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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실전 중고사기 대응 후기 1 - 형사편
1. 사기 피해때는 바야흐로 2024년 4월, LCK 결승전 티켓팅에 개같이 실패한 본인은 친구와 점심을 먹다가 급 직관이 꼴려중고나라에서 암표를 구하는 판단을 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는 돈을 받고 바로 잠수를 갈기는 사기꾼이었고피같은 24만원이 증발해 버렸다. 사기당하고 더치트 조회도 해봤는데 피해사례 없었던 계좌였음온갖 대포계좌를 돌려쓰는 것이므로 걍 중고나라에서 이런 거래를 하지 말자결국 다른 데서 암표 사서 갔는데 응원팀 개같이 패배;;사기꾼은 다음 날까지도 똑같이 사기를 치고 있었다. 이제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당연히 경찰 신고. 2. 신고, 경찰 수사https://ecrm.police.go.kr/minwon/main온라인 상에서 일어난 범죄는 경찰청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을 통해신고 내용을 미리 작성해두고 가면 편하다. 로그인한 뒤 신고하기 - 직거래사기를 선택하고본인 신분증과 판매글, 대화내역, 송금확인증 등 증거를 첨부한 뒤어떻게 피해를 당했는지 내용 등을 첨부해 신고 접수를 하면 된다.내용은 적당히 육하원칙에 따라 모월 모일 몇시에 XX물건을 준다며 YY계좌로 ZZ원을 받은 뒤 잠적하는 방법으로 ZZ원을 편취했다 식으로 쓰면 될 것이고..송금확인증은 송금 시 이용했던 토스나 은행 앱에서 발급 가능. 처음에 환불 관련 문제냐고 물어보는데,그렇다고 하면 경찰 신고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넘어가니처벌을 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신고를 하면 된다. 입금을 토스로 했다면 토스 안심보장제에서 돈을 돌려주는데암표는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다른 사기건으로 피해를 입었다면 한번 확인해볼 것. ECRM으로 미리 등록했더라도 같은 사기꾼에 대해 이미 다른 사건이 접수되어 있는 상황(다중피해사건)이 아니라면경찰서에 직접 방문해서 정식으로 접수해야 한다. 경찰피셜 대부분 대포통장이라 못잡을 수도 있고 오래걸릴수도 있고 어쩌고 하는데그냥 잊고 살다보면 잡히던가 말던가 한다대포통장이어도 한국 명의 계좌에 입금했으면 그 통장 주인이라도 잡는다. https://www.kics.go.kr이후 진행 상황은 형사사법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사기꾼에 대한 신고들을 모아 사기꾼 거주지 근처 경찰서로 이송하여 처리한다. XX경찰서로 이송했다, XX검찰청으로 송치했다 등 진행 상황을 문자로도 알려줬던 것 같은데 문자 내역이 날아가서 퍼온 짤 올림범인을 잡은 뒤 합의를 하고 싶다며 경찰을 통해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후 피해 사례를 찾다가 보니 사기 범인은 수백 개 계좌를 이용해 온갖 물품 사기를 하는 대규모 조직이었고피해자들이 모인 채팅방에만 3000명 정도의 피해자가 모여 있었다. 피해액도 수 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천차만별그 중 나와 같은 명의의 계좌에 입금한 사람만 수십 명...3. 검찰, 재판경찰이 범인을 잡고조사 뒤 검찰에 넘겼다면(송치)검사가 판단을 하게 된다. 사건이 경미하다면 약식명령으로 벌금을 청구하거나(구약식)사건이 크다면 정식 재판을 열어 처벌해 달라고 하거나(구공판)사건이 작고 합의를 했다면 처벌하지 않고 넘어가기도 한다(기소유예)검사가 처분을 결정하면 그 내용을 카톡으로 알려준다. 나의 경우는 피해자도 많고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구속 상태로 구공판 결정, 즉 감옥에 갇힌 상태로 재판으로 갔다. 검사가 범인을 기소하고 법원에 접수되면 법원 사건번호를 알려준다. 형사재판의 진행 내용은 법원 사건번호를 통해 법원 나의 사건검색에서 조회하면 됨https://www.scourt.go.kr/portal/information/events/search/search.jsp여기까지 왔다면 피해자는 ‘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배상명령이란 피해 경위와 피해액 등이 명백한 경우민사소송을 따로 할 필요 없이 형사소송 판결과 함께 피해자에게 돈을 돌려주라고 선고하는 것이다. 배상명령을 청구할 것이라면 이렇게 생긴 배상명령신청서를 작성해 법원에 등기로 부치면 된다. 사기당한 금액(보통 원금만 인정해줌), 내용, 신고했을 때 증거 정도를 첨부하면 된다. https://www.daeryunlaw.com/archive/827https://ecfs.scourt.go.kr/psp/index.on?m=PSPK00M02전자소송으로 진행되는 최근 사건은 온라인으로도 접수가 가능한 듯하니 확인해보기 바람. 배상명령이 인용되면 여러모로 편리해지는데, 피해 금액이 확실하지 않거나, 사기꾼이 여러 명이어서 책임 범위가 애매하거나 한 경우에는 각하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신청해서 나쁠 건 없음. (나는 안 함)또한 피해자는 검사가 법원에 낸 공소장을 열람할 수 있는데역시 신청서 작성해서 신분증 사본과 같이 법원에 우편으로 보내면 된다. 은행이나 우체국에서 수입인지 500원 사서 첨부해야 되는 것으로 기억함https://vsarangv.tistory.com/entry/001어차피 공소장에 있는 범죄사실은 판결문에도 들어있으니 굳이 할 필요는 없음거기다 신청은 우편으로 하더라도 받으려면 법원 찾아가야 해서 귀찮음.앞서 말한 나의 사건검색에서 공판기일을 확인할 수 있다. 배상신청 했으면 재판 당사자라서 공판기일통지서가 우편으로 올거임. 나는 공소장 열람복사 신청한 거 받을 겸 사기꾼 얼굴도 볼 겸 첫 공판기일에 법원에 다녀왔다. 법원 앞 버스정류장 내리자마자 빙판에 미끄러져서 바지 다 젖음 ㅆㅂ온갖 잡범들이 줄줄이 재판을 받는다법정 내에서는 촬영이나 녹음이 금지임. 형사재판 절차는 먼저 인정신문이라고 해서 피고인 인적사항을 확인하고검사가 공소사실 요지를 진술한 다음 피고인 의견을 듣는 식으로 진행된다. 잡힌 인간은 본범은 아니고 계좌 빌려준 2000년생으로 물류센터 알바를 한다고 하고이 사람 계좌로 162명에게 1억2천만원을 사기치고범죄조직 돈세탁을 1억9천 했다고 한다. 아무튼 범인은 범죄를 모두 인정하고 합의를 위해서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나 말고도 이 인간에게 당한 피해자 몇 명이 재판 방청을 왔었는데합의나 변제 어떻게 할 거냐고 사기꾼 변호사한테 물어보니피고인 가족하고 얘기해봐야 돼서 추후 연락준다고 하고 그냥 가버렸다. 공소장은 이런 식으로 생겼는데 잡힌놈은 계좌 빌려준 공범이고,사기조직 몸통은 누군지도 모름 아마 한국에 없을듯이런 식으로 범죄일람표라고 해서 사기친 목록이 쭉 나오는데경찰에 신고해서 사건화가 된 것만 이만큼이니 실제로는 얼마나 더 헤쳐먹었을지 알 수가 없다. 며칠 지나니 검찰을 통해 연락처 줘도 되냐는 문자가 왔고,양심도 없는지 원금 전액 변제는 못 해주니적게 받아갈 놈만 손들라는 내용의 변호사 측 문자가 왔다. 괘씸하지만 얼마 주려나 궁금해서 문자해봤는데그냥 씹더니 답장도 없다이후 전화해보니까 돈 떨어져서 더 이상 합의 못한다고 연락하지 말라고 함...피해자 단톡방에서 얘기를 나눠 보니 450만원 사기당하고 400만원만 받고 합의해준 분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판결이 나왔다고 알려준다. 결과는 징역 2년이고 배상명령은 각하. 이놈은 사기 본범이 아니라 계좌로 돈세탁만 했기 때문에 배상명령은 각하된 것이다. 합의는 얼마 해줬나 봤더니 총 4250만원 줬다고 함배상명령을 신청했다면 판결문도 집으로 보내 주는데,그게 아니라면 따로 신청해서 받아야 한다. 이것도 인지, 신분증사본 첨부해서 법원 해당 재판부에 보내면 되는데다행히 사건기록 열람복사와 다르게 판결문은 신청하면 집으로 보내준다. https://file.scourt.go.kr/AttachDownload?path=004&file=1673857613557_172653.hwp&downFile=B3520-2%C7%C7%C7%D8%C0%DA%20%B5%EE%20%C6%C7%B0%E1%B5%EE%BA%BB,%C3%CA%BA%BB%20%BC%DB%BA%CE%20%BD%C5%C3%BB%BC%AD.hwp&seqnum=36(링크 누르면 다운로드되니 주의)아무튼 사기 피해부터 범인 검거, 형사 1심 판결까지 1년 정도가 걸렸다. 범인은 감옥에 가긴 했지만 내 돈은 전혀 못 돌려받은 상태다. 경찰서 가고 우편 부치고 법원 가고 하느라 돈과 시간만 왕창 썼지..이제 피해금액을 돌려받는 것은 민사소송의 영역이다형사는 경찰에 신고만 하면 공권력이 알아서 조져주지만민사는 개인간의 싸움이기 때문에 내가 직접 다 해야 한다. 나처럼 금액이 얼마 안 되는 경우는 소송 하는 데 품이 더 들기 때문에그냥 넘어가 버리면 못 받는 것이다이러니 사기꾼만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하는 것...하지만 본인은 시간빌게이츠이므로 이후 민사, 집행까지 진행한 내용을 써보도록 하겠다. + 사기꾼은 이후 항소해서 2심 징역 1년6월이 확정,24년 10월에 잡혀들어갔으니 곧 출소다.
작성자 : 페르난도.고정닉
조선시대도 떼법과 악성민원, 그리고 시체팔이가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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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는 유교적 민본주의를 통치 이념의 근간으로 삼아,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신원을 군주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로 규정했음
국가는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도록 상언,격쟁, 신문고등 다양한 소통 채널을 제도적으로 보장했고,
지방관들에게는 송사를 엄정하게 처리하여 민원을 해소할 것을 시스템적으로 끊임없이 요구했음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개방성과 억울함이 없는 세상이라는,
너무나 이상주의적 목표는
역설적으로 소송의 범람과 악성 민원의 일상화를 초래했음.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조선을 호송지국(소송을 좋아하는 나라)이라 한탄하였는데,
이는 단순히 백성들의 권리 의식이 신장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음
조선시대 지방관들이 가장 기피했던 민원은 다름 아닌 변사 사건과 관련된 것이었음
유교 사회에서 시신은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존재였으나
이를 이용해 송사 과정에서는 상대방을 압박하고 관아를 무력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물리적 무기로 전락했음
이를 시체 투쟁이라 할수 있을정도며 이는 단순한 항의를 넘어선 고도의 심리전이자 경제적 갈취 수단이 된거임
조선의 검시 지침서인 『무원록(無冤錄)』, 『증수무원록(增修無冤錄)』에 따르면,
살인 사건이나 원인 불명의 변사체가 발생할 경우
해당 고을의 수령은 반드시 현장에 출동하여 시신을 검시(검험)해야 했음
검시는 보통 1차(초검)와 2차(복검)로 이루어지며, 의문점이 남을 경우
3차, 4차 검시까지 진행되었음
그리고 민원인들은 이러한 행정적 의무와 절차의 복잡성을 악용하였음
억울하게 죽었다고 주장하는 유가족(혹은 이를 사주한 잡놈들)들은 관아의 검시 결과에 불복하거나,
아예 검시 자체를 거부하며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버티는 전술을 구사했음
이들은 시신을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집 앞이나 관아 마당에 멍석을 깔고 방치해버렸지
여름철의 경우 시신은 빠르게 부패하여 악취가 진동하게 되는데,
이는 수령과 아전들의 업무를 마비시키고, 가해자 집안을 심리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뜨리는 효과적인 수단이었음
억울함을 호소하는 측에서는 관아의 검시관이 도착해도 시신에 손을 대지 못하게 막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타살 등)이 나올 때까지 시신 인수를 거부하기도 했음 사실상 일종의 인질극이었음
직접적인 살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목숨을 X어 시체를 상대방에게 떠넘기겠다는 협박은
채무 관계나 원한 관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수법이었음
조선시대에는 남의 집 대문 앞에서 X살하거나 변사체가 발견되면,
집주인이 살인 혐의를 뒤집어쓰거나
최소한 검시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과 고초를 겪어야 했거든
이를 악용하여 "돈을 갚으라고 압박하면 네 집 앞에서 X을 매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채무자가 채권자를, 혹은 약자가 강자를 압박하는 비대칭 전력이었음
조선 후기, 특히 정조 시대에 이르러 백성들이
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언과 격쟁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음
본래 격쟁은 사형에 해당하는 억울한 죄, 부자 관계의 윤리, 적첩의 구분, 양천의 신분 문제 등
4가지 중대 사안(사건)에 한해서만 허용된 최후의 수단이었으나.,..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제도는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사소한 민사 분쟁 해결이나
개인적인 원한을 갚기 위한 악성 민원 창구로 변질되었음
정조 재위 24년 동안 접수된 상언과 격쟁은 총 4,427건에 달했음(상언 3,092건, 격쟁 1,335건)
이는 영조 시대보다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정조의 적극적인 소통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도의 남용이 극심해졌음을 보여줌
문제는 격쟁의 내용이 국가적 중대사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해관계에 집중되었다는 점이었음
오늘날로 치면 이혼, 채무 불이행, 재산 상속, 묘지 다툼 등 지방 법원(관아)에서 해결해야 할
민사 사건을 왕에게 직접 들고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음
돈을 못 받았다
아내가 도망갔다
나무 값을 떼였다
등의 이유로 왕의 행차 길을 막고 징을 치는 행위는
국왕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행정력을 낭비시키는 대표적인 악성 민원들이었음
예시들을 보자
경기도 양근에 사는 80세 노인 이광홍은 인제에서 매입한 나무 600여 주를 총융청 장교와 서리가 빼앗아 갔다며,
그 대금을 받기 위해 격쟁을 벌였음
사실 그는 이미 관아에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 판결을 받은 상태였는데 미지급분이 있다며 만족하지 못하고,
정식 절차인 사송 제도를 무시한 채 왕에게 직소한거임
이는 명백한 처벌 대상이었음
그러나 조정에서는 그의 나이가 80이 넘었다는 이유로 노인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죄를 묻지 않기로 결정했음
이러한 온정주의적 처분은 법의 형평성을 무너뜨리고,
유사한 악성 민원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건 당연지사
백성들 사이에서는 "일단 왕 앞에 나가서 드러누우면 해결된다"는 인식이 퍼지게 된거임
한성부에 빚 문제로 잡혀 있던 남편 이정수를 구하기 위해,
그의 아내는 재판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격쟁을 벌였음
상대방인 정도형이 이미 소송을 제기하여 심리가 진행 중이었고,
아직 판결이 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한 것임
이는 사법 절차를 무시하고 왕권으로 재판부에 압력을 가하려는 시도로 간주되어,
외월지죄( 분수에 넘치게 절차를 건너뛴 죄)가 적용되어 처벌받았다.
이는 급한 마음에 법적 절차를 무시하는 백성들의 조급증과 법 경시 풍조를 보여주는 예시임
또한 가정 내부의 문제, 특히 이혼과 같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왕에게 해결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음
17세기 홍가신은 사위인 이길이 역모에 연루되어 죽자, 자신의 딸을 이혼시켜 달라는 글을 왕에게 올렸음
이는 역모 연루자 가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생존 전략이기도 하고 이해는 되나
제도의 취지(국가적 억울함 해소)와는 거리가 먼 개인적 신분 세탁을 위한 민원이었음
원래 조선에서 이혼은 국가가 장려하지 않았을뿐더러, 하더라도 양가 합의나 관아 선에서 끝내야 할 문제였는데
내 딸이 역적의 아내로 죽게 생겼으니 이혼 허락 도장을 찍어달라고 왕에게 직접 다이렉트 민원(상언)을 넣은거임
조선의 격쟁 제도가 악성 민원의 온상이 된 배경에는 비교적 관대한 처벌 문화가 있었음.
동시대 일본 에도 막부의 경우, 쇼군에게 직접 민원을 제기하는 직소(직소)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었으며,
이를 시도하는 즉시 참수되거나 가문이 멸절되는 등 가혹한 처벌이 따랐음
백성이 쇼군의 행차를 가로막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음
반면 조선은 격쟁을 하면 형식적으로 곤장을 치기는 했으나(보통 곤장 100대, 유배 3000리 규정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감형되거나 형식적 집행에 그침),
사연을 들어주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경우가 많았음
"맞을 때 맞더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조선 백성들의 기질과,
이를 용인하는 유교적 민본주의가 결합하여 독특한 떼법 문화를 형성한거지
이는 백성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긍정적 측면과 행정력 낭비라는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음
신분을 드러내고 하는 격쟁이 양지의 악성 민원이라면,
이름을 숨기고 특정인을 모함하거나 사회 불안을 조장하는 투서와 괘서는 음지의 악성 민원이었음
조선시대에는 익명으로 고발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익명서는 내용을 보지 않고 불태워버리도록 규정했으나,
실제로는 정적을 제거하거나 지방관을 쫓아내기 위해,
혹은 개인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 투서와 괘서가 광범위하게 활용되었음
괘서는 대중이 많이 모이는 장터, 성문, 관아 벽 등에 몰래 붙이는 벽보로,
여론을 조작하고 민심을 선동하는 데 효과적이었음
가장 대표적인 악용 사례는 명종 대의 정미사화임
당시 권력을 장악한 문정왕후와 윤원형 일파는 정적인 대윤 세력을 숙청하기 위해
여자(문정왕후)가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들이 아래에서 권력을 휘두르니 나라가 망할 것이다
라는 내용의 익명 벽서를 날조하거나,
누군가 붙인 벽서를 크게 키워서 역모 사건으로 조작했음.
이는 권력층이 악성 민원을 정치적 숙청의 도구로 활용하여 사법 살인을 저지른 대표적인 케이스임
민원이 아래로부터의 호소가 아니라, 위로부터의 탄압 수단으로 악용된 것임
19세기 세도정치기에는 사회적 불만이 고조되면서 괘서가 더욱 빈번해졌음
그중에는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척하며 사실은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개같은 자작극?
당연히 있었지
1801년, 경상도 창원의 소작농 전지효는
"천하의 지모와 힘이 있는 자는 모두 북소리에 맞추어 뒤를 따르라. 능력에 따라 관직을 주겠다"
는 내용의 반역 괘서를 스스로 작성하여 붙인뒤, 이를 자신이 발견하여 관아에 신고하는 쇼를 벌임.
그의 목적은 역모 고변에 따른 막대한 포상금과 관직을 받는 것이었음
그는 이 과정에서 평소 원한이 있던 부유한 진사 정양선 등을 공범으로 몰아 무고했음
조정에서는 안핵사를 파견하여 조사한 끝에 전지효의 자작극임을 밝혀내고 그를 처형했음
이 사건은 악성 민원이 단순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차원을 넘어,
타인을 해치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기획 범죄로까지 진화했음을 보여줌
지방 사족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수령이 부임하면 집단적인 투서 공세를 펼쳤음
수령의 비리를 조작하거나 과장하여 감영(관찰사)이나 중앙 사헌부에 투서를 보냄으로써
수령을 파직시키거나 길들이려 했다. 이를 구축이라 불렀음
세종 대에 제정된 부민고소금지법은
다들 알지?
지방의 아전이나 백성이 수령을 고소하는 것을 금지한 법임
표면적으로는 위계질서 확립을 위한 것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지방 토호(향리)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수령을 무고하여 쫓아내는 폐단을 막기 위한 나름의 의도도 있긴 했는데....
문제는 이 법은 수령의 탐학을 견제할 수단을 없애버리는 부작용도 낳았음
법적 고소로가 막히자 백성들과 토호들은 더 음성적이고 악의적인 수단을 찾게 된거지
직접 고소 대신, 익명의 투서를 활용하거나,
왕의 행차에 뛰어드는 격쟁을 통해 우회적으로 수령을 공격하는 방식을 택하게 됨
즉, 법적 통제가 오히려 악성 민원을 음지화하고 과격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거임
조선시대에 이처럼 다양한 악성 민원이 창궐했던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것이 현대 사회에 주는 의미는 뭘까?
조선은 "원통함이 없게 하라"는 유교적 이상을 강조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공정하고 신속한 사법 행정 시스템은 부족했음
지방관은 행정과 사법을 겸임하여 업무 과부하 상태였고,
아전들의 농간은 끊이지 않았음
이에 백성들은 정식 절차보다는 충격 요법(시체 시위, 격쟁)이 더 빠르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학습하게 된거지
거기에 개인의 잘못이 가문 전체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연좌제 사회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모나 강상죄로 엮어 넣는 무고였고
이는 민원의 내용을 극단적으로 과격하게 만드는 원인중 하나였음
또한 법대로만 처리하지 않고 정상을 참작해주는 국왕의 온정주의적 판결(예: 80세 노인 처벌 면제)은,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무리한 민원들을 양산하는 토양이 되어주었음
조선시대의 시체 투쟁, 격쟁 남발, 투서질은 오늘날의 떼법, 신상 털기, 악성 댓글, 반복 민원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가짐
자신의 권리 구제를 위해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전술은 전근대나 현대나
약자가 선택할 수 있는(혹은 악용하는) 가장 효율적인 비대칭 전력이기 때문임
특히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속설은 조선시대 격쟁의 성공 경험에서 유래한거 일지도 모름
조선의 사례는 소통 창구를 열어두되, 원칙 없는 관용은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한다..는 교훈을 줌
정조가 격쟁을 활성화했지만 결국 사소한 민원의 홍수에 시달렸던 것처럼,
명확한 기준 없는 민원 해결은 사람들이 악용하게 되기 마련이고
더 큰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게 되어있음
또한, 익명성에 기댄 무고가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향전, 괘서 사건)는
현대의 익명 인터넷 문화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봄
조선시대의 악성 민원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나 도덕적 해이가 아니었음
억울함을 양산할수 밖에 없는 경직된 신분제 사회 그러나
모든 백성의 소리를 듣고 억울함을 해결해야 한다는 유교적 명분론..
그리고 불완전한 사법 시스템.....
맞지 않고 삐극대는 톱니바퀴들 사이에서
파생된 복합적인 사회 현상이었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런 시스템의 빈틈을 잔머리를 굴려가며 악용했고
이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도 이어지고 있음
오늘날의 떼법, 좌표 찍기, 신상 털기, 청원 게시판 도배 등도
결국 법치 시스템이 완벽하게 해결해주지 못하는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대중이 찾아낸 현대판 격쟁이자 투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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