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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한테 내쫓기는 변호사

운영자 2012.11.06 18:14:13
조회 402 추천 0 댓글 0

  얼마 전 조사에 입회하기 위해 의뢰인과 함께 경찰서 수사과로 갔었다. 억울하게 고소를 당한 사건이었다. 무턱대고 형사고소를 해놓고 취소해 줄테니 합의금을 달라는 신종 협박성 범죄 같았다. 고소장의 문장은 그럴 듯 했다. 오전 아홉시의 경찰서 수사과는 조용했다. 칫솔을 들고 오가는 형사도 보였다. 등산용 졈퍼를 입은 오십대 초쯤의 형사가 담당이었다. 그의 앞에 의뢰인과 나란히 앉았다.

 

  “바쁘다 보니까 기록을 안 읽어 봤어요. 지금부터 볼테니까 앞에서 기다리세요.”

 

  그는 미안해하지도 않는 당당한 얼굴이었다. 기록을 펼쳐보는 그의 표정은 ‘아이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경찰서에서 이첩을 한 사건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눈만 기록을 훑어갈 뿐 이해하려는 의도가 없어보였다.

 

  “여기 서명을 해 준 건 맞아요?”

 

  담당형사가 의뢰인에게 물었다. 누군가 위조한 서류를 가지고 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해서 의뢰인이 서명 한 사건이었다.

 

  “예 맞습니다.”

 

  “그러면 그 위의 사실을 다 인정한 거니까 위조가 맞네요.”

 

  엉뚱하게 법리가 비약이 되고 자백을 유도하는 신문이었다. 어처구니없이 엮으려는 데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기록과 의견서를 제대로 파악하고 물어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말했다. 갑자기 형사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내뱉었다.

 

  “수사를 방해하면 언제든지 변호사를 내쫓을 수 있는 대통령령이 제정된 거 아시죠? 한마디만 더 하시면 보냅니다.”

 

  그 말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형사의 말이 맞았다. 지난해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조정에 대한 대통령령이 제정될 때였다. 검찰과 경찰은 수사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으면 언제든지 변호사를 내쫓을 수 있게 만들었다. 나는 형사의 허락이 없는 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수사방해라는 명분으로 언제든지 퇴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서작성 전에 형사가 먼저 말했다.

 

  “피의자는 지금부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했는데요. 그런데 아무 말도 못하게 하면 왜 변호사가 옆에 있는 거죠?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가 있나요?”

 

  조사현장에서 변호사의 입회권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인 나는 쫓겨나지 않기 위해 형사 눈치나 머룩머룩 볼 뿐이었다. 한 일이 있다면 형사가 사인하라는 대로 해서 조서의 신빙성만 높여주었다. 변호를 한 게 아니라 형사만 도와주고 왔다.


  지난해 연말 대한변협에서는 대통령령이 국무회의 통과 하루 전에야 밀실에서 입회권이 말살된 줄을 알고 임원 몇 명이 총리실을 찾아가고 기자실에서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법률가 출신 총리는 변협임원들을 만나주지 조차 않았다. 그 이후 부당하게 빼앗긴 변호사의 권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은 없었다. 변호사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권리는 하나하나 박탈당한다.

 

  며칠 전 지방의 교도소를 갔었다. ‘집사변호사를 방지하기 위해 선임계 없이 접견하는 것을 금합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교정공무원이 집사변호사인지를 심판하고 접견을 금지 할 수 있었다.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형사소송법상의 절대적 접견권은 사실상 박탈됐다. 의뢰인의 요구대로 해 주지 않았다고 얼마 전 변호사와 사무장이 칼을 맞았다. 변호사들 몇 명이 뭉치기만 해도 핵폭탄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도 우리는 단결하지 못한다. 같은 법조인의 고난에 함께 분노하지 않는다면 이미 희망이 없는 집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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