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과 이나, 지효와 형빈은 그렇게 헤어진 뒤 자정 무렵에 다시 합류했습니다. 하은은 충격봉을, 이나는 간단한 먹거리를 챙겨왔습니다. 지효는 그새 집까지 다녀왔는지 각종 장비들을 차에 싣고 왔습니다. 야간투시장비와 멀리 떨어져있는 곳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집음기, 보온병에 담긴 따끈한 커피, 핫팩 한박스 등등. 반면에 형빈은 두꺼운 점퍼를 걸치고 핸드폰만 챙겨서 나왔습니다.

지효는 차에 타기 전에 잠시 하은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나에게 살며시 스턴건 하나를 쥐어줍니다.


송지효:
"하은 선배도 계시니까 별 일은 없을 테지만 혹시 모르니까 가지고 있어.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고 단자에 파란 불꽃이 튈 때 널 위협하는 사람에게 갖다대면 돼."


지효는 일행들 중에서도 이나가 내심 걱정되는 모양입니다.

일행들을 태운 차는 순식간에 아비뇽이 위치한 거리 앞에 도착했습니다. 한겨울의 새벽 공기는 숨결도 얼어붙게 할 만큼 차갑습니다. 시동을 켜면 잠복중인 게 들킬지도 몰라 히터를 틀 수 없어 대신 핫팩을 터트리기로 합니다. 이나가 가져온 음식을 먹고 지효가 가져온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 뒤 잠복 준비를 시작합니다.

차는 약속장소가 훤히 보이지만 거리가 약간 떨어져있는 장소에 세워둡니다.

그리고 집음기를 사이드미러에 부착한 뒤 케이블을 카오디오에 연결했습니다. 기구에 전원을 넣자 형빈이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약간의 잡음과 함께 카 오디오에서서 흘러나옵니다. 지효는 전화로 형빈이에게 몇가지 지시를 내립니다.


송지효
"그래 그 부근에 서있고 왠만하면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마."

최형빈
"응 알았어."


그렇게 잠복 준비가 끝난 후 몇시간 뒤, 약속시간보다 한참 이른 시간에 왠 그림자 하나가 형빈이를 향해 다가옵니다. 야간투시경 디스플레이에 비친 그림자의 주인은 공교롭게도 여성이며 하은은 그녀의 얼굴을 알고있습니다.

바로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한 한가을 선배입니다.

카오디오를 통해 그녀와 형빈의 대화소리가 들려옵니다. 한가을이 형빈에게 인사를 건네자 형빈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최형빈
"그동안 날 협박해온 게 당신이었어요?"

한가을
"누구? 널 이 약속장소로 불러낸 사람? 만약 그렇다면 아닌데? 그 모자란 놈은 우리가 처리했어."

최형빈
"그럼 여긴 뭐하러 온 거에요? 그리고 처리했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한가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차차 알려줄테니까 지금은 우릴 따라오도록 해. 얌전하게 굴면 다칠 일도 없을거야."


그 때 허름한 승합차 한대가 달려와 두사람과 일행 사이에 멈춰섭니다. 승합차 엔진소리 사이로 형빈의 비명소리가 짧게 울려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