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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변호사 - 6. 미국 시민권

운영자 2013.06.05 16:44:20
조회 433 추천 0 댓글 0

  해가 바뀌고 얼어붙는 듯한 날씨가 계속되던 1월 하순이었다. 남편측이 제기한 항소심 재판이 계속되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김정화가 사무실로 들렸다. 나를 보는 그녀의 표정은 이전과는 달랐다. 서늘한 냉기가 돌고 있었다.

 

  “저 이제 미국시민권을 땄어요. 한국에서 하는 소송을 당장 그만둬 주세요, 한국 판사한테는 재판받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명령조로 내뱉었다. 나는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 쓴 느낌이었다. 전에 봐 왔던 불쌍한 김정화가 아니었다.

 

  “당장 소송을 그만 둘 권한이 우리 쪽에 없습니다. 우리 쪽에서 항소했다면 중단할 수 있지만 상대방 측에서 항소한 사건이니까요. 이쪽이 하기 싫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무슨 소리예요? 미국변호사님이 당장 끝내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래야 미국에서 소송이 진행될 수 있죠. 당장 끝내요.”

 

  김정화는 막무가내였다.

 

  “당장 소송을 끝내려면 무조건 백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측으로부터 받은 돈도 다 돌려주시죠. 그러면 됩니다.”

 

  그 말을 듣자 김정화의 기세가 수그러들면서 물었다.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요? 그리고 항복해야 하구요?”

 

  “계속 싸우자는 상대방이 그냥 놔줄 리가 있겠습니까?”

 

  “안돌려주고 빨리 끝낼 수는 없나요?”

 

  김정화가 한 풀 꺽인 어조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습니다. 그건 재판장에게 상황을 얘기하고 동정을 얻어 조정결정으로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물론 남편 측에서 그걸 동의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이쪽도 일정 부분 양보를 해야 하는 게 관례이기도 합니다.”

 

  “하여튼 빨리 끝낼 수 있는 걸로 알아서 해주세요, 제가 미국에 사니까 전권을 변호사님에게 맡깁니다. 빨리만 끝내주세요, 절대로 질질 끌면 안되요. 제가 미국에 있는데 여기보다 거기 재판이 더 중요하죠, 남편은 그동안에도 서울에서 재산을 미국으로 빼돌렸어요, 그걸 빼앗아야 해요, 한국 재판은 빨리만 끝내 달라구요.”

 

  다음번 항소심 공판정에서 내가 그 말을 재판장에게 전했다. 재판장이 상대방변호사에게 확인했다.

 

  “지금 원고 측 변호사가 한 말이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김정화는 미국법원에 미국의 저택에 대한 재산분할청구를 하고 또 그 외 부양료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 법원에서 미국에는 없는 위자료까지 이미 덤으로 받은 상태입니다.”

 

  이번에는 재판장이 다시 내게 물었다.

 

  “남편이 달러를 미국으로 빼돌려 거기 주로 재산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재판장은 남편의 외화반출행위가 못마땅한 듯 순간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재판은 서로 모두 포기하고 이제 미국재판에 맡기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재판장이 남편 측 변호사에게 확인했다.

 

  “남편 쪽에서도 이혼을 청구하셨으니까 양측에서 이혼에는 이의가 없으신 거네요.”

 

  “그렇습니다만 저희는 지금 김정화의 지능적이고 상습적인 거짓말을 원인으로 해서 일억의 위자료를 청구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소송을 종료한다면 이미 지급한 위자료를 돌려받아야 합니다.”

 

  “그래도 20년 이상을 함께 살았는데 김정화란 여자가 문제가 많아도 이미 지급한 위자료는 그대로 지급하는 거로 하시죠. 그게 인정 아닙니까?”

 

  재판장이 상대방 변호사를 설득했다.

 

  “그건 남편 되는 분과 상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미국에서도 김정화가 거액의 저택을 빼앗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시아버지 재산이라는 증명이 불가능하니까 그걸 이용하는 겁니다. 미국의 집 주고 예금 빼앗기고 부양료를 물어야 하고 상당히 불리하게 전개되어 가고 있습니다.”

 

  남편측은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재판장은 뭔가 결심을 굳힌 듯 이렇게 선언했다.

 

  “그러면 재판장의 직권으로 결론을 내겠습니다. 이의신청을 하시면 그때 다시 심리를 계속 하죠.”

 

  김정화는 매일같이 국제전화를 걸어 끝이 났느냐고 나를 닦달했다. 미국시민권자가 별것도 아닌데 목소리에서는 일등국민이라는 교만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의 태도에 만정이 떨어졌다. 다시 보기 싫다는 감정이 솟았다. 나는 사무장에게 결정문이 오면 팩스로 보내주라고 대충 지시를 하고 그 사건을 잊었다. 더 이상의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법원에 갔다오니까 김정화에 대한 결정문이 책상위에 놓여 있었다. 예상대로 재판장은 이혼과 위자료를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런 내용의 한 줄이 붙어 있었다.

 

  ‘이 사건 이혼과 관련한 재산분할에 관하여 국내에 있는 재산에 대한 부분은 상호 포기한다.’

 

  얼핏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혼과 위자료만 재판중이었는데 엉뚱하게 재산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빌딩에 대해서는 이미 취하했다. 상대방측의 요구사항도 아니었다. 왜 뚱딴지 같이 그런 조항을 첨가했는지 얼핏 납득이 가지 않았다. 김정화에게 그 조항이 불리한지 속으로 따져 보았다. 국내에는 어차피 분할할 재산이 없었다. 잠실의 빌딩은 시아버지의 소유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택과 예금을 가로챘으면 받을 만큼 받았다는 생각이었다. 정떨어진 그녀에게 더 이상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도 싫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조항을 설명하다 말만 많아질 수도 있었다. 그 무렵 김정화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국에서의 소송이 완전히 종결된 겁니까?”

 

  김정화의 어조가 여전히 냉냉했다.

 

  “결정문이 팩스로 갈 겁니다. 그걸 보고 양쪽에서 보고 이의신청 하지 않으면 즉시 종결될 겁니다.”

 

  이말 저말 하기 싫었다. 사무장이 보낸 결정문을 받고 그녀가 결정할 일이었다. 다음날 김정화가 다시 전화를 했다.

 

  “결정문의 마지막 한 줄을 지워서 다시 보내주시면 안돼요?”

 

  갑자기 나긋나긋해진 목소리였다.

 

  “법원의 결정문을 변호사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시려면 이의신청을 해서 다시 절차를 밟으시죠.”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구요. 그냥 그 조항만 지워서 팩스로 보내주시면 좋겠는데요 여기는 미국이니까 변호사님과는 아무 상관없는 거잖아요? 욱이 아빠 부탁해요”

 

  그녀가 갑자기 아양까지 떨면서 간청했다.

 

  “곤란합니다.”

 

  남편 측에도 법원에서 보낸 똑같은 결정문이 가게 되어 있다. 변조가 불가능했다.

 

  “여기서 재판하는데 지장이 없는 거죠?”

 

  “무슨 지장이 있겠어요?”

 

  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미국의 저택을 나누는데 한국 빌딩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었다. 더 이상 신경을 쓰기 싫었다. 그당시 나는 그녀가 미국법원에 한국의 시아버지 빌딩의 분할청구를 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고의적으로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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