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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번역기] 늑대와 양피지 2권 - 서막, 1막(1)

ㅇㅇ(211.221) 2017.08.18 18:52:31
조회 1761 추천 1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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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리.』

 하지만 무례함은 꾸짖어야 한다. 주의를 주자 뮤리는 "뿌우" 하며 외면해 버린다.
 하이랜드는 그 모습을 보곤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오늘은 과자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이해해줘.』
『죄송합니다.』
『나도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이 생긴것 같아 재밌어. 그래서 지금 몸상태는 괜찮은 건가?』
『덕분에.』

 신하의 예 갖추고 고개를 숙이자, 옆에 있던 뮤리가 아래에서 차가운 눈으로 올려보고 있었다.

『감사는 그쪽의 꼬마 아가씨에게 해야 하는 것이다. 간병한 것은 내가 아니니까.』

 뮤리가 "그렇다는데?"라는 듯이 허리를 두들린다.

『오히려 그쪽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은 내 쪽이야. 내 목슴과 올바른 신앙에 불을 지펴줬으니.』

 고개를 들자 하이랜드가 미소 짓고 있었다.
 귀족이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진 않았지만, 그 미소 하나로 감사의 마음은 충분히 전해져 온다.

『저는 그런....』
『그대는 세계를 구원하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겠지.』

 하이랜드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뭐, 됐어. 나는 위에 서있는 사람으로써 감사를 행동으로 나타낸 것 뿐이야. 쾌유를 축하하는 의미가 아니지만 식사를 함께하지 않겠나. 밤을 새기 전부터 꼬박 일했기 때문에 말야.』

 하이랜드는 마치 뮤리처럼 자신의 배를 눌렀다.

『고기를 부탁해도 될까?』

 거기에 뮤리가 끼어들었다. 몹시 무례한 태도를 취해놓고도 뻔뻔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꾸짖고 싶었지만 정작 하이랜드가 진심으로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어서 주의를 주기도 어렵다. 물론 뮤리도 하이랜드가 화내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지.

『그렇게 하지. 나도 소금을 듬뿍 친 고기가 먹고 싶었거든.』
『야호!』

 아까 아침에도 먹었잖아,라는 말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리고 뒷문으로 나서자, 

『그럼, 뒷문으로 나가지. 차양막이 없는 마차라 손님을 사람을 맞이하기엔 알맞지 않지만 참아줘. 그리고 가는 길에 앞으로의 계획도 알려주고 싶다. 그대가 자는 동안 여러가지 일이 있었거든.』

 자신은 태평하게 여행을 다니려 마을에 온 것이 아니다.
 등을 곧추 펴고 고개를 끄덕이자, 하이랜드도 작은 턱을 가볍게 당겼던 것이었다.





 교회의 뒷문을 거쳐 골목으로 나오자, 앞에서 본 북적임과는 다른 정적만이 흘렀다.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도 있지만, 쓸쓸하고 외롭다는 느낌보다는 한가로움이라는 말이 좀더 어울리는 것 같다.
 그것은 화창한 날씨와 더불어 바닷가 마을에 감도는 건조한 공기 때문일수도, 길 양쪽에 있는 건물의 자그마한 창문에서 아기의 울음소리와, 집안일에 힘을 쓰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는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우선, 지금까지의 경과는 아주 좋아.』

 하이랜드가 이렇게 말을 건넨 건, 길을 막고 있는 늘씬한 늙은 개가 누워있는 것을 우아한 스커트 자락을 들어올려 넘어가면서였다. 자신도 조심히 도로변으로 다가가 개의 꼬리쪽으로 넘어갔다. 뮤리가 뒤따라 다가오자, 늙은 개는 꼬리를 공손히 말아 치웠다. 귀족보다, 신의 종보다, 늑대의 피를 이어받은 딸이 개에게는 더 높은 존재일 것이다.

『마을의 대주교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던 방탕함을 고치고, 검소한 생활을 하기로 약속했다. 물론 대주교에겐 초라하지 않을 정도,라는 뜻이겠지만 상당히 큰 양보를 한 것이다. 매주, 매월, 매계절마다 예배나 대축제를 통해 헌납 받은 것들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것은 십일조보다 질이 더 나쁜 짓이니 말일세.』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마을의 교구형제단 쪽에서 포도주의 헌납과 관련된 말을 건네왔습니다.』

 교회의 성직자는 부수입이 넘쳐흐를 정도로 많다.

『아아. 교회에 포장된 물건을 들고 뛰어가는 이들이 그 사람들이야. 이 골목의 이름 앞에 붙은 교구가 14개이고, 그 교구마다 장인 혹은 상인들이 각각의 직인조합을 만들고 몇몇 이들은 마음의 평온을 위해 모여서 만든 형제단들이 다수 있지. 이곳에도 모두 합치면 약 50개 정도는 될거야. 그 외에도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교회로 모여들고 있어서, 무척이나 분주한 상황이야.』

 뇨히라 같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아는 곳에서도,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힘들다.
 아티프처럼 나름 규모를 가진 마을에서라면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어쨋거나, 민중들이 내뿜는 교회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알게된 인근 자치 도시들의 교회나 대(大) 수도원에서 보내온 사절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도 태도를 바꿔야 하는 건가? 그러나 어느 정도 선까지 양보를 해야 옳은가? 라고.』

 지금까지도 교회에 대한 비판은 있었지만, 그것이 실체를 띈 봉기로 이어지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것은 웬지 수상하고 의심스럽더라도, 교회만큼 정직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썩었다고 해도, 다른 이들보다는 나은 것이라며 모두가 체념했다.

『아울러, 그대가 다듬은 속어 번역에 대해서도 문의가 많다. 경전이 성직자만이 읽을수 있는 문자로 쓰인 것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지. 이제 교회의 오만함을 지적하는 움직임이 맹렬하게 확산되고 있다. 그대들 덕분이다.』

 우리 때문이 아니라는 이유를 백가지라도 늘어놓을수 있지만, 하이랜드의 호의를 순순히 받아두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쑥쓰러워 하는 미소에는 그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지만 불이라는 것은 언제나 관리가 필요합니다.』

 개혁의 불길이 치솟아오르면, 번져나간 불길로 인해 내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상대는 세계에서 어떤 상회보다 많은 지점을 두고 있는 교회인 것이다. 임기응변으로 싸운다면 승산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적절한 불쏘시개를 넣고, 바람의 방향을 지켜봐야한다.』
『저희가 해야할 다음 임무는 무엇일까요.』

 라는 말을 이어가며 뒷골목을 지나 아티프가 아직 작은 마을이던 시절에 구 시가지로 불린 장소로 나왔다. 왜 자신이 그것을 알았냐 하면, 땅에 있는 돌층계가 이 부분부터 오래되 보이기 시작했고, 건물 벽에 걸린 동판에 "구시가"라고 씌여있었기 때문이다. 반들반들하게 잘 닦인 동판에서 옛 주민들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광장이라고 부르기엔 비좁은 곳이었지만, 작은 우물 주위에는 음식 노점들이 늘어서있고 그 사이에는 구두장이가 구두를 수선하고 있거나, 동네 노인이 카드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끈 것은 건물 한쪽을 덮듯이 늘어선 큰 그물들이다. 광장을 빙 둘러싸 5층 건물 지붕 위 까지 펼쳐져 있었다.
 마치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일망타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오라버니, 저게 뭐야? 축제 장식인걸까?』

 뮤리가 이쪽의 소매를 잡아 당기며 말했다.

『확실히....뭔가가 붙어있네요. 물고기 모양의 건초?』
『봄을 맞이하는 풍어(豊漁) 축제라고 한다. 이곳은 아티프의 어부들이 사는 구역이거든.』

 하이랜드가 설명을 해주며 노점에서 청어구이 꼬치 4개를 구입했다.
 개중 1개를 이쪽에 건네주고, 뮤리에게는 2개를 건네주었다.

『이 땅은 보리가 아닌 물고기로 배를 채우고 있다. 그리고 배가 고파선 전쟁도 할수가 없지. 그런데.』

 라며 하이랜드가 말했다.

『그대들은 수영을 잘 하는가?』

 의미심장한 미소와, 고상한 이빨을 살짝 내보이며, 생선구이의 등을 작게 깨문 것이었다.



 포효 같은 폭풍 속, 올려다보니 높은 파도가 산처럼 서 있다. 어둡고 습한 배에는 갑판에서 물이 폭포처럼 흘러들고, 금세 부패한 음식은 쥐들이 뜯어간다. 천장과 바닥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흔들리는 배 안에서 한숨도 자지 못하고, 물은 마시는 것보다 토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도망칠 곳은 없고, 기도할 뿐. 그토록 공포와 괴로움을 필사적으로 버텨냈다고 해도 다음 돌풍에 배가 옆으로 넘어지면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닌 바다 위에서 한 줌의 재처럼 자연 속으로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한편, 항구에선 선박의 문장을 내건 술집에서 배의 이름과 금액이 기록된 큰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단정한 옷차림의 상인들이 온종일 그 종이 앞에서 손을 잡고 기도하고 있다. 종이의 맨 위에는 거친 필체로 뭔가가 쓰여 있다.
 신의 뜻대로.
 그 술집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은 배가 가라앉는지에 대한 내기였다. 가끔은 보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배의 소유자는 화물의 총액의 2할에서 1.5할을 상대에게 건네고, 배가 가라 앉으면 상대에게서 화물의 총액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배가 가라 앉지 않으면 건넨 돈은 모두 상대가 갖게 된다. 즉, 5번에 한 번 정도 항해 중인 선박이 가라앉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침몰은 해적에게 피랍되는 횟수도 포함된다.
 마을 밖으로 눈을 돌리면 푸르스름한 잿빛 하늘이 있었는데, 바람이 강한 날엔 해안가의 마을 사람들이 바다 쪽을 향해 지붕 위에 서 있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탐욕으로 가득 차 새하얀 파도 거품 위를 달리는 어리석은 상선을 찾기 위함이다. 바람에 휘청거려 난파되거나, 암초를 만나 좌초 혹은 침몰하면 표류한 짐을 건져 한몫 챙길 수 있다. 다만 큰 규모의 상회와 영주 사이에는 약속을 정해, 법적으로는 표류한 물건은 선박 주인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결코 사람을 구조하려 하지 않는다. 까다로운 선주라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살아나기 위해선 몸에 금화로 칭칭 감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겠으나, 금화를 칭칭 감고 있다면 침몰하는 것이 손해다.
 오오, 이 세상은 지옥. 모험의 끝.
 원양 항해를 뜻하는 자에겐, 신의 축복이 있으라.

『뭐, 그렇다는 거지.』

 주위가 바다로 둘러싸인 윈필왕국의 귀족은 새의 허벅지살 기름이 묻은 손가락을 장난스럽게 핧는다. 눈앞에는 만찬처럼 갖가지 음식들이 즐비하다. 이곳은 새벽 전부터 바다로 나가서 아침에 돌아와 일과를 마친 어부들이 모이는 술집이다.
 음식물이 목을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 것은 성직자를 뜻하는 자로써 육식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이랜드의 이야기 때문이다.
 천장에 걸려있는 큰 선박의 모형은 누가 장난을 친 탓인지 닭의 깃털로 만든 날개가 달려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뒤엔 그 날개에조차 깊은 뜻이 담겨 있는 듯 했다.

『…그, 항해에 나서란, 말씀?』

 짜내듯이 말하자, 허벅지살을 물려던 하이랜드는 물지 않은 채 눈을 치켜뜨며 이쪽을 바라본다. 그런 모습에서 몸에 밴 품격과 함께 묘하게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듯했다.

『아, 미안하다. 겁을 주려는 생각은 아니었어.』

 하이랜드는 이쪽의 고뇌를 눈치챘는지 뼈가 있는 허벅지 살을 접시 대신 귀리 빵 위에 올려놓고 입을 닦는다.

『우리나라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선원과 바다 이야기는 다른 곳보다 많아. 바다의 모험담을 좋아하는 거지. 나도 어렸을 땐 훌륭한 선원이었던 노병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손이 땀이 맺히기도 했거든.』

 벽난로 앞에서 담요를 덮은 채 모함 담을 듣는 어린 하이랜드의 모습을 상상하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바다가 두려운 장소인 것은 분명하다.

『물론 지금의 이야기는 과장이 섞였지만. 경우에 따라선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응?』

 하이랜드의 시선을 쫓자 옆에서 뮤리가 빵을 쥔 채 손가락 사이로 뭔가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다.
 입은 반쯤 열려있고, 몸은 앞으로 기울어져 눈을 부릅뜬 채로.
 그 뮤리가 신음을 내듯 말했다.

『모…허…엄!』

 흥분으로 터질 듯 한 그 뺨을 집게손가락으로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귀와 꼬리가 툭 하고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너무 기대하면 이번에 실망해 버릴지도 모른다.』

 하이랜드가 짓는 쓴웃음 앞에서 뮤리는 흘린 빵가루를 부지런히 모으더니 아까운 듯 수프에 담았다. 뮤리의 절반은 일곱 살 정도의 소년이라 할 수 있다.

『그, 그치만, 배? 바다? 저기, 오라버니』
『진정하세요. 잠깐, 빵 좀 내려놓으세요.』

 아티프 마을에 올 때도 해적 이야기에 몹시 흥분했다. 보이는 것은 산과 온천뿐인 뇨히라에서 태어나 자란 말괄량이에겐 바다의 모험담은 자극이 몹시 강렬하다. 빵을 꽉 쥐고 있는 주먹을 푸는 것도 상당히 고되다.

『배를 타긴 하지만 원양 항해가 아니야. 항상 육지가 보이는 거리를 다니며, 바다가 거칠다면 배가 출항하지 않아. 바다 위에 있는 것은 길어도 반나절이고 항구와 항구를 거치며 조금씩 이동할 거야. 만약 취해서 자버리더라도 그다음 항구에 도착할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

 하이랜드의 설명에, 순간 뮤리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야. 이곳에서 더 북쪽에 위치한 아티프의 교구를 넘어서 도서 지역은 복잡한 해역이야. 어느 나라의 권위도 닿지 않은 외딴곳이지. 그들은 그들만의 규칙이 있는데 자신들을 따르지 않은 이들에겐 엄격해. 기후 변화가 급격해서 유사시 도망치려 해도 섬들이 완벽한 덫이 되어버려. 그 일대를 총괄하는 이들은 우리의 말로….』

 말을 끊은 하이랜드는 뮤리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해적이다.』
『해적…! 으읍』

 뮤리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비명을 지르려 했고, 황급히 입을 막고 눌러앉게 했다. 다행히 선술집의 검붉은 피부를 가진 홍안의 선원들이 넘쳐 왁자지껄해서 단어를 듣고 알아챈 이는 없었다.
 하이랜드는 즐거운 듯 웃었다. 아무래도 뮤리를 일부러 자극한듯했다.
 귀족의 장난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입에 담은 건 거짓말이 아니기도 하다.

『그 해적에게…? 포교를 하러 가라는?』

 자신은 경전의 지식을 담고 있지만, 경전의 지식만으론 폭력을 막을 순 없다. 그 정도의 현실은 인지하고 있다.
 설교하면 거친 이들도 강아지처럼 얌전해진다는, 전도의 일화는 냉정하게 말해 거짓말이다.

『그대가 성인 못지않은 성심(聖心)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지.』

 하이랜드는 장난스럽게 눈을 가늘게 뜨며 웃음 지은 이유는 선원들이 마시는 품질 좋은 맥주 때문이다.
 하지만 취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뇨히라에서 마주했을 때도 한 번도 취한 모습을 보지 못했고, 술에 강인하다는 건 귀족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물론 그건 농담이야. 그대는 그대가 가진 학식을 활용해야 한다』
『…그런다는 건?』
『응.』

 하이랜드는 고개를 끄덕하더니, 다른 한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계산대에 있던 주인이 허겁지겁 용무를 듣기 위해 왔다. 아무래도 이 가게에 온 것은 우연이 아닌 듯 하다.
 그리고 하이랜드는 가게 주인에게 몇 마디를 건네자 가게 주인은 안쪽에서 가장 작은 상자를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이상한 끈으로 매어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자 물고기 생선 껍질을 꼬아 만든 것이다.
 끈을 풀고 뚜껑을 열자 짚이 깔린 가운데 검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이, 이건 인형?』

 뮤리가 보기 드물게 소녀처럼 활기찬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기쁜 듯이 의자에서 일어나 상자 속을 들여다보더니, 금세 얼굴에서 빛이 빠져나갔다.

『어, 어쩐지 조금 오싹한데....』

 뮤리의 솔직한 말투에 웃을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감상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모상? 하지만 왜 이런 색을?』

 나무 상이 썩은 것인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름다운 광택이 있었고 무엇보다 세공이 세세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완제품이며, 본래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흑옥이라는 것이다.』

 하이랜드는 말하며 그 검은 성모상을 꺼냈다.

『송진과 호박을 채취하는 지방에서 가끔 발견되는 기이한 돌이다.』

 하이랜드가 건네자, 순간 떨어트릴 뻔 했다.
 무척이나 가벼워 겉보기와는 전혀 달랐던 것이었다.

『호박이 숯이 된 것이라고도 한다. 닦으면 호박처럼 모래와 양모를 끌어당기지만, 불에 지피면 호박과는 달리 녹지 않고 타오르지. 냄새는 이탄(泥炭)과 석탄의 중간 정도. 나에겐 고향을 생각나게 만들어 주는 거지.』

 윈필 왕국은 이탄과 석탄이 풍부하게 채취된다. 뇨히라는 목재가 풍부해 진눈깨비 때문에 자주 쓰이지 않으나 여행을 떠날 땐 가끔 모닥불을 피울 때 쓰는 것이다.
 흑옥을 뮤리에게 전달해주자 뮤리는 그 가벼움에 놀라면서 멋진 장식에 감탄했다.

『작고 동글게 연마해 흑진주라며 사기에 이용되기도 한다. 희귀하긴 하지만 가치는 없어. 별로 쓸모 있는 물건은 아니다.』

 그 흑옥으로 만든 석모상.
 하이랜드는 뮤리에게 건네받은 그 성모상을 다시 상자에 내려놓는다.

『이 흑옥의 성모상을 만들고, 이를 떠받들고 있는 지역이 있다.』
『그것은 북쪽의 도서 지역이라는 것입니까.』

 혹독한 자연환경과, 해적이 지배하는 그곳.

『보다시피 성모상은 잘 만들어져있지만, 그들은 전통적으로 대륙쪽의 권력에 적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대륙에 기반을 둔 교회의 권력도 잘 통하지 않았고, 결국 교회는 떠나고 말았지. 교회가 여러 가지를 시도한 것 같지만 결국 완력으로 말을 듣게 하는 데에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야.』

 물고기의 비늘끈으로 밀봉된 검은 성모상은, 어떻게 보더라도 이단으로 보인다.
 마술을 숭배한다는 말이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이랜드가 말했다.

『그대들은 이 지역의 신자들이 우리 편으로 가세할 수 있는지 확인해주길 바란다.』

 하이랜드의 눈을 다시 바라보았을 때 그곳엔 신분 차이를 뛰어넘은 친밀감이 아닌, 사람 위에 서 있는 자의 날카로운 빛이 있었다.

『종종 교회에서 이단 혐의를 받고 있지만, 그들의 신앙은 진심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렇게 훌륭한 성모상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은 이교도로 간주하여 본격적인 토벌의 대상을 피하기 위한 위장일 수도 있다. 그대라면, 직접 그들을 만나보면서 진짜 성모상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ㅡ.』
『아, 정정하지. 나는 그대의 판단을 크게 참고할 것이다.』

 마지막에 띄운 하이랜드의 미소는 사람을 침묵시키는 미소다.
 현재는 아군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이상한 신앙 집단을 끌어들이게 되면 교회가 꼬투리를 잡을 틈을 만들게 되어 윈필왕국의 대의까지 의문시 되게 될 것이다. 다만 이 말은 표면상으로 미안하다고 했을 뿐으로, 왜냐하면 크게 참고하겠다고 유보했기 때문이다.
 물론 귀족의 명령에 엎드려 따르는 것이 도리이며, 원래 자신과 하이랜드는 대등한 존재가 아니라, 옻칠한 것과 같은 테이블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다.
 하지만 왕에게 솔직한 의견을 간할 수 있는 이는 광대를 제외하곤 성직자뿐이다.
 미소를 지우지 않은 하이랜드를 앞에 두고 그런 유혹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결국 따지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제 학식과 신앙심에 비추어 그들의 믿음이 진짜인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이랜드는 미소를 지은 채 이쪽을 응시하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득 시선을 옆에 있는 뮤리로 향했다.

『그래서, 아가씨께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말할 때 하이랜드가 지은 미소엔 사적인 친분이 담겨있다.
『오라버니는 계집애 같애.』

 허벅다리 고기의 연골을 오도독오도독 씹던 뮤리가 말했다.

『도구처럼 사용되는 오라버니 따윈 보고 싶지 않아.』

 옆에 있는 뮤리를 바라보자 이쪽을 향해 시선을 되돌려 준다.
 경박하고 장난기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드는, 그 영악함이 예사롭지 않다. 어머니는 현랑으로 불리며 신과 같이 추앙받던 존재라면, 아버지는 북녘땅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뛰어난 솜씨의 행상인이었다.
 그 피를 이어받은 뮤리의 혜안은 아이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다. 자신이 일에 품은 의심을 제대로 짚은 것이다.
 하지만 그 영리함에 감탄하는 한편, 그래도 아직은 아이다, 라고 생각이 들었다.

『제가 하이랜드님께 질문 하지 않은 것은, 권위를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뭔데?』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뮤리는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싫은 얼굴을 했다.

『아가씨, 그대의 오빠는 그대가 생각하는 만큼 온순한 양이 아니야.』
『...에~?』

 정말? 이라는 뮤리의 의심 가득한 눈망울이 하이랜드를 향했다.

『적절한 보고를 하면, 내가 적절한 판단을 내린다고 믿는 거지.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내가 그 책무에 진중함을 가지고 있다고, 그대의 오라버니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라고 하이랜드는 덧붙였는데 왠지 즐거워 보였다.
 어른의 머리 위에 올라타기도 하는 뮤리지만, 자신이 모르는 언어를 들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 침묵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느 날 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오라버니의 멍청함을 알곤 곤욕을 치를 거야.』
『뮤리.』

 지적에도 노려볼 뿐이었다.
 뮤리는 이쪽을 가르켜 "오라버니는 세계의 절반의 절반 밖에 보고 있지 않아."라고 쏘아붙였다. 세계에는 남자와 여자뿐인데 여자의 일을 전혀 모르니 세상의 절반을 모르는 것이며, 사람에게는 악의와 선의가 있는데 악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니 나머지 절반의 절반을 모르는 것이라 했다. 뮤리는 자신이 없으면 오라버니는 길을 헛디뎌 나락으로 곤두박질칠 거라 생각하고 있다.

『잘 맞는 두 사람이야.』

 하이랜드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살짝 부러움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

 그리고 질 나쁜 맥주를 손에 든 것은, 다른 사람이 보면 숙취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불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이랜드가 말한 것은 그 정도 일이었다.

『교회가 우리 윈필왕국을 토벌해야 할 적으로 간주했을 때, 대륙과 윈필 왕국을 가로지르는 해협이 전략상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갑자기 이야기에서 믿음이 사라지고 피비린내가 난다.
 하이랜드가 "크게 참고할 것"이라는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이야기.

『해협의 유리함은 조금이나마 우리 쪽이 더 가지고 있다. 교황은 자신의 함대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로부터 징발한 배를 가지고 싸움을 수행하겠지. 그렇기에 나는 해협에 있는 대륙 편을 조금이라도 붙들기 위해 이 항구 도시인 아티프에 온 것이다.』

 하이랜드는 술을 마시더니 테이블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면, 우리 섬나라는 수출입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겠지. 보리의 수입은 정체되고, 포도주는 더 바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줄어들 음식은?』

 이 술집은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인 걸까.
 테이블 위로 생선 토막이 떠오른 수프를 바라보았다.

『생선, 입니다.』
『그래. 북쪽 도서 지역의 해적들은 청어를 비롯한 북방의 물고기 유통에 적지 않은 부분에 관여하고 있다. 그들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음식의 유통을 확보하는 것이며 그들의 적으로 돌려세운다면 그 반대 상황이 벌어지게 될 거야.』

 복잡한 구도가 뒤섞인 세상의 구조.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숨에 잘라낸다고, 세상을 자유롭게 할 순 없다.

『게다가 그들은 배의 운용에 뛰어나다. 제해권이 우리의 것이 될지도 그들에게 달렸다. 하지만.』

 하이랜드가 말했다.

『우리의 대의는 올바른 신앙이다. 전략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는 별개로, 신앙이 올바르지 못한 자들은 동료로 끌어들이지 않을 것이다. 생선이 담긴 통에 썩은 생선을 넣으면, 다른 생선들도 금세 부패하게 되니까.』

 다른 사람이 말하면 믿을 수 없어도, 하이랜드라면 신뢰할 수 있다.
 그러나 하이랜드는 갑자기 표정을 풀더니 뺨에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다만, 그들이 썩지 않았다는 것을 간절히 바랄뿐....다소 불안스럽더라도 잘 굽는다면 먹을 수도 있다. 게다가 내 동료들은 모두 굶주려 있거든.』

 하이랜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전쟁은 하이랜드만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윈필 왕국의 국왕의 밑에 있는 다른 귀족들은 안이한 길을 가자고 할지도 모른다.
 그 시점에 하이랜드가 얼마나 자기 뜻을 관철할지는 얼마나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다.
 나는 그러기 때문에 눈과 귀가 되어야 한다.
 책임은 무거우나, 보람은 느낀다.
 무엇보다 자신이 모르는 신앙의 형태를 보게 되는 것에 순수한 흥미를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물어봐야 할 것은 하나뿐.

『언제 출발하면 됩니까?』

 하이랜드는 맥주를 들이켠 후 말했다.

『내일이라도.』






 하이랜드가 믿고 일을 맡겼으니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게다가 검은 성모 신앙에 대한 처리는 나중에 있을 큰 흐름에도 영향을 준다. 성급하게 해적들을 붙들면 한때는 좋아도 그 뒤에 큰 화근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혹은 그들은 종교를 이용해 자신들의 대의를 위해 맞서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자신의 식견을 믿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그리고 내일부터 진행하라는 하이랜드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당장 배를 수배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웠지만, 이 마을에 남더라도 사무일 보조하는 정도밖에 할 수 없을 것이 뻔하다. 자신이 이 마을에서 진행하던 경전의 속어 번역도 지금은 그 초고를 윈필왕국 본토의 학자들에게 재빨리 보내서 그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이랜드가 귀띔했다. 답장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지식을 발휘할 장소로 한시라도 빨리 향하는 것이 옳다. 북쪽의 바다라는 것은 솔직히 미지의 세계인 만큼 두려움도 있었지만, 견문을 넓히기엔 절호의 기회일 터. 온 힘을 쏟지 않으면, 이라고 굳게 다짐하는 대상으로는 더할 나위 없었다.

『있잖아, 오라버니.』

 그런 상황이지만 태평스러운 뮤리의 목소리가 끼어들며,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여기 모피 허리띠와 이쪽의 가죽 허리띠, 어느 쪽이 귀여워 보여?』

 식사를 마치고 하이랜드와 헤어진 뒤, 뮤리와 함께 아티프의 마을 시장에 온 것은 북쪽 바다의 추위를 이기기엔 지금의 방한 도구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원양 항해가 왕성한 마을인 만큼 사람의 출입이 많아, 아티프에서는 옷의 판매가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옷가게가 많기 때문에 아까부터 뮤리와 함께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게로 이동하면 뮤리는 닥치는 대로 옷을 집어 들어서, 이건 어때? 저건 어때? 이건 어떨까? 라는 질문 공세를 해온다.
 그러나 순수하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이렇게 대답해준다.

『저렴하고 따듯한 쪽을 고르세요.』

 뮤리는 그때마다 고지식하다니까, 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결국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럼 다시 물을게. 오라버니가 좋아하는 쪽은 어디야?』

 그것은 귀여운 미소가 아니라 째려보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인 옷을 입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끌고 싶어서 한다면 귀여울 테지만, 뮤리는 애교는 항상 마무리가 허술하다. 젊음과 활력이 넘쳐 성급한 것이다.

『……. 저렴하고 따듯한…….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엄니를 드러내며 걷는 뮤리를 달래며 한숨과 함께 두 허리띠를 비교한 후 모피 쪽을 가르쳤다. 사슴 모피처럼 생겨서 아늑하다는 느낌보단 거친 털이 뮤리에게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뮤리는 가리키는 것을 힐끔힐끔 보더니 한숨을 내쉰다.

『오라버니는 옷을 보는 눈이 없구나.』

 고르라고 해놓곤 그런 말투인가요, 라는 말을 속으로 삭였다.

『하지만 오라버니가 뽑아준 것이니 이걸로 할게.』

 한순간에 미소를 짓는 뮤리는 모피를 기쁜 듯이 꼭 끌어안고 있다.
 저렇게 기뻐한다면 좀 더 신중하게 골라야 했을까, 라며 가슴 한쪽이 뜨끔했지만, 어느 쪽이라도 뮤리의 마음에는 부응하지 못하니까 이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하아……. 그럼 이것과 장갑이랑 모자, 거기에 회로용 봉투와….』

 사야 하는 것은 많다. 계산은 하이랜드가 해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역에서 통용되는 태양의 은화를 지급할 때마다 죄책감과 같은 무언가를 느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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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제와 검소는 요즘의 자신과는 동떨어진 단어다.
 마음을 단단히 하자라는 생각을 할 때쯤, 뮤리가 문득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검이나 방패는 필요 없어?』

 해적이라는 말을 듣고, 머릿속엔 완전히 모험담으로 채워져 있는 거 같다.

『필요 없습니다.』
『에~』

 실망한 뮤리는 지급을 마친 모피 외투를 받자마자 순식간에 말더니 끈으로 묶고 등에 둘러맨다. 그 멋진 솜씨는 지금 당장 상회의 도제로서 훌륭히 일 할 정도였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꿈속의 환상일 뿐. 착하게 행동하면 삼국(三國)에 그 이름을 떨칠 훌륭한 여자아이가 될 텐데, 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냥감으로 정한 배를 옆에서 들이받은 후에, 입에 단검을 물고 함성을 지르며 타는데.』

 그런 말을 하면서 실제 단검을 입에 무는 것처럼 입가에 손을 얹고 이빨 사이로 소리를 내는 모습에 기가 막힌 것은 그 모습이 꼬치구이 고기를 물어뜯는 모습으로 보여서만은 아니었다.

『단검을 물고 있으면 함성을 지르지 못하잖아요?』
『아, 어라?』

 멍하니 있었다.

『자,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해적 이야기는 곧이곧대로 믿지 말고 눈앞의 추위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세요.』

 그렇지 않아도 뮤리는 멋을 위해서 옷을 얇게 입고 싶어 했고, 몸매는 가늘어 살집이 거의 없다. 자기 꼬리가 있다고는 하나, 늘 남 앞에서 드러내놓을 수는 없다.
 우박이 내리고 바다조차 얼어붙는 곳으로 향하기 때문에 두꺼운 옷을 준비한다고 해도 충분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괜찮아. 뇨히라도 설산이잖아.』
『뇨히라는 바람이 안 불지 않습니까. 바닷바람의 차가움이 뼈에 스며들 정도입니다.』

 게다가 뇨히라는 추위에 견딜 수 없는 밤엔 온천에 뛰어들어간다는 선택지라도 있다.
 그런 말을 하자, 뮤리는 침묵한 채 이쪽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왜 그러시죠?』
『오라버니는 차가운 바다에 가본 적이 있어?』

 다소 회의적인 눈빛이 느껴졌지만 놀라는 듯한 말투이기도 했다. 또는 간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있습니다. 한겨울에 윈필왕국에 배를 타고 건넜었죠. 그때 무척이나 추웠습니다.』
『에ㅡ!? 진짜!?』
『제가 당신의 아버님과 어머님과 막 만났을 때니까……. 아주 오래전 일이네요.』

 뮤리의 어머니인 호로는 추위를 무릅쓰고 갑판 위에 나와 경치를 바라보며 즐겼으나, 아직 어린아이였던 자신은 배가 무서워 뮤리의 아버지인 로렌스에 매달렸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지만.

『여행에 관해서는 제가 분명 선배입니다. 그러니 제 말을 따르는 게.』

 뮤리는 성격상 논리보다 경험담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뮤리는 아직도 불만이 있는 듯했지만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여행 장비를 잔뜩 사서 상회에 돌아온 후 방한 도구와 보존식을 정리했다. 내일이라도 출발할 수 있으므로 갑자기 명령이 떨어졌을 때 우물쭈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끝날 무렵에 날이 저물고 있었다.

『이것으로 마무ㅡ.』
『대모험이라는 느낌이야!』

 벌떡 일어난 뮤리는 침대 위에서 책상다리를 하며 즐겁거운 듯이 웃었는데, "경박합니다"라고 나무란다면 멋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모습이 어울렸다.

『대모험……. 뭐, 대모험이긴 하네요.』

 말괄량이 딸도 여행 준비로 고단할 할테지만 큰 짐을 보고 설레어 얼굴이 펴는 모습에 이쪽은 한숨만이 나왔다.

『오라버니, 왜 그래? 배고파?』
『….』

 그것이 농담인지,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고 있으니 아무래도 진심인 거 같다.

『하……. 전혀 아닙니다.』

 그렇게 대답하고는 방에 비치된 책상 위 경전 가죽 표지에 손을 올렸다.

『북쪽의 바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계절입니다.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

 죽을 수도 있다. 여행에는 위험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앞으로 가는 곳은 눈에 띄게 가혹한 곳이다.
 경전의 가죽표지에 손바닥을 대자 서서히 열기가 느껴져 여기엔 힘이 깃들어져 있다는 확신이 든다.
 알기 힘든 교회 문자로 쓰였던 그것에 전신전령(全身全靈) 2)을 걸고 속어로 번역한 보람과 함께, 신앙의 깊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간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걱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라버니.』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괜찮아.』

 뒤돌아보자, 뮤리가 평소처럼 승리의 기쁨이 담긴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당신은 언제나 낙관적이네요.』
『오라버니는 항상 비관적이지. 그러다 늙어버릴 거야.』

 남자에겐 어려 보인다고 해서 좋은 것은 없다. 그것은 오히려 바라는 바다.
 최 우선적으로 누구를 걱정하는 건지 아느냐는 시선을 보내자, 뮤리는 이를 드러내며 히히 하고 웃었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휙 하고 이쪽의 몸을 지나가 뒤에 있는 책상에 껑충 올라타고 앉았다.

『오라버니가 바다에 떨어져도, 내가 꼭 구해줄게.』

 뮤리는 분명히 이쪽이 뭘 걱정하는지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한다. 주의를 줘도 귀에다 손가락으로 틀어막고 모른 체 할 것이다.
 아아 역시 불안한데, 라고 생각이 들자 뮤 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뇨히라에서 기다리고 있는 로렌스와 호로에게 면목이 서지 않을 것이다.
 뮤리가 사납게 반항하는 것을 눌러서라도 두고 가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 때 뮤리가 갑자기 지긋이 미소를 보였다.
 그 모습은 현랑이라고 불린 어머니, 호로와 똑 닮았다.

『음, 확실히 도움을 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한가지 말해줄 수 있는 건 있어.』

 그리고 이쪽의 가스에 살며시 손을 뻗으며 말했다.

『오라버니가 어둡고 차가운 바다에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뒤따라 바다에 뛰어들 거야. 오라버니와 같이! 다른 누구도 아닌 오라버니와 함께라면 바다 밑바닥이라도 괜찮으니까.』

 영웅담과 사랑 이야기는 뮤리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 이야기와 현실의 구분은 모호하고 언제든 자신이 주인공이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살짝 성장했다는 증거라고 말하자 겸연쩍은 듯이 수줍어한다.
 쑥스러움 때문인지 옆에 있는 경전의 가죽 표지에 집게손가락을 대더니 빙글빙글 돌려댔다.

『뮤, 뮤리, 가죽에 상처가 나기 때문에 그만두세요』

 당황하며 말하자, 뮤리는 이미 평소의 건방진 태도로 돌아와 있던 것이었다.

『흥, 이런 책 속에 있는 신님은 분명 오라버니가 바다에 떨어져도 자는 척 할 거야. 하지만 난 달라.』

 마지막으로 의젓하게 손바닥으로 책 표지를 두드린 뮤리는 허리를 구부리더니 얼굴을 가까이 대며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오라버니도 나를 선택해야지.』

 손도끼를 들고 협박하는 것과 같다.
 뮤리는 언제나 목표를 응시하며 전력으로 달려 힘껏 물어버린다. 부끄러움은 조금 있지만 거침이 없다.
 흐린 날에 두꺼운 구름 사이로 한 줄기의 빛이 지상에 떨어지듯 곧다. 그것은 뮤리의 매력이자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나이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앞뒤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어린 나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을 이성으로 좋아한다는 것도, 태어난 이후 쭉 곁에 있었고 티격태격하며 즐거움을 함께했기 때문에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라고 말한 후 책상 위에 앉아 있는 뮤리의 뺨에 손을 대자, 뮤리는 한쪽 눈을 감고 살짝 고개를 움츠린다.

『저는 당신을 무사히 뇨히라로 돌려보내는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신변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저는 로렌스씨와 호로씨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부드러운 뺨을 어루만지자 뮤리는 두 눈을 감고 발을 파닥거린다.
 그러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답은?』

 거듭 묻자,뮤리는 눈을 뜨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눈이 묘하게 어른스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진지하게 말할 때의 분위기를 느꼈지만, 뮤리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알았어.』

 마음에도 없는 대답에 맥이 빠졌다.
 그것도 기분 탓이었을까, 뮤리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 배가 꼬르륵하고 울렸다.

『배가 텅 비었네.』

 그렇게 말을 하더니 웃음 지었고, 직전의 분위기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래, 오라버니. 섬에 가면 고기를 못 먹잖아? 그러니 오늘은 고기가 좋겠어.』

 책상에서 내려온 뮤리는 언제나처럼 졸라댄다. 먹이를 달라는 강아지처럼.

『……. 오늘은 낮에 하이랜드님과 고기를 먹었고, 아침에도 말린 고기를 먹었고, 어제도 구운 고기를 먹었잖아요?』
『부족하단 말이야……』

 뮤리는 불복하듯 말하더니, 외투를 어깨에 두르며 문으로 뛰쳐나갔다.

『저기, 오라버니!』

 오른손으로 문을 열고, 왼손은 이쪽을 향해 뻗어 왔다. 그 손을 반드시 잡아줄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미소에 이쪽도 웃어버렸다. 체념하고 손을 잡자 뮤리는 손을 제대로 붙잡는다.
 결국, 이 관계는 이런 것이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무리하게 바꿀 필요도 없다.
 앞으로 무사히, 그리고 평온하길. 천진난만하게 노점을 둘러보는 뮤리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 1막 끝 -



1) 부제 : 카톨릭에서 사제 다음으로 가는 위치.
2) 전신전령(全身全靈) : 몸과 정신의 모든 것. 또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체력과 정신력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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