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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FF] 슈퍼스타 장원영 -34

순풍만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6.17 03:13:30
조회 452 추천 13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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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오후, 나는 [건전한 부부육아]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을 찾았다. 시험이 2주정도 남은 가운데 이제 슬슬 육아 브이로그를 작성할 시기가 다가왔고, 오늘은 수업이 모두 끝난 이후 조원들과 함께 첫 번째 촬영을 하게 될 것. 민주는 오전부터 뚱한 표정으로 오늘 있을 육아로그 촬영에 대한 반감을 내비쳤지만, 내가 열심히 타이르고 구슬린 덕분에 강의실에 도착했을 때 쯔음해서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 


강의실에 도착해보니 유리와 채원이, 그리고 원영이가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일단은 1시간 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브이로그 작성에 있어서의 유의점을 듣고, 남은 1시간 동안 조별 회의를 통해 과제를 준비하는 것으로 결정. 우리는 조별로 모여앉아서 토의에 들어갔다. 일단 사실상의 조장이나 다름없는 채원이가 운을 띄우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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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설정같은 걸 확실히 했으면 좋겠어.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니까 세계관이 탄탄하면 거기게 맞춰서 상황 대처 하기가 편하잖아?”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채원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고, 원영이는 슬쩍 자신이 준비한 노트를 꺼내서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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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동안 한 번 생각해 본 건데 다들 같이 봐 주실래요?”


그러고 보니 어젯밤 그녀와 만났을 때 뭘 엄청 준비했다고 하지 않았었나? 이제보니 노트 2장 분량을 빽빽하게 채워서 나와 채원이가 연기하게 될 부부의 가정환경, 출신, 직업, 소득과 성격등을 자세히도 정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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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원여이 니 은제 이런거 준비했나? 니 공부 윽수로 열씨미 하네?”


“그냥 나도 뭔가 보탬이 되고 싶었어. 언니들은 어떻게 생각해요?”


민주는 잘했다면서 살짝 박수를 치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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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어 원영아. 좀 현실적으로 살짝 변형해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우리 다섯사람은 머리를 맞대로 원영이가 준비할 설정에서 고쳐야 할 점과 좀 더 개선할 수 있는 점을 토의하면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어떻게 적용해서 매끄러운 진행이 가능할지를 결정했다. 


수업이 모두 끝난 시각, 우리는 채원이가 미리 빌려놓은 빈 강의실로 이동했고, 나 역시 준비된 카메라를 꺼내놓고는 촬영 준비에 돌입했다. 가볍게 브이로그를 촬영하고 밥먹고 헤어지는 것이 오늘의 준비된 일정. 덕분에 태검이를 혼자 집으로 보낼 수 있어서 매우 기분이 좋구만. 


그러나 막상 여기까지 와서 나와 채원이가 부부연기를 해야 한다고 하니 민주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져 있었고,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 건성건성 준비를 하고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턱을 괴고는 우릴 감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원영이는 미리 준비한 스케치북을 꺼내들고는 그때그때 상황설정을 던져주는 역할.


“끄라믄 촬영 시작하께여!”


유리의 큐사인과 함께 마침내 첫 번째 브이로그 촬영이 시작되었다. 


[ 육아 브이로그 1차시 – 임신 Scene#1]


극중 등장인물은 나(32)와 채원(29). 우리 두 사람은 대학교 선후배로 만나서 친분을 다져왔지만, 학교생활을 할 시기에는 각자 만나던 사람이 있어서 그저 지인으로만 지내던 사이. 그러다 사회에 나간 이후 마침 각자의 사람과 이별을 한 이후 다시 만나게 되자, 어찌어찌 연인이 되어서 결혼에까지 골인한 상태이다. 


결혼한지는 이제 3년이 다 되어가지만 막상 일에 치이고 각자 커리어를 쌓느라 임신은 생각지도 못하다가, 3개월 전 갑자기 채원이가 임신사실을 전해오면서 현재는 임신 5개월차 부부로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기다리는 중이다. 


철컥


문이 열리고 채원이가 집안으로 들어온다. 방송국 정직원인 채원이와는 달리 프리랜서 엔지니어인 나는 일이 바쁠때만 몰아서 스케쥴을 소화하고 그러지 않으면 집에서 빈둥대는 것이 다반사. 오늘도 쇼파에 누워서 유튜브 시청중에 채원이가 퇴근을 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인사했다.


“왔어? 피곤했지? 밥 뭐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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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원이는 잠시 원영이쪽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스케치북에 지금의 상황설정을 써서는 채원이에게 보여준다. 그러자 그녀는 순간 낯빛을 바꾸어서는 날 째려보기 시작.


“밖에 보니까 재활용 쓰레기 그대로 남아있던데?”


“아... 오늘 네가 하는 날 아니야?”


나 역시 원영이가 준 큐시트대로 상황을 이끌어나갔다. 우리 두 사람은 맞벌이 부부로써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집안일을 분담해서 각자 맡은 파트를 하는 상황. 오늘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채원이의 몫이었고, 나는 그래서 그냥 큐시트에 쓰여진 대로 대답했을 뿐인데....


“좀 버려주면 안 돼? 전실에 냄새 얼마나 뱄는지 알아?”


“아 그래? 난 거기 안 나가봐서 모르겠다.”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것이 나는 집에서 빈둥대는 역할에 딱히 담배도 피우지 않다보니 전실에 나갈 일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 사실 오늘 잠에서 깨서 하루종일 쇼파에 누워있다가 지금 막 일어났다는게 원영이의 설정임. 그러자 채원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뭘 기대하냐 내가...”


“왜 말을 그렇게 해? 애초에 집안일은 나눠서 하기로 했으니까 내가 생각하지 못 한 거지. 나갈 일 있었으면 분명히 갖다 버렸을 거야.”


“조금 신경 써 주면 안 되는 거야? 가뜩이나 속 메스꺼운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저런 냄새부터 맡아야 겠어?”


“...........”


아하! 뭔지 알 것 같군. 지금 채원이는 임신중이잖아? 5개월차에 들어섰으니까 슬슬 입덧이 사라질 시기이긴 하지만 최근 꽤나 예민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거이거 내가 너무 신경 못 써준 것 같군. 뭐 여기까지라면 그녀가 화내는 걸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채원이는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종일 뭐 했어 대체?”


“그냥... 소파에 누워 있었어.”


“뭐 청소 이런거 할 생각은 전혀 안 해? 그리고 내가 외투 주방의자에 걸어놓지 말라고 했지?”


“........”


난 원래 외투를 주방의자에 거는 사람이 아닌데 장원영이 이렇게 상황을 주니 어쩔수가 없군. 그치만 이거 좀 기분 나쁜데? 왜 나를 하루 종일 집에서 판판히 놀면서 아무것도 안 한 사람 취급하지? 그리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역시 원영이가 열심히 상황카드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 프로젝트 어제 막 끝났고 계속 밤 샌 거 알잖아? 그래서 좀 누워서 잤어.”


“밤은 오빠만 새? 나는 뭐 정시출근하고 정시퇴근하다 보다? 지금도 몸사정 때문에 먼저 퇴근하면서 얼마나 눈치 봤는지 오빤 모르지?”


“그걸 왜 나한테 뭐라고 하는데? 누가 너 힘든 거 몰라? 그런데 내 사정도 있고 오늘 청소는 네 몫이라서 내가 피곤한 나머지 거기까지 생각 못 했을 수도 있잖아?”


“평소라면 내가 안 이러지. 그런데 지금 상황이 조금 다르잖아? 우리가 아무리 집안일 나눠서 하기로 했다고 해도 부부가 무슨 비즈니스도 아니고 상대방 몸이 안 좋으면 먼저 나서서 뭐라도 해줘야겠다 이런 생각은 전혀 안 해?”


“............”


말을 말자. 최근 들어 채원이가 까칠하게 나오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잖아? 라고 장원영이 또 상황설정을 던져 주길래 일단 입을 다물었다. 뭐지? 분명히 임신기간에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긴 한데 왜 굳이 육아 브이로그를 작성하는 데 이런 극단적인 장면설정이 들어가야 하는 거야? 그러나 채원이는 원영이의 시나리오가 마음에 드는 듯 계속해서 몰입하는 게 보인다. 


“점심에 뭐 시켜먹었는데 이런 냄새가 나?”


“순대국 시켜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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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 아! 내가 일주일 전부터 먹고 싶다고 노래부른 그 순대국? 그래서 뭐 한 그릇 시켜서 혼자 먹고 제대로 닦지도 않은 다음 전실에 내놓은 거야? 내가 들어오면서 그 냄새맡고 울화통 터지는 거 보고 싶어서?”


“........”


물론 이것 역시도 전부 원영이가 던져준 상황설정이다. 이런 니미 내가 이런 상황이 있는 줄 알았으면 당연히 채원이 거까지 시켜놓고 올 시간 맞춰서 데워서 주지 않았겠냐고? 어째 내가 점점 쓰레기가 되어가는 느낌인데 일단 참고 연기에 집중하자. 


“그럼 지금이라도 나가서 먹자.”


“나가긴 뭘 나가? 오빠 점심에 먹었다면서 뭘 또 저녁에 한 소리 들었다고 순대국이야? 내가 그럼 좋다고 하고 따라가서 먹을 줄 알았어? 오빠 예전에도 그랬지? 좋아하는 영화 나오면 아침에 먼저 보고 온 다음에 나중에 나랑 가자고 하는 거 나 진짜 기분 나빴거든? 그거 잠깐 커뮤같은 거 끊고 스포 조심하면 될 걸 여기저기 분석이니 어쩌니 하면서 주둥이 털고 싶어 제일 먼저 보는 거 모를 줄 알아? 한번 본 사람이랑 가서 보는 내가 기분이 나겠냐고?”


“그 얘기가 왜 여기서 나와? 그럼 다른 거 먹어. 너 전에 순대국 말고 그 뭐냐 곱창도 먹고 싶다면서? 우리 자주 가던 학교 앞 가서 먹자.”


“학교? 또 학교? 오빠는 무슨 시간이 학교에 멈춰 버렸나보다. 서른 넘어서까지 지겹지도 않고 학교 타령이야? 왜? 거기 오빠 전 여친이랑 가던데라서 오랜만에 추억에 잠기고 싶어서 그래?”


“.............”


뭐지 이건? 장원영 너 왜 자꾸 이런 쓸데없는 설정을 추가하는 거야? 당연히 아직 학생에 불과한 내가 아는 곱창집이라고는 학교 앞에 있는 거기밖에 없어서 그 얘기를 했더니 곧바로 큐시트에 ‘전여친이랑 가던 곱창집’이라고 적어서는 보여주잖아? 아무튼 채원이가 과몰입이 엄청나서인지 나도 같이 흥분하게 된다.


“왜 이렇게 쓸데없는 소릴 하냐? 그럼 딴데 가. 전에 너 거기 TV에서 보고 먹고 싶었다는 데 있잖아?”


“거기? 거기 얼만지 알기나 해? 우리 뭐 부자야? 대출금 벌써 다 갚고 오빠 사놓은 주식 벌써 다 털었어?”


게다가 원영이는 곧바로 스케치북에 여전히 대출금 상환이 25년 남았다는 것과 내가 엔터 주식에 꼴아 박은 3000만원이 현재 반토막 난 것 까지 전부 세세하게 써 놓았다. 아니 어찌보면 미리 준비한 것처럼 지속적으로 카드를 바꾸네? 


“주식얘기를 꼭 여기서 해야 돼? 그거 다시 오른다니까? 그리고 그거 없어도 우리가 뭐 거지도 아니고 좀 밖에서 사 먹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나 오기 한 삼십분 전에 밥해놓고 기다린다는 선택지는 절대로 없나보다? 나는 식사당번 상관없이 자주 그래줬던 거 같은데?”


“..........”


음.... 원영이가 좀 극단적인 상황설정을 던져주긴 하는데 어째 우리 캐릭터를 꽤나 열심히 연구했다는 생각이 드는 군. 그도 그럴것이 만약 채원이랑 정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런 상황이 펼쳐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도 능력도 톱인 채원이는 분명 방송국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커리어우먼이 될 것이고 직업과 집안일에서도 늘 최선을 다하게 되겠지. 눈치없는 나는 좀 허술하게 실수도 할 것이고 특히 지금처럼 채원이가 힘든 상황이라면 충분히 이런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됐어. 진짜 요새는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한 번도 편하게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씻어. 내가 청소 좀 할테니까.”


“......”


일단 그렇게 마무리 하기로 하고는 채원이가 씻으러 간 사이 나는 집을 좀 정리하고 그녀에게 줄 식사를 준비한다. 원영이가 ‘냉장고에 먹다남은 치즈케익이 있음’이라고 써 놨길래 일단 그거랑 우유를 준비해서 식탁을 정돈하는 나. 채원이는 씻고 나와서는 식탁에 앉았고, 내가 준비해 준 케익을 베어먹었다. 나 역시 그 앞자리에 앉아서 먹는 모습을 지켜봄.


“휴직은 언제부터 할 거야?”


“지금 갑자기 일을 넘겨줄 수가 없어서 한 3개월 정도만 할 거 같아. 아직 움직이는 데는 크게 불편함 없으니까.”


3개월이라.. 솔직히 지금도 살짝 배가 불러온 상태이고 늘 조심하면서 지내느라 거동이 불편한데 그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건가? 그러나 프리랜서인 나와는 달리 그녀는 많은 책임을 지고 있으니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팔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


“..........?”


라고 정말로 장원영의 큐시트에 쓰여져 있었다. 나는 이걸 진짜로 해야 하나 싶어서 살짝 그쪽으로 눈치를 보지만, 유리는 뭐 하는 거냐면서 빨리 액션을 취하라고 시그널을 주는 중.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채원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꼬옥.


채원이 역시 내가 정말로 자기 손을 잡아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다시 연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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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화내서 미안해. 그냥 내가 요새 짜증이나 이런 걸 주체 못해.”


“아니야. 나는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았으니까 모르잖아? 내가 좀 더 신경 써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지. 앞으로는 내가 집에있을 때는 집안일 전부 하도록 할게.”


“고마워 오빠.”


그렇게 조금은 분위기가 풀리는 듯 했고 채원이는 케익을 다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하나 싶어서 원영이 눈치를 보는데 그녀가 또 큐시트에 뭔가를 적었다. 산책을 가라는 군.


“좀 걸을래 오빠? 어차피 쓰레기도 버려야 되고?”


“그러자. 내가 버릴테니까 넌 그냥 몸만 나와.”


그렇게 집안에서의 촬영을 모두 마친 뒤 유리가 컷! 싸인을 주었다. 휴우... 이거 생각보다 몰입이 엄청나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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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빠야 언니야! 지짜 잘해써여!”


“그, 그른가?”


나도 채원이도 이게 잘했나 아닌가 깅가밍가했는데 유리는 상당히 만족한듯한 눈치다. 그리고 그녀는 원영이 역시 칭찬했다.


“원여이 니는 무신 시나리오를 이리 잘짜노? 니는 나중에 자까해라 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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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무슨. 난 연기나 그쪽으로 가야지. 그건 그렇고 이제 산책씬 촬영하러 가요.”


원영이는 철두철미하게 컷을 분배함으로써 바로 다음 씬 촬영으로 넘어가자고 하는 중. 그런데 어째 우리 조원들 중 유독 말없이 조용한 사람이 하나 있었고, 나는 슬쩍 민주의 눈치를 보았다.


“........”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턱을 괸채 나와 채원이를 째려보고 있었다. 채원이는 그게 부담스러웠는지 먼저 나가겠다고 한 다음 원영, 유리와 함께 밖으로 나갔고, 나는 어정쩡한 걸음으로 민주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 어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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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둘이 뭐 하는 거예요?”


“으, 응?”


뭐 대충 예상했던 반응이긴 했지만 그 말투가 너무 차가워서 순간 소름이 돋았다. 민주는 스르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내게로 다가온다.


“두 사람 다 연기같은 건 해본 적도 없는데 어찌 그리 자연스러워요? 뭐 저랑 알기 전에 둘이 같이 살아보기라도 했는 줄 알았어요.”


“그, 그게? 원영이가 워낙 시나리오를 잘 짜와서 그런지 금방 몰입이 되더라구.”


“..........”


민주는 이미 화가 날대로 나 있었고 이대로 연기에 더 몰입하면 날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으로 째려보았다. 하지만 이미 다 합의하고 시작한 거잖아?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는 우리 두 사람이 부부역을 하는 게 옳다는 거 너도 인정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철저하게 몰입함으로써 다같이 A+받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어찌되었든 나는 민주의 뒤를 졸졸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이제 슬슬 해가 길어져서인지 노을이 살짝 진 상황. 그래도 곧 해가 떨어지게 될 것 같으니 곧바로 촬영에 돌입해도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사회대 뒤편 잔디밭으로 향했고 유리는 전망이 괜찮은 한적한 벤치를 발견하고는 여기서 촬영을 진행하자고 한다. 뉘에뉘에.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겠지. 그렇게 민주가 짝다리를 짚고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유리의 큐사인에 의해 산책씬이 시작되었다. 



[ 육아 브이로그 1차시 – 임신 Scene#2]


우리는 쓰레기를 분리해 버린 다음 근처 공원에서 잠시 산책을 했다. 채원이도 이제야 좀 쉬는 기분이 들었는지 눈을 감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었고,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벤치위에서 잠시 쉬기로 결정. 


“기분 좀 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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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런데 또 이러다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르더라구. 나도 내가 이런 사람 아닌 줄 알았는데 생리적으로 변하니까 어쩔 수가 없더라. 아까 화내서 미안해 오빠.”


“아니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앞으로 내가 더 조심할게. 그런데....”


그런데 원영이가 또 뭔가 지시사항을 적어서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리고 나는 왜 또 저런 설정을 주는지 의아해 하면서 다시 채원이에게 물음.


“그 뭐냐... 출산하고 나서는 우리 엄마가 와서 이것저것 일을 좀 봐주시겠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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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네 엄마? 아, 아니 그럴 필요 없는데?”


“그렇지만 출산하고 나서 애 돌보랴 몸관리하랴 힘들잖아? 엄마는 다 겪어봤으니까 와서 도와주고 싶어하셔.”


“뭐 하러? 내가 뭐 어머니 와 계시는 게 싫다는 게 아니라 어차피 조리원 들어가서 있을 거니까 정말 오실 필요 없어서 그래. 오빠가 혼자 밥 못 챙겨먹는 것도 아니고”


이런 문제 역시 요새 부부들에게는 충분히 고민거리가 되나보군. 엄마가 직접와서 며느리 뒷바라지를 해 주겠다는 데 그게 부담되었는지 한사코 그럴 필요가 없다고 고사하는 채원이. 그런데 여기서 또 원영이가 상황설정을 준다.


“그... 조리원이라는 게 꼭 들어갈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그래.”


“그게... 무슨 소리야?”


채원이는 순간적으로 내가 하려는 말을 눈치챘는지 살짝 눈을 가로로 찢었고, 나는 뻘줌하게 설명에 돌입했다.


“조리원이라는 게 사실 그렇게까지 필요한 건가 싶어서. 우리 엄마가 잘 이해를 못 하더라구. 우리 엄마도 나 낳고는 3일 있다가 곧바로 출근했다고 하고.... 또 조리원이라는 게 외국에는 없는 개념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인간의 약한 마음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는 것 같아서 꺼려진달까?”


일단 원영이가 날 조리원 반대주의자 설정으로 밀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아는 지식을 도용해서 조리원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그러자 채원이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날 노려봄. 


“그러니까 뭐야. 오빠네 엄마는 오빠 낳고 3일만에 일하러 나갔으니까 나도 그러라고? 그때랑 지금이랑 같아? 오빠 나이 먹더니 왜 이렇게 틀딱처럼 굴어? 뭐 요새애들 약해 빠져서 불평이나 해대고 노오오오력이 부족하다 이거야 지금?”


“아니 그렇다기 보다 외국에서는 다들 그렇게 하더라....”


“그럼 외국인이랑 결혼하지 왜 나랑 결혼했어? 내가 뭐 조리원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나도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 조금 쉬면서 재충전도 하고 그러면 나중에 아기 키우면서 일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그러는 거잖아?”


“쉬어. 우리 엄마가 와서 일 봐준다잖아?”


“그게 어떻게 쉬는 거야? 그럼 내가 오빠처럼 소파에 누워서 어머니 청소하고 식사준비하는 거 옆에서 구경만 하라는 거야?”


“아니 그걸 왜 또 나랑 연결시키는데?”


점점 언성이 높아져가고 있었고 사실 왜 이렇게 싸워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음. 나는 조리원 가고 싶으면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장원영이 저딴 설정을 던져주니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 그러자 채원이는 어찌나 과몰입을 한 건지 어느새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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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나는 기계야? 나는 힘들다는 소리 안 하니까 뭐든지 다 감당하는 줄 알아? 나도 진짜 힘들다고. 그런데 그런 이야기 할 시간에 서로 잘 되자고 노력하는데 오빠는 그런 거 하나도 모르잖아?”


“그, 그런 의미로 한 얘기가 아닌데...”


“이번 일로만 말하는 게 아니야. 오빠가 언제 한 번이라도 나 제대로 보살펴 준 적 있어? 내가 정말 힘들 때 내 옆에 있어줬다고 자신할 수 있냐고? 남들한테는 불필요한 친절 얼마든지 베풀면서 왜 나한테는 이렇게 인색해? 정말 말을 해야만 아는 거야? 먼저 알아주고 그러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적도 없어? 어쩌면 날 좋아하지 않는게 아닐까? 그냥 어쩌다 만나서 어쩌다 결혼해서 어쩌다 이 상황까지 온 건 아니고?”


“........”


채원이의 연기가 너무 리얼해서 일까, 아니면 그녀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딘지 모르게 내 양심을 콕콕 찔러왔기 때문일까. 지금의 설정과 관련없이 사실 채원이가 하는 말이 크게 틀린 부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원이는 늘 완벽한 사람이고 나는 그녀에게 도움을 받기만 할 뿐 한 번도 뭔가를 먼저 해 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작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먼저 놀러가자고, 공부하러 가자고 하는 건 채원이 쪽이었고 나는 끌려다니기만 했다. 하지만 사실은 채원이도 언제 한 번은 내가 먼저 손을 뻗어주길 기다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와 관련된 문제에서도 그녀가 나를 도와주기 위해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하려고 애를 쓸 때, 나는 어떻게든 민주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녀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냐는 거지.


“채원아 나는....”


“흑...흑...”


그러나 그녀는 감정이 너무 격해진 나머지 끄흑 끄흑 소리까지 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단언컨대 이렇게나 약한 채원이의 모습은 살아 생전 처음 보는 것이다. 물론 이게 역할놀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혹시 어디선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눈물을 흘려왔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그러다 지금 연기라는 상황을 이용해서 마침내 그 감정을 터트리고 있는 거라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원영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재빠르게 다음 지시를 내린다. 


“.........?”


채원이는 울다말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말없이 그녀를 마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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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찼어.”


“뭐?”


“방금 아기가 찼다고. 진짜야! 아기가 방금 내 배를 찼어.”


“저, 정말이야?”


“진짜야! 지금도! 지금도 차고 있어!”


채원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놀라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자기 배를 쓰다듬고 있었고, 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이 역할놀이에 완전히 몰입해서는 스르르 고개를 내려 그녀의 배에 귀를 가져다대었다. 


꾸룩꾸룩...


물론 있지도 않은 아기가 배를 찰리는 없고 그저 그녀의 뱃속에서 꾸룩꾸룩 장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올 뿐. 하지만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진짜네...”


탁!


순간! 유리가 컷 싸인을 내기도 전에 민주가 자리를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뽈이 잔뜩 난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고는 밍다닥! 하고 뛰어가 버렸다.


“미, 민주야!!”


나 역시 본능적으로 내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고 벤치에서 일어나 민주를 쫓아갔다. 당연히 남자인 내가 그녀에게 달리기로 질리는 없기에 곧바로 그녀를 따라잡을 수 있었고, 나는 민주 앞을 가로막았다.


“민주야 그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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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요 진짜? 둘이 뭐하는 건데요?”


민주 역시 더 이상은 분을 참지 못 했는지 눈물을 또르르 흘리면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저 미안한 마음에 일단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끔 손을 잡았다.


“아니 그냥 거기 큐시트에 써져 있는대로 했을 뿐이야.”


“거기 그냥 태동이 온다라고만 했지 언제 오빠더러 귀를 가져다 대라고 했는데요?”


“그런데 대개 그런 상황에서는 그러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어.”


“그런 상황이 있었어요? 아니면 오빠가 정말 채원이랑 결혼한 거라고 상상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예요? 저 진짜 기분 나빠요!”


민주는 홱! 하고 내 손을 뿌리쳤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도망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심기를 거스리지 않기 위해 말했다. 


“그냥 역할놀이일 뿐이야.”


“그런데 둘 다 왜 그렇게 진지해요? 오빠 아까 채원이 눈 못봤어요? 걔는 진심이에요 오빠. 여전히 오빠한테 미련 못 버렸다구요.”


“너무 과한 생각이야. 채원이도 그냥 연기에 집중하다 보니까 그랬겠지? 원영이가 써온 시나리오가 충분히 갈등상황을 만들만한 것이었잖아? 아마 상대가 내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했을 거야. 네가 직접 가서 물어보면 되잖아?”


“............”


민주는 울상이 된 채 나를 째려보고 있었고, 나는 여기서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나마 그녀는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내손을 잡고 다시 촬영팀쪽으로 돌아갔고, 채원이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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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냥 연기잖아?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


민주는 입을 빼죽 내민채 채원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유리는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듯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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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거픈데 우리 밥 묵으면 안 대여?”


“그래 그러자.”


그래 지금 다들 배고파서 예민해져 있는 걸 거야. 그러니 밥이라도 먹으면서 기분을 풀면 괜찮아질 듯? 그런데 원영이가 핸드폰 시계를 보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온다.


“어쩌죠? 저 집에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래? 그럼 우리 넷이서....”


“저도 원영이랑 같이 갈게요.”


민주는 기분이 상했는지 원영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노라 말했고 결국 우리는 그렇게 두 패거리로 찢어져야 했다. 


학식도 끝났을 시간이었기에 나와 채원이, 유리는 학교 앞으로 나가서는 간단히 찌개에 밥먹고 헤어지기로 결정. 그러나 방금 전 민주가 화를 내고 돌아갔기 때문인지 분위기가 많이 다운되어 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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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귀를 왜 가져다 대요 오빠는?”


채원이는 불필요한 행동을 한 나를 탓했고, 사실 그것만 아녔어도 민주가 저정도로 화가 나지는 않았을 테니 할말이 없군. 


“아니 그냥... 거기서는 자동으로 그렇게 되더라구.”


“.......”


그것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연기에 몰입한 것은 사실인데 문득 채원이에 대한 동정심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 태동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어. 설정상이긴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그 안에 있는 것은 분명 서로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물이잖아? 그러니까 그 소리를 들음으로써 서로에게 잘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다 극복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러자 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잘 했어여. 오빠야 거기서도 여으성 인꿘 모른 척 했으믄 내 다시는 오빠야 안 볼라꼬 했어여.”


“..... 그냥 연기일 뿐인데 그렇다고 날 안 볼 필요가 있니 유리야?”


“오빠야 하는 짓이 너무 심했다 아입니꺼? 민주 언니야도 이해할 꺼에여. 신경쓰지 마이소.”


“.......”


민주가 얼만큼 화가 났는지 모르겠군. 식사는 거절했지만 그래도 다시 자리로 돌아온 걸 봐서는 냉전상태로 갈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어찌되었든 우리는 식사를 끝내었고 이제는 각자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지만, 이대로 채원이와 같은 전철을 타고 돌아가게 되면 또 민주가 화를 낼 것 같다는 말이지? 그리고 채원이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듯 하다.


“유리 바래다주고 가요. 전 먼저 갈 테니까.”


“그, 그래.”


“쩌 괜찮은대여? 머하러 돌아가여? 걍 둘이 가여. 쩌 암말도 안 할게여.”


“..........”


유리가 저렇게 나와준다니 어쩔 수 없군. 우리는 유리를 학교 앞까지 바래다 준 다음 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오빠 근데 정말 조리원 반대해요?”


“아니, 난 뭐 가도 상관없는데?”


“전 싫어요. 쓸데없이 돈 버리는 거 같아서요. 사실 정말 오빠네... 아니 그렇니까 시어머니 와 계서도 상관 없는데 아까는 상황에 맞게 연기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거 뿐이에요.”


채원이는 연기는 연기일 뿐이라고 확실히 선을 그었지만 나는 좀처럼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채원이가 아무리 메소드연기의 달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녀가 보여준 눈물은 왠지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단 말이지. 완벽해 보이는 그녀에게도 분명히 약한 부분이 있을 것이고,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그 감정을 연기의 힘을 빌어 터트렸다는 것 같단 말이야. 나는 문득 채원이가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인지 또 쓸데없는 말을 해 버렸다.


“뭐 어려운 일 있으면 나한테도 말해주고 그래.”


“오빠한테 뭐하러요. 도와줄 사람도 아닌데.”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도와주지.”


“....... 됐어요. 민주 화나 잘 풀어줘요.”


그러는 사이 어느새 역에 도착해 있었고, 채원이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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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먼저 타고 갈게요. 오빠가 민주한테 괜히 거짓말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 그래.”


내심 유리의 입도 막았겠다 오늘 만큼은 그녀의 정거장까지만이라도 바래다 주려고 했는데 채원이는 한사코 만류하면서 먼저 열차를 타고 가 버렸다. 나는 벤치에 앉아 다음 열차를 기다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보니 채원이가 그런 약한 모습을 보인게 아주 처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티에 다녀온 뒤풀이에서 마지막으로 코노에 가자고 했었고, 거기서 그녀는 노래는 부르지 않고 내게 안겨서 잠깐이나마 눈물을 쏟았어. 그녀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눈물을 보이는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모습을 두 번이나 목격한 사람으로써 나는 채원이에게 못 해준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삐빅.


그런데 내가 또 채원이 생각을 한다는 걸 누군가 지켜보기라도 한 걸까? 아마도 민주가 내가 채원이를 바래다주는 지 걱정이라도 된 것 같은데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민주에게 적절한 알리바이를 줄 수 있는 인물이 내게 적시에 연락을 해온 셈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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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 오빠? 나 좀 도와줘!




후기 - 좀 기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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