당첨자가 없습니다.”


“퐈하하하하하!!”


생각해보면 오늘 아침의 장원영 만큼이나 쪽팔려야 하는 상황인데 이예준 저거는 이런 상황조차도 즐기는 듯이 ‘우와아악!’ 소리를 지르면서 남아있는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어내는 중. 어찌되었든 서태검과 1대1 팬미팅을 하게 되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서태검 당선인의 4인 단체 팬미팅 당첨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이 당첨자들은 오늘 총엠티에서 서태검당선인과 한 조를 이루게 됩니다. 15학번 김숙자, 16학번 차점례, 17학번 조말숙 그리고.... 17학번 배나리.”


놀랍게도 4인 팬미팅에 배나리가 끼어져 있었다. 분명히 15장이라고 하는 엄청난 개수의 포카를 구입했다고 했는데 4인 팬미팅에 추첨되었다는 것은 1대1팬미에서는 밀려버렸다는 건가? 그리고 저 멀리서 의자 2개를 이용해 자리하고 있던 배나리의 눈에서 패배의 진한 눈물이 꿀럭꿀럭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럼 도대체 1대1은 누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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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1 팬미팅의 당첨자는.... 19학번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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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오빠 저에요 저!”


민주는 자기 이름이 불리자 뛸 듯이 기뻐하면서 내 손을 잡았다. 거참 신기하군? 물론 민주도 10장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포카를 사긴 했지만 그래도 15장이나 산 사람이 둘이나 더 있었는데 그 불리한 싸움에서 이겨내고 팬미팅에 당첨되었단 말이야?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태검이를 바라보았고, 태검이 녀석은 그래도 1대1 팬미팅에서 아는 사람이 걸린 것이 다행인지 방긋 웃으면서 민주를 바라본다.


“다음은 여자부 2위를 차지한 안유진 후보의 팬미팅 당첨자입니다. 4인 팬미팅 당첨자, 15학번 고동빈, 16학번 김종인, 17학번 이상혁, 18학번 강범현. 그리고 1대1 팬미팅 당첨자는 19학번 성창원입니다.”


안유진의 경우에는 역시 남자들이 많은 표를 뿌린 것 같았다. 상혁이랑 동빈이형은 그렇다치고 종인이형은 원영이한테 떨어져서 바로 저기로 붙었나 보군. 거기에 원영한테 넣었던 20장을 전부 옮긴 성창원이 그녀의 1대1 팬미팅 상대로 정해졌다. 


원래대로라면 성창원과 하루 동안 데이트를 해야하는 유진이를 불쌍히 여겨야 하지만, 솔직히 그녀가 원영이한테 했던 짓을 생각하면 딱히 동정심 같은 게 들지 않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제 장원영의 팬미팅 당첨자가 발표될 때가되자, 모두의 이목이 다시 단상으로 주목되었다. 


“누구지..? 누구지...?”


역시나 다들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누가 장원영의 포카 289장을 혼자서 구매했느냐 하는 거다. 아무리 확률싸움이 의외의 반전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해도, 300장중 289장을 가진 사람이 추첨운에서 압도적일 것은 뻔한 일. 즉, 이번에 발표되는 1대1 팬미팅 당첨자가 바로 원영이의 포카를 대량 구입한 주인공이라는 것. 그래서인지 민주도 유리도 침을 꼴깍 삼키면서 채원이의 입에서 나올 그 사람의 이름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지?


“장원영 당선인의 팬미팅 당첨자를 발표하기 전에 먼저 안내해 드릴 말이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2시 22분경에 포카 289장을 구입한 학우분께서는 스스로 그 포카에 있는 추첨권을 포기했습니다.”


“뭐라고?!”


놀라운 이야기였다. 이 추첨은 포카를 구입한 사람을 대상으로 추첨을 하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가수들 팬미팅 추천하듯 포카에 새겨진 고유번호를 통해 추첨하는 방식. 그런데 그 289장의 주인공은 그 추첨권한을 전부 포기해버렸고, 그렇다는 것은 남은 11장의 포카를 통해서만 추첨이 이루어진다는 거다. 그러자 예나가 발끈하고 나섰다.


“그러는 게 어딨어?”


“본인이 포카를 구입하면서 응원문구에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그 289장에 대한 추첨은 진행되지 않습니다. 남은 11장으로 추첨한 결과를 토대로 보았을 때, 구매자가 딱 3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단체 팬미팅과 1대1 팬미팅의 추첨자가 겹친다는 걸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체 팬미팅 당첨자는 셋입니다. 19학번 티모, 19학번 김민주, 20학번 조유리. 그리고 1대1 팬미팅 당첨자는....”


일단 채원이가 이렇게나 공적인 자리에서마저 내 본명이 아닌 티모라는 별명을 사용한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데 그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구몬. 어찌되었든 원영이의 포카를 구입한 것은 우리 셋 뿐이고, 숫자로 따지자면 내가 5장, 민주가 5장, 유리가 1장이다. 하지만 제발 1대1 팬미팅에는 민주나 유리가 걸렸으면 하는데.... 그러나 채원이는 여전히 죽일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그 사람의 이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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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학번 티모.”


“...........”


결국 나다. 사실 저 추첨 시스템을 고안한 사람이 나 자신이기 때문에 거기에 그 어떤 제3의 손이 개입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아마 채원이는 그 대상자로 날 지정하는 일 만큼은 피하고 싶었겠지만, 확률적으로 45%정도니까 내가 되는 게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와 다행이다! 오빠 전부 우리가 생각한 대로 됐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왜 추첨을 포기했지?”


결과적으로는 민주의 말대로 나와 그녀가 원영이와 태검이의 1대1 팬미팅 권한을 전부 가져간 격이었지만, 민주도 유리도 그리고 이 강의실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두뇌회로는 289장의 주인공을 찾으려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예나가 단상으로 나섰다.


“아무튼 40분 후 사회대 앞 주차된 버스를 이용해서 총엠티장으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늦지 말고 탑승해 주세요.”


예나의 말에 따라 약 40분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다들 웅성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들의 주된 호기심은 이제 총엠티가 아닌 장원영의 포카를 구입한 사람에게로 옮겨져 있는 상황. 그러는 사이 원영이가 강의실에 들어올 때와는 달리 평소의 자신감 넘치는 그녀가 되어 이쪽으로 다가왔고, 민주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히힝.. 원영아 축하해 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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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다 언니랑 유리 '두 사람' 덕분이에요.”


원영이는 그렇게 내 이름은 쏙 빼놓고는 민주와 유리 덕분이라면서 겸손을 떨기 시작한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건 민주도 유리도 그걸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거야. 아니 이 미친것들아? 상식적으로 내가 289장의 주인공이 아니라 할지라도 팬미팅에 당첨되었다는 건 나도 거기 한 몫 했다는 의미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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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봐따. 티모 오빠야가 니 뒤통수 쌔렸을 때만해도 진짜 상처 마이 받을 주 알았는데 우짜 이리되노? 원여이 니가 다 잘나서 그런기다.”


“아니야 유리야. 연예계 생활 하다보면 이런식으로 통수 맞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라서 이제 익숙해.”


그러면서 세 사람은 일제히 말을 멈추고는 내쪽으로 고개를 돌려 싸늘한 눈빛으로 째려보기 시작. 아 그렇구나. 얘들에게 있어서 나는 그저 포카 한 장 사지 않고 구라치다 걸린 사기꾼에 불과하잖아? 뭐 아침에 겨우 민주랑 나눠서 5장 산건 사죄의 의미로써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니 어디가서 주둥이 나불댈만한 일도 아니지. 


아니 그런데 잠깐! 설마 장원영 본인조차도 그 포카를 산 게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원영이 본인 만큼은 그게 나라는 걸 눈치챌 줄 알았고, 그렇기 때문에 다시 당당한 그녀로 돌아왔다고 생각했건만, 지금 하는 꼬라지를 보니 나같은 배신자 말고 제 3의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것 같잖아?


그렇게 또 나는 쪼그라들어 버렸고, 남자부 당선인인 서태검 역시 이쪽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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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야 고마워 네 덕분...”


“태검아! 우리랑 같이 가자!”


그러나 이미 서태검의 단체 팬미팅 당첨자인 숙자누나, 점례누나, 그리고 말숙이랑 나리가 다가와서는 태검이를 완전히 포위해서 그 틈사이로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갈 수 없는 천라지망을 펴고 있는 중. 결국 태검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끌려서 어디론가 가 버렸고, 이번에는 채원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야 김민주. 남자친구 좀 잠깐 빌려갈게.”


“갑자기 왜?”


“그냥.. 본선 홍보 때문에 할 얘기가 있어서.”


민주는 내가 여기저기서 부름을 받는다는 게 달리 말하면 능력을 인정받는 거라 생각했는지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나는 채원이를 따라서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물론 채원이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사람들이 없는 외진 4층 복도까지 나를 끌고 가는 거겠지?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채원이는 몸을 돌리자마자 곧바로 내 멱살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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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도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


“아, 그, 그게....”


“미쳤어요? 오빠가 오늘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요!?”


“그거... 부탁인데 영원히 비밀로 해 주면 안 될까?”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어차피 원영이의 포카를 사기로 한 시점에서 채원이에게 들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노릇. 그러나 나는 친구로써의 채원이를 누구보다도 믿고 있었고, 그녀라면 분명히 내 마음을 이해하고 비밀을 지켜줄 거라는 판단하에 일을 저질러 버린 거다. 


“비, 비밀이요? 오빠 이게 얼마나 심각한 건지 전혀 모르나본데요, 오빠는 오늘 여자친구도 아닌 일개 후배한테 무려 300만원을 썼다구요.”


“그, 그런데 어차피 페이백을 받으면 사실상 150이나 다름없고...”


“.........”


당연히 김채원은 비겁한 변명 따위는 하지 말라면서 나를 노려본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거다. 내가 무슨 재벌도 아니고 그깟 포카사는 데 아무리 승리를 확신했다 하더라도 150을 쓰는 건 미친 거지. 물론 이 미쳤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인 기준에서 미쳤다는 거고, 사실 아이돌 씹덕 입장에서 보면 그저 당연한 일이었지만. 


“말해요. 장원영이랑 무슨 사이에요? 아니 내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건요? 오빠 민주랑 사귀고 있잖아요? 그리고 얼마 전엔 민주랑 쓰고 싶다고 10장 사는 것 조차 아깝다고 비밀 지켜달라면서요? 그런데 왜 갑자기 이딴 종이쪼가리에 300만원이나 태운 거냐구요?”


“너도 알잖아? 원영이가 어제부터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애 하나가 망가지게 생겼는데 그렇게라도 도와주고 싶었던 것 뿐이야.”


“그니까 그걸 왜 오빠가 도와 주냐구요? 장원영이 그냥 보통 사람이었으면 저도 오빠가 참 더럽게 할 짓이 없어서 기부천사가 되었나보다 하겠죠. 그런데 아니잖아요? 장원영이 보통 아이에요? 오빠가 그렇게 좋아하는 예쁜애 인데다가 오빠가 오티 오고나서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후배라곤 장원영 하나 밖에 없잖아요?”


“조유리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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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는 걔가 오빠 쫓아다니는 거고 장원영 한테만큼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관대 했잖아욧!”


채원이는 오티때부터 나와 원영이 사이에 뿜어나던 그 요상한 분위기가 계속해서 일관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고는 나를 추궁해왔다. 


그럼 어떡하지? 여기서 내 모든 과거를 밝히고, 나와 장원영이 어떤 사이인지 알려주어야 하나? 그러나 채원이가 이렇게나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한 것이, 이 상황에서라면 누가 봐도 내가 장원영과의 1대1 팬미팅권을 따내기 위해서, 아니 그걸 떠나서 내가 장원영이라는 사람에게 민주 이상의 호감을 품고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미안해. 사실 나랑 원영이랑 원래부터 아는 사이야.”


“아, 아는 사이라구요? 어떻게 아는 사이인데요? 숨겨둔 동생이니 어쩌니 하는 개수작 부릴 생각 마요. 둘이 성도 다르고 생긴 것도 완전히 다르니까?”


“그건.... 좀 나중에 얘기하면 안 될까? 여기서 말하기 좀 그래서.... 아, 아무튼 한 가지 말해줄 수 있는 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와 원영이 사이에 이성적인 그런 관계는 전혀 없다는 거야.”


“그것도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데요? 오빠가 유일하게 먼저 다가서는 여자후배, 그리고 장원영이 유일하게 먼저 다가서는 남자선배. 이거 두 개만 떼어 놓고 봐도 제가 지금 흥분하지 않게 생겼어요?”


“......”


엥 그런가? 그러고 보니 채원이가 저렇게 생각하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다. 일단 원영이한테 내가 먼저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당연해. 왜냐면 나는 4년 전 까지 장원영 씹덕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열심히 호구짓을 하는 중이니까. 그런데 따지고 보면 장원영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유일하게 가까이 지내는 남자선배라고는 딱 나밖에 없잖아?


“아, 아무튼 그런 건 절대 아니야. 일단 총엠티가서라도 시간내서 따로 말하자. 여기서 말하기는 좀 그래.”


“...........”


채원이는 그렇게 한참이나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포기했다는 듯 입맛을 다시면서 멱살을 놓아준다. 그러면서도 경고의 문구를 잊지 않는 채원이.


“오빠, 내가 어떤 심정으로 오빠를 포기했는지 다 알죠? 만약 그런 상황에서 오빠가 민주 배신하고 원영이랑 놀아난 거라면 저는 두 사람 다 절대 그냥 안 둘 거예요.”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 나는 누구보다도 민주를 좋아해.”


“하... 진짜 민주랑 둘 다 왜이러는 거야?”


“민주? 민주는 왜?”


“..........”


그러나 채원이는 지금 내가 질문따위 할 군번이 아니라는 듯 싸늘하게 노려볼 뿐이었고, 나는 또 다시 깨갱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채원이는 이쯤에서 마무리하자면서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가 나를 의심하고 있음은 두 번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뻔한 일. 아무래도 채원이에게 만큼은 나의 진실을 밝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문제인 게, 아이돌 씹덕이라면 극혐하는 채원이가 과연 그 사실을 숨긴 채 민주와 만나는 걸 허락할 거냐는 거지? 


물론 채원이는 나의 친구이지만 동시에 민주의 친구이기도 해. 우리가 서로 사귀는 데 서로에게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함은 분명한데, 내가 포카를 산 일은 불문에 붙이더라도 씹덕이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 과연 채원이가 끝까지 비밀을 지켜줄 수 있을까?



아래층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분주하게 총엠티로 이동하기 위한 준비가 계속되고 있었다. 냉장고에 쑤셔넣고 학회실 테라스에 저장해둔 준비물들을 상혁이가 총 지휘해서 남자 동기들, 그리고 후배들과 함께 옮기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장원영의 포카를 산 정체불명의 X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는 중. 나는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민주를 찾아나섰다.


“오빠! 이리와요!”


민주도 원영이, 그리고 유리와 함께 사회대 앞 벤치에서 버스에 올라타기 위해 준비중인 듯. 어차피 시간도 거의 다 되었고 짐도 대충 실었으니 이제 버스에 타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 넷이서 같은 단체 팬미팅 조니까 이제부터 쭉 같이 다니면 될 것 같군. 


그렇게 버스에 올라탔는데 민주는 유리랑 할 얘기가 있다면서 나더러 원영이랑 같이 앉으랜다. 이건 또 뭐하는 짓인지? 결국 원영이가 먼저 창가에 자리했고 나 역시 불편한 표정으로 그녀의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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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륵.


그리고 원영이는 무척이나 피곤한지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 곧바로 잠에 들어 버렸다. 그렇게 목이 부러져라 불편한 자세로 기대 있는 걸 보니 역시 어젯밤 한 숨도 자지 못했다는 게 분명해진다. 


하긴 어젯밤 원영이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을 거야. 하루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가면서, 특히 드라마가 끝난 11시부터 오늘 결과가 발표되기 직전까지는 거의 제정신을 붙잡지 못하고 있었겠지. 모두 앞에서 자신감있게 소감을 발표하긴 했지만 그 긴장의 끈이 완전히 풀려버리자 몰려오는 잠을 참아낼 수가 없었던 거다. 


스르륵


나는 너무나도 불편해보이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편히 잠들 수 있도록 그 자그마한 머리통을 움직여서 내 어깨에 부드럽게 기대게끔 만들었다. 뭐 나는 계속 불편한 상태로 총엠티장소까지 가야하지만, 그래도 원영이가 편할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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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어째 누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려보니 오우 쉿... 이제 막 차에 올라탄 김채원이 또 죽일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거야. 그런데 채원이가 저렇게 날 쳐다볼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는 내가 원영이의 포카 299장을 샀다는 걸 알고는 여전히 의심의 눈길을 풀지 못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여자친구는 내팽개쳐 두고 장원영과 함께 앉았을 뿐 아니라 완전히 잠들어 있는 그녀의 턱을 잡고 내 어깨위로 옮기고 있는 상황이란 말이지? 


“그, 그게... 민주가 유리랑 앉는다고 해서...”


“........”


채원이는 그조차도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하고는 그 자리에서 일침을 날릴 것 같았지만, 겨우 화를 참아내고는 나를 지나쳐 예나의 옆자리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하... 이거 큰일이구몬. 어떻게 해서든 총엠티에 가서 짬을 내 채원이의 오해를 풀어주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오해를 푸는 즉시 아이돌 씹덕 경력이 발각되면서 나의 대학생활이 완전히 꼬여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채원이를 믿고 내 전부를 드러내는 수밖에 없어.




드르렁...


사실은 나 역시 어젯밤 원영이 걱정에 꼬박 밤을 샜기 때문에 서울을 벗어나고 부터는 완전히 긴장이 풀려서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음... 자면서도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지 오늘 처음 알았다. 아니면 약간 선잠을 자고 있어서 그런가?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숨막힘이 느껴지는 듯하다. 누군가 내 코를 비틀어서 비강을 좁게 만든 나머지 코로 숨쉬는 것을 포기하고 입으로 날숨을 내쉬는데, 거기에도 누가 무언가를 얹어놓은 마냥 영 불편한 압박감이 느껴진단 말이지?


그러다 버스가 울퉁불퉁한 산길을 통과하는 느낌에 서서히 눈을 뜨자, 거기에는 내 어깨에 턱을 받친 채 불과 3cm 거리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는 장원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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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화들짝 놀라서 몸을 떼어냈고 원영이는 재빨리 고개를 창밖으로 돌린다. 뭐지? 대체 언제부터 깨어 있었던 거야? 아니 일어났으면 자세 바로하고 자기 할 일 하던가, 왜 자고 있는 나를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던 건데? 나는 혹시나 해서 고개를 돌려 뒤편에 있는 민주와 유리를 확인했지만, 걔들도 어젯밤 원영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서로의 정수리에 기대 완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끼이익.


총엠티장에 도착했다. 일단 버스에서 내려서 짐을 옮기는 작업부터 시작했고, 뭐 으레 그렇듯이 민주랑 유리, 원영이는 동네 구경하자면서 손잡고 룰루랄라 떠나버림. 그리고 원래 저 멤버에 끼어있어야 할 태검이는 숙자누나, 점례누나, 말숙이와 라니에게 둘러쌓여서 여전히 곤욕을 치루고 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짐을 옮기고 있는 내게 틈을 봐서 채원이가 다가오려고 했다. 오이오이. 물론 너에게 할 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나 개방적인 공간에서 나의 씹덕경력을 들키고 싶지는 않다구. 그러나 다행히도 채원이가 나에게 접근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차단되었는데, 그 대신 내 옆으로 따라붙은 사람은 다름 아닌 유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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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지 않아요 오빠?”


“난 괜찮아. 남자애들 많은데 넌 좀 쉬지 그래? 너도 많이 피곤했을 거 아냐?”


“에이! 패자는 패자답게 짐이나 날라야죠.”


유진이는 그 패배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밝다못해 눈이 부신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채원이 말대로 단순히 기획자 입장에서 이 오디션에 접근했다는 게 실감이 나는 것 같다. 그치만 한 가지 이상한 게 있단 말이지?


만약 유진이가 이 오디션을 단순히 기획자 입장에서 즐기려 했을 뿐이라면, 뭐하러 원영이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계획을 짰느냐 하는 거야. 그녀는 다희의 부탁으로 원영이의 역을 빼앗았고, 그녀가 잘린 것을 미리 알고도 일부러 학생들에게 정보를 흘려서 원영이의 주가를 드높였다. 


물론 그 진짜 목적은 어젯밤 드라마 출연이 거짓으로 탄로나면서 원영이를 바닥까지 끌어내리기 위함이었지만, 정작 오늘 보면 자신의 패배를 이가 시릴 정도로 쿨하게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어찌보면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그렇다면 왜 안유진은 그토록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했던 걸까?


우당탕.


그러나 유진이가 게임할 때 필요한 짐을 좀 흘려버렸고, 나는 일단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돕기 위해 자리에 멈춰서서는 물건 주워담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유진이는 마치 그 틈을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역시 예상대로 원영이가 이겼네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안유진은 마치 장원영이 승리할 것을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말을 하는데, 애초에 그녀를 패배직전까지 몰고갈 교묘한 계획을 짰던 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조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패자로써 최후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당연한 거잖아요? 제가 무슨 수로 장원영을 이기겠어요?”


“원래대로라면 네가 이기는 거였어. 사실 사람들 말대로 누군가가 편법을 쓴 거지.”


“편법은 무슨. 그 한 명이 원영이를 이기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제 포카를 산 모두의 마음보다 강했던 것 뿐이죠. 애초부터 제가 불리한 게임이었어요. 그런 막강한 팬덤을 가진 상대를 너무 점잖게 상대했으니까.”


“............”


마침 모든 물건을 다 주워 담았고 유진이와 나는 서로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만 방금 전 그녀가 사용한 단어 중 하나가 내 심기를 매우 거슬리게 만든다.


“점잖게 상대했다고? 내가 이런 말 까지는 하고 싶지 않은데 너는 벌써부터 원영이가 배역에 잘렸다는 걸 알고 있었잖아?”


“역시 장원영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네요? 맞아요. 갑자기 다희언니가 연락해서는 원영이를 아냐고 묻길래 지금 경쟁중이라고 말했거든요.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길래 좋다고 하고 따라가서 촬영했죠.”


“넌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원영이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어.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그럴수가 있지?”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유진이에게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녀가 사용한 방법이 너무 비열했다는 것 역시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유진이는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답했다.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그 사람보다 잘나거나, 아니면 그 사람을 나보다 못나게 만들거나. 전자는 정도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가능성이 낮죠. 하지만 후자는 사도이기는 해도 쉽고 빠르게 달성가능해요. 모르셨나 본데 제가 한 때는 아이돌 덕질 하면서 이런 정치질은 수도 없이 배운 적 있거든요. 그래서 그대로 따라 한 거 뿐이에요.”


“............”


본인이 과거 아이돌 씹덕 이었다는 걸 밝히면서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원영이를 함정에 빠트렸다고 말하는 유진이. 당연히 나 역시 아이돌 씹덕 이었기에 그 정치질이 무엇인지 뻔히 알고 있다. 


더 숫자가 많고 영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익명성 뒤에 숨어서 수도 없이 많은 그룹들을 담구던 악성 씹덕들. 내가 가장 혐오해 마지않는 부류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밝히는 유진이에게서, 전에 없던 배덕감을 느끼면서 살짝 마른침을 삼키게 된다. 그리고 유진이는 어느샌가 내 머리 꼭대기에 올라와 있다는 듯 어깨를 털어주며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게 아니면 제가 어떻게 이기겠어요? 대 아이즈원의 센터 장원영을?”







후기 - 따로 소제목 표시가 안 되어 있지만 여기부터 2부나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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