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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범죄, 대형참사 빈발의 원인은 따로 있다

운영자 2009.03.27 17:16:48
조회 4935 추천 8 댓글 9

  개인적 화풀이를 위한 우발적 살인행위나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테러행위, 그리고 군대의 하극상사건이나 존속살인사건 같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표면상 드러난 이유는 피폐된 가정환경과 이념적 적개심, 또는 빈부격차 등이라고 하지만, 가정환경이 나쁘다거나 경제적으로 못산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런 식의 일탈된 행동을 보이지는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윤리기강의 해이나 상대적 박탈감 등 상투적으로 제시되는 요인들은 다 허구적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원인은 민심의 향방이 ‘솔직한 본능’을 향해서 무의식적으로 달려가는 데 있고, 그러한 본능적 욕구의 중심은 식욕이 아니라 성욕과 놀이욕인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나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역시 이런 식의 추리가 가능하다. 부실공사나 부실관리가 돈을 떼어먹으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 역시 ‘돈으로만 욕망의 대리배설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돈으로만 욕망의 대리배설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돈 말고도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고상한 대리 배설수단이 얼마든지 있다’를 눌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부실관리가 이른바 적당주의나 복지부동 심리에 기인한 것이라고 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적당주의나 복지부동의 자세가 무사안일주의적 보신주의(保身主義)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래도 괜찮은데,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것이 ‘눈치보기식 기회주의로 개인적 이득 챙기기’ 풍조에서 나왔고, 그러한 처세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외견상 도덕적 보수주의자의 탈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진짜 보신주의는 이데올로기나 민족 등을 핑계로 전쟁터에 나가 용감하게 싸우다 죽는 것보다는, 당당하게 도망가 신나게 노는 것이 도덕적으로 더 선(善)한 행동이라고 보는 도교의 위아주의(爲我主義)와 맞닿아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도덕적 선악의 개념이나 진짜 보신주의와도 상관없이 존재하는 일종의 ‘이중적 은폐주의’가 사회상층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배설적 향락욕구나 놀이욕구가 정직하고 떳떳하게 표출되지 못하고 음험한 이중성을 띠게 될 때, 그것은 곧 부정부패와 재산 은닉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항문 콤플렉스’와도 관련이 깊다. 어렸을 때 배변(排便)을 엄격하게 통제받으며 자란 사람은 어른이 돼서도 배변과 유사한 행위, 즉 섹스나 춤 등의 놀이에 의한 본능적 욕구의 건전하고 정당한 배설행위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다. 말하자면 오히려 똥을 참고 뱃속에 저장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전노의 심리이고 (똥은 언제나 돈의 상징이다), 인생의 모든 가치를 돈 하나에만 두는 황금만능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구시대적 도덕주의나 청빈(淸貧)만능주의가 점차 맥을 못쓰게 돼가고 있는 시대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라고 잔뜩 부추겨놓고서는, 노는 데 돈 좀 써볼라치면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 개탄해대는 모순을 보이고 있으니, 국민들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게다가 ‘놀이’를 통제하는 방식조차 애매하게 이중적이다. 야간 통행금지가 없어진 지 오래건만 술은 자정까지만 마셔야 하고, 그것도 외국인이 드나드는 비싼 고급 호텔은 예외가 된다. 퇴폐추방을 연일 외치면서도 정작 고급 룸살롱 등 ‘퇴폐업소’를 없애진 않는다. 돈 많은 사람들은 외국엔 나가 실컷 퇴폐적으로 놀고 돌아와서 퇴폐추방만 건성으로 외쳐대면 되고, 돈 없는 서민들은 그저 참아야만 한다.


  이럴 땐 차라리 집단무의식의 변동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를 솔직히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처방과 대응책을 강구해봐야 한다. 지금은 밥을 굶기 때문에 도둑질하는 세상이 아니라 신나게 놀기 위해(다시 말해서 유흥비 마련을 위해) 도둑질하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회지도층 인사라는 이들이 자기 마음의 쓰레기통 뚜껑은 덮어놓고서 겉으로만 ‘도덕’을 강조해대는 꼴을, 민중들은 너무나 역겨워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톨스토이의 시대(한국의 경우는 톨스토이즘의 복사판인 이광수 주의가 계속 위세를 떨친 1980년대까지의 시대)까지만 해도 부부간의 성적 갈등을 정신적으로 ‘승화’시켜(다시 말하자면 가장하여) 훌륭한 문학작품이라도 생산해낼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그런 식으로 밀고 나가다간 작품을 쓰기도 전에 울화병으로 고꾸라지든지, 신경질적 화풀이로 자살을 하든지, 살인을 저지르든지 셋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이든 ‘신나는 놀이’가 되지 않고서는 일이 제대로 돌아가주질 않다. 그리고 ‘놀이’ 자체를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하여 억누르려고만 들면, 게다가 그것도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만을 대상으로 ‘겁주고 누르는’ 식이 되면, 불공평한 억압에 대한 반동현상으로 보다 일탈적인 범죄욕구와 적개심 섞인 신경질이 스프링처럼 뜬금없이 튀어오르게 된다. 그리고 민중 개개인의 ‘막역한 적개심’으로서의 신경질적 히스테리가 뭉치고 뭉쳐 ‘파괴적 기(氣)’로 작용할 때, 대형사고 같은 것이 일어나는 것이다.


  ‘민심이 천심’이란 말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예전 왕조시대 때 괴이한 변고가 일어나면 죄수들을 일제히 사면시키거나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울화를 풀어주는 방법으로 일시적으로나마 민중의 집단무의식을 달래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것은 현대과학의 입장에서 봐도 결코 불합리한 미신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마음의 힘’이 엄청나다는 것은, 여자가 임신하지 않았는데도 임신한 것과 똑같은 육체적 현상을 나타내는 ‘가상임신’ 증세를 보면 알 수 있다.


  ‘단장(斷腸)의 슬픔’이라는 말도 같은 경우인데, 이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사실적 표현이다. 이 말은 옛날 중국에서 새끼를 잃고 섧게 울다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내장이 갈갈이 찢겨져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그러니 민중들의 막연한 적개심이 다리나 백화점 하나쯤 못 무너뜨릴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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