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연애는 원래 아무것도 아닌걸로 싸우는거지.

원래 오프인 김사람은 병원 인근에서 터진 대형사고에 불려나갔다가 이제 한숨돌리고

옥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자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을땐 형식상 먹던 커피가 사람이 되고나서는 당떨어진다는걸 온몸으로 느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단 어느새 봉지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당이 충전되고 나니 문득 어젯밤 일이 생각나서 갑자기 한숨이 세어나왔다.

-

" 왜 화내? 이게 화낼일이야? "

" 그럼 화 안나겠어? 너는 생각을 좀 하고 말해! "

" 아니, 결혼도 싫다고하고, 같이 살자는것도 싫다고하고, 인원 충원 될때까지만 병원 근처에서 지내겠다는데

왜 화낼일이야? "

" 왜 말도없이 그걸 혼자 정하냐고! 옮기기전에 같이 상의해줄 순 없어? 다 결정해놓고 통보하는건 뭐야? "

" 그럼 말을 하지말까? "

" 야!! 김사람!! "

" 말을 해도 화내고, 안해도 화내고 너 혹시 무슨일있어? 귀공자 그자식이 또 원고 제때 안주고 속썩여? "

" 니가 속썩인다 니가!! "

응급실에 전문인력이 충원될때까지 몇개월 더 걸리겠다는 병원측의 설명에 김사람은 출퇴근시간도 줄이고

갑자기 연락올 응급콜에도 대비할겸 병원 근처 원룸을 얻어놓은 상태였다.

최근 동경이도 계속바빠서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가 오랜만에 같이 먹는 저녁앞에서 얘기를 했는데

이 사단이 났다.

-

" 어? 편집자님 남자친구네? "

어젯밤일을 생각하면서 괜히 달달하던 커피가 쓰게 느껴지던 찰나 정당면의사가 나타났다.

" 안녕하세요? "

" 오늘 응급실 난리났다고 들었어요, 고생했네 고생했어 "

" 네."

익숙한듯 사람의 옆에와서 앉아 미주알 고주알 또 본인 얘기를 늘어놓는 정당면 작가를 왠일로

사람이 골똘이 쳐다봤다.

" 왜, 왜그래요? "

" 물어보고싶은게 있어서요. "

" 뭐.. 뭘요? "

" 사모님하고 싸우셨는데 싸운이유를 밑도 끝도 모를때 어떻게 하세요? "

" 네... ? 아하하하하 편집자님하고 싸웠어요? 에이~ 의외로 김사람씨 허당이네 "

" 뭐가요? "

" 자 봐요? 연인사이에서 부부사이에서 싸움이 난다? 10번중 8번은 남자가 잘못한겁니다.

그럴땐 그냥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하고 왜 잘못했는지는 모를땐 사실대로 얘기하세요, 변명하다가는 쫒겨납니다?? "

" 그냥 사과하면 되는겁니까?"

" 네, 그냥 하면됩니다. 하하 연애가 어렵죠? 결혼해봐요 부부사이는 더 어렵습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여자친구, 와이프에게는 다르게 들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걸 맞춰나가는게 평생 숙제입니다. "

각 과로 환자 인계하고 퇴근아닌 퇴근하는 김사람은 병원 로비에서 익숙한 얼굴을 만났다.

반갑다가 어젯밤일이 생각나서 얼굴이 굳은 김사람은 가만히 멈춰섰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 동경이 자신을 발견했다.

뾰루퉁 한 얼굴을 하더니 그대로 병원 밖으로 나가버리는 동경을 보고 김사람은 급히 뒤를 따라갔다.

병원 지상 주차장까지 말도 없이 걷던 둘은 동경이 먼저 말을 꺼냈다.

" 집은 어딘데? "

" 응? "

" 새로 계약한 집이 어디냐고, 아예 안알려 줄꺼야? "

" 아니.. 그건 아닌데.. 흠흠, 병원 바로 근처야, 병원 후문으로 나가서 신호등 건너면 바로 있어. "

" 계약기간은? "

" 일단 6개월? 병원 통해서 계약한거라 단기도 가능하더라고, 그전에 인력충원되서 오프나 출근이 조금

수월해지면 그땐 다시 집으로 가야지. "

이 말을 끝으로 동경은 아무말이 없었고 숨막히는 분위기에 둘은 김사람의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온 동경은 김사람을 끌고 쇼파에 앉아 할말을 정리하는듯, 한참을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 이집은 어떻게 할꺼야? "

" 오프때 와야지, 아예 없애는거 아닌데 뭐.. 출퇴근만이라도 시간을 좀 줄이려고 하는거니까. "

" 그럼 이집은 계속 놔두는거지? "

" 그렇지? 왜? "

" 6개월 지나서도 인력충원이 안되면 어떡할껀데? "

자꾸 꼬치꼬치 묻는 동경이 낯설지만 김사람은 순간 남자가 잘못한거라는 정당면의사의 말을 생각하며

성실하게 답하고 있었다.

" 그땐 병원에 시위해야지, 3개월 안으로 충원된다고 했는데 내가 넉넉 잡아서 6개월 계약한거야.

6개월 끝나면 바로 들어올꺼야 나도 나가서 사는거 안좋아해. "

" 김사람. 어젯밤에도 이렇게 얘기했어야지. 너도 나도 바빴던거 알아, 근데 일주일만에 얼굴보고 만나서

듣는얘기가 나 이사가. 계약도 다 했고 이날 옮길꺼야 라고 통보하면 내가 뭐라고해, 이집은 어떻게 할껀지

왜 이사가게 된건지 설명해줬으면 가지말라는것도 아닌데, 통보 받으니까 나한테는 상의조차 할 필요가 없었던건가? 싶어서 화났던거야. "

"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는 어차피 6개월만 출퇴근을 좀 편하게 할껀데 문제가 될꺼라고는 생각을 못했어. "

" 문제 되는거야. 집이잖아 니가 진짜 사람되고나서 먹고자고 나도 오는 집이잖아, 근데 갑자기 이사간다고 하니까 놀랬어.

나도 큰소리 내서 미안해. "

사람은 그제야 동경이를 제 품에 끌어안고는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어젠 왜그렇게 화냈나 금새 잊어버렸다.

" 김사람. 6개월뒤에는 꼭 무슨일이 있어도 여기서 출퇴근해 알았지? "

" 응. "

" 그리고 나는 5개월쯤? 아니다 4개월반? 지나서 여기로 들어와 살꺼야. "

" 응. 응? "

" 왜 들어오지 말까? "

" 아니? 근데 갑자기? 지금집은? "

" 선경이가 들어올꺼같아, 선경이 커피숍 잘되서 3호점 새로 오픈하게됐는데 그쪽으로 옮겨가게 됐데, 그래서 이모네서는 너무 멀어지고

내집이 가깝다고해서.. 뭐 싫으면 그냥 선경이 다른방 주고~"

새침하게 일어서서 주방으로 가는 동경이를 보며 김사람은 생각했다.

처남 하나는 잘 둔거 같다고. 그날 선경이를 없애지 않은게 참 다행이라고.

" 처남보면서 속터지지 말고 나한테 와. 무조건 나도 3개월안에 담판짓고 들어올께."

-

개추누르지마!

어제 누가 둘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해서 써놨던거 꺼내와봤어.. 하하하하.. 나도 자급자족이라..

아마 이렇게 별거아닌걸로 연애하면서 싸우다가 같이살고 도장찍고 그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