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자리 - 정성일 마이너 갤러리

정성일 평론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갤러리

매니저

더블라지오.(dureraum2016)

부매니저

없음

개설일

2019-10-15

사자 자리앱에서 작성

토미

2023.02.22 00:21:58

조회 158 추천 8 댓글 2

008b8504dfe61df2549becbd2cf51d297abbfe2893e9917947053a405659b5e5769cb4ad7394900aad38e2cc6603703e321bf12d2cc49850580a52d6e32a5f413d14d4c09afcdf09f6c3ecc8106e88218a642fa0df5087e98fa44f04028794a519c8a5565c

로메르의 <사자 자리>는 친척의 유산을 상속받기로 했다가, 이내 취소되면서 몰락해버린 한 음악가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가 가장 강력하게 관객을 사로잡는 면은, 돈에 관한 교훈 같은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현대라는)시간에 대한 감각일 것입니다.

상영 시간의 대부분은 몰락(하는 과정이 아니라) 이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빈털터리가 되어 하루하루를 지겹고 비루하게 보냅니다. 반면 초반에 그가 상속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밤새 축하 파티를 하는 장면은 비교적 짧게 묘사됩니다. 똑같은 하루이지만, 한 인간이 체감하는 시간은 매우 다릅니다. 행운은 하룻밤의 꿈처럼 흐릿하고 짧지만, 불운은 여름날의 태양처럼 선명하고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습니다. 극중의 한 대사('점성술은 미신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과학')를 인용하자면, 현대라는 시간 속에서 행복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미신이고 불행은 부정할 수 없는 과학입니다.

두 시간의 격차에서 비롯되는 비극성은, 중간중간 삽입되는 주변 인물들(의 숏)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관객은 전개 상 별 필요가 없는듯이 보이는 행인들의 클로즈업과 대화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에 관한 의문은, 주인공과 동행하게 되는 부랑자 덕분에 해소될 수 있습니다.

부랑자는 구걸을 하기 위해, 행인들에게 주인공의 사연을 극적인 거짓말로 떠들어댑니다. 공감이나 동정을 얻기 위해선 장황한 스토리, 다시 말해 몰락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관객이 주변 인물들의 숏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자면 영화의 잉여처럼 여기게 되는 이유는 그 장면이나 대화들이 '맥락'없이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몰락은 과정이 부재하기 때문에, 그는 친구들과 관객으로부터 연민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이 세계의 이물질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영화의 음악 사용 또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주인공이 음악가라는 설정도 그렇지만, 영화는 턴테이블을 조작하는 한 인물을 통해서 (극중의)음악이 인위적으로 삽입돼있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자 자리>에서 음악이 흐를 때, 그 음악은 장면들을 통합하거나 정조를 형성 및 강화하는 데 기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음악은 주인공과 행인들을 분리하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오로지 자신만의 것입니다. 주인공의 (제대로 된)시작도 끝도 없는, 다시 말해 '과정'이 없는 연주를 들으며 누군가가 말합니다. '아무튼 현대적이네.' 맥락 없는 불행만이 명징한 세계, 서로가 서로에게 이물질이 되어버린 도시-아마도 그것이 현대라는 시간의 정경일지도 모릅니다.

고정닉 3

원본 첨부파일 1

MV5BZTE4ZDZhZDYtZGZiYy00YTZlLTliN2QtZjM5NGJhOTdmMDEyXkEyXkFqcGdeQXVyMTUyNzQyMTUz._V1_.jpg

전체 댓글 0개

등록순

본문 보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댓글은 운영원칙 및 관련 법률에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Shift+Enter 키를 동시에 누르면 줄바꿈이 됩니다.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경제관념 부족해서 돈 막 쓸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13	-	-
988	늦은 산책.. [14]	:p	23.04.27	199	3
987	정갤러들도 [7]	:p	23.04.27	134	2
986	정갤의 집단지성이 필요한 [10]	:p	23.04.25	174	0
985	빅 건다운을 봤습니다 [4]	:p	23.04.25	86	0
983	통피로 편하게 갤질할 수 있는 곳은 이제 정갤밖에 남지 않았군요 [3]	ㅇㅇ(223.39)	23.04.23	128	0
981	제시 제임스를 다룬 영화 셋 [4]	:p	23.04.16	135	8
979	클린트 이스트우드 고독한 방랑자 [4]	ㅇㅇ	23.04.15	113	0
976	거울 속 외딴 성 좋네요 [5]	:p	23.04.12	115	0
975	레이카트, 윌리엄스, 차우의 최애 영화 네 편 [4]	:p	23.04.11	100	0
974	러스티 맨 [3]	ㅇㅇ	23.04.10	130	3
973	시마론 1930<-오늘 본 영화임 [6]	:p	23.04.09	146	0
972	JUST DO IT. [4]	ㅇㅇ	23.04.08	128	0
971	나일의 딸을 봤답니다 [5]	:p	23.04.08	93	1
969	로널드 레이건의 퀴어 시네마 [3]	ㅇㅇ(210.94)	23.04.05	120	0
968	아직 못봤습니다만 [3]	ㅇㅇ	23.04.04	88	0
967	옥상은 우리의 것 [1]	:p	23.04.03	70	0
964	3월엔 꼴랑 8편만 봤군요... [3]	ㅇㅇ	23.04.02	101	2
962	유랑의 달을 보았는데 [3]	:p	23.04.01	138	0
959	알카자르 전투 존나 웃기네요 [4]	ㅇㅇ(210.94)	23.03.31	89	1
958	유아사의 영상연에 비견할 만한 [3]	:p	23.03.30	129	0
957	웨앤 신작 기대되는군요 [3]	:p	23.03.28	99	2
955	블랙코드 3회차 [2]	ㅇㅇ(210.94)	23.03.28	120	1
954	스스의 영화를 보고 느꼈습니다만 [3]	ㅇㅇ(112.165)	23.03.27	133	5
952	이니셰린의 밴시 [6]	:p	23.03.26	116	1
950	클이 신작 소식은 언제 들을 수 있을지 [4]	:p	23.03.24	89	1
949	클이의 피아노 블루스 [5]	:p	23.03.23	92	1
947	파벨만스 봤습니다 [6]	:p	23.03.22	189	2
945	영태기가 진짜 오긴 오는군요 [6]	ㅇㅇ	23.03.21	149	2
944	내일 드디어 파벨만스 개봉일이군요 [6]	ㅇㅇ	23.03.21	119	0
942	일요일에 본 영화 [3]	ㅇㅇ(210.94)	23.03.21	119	2
941	셋업과 하더 데이 폴을 봤음 [5]	:p	23.03.20	107	1
938	사랑은 비를 타고가 정말 위대한 영화인지 [20]	:p	23.03.17	381	9
937	4월에 기대되는 영화가 [9]	:p	23.03.17	152	0
935	살인광 하센세 [9]	토미	23.03.16	242	0
934	아리가토씨, 유레카, 바람꽃, 스즈메의 문단속 [9]	:p	23.03.14	177	1
933	스즈메 봤어요 [2]	:p	23.03.14	86	1
932	7관왕은 다소 의외였던것입니다 [8]	ㅇㅇ	23.03.13	176	1
931	퍼펙트 월드(와 관련 없는 내용) [2]	토미	23.03.13	121	1
929	2015년 기준 감독/평론가별 아시아 영화/감독 top 10 [13]	더블라지오.	23.03.12	254	8
923	세월호를 언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 [5]	비타민파괴한다	23.03.11	122	0
921	스즈메를 봐야하는데 [8]	:p	23.03.10	154	0
919	존재해서 기억하는 영화가 아닌 기억하기에 존재하는 영화 [5]	ㅇㅇ	23.03.06	139	3
918	핵꿀잼 영화는 모두 비슷해보이지만 [8]	:p	23.03.05	164	1
916	연연풍진을 보았는데 [5]	:p	23.03.04	127	1
913	샤이 정갤러들이 왜 이리 많은지요 [3]	ㅇㅇ(211.235)	23.03.04	124	0
911	기가막힌 액션 영화 두 편 [3]	ㅇㅇ(210.94)	23.03.02	150	1
910	노스맨 [4]	토미	23.03.02	210	2
907	2023년 2월에 본 영화들 [5]	ㅇㅇ	23.02.28	518	7
905	최근에 본 재미난 영화들 [4]	ㅇㅇ	23.02.28	199	4
904	서부극의 바빌론 [4]	:p	23.02.27	8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