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이런 통보나 달랑 들으러 온 것은 아니지, 아니고 말고.'
중훈은 턱이 날아갔던 때 미처 하지 못했던 몫의 말까지 할 기세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고작 이런 통보를 하려고 우리를 여기까지 불러냈다, 그 말이오? 솔직히 내가 기대했던 것만 훨씬 못하구려. 그 당신이 속해 있다는 '동문회'부터가 지금까지 내가 보고 들은 바만 따지면 적어도 조선 땅에서 하는 행동은 '우리 쪽 사람들'하고 도긴개긴인 것 같소이다. 방금 우리더러 폭도니, 무정부주의자를 연상케하니 어쩌니 했는데 당신네들이 경찰로부터 빼내서 보호하고 있다는 그 팽 아무개라는 여자부터가 그런 쪽 사람이잖소? 저번에 당신이 우리 약방에 왔을 때는 당신부터가 직접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한테 일단 무기부터 들이대고 위협하는 폭도나 할 짓을 했고."
중훈은 한숨을 짧게 쉬고는 말을 잇는다.
"난 그쪽이 이번에는 최소한 좀 더 듣기 좋은 제안을 가져올 줄 알고 굳이 당신을 풀어주고 한 번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약속을 잡은 건데,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올 줄 알았으면 그냥 아예 그때 확실히 마무리를 지어 놓거나 아니면 조금 전에 만났던 친구하고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그쪽 제안을 들어 보는 쪽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소. 일단 그 친구 속은 모르겠어도 겉은 훨씬 예의 바르게 행동하더만.... 그리고 하나 더 짚고 갈 것이 있는데, 내가 그쪽 제안을 받아들여 동문회로 갈 생각을 했다고 칩시다. 방금 그럴 생각이면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그래서 무엇으로 증거를 삼을 거요...? 내가 직접 달인 한약 몇 첩 들고 간다고 그게 딱히 증거가 되진 않을 터이니, 구락부에서 누구 모가지를 잘라다가 들고 오거나 아주 중요한 물건이라도 훔쳐와야 하는 거요? 전향했다고 혈서라도 쓰거나? 그런 것이라면 결국 그것 또한 불한당들끼리 이야기할 때나 나올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오?"
말을 하며 중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마 청년들이 희혜의 제안을 듣고 이런 부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더라도, 이제는 저 제안의 허점을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중훈이 저번에 만났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이 송희혜라는 여자는 자기 손재주나 갖고 있는 지식에 비해서 말재주가 엄청나게 나쁘다. 가끔 엄청나게 말을 이상하게 하는 것은 황제내경에 설명된 대로 몸의 음기가 약하고 양기가 강해서 맥의 흐름이 빨라져 주체를 못하는 것(방사능 같은 외기를 다루는 걸 봐서는 그런 기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며, 광질의 초기 증상일지도 모르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일 테니 본인으로서는 아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렇게 기본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부분에서부터 자세히 뜯어보면 어딘가 좀 모자라게 말하는 것은 단순히 말재주가 매우 나쁜 것이며 병과는 상관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아, 그리고 혹시 건강 문제가 있다 싶으면 나중에 우리 약방에 와 보시오. 건강 문제가 있는 지인을 보내도 괜찮고. 저번에 내가 '일이 다 끝나면 한 번 도와 준다'고 약속했었으니, 그 건에 대해서는 따로 돈을 받지 않겠소이다."
이 정도면 판을 거진 엎어놓았는데, 굳이 말하다 보면 이상해지는 특유의 말투까지 거론해서 수틀리면 무기를 아이에게도 겨누는 희혜의 성질을 더 돋구어 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이제 희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자리를 떠나거나, 혹은 좀 더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제안을 해 오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일단 중훈은 좀 전에 만난 광대의 제안을 들어보거나 다른 큰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누구 쪽 손을 잡을 지 결정할 생각이 없으니, 상관은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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