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진주법원 102호 법정

운영자 2012.11.06 18:17:24
조회 357 추천 1 댓글 0

  원고석의 칠십대쯤 된 남자가 도끼눈을 뜨고 피고석에 앉은 변호사에게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었다.

 

  “내가 피고에게 물어보겠으니 꼭 대답해야 해요.”

 

  재판장이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원고로 나오셨으면 피고 측 대리인인 변호사에게 그러실 게 아니라 재판장인 저에게 말씀을 하세요. 판단은 제가 합니다.”

 

  “아니에요. 내가 물어볼 게 있으니까 가만 계세요.”

 

  영감은 막무가내였다. 영감은 법정을 독차지하면서 농락하고 있었다. 이미 재판규칙은 무시됐다. 할 말 안 할 말 엉뚱한 트집이 끝없이 계속됐다. 법정경비원이 슬며시 영감의 옆으로 다가가 재판장의 명령을 기다렸다. 제재를 할 정도에 이른 것이다. 재판장인 오상용 부장판사는 표정하나 흩트리지 않고 듣고 있었다. 방청객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영감 너무 하네. 재판장이 젊어 보이는데 대단해. 저 끝도 없는 말을 싫은 기색 없이 다 들어주는 인내가 정말 놀라워.’

 

  그건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었다. 이윽고 재판장이 부드러운 얼굴로 원고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잠깐만 뒤를 보시죠.”

 

  방청석에는 재판을 받으러 나온 사람들이 화가 난 표정으로 꽉 차 있었다.

 

  “더 들어드리고 싶은 데요 저 분들이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죠?”

 

  재판장이 부드럽게 설득했다.

 

  “이제부터 변론을 해야겠습니다.”

 

  원고석의 칠십대 남자가 개의치 않고 내뱉었다.

 

  “여태까지 하신 건 변론이 아니구요?”

 

  재판장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되물었다. 재판장이 덧붙였다.

 

  “지금부터 십분 동안 얘기를 더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말 못한 게 있으면 다 써서 내시면 제가 빼지 않고 읽겠습니다.”

 

  십 분이면 엄청난 시간이었다. 재판장은 어조조차 흩트리지 않은 채 능숙하게 사건에 대한 심리를 끝냈다. 그 인내에 감동한 방청객들 중 누구도 시간이 지체됐다고 불만인 사람은 없었다. 그걸 본 나이 먹은 사람들 중 누가 이렇게 말했다.

 

  “누구네 집 아들인지 정말 훌륭해. 판사는 저래야 해.”

 

  재판장에게는 인내뿐 아니라 현명함도 있었다. 누가 억울한 가를 먼저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런 훌륭한 법관의 모습은 소개되지 않고 막말판사만 부각되는 세상이다. 나이 먹은 사람에게 늙으면 죽어야 한다느니 입은 터져서 아직도 말이 계속 나오냐느니의 험한 말들을 하는 판사도 있다. 권위의식과 비현실적 사회인식으로 오염된 내면이 표출된 것이다. 판사들이 법 지식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인품 면에 있어서는 가라지가 마구 섞여있는 현실이다. ‘유감이다’라는 정도의 진심 없는 사과는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 가라지들은 뽑아내야 한다. 덮어주고 대신 사과해 준다고 가라지가 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644 바보 변호사 - 13. 선전포고 운영자 13.06.07 338 0
643 바보 변호사 - 12. 김정화의 정체 운영자 13.06.06 728 0
642 바보 변호사 - 11. 법원장 운영자 13.06.06 324 0
641 바보 변호사 - 10. 한국 변호사 운영자 13.06.06 318 0
640 바보 변호사 - 9. 미국 변호사 운영자 13.06.06 343 0
639 바보 변호사 - 8. 혼돈 운영자 13.06.05 295 0
638 바보 변호사 - 7. 진술서 운영자 13.06.05 331 0
637 바보 변호사 - 6. 미국 시민권 운영자 13.06.05 432 0
636 바보 변호사 - 5. 살인기도 운영자 13.06.05 312 0
634 바보 변호사 - 4. 이십대에 아파트 스무채 운영자 13.06.04 463 0
633 바보 변호사 - 3. 아내의 여고동창 운영자 13.06.04 659 0
632 바보 변호사 - 2. 고소 운영자 13.06.04 386 0
631 바보 변호사 - 1. 면접시험관 운영자 13.06.04 606 0
630 서울변호사회 회장의 자격 [1] 운영자 13.02.26 347 0
627 법의 보호 밖으로 던져진 변호사들의 삶 [1] 운영자 13.02.26 420 0
625 사람들이 역겨워하는 변호사의 모습 [1] 운영자 13.02.26 666 0
624 서민에겐 20%의 정의만 실현되는 나라 운영자 13.02.26 241 1
622 과거의 상속자일까 미래의 대표일까 [1] 운영자 13.02.26 229 0
621 좋은 검사와 나쁜 검사 운영자 13.02.26 660 0
620 금송아지보다 율법을 [1] 운영자 12.11.06 340 0
619 대통령 후보들 운영자 12.11.06 344 0
진주법원 102호 법정 운영자 12.11.06 357 1
617 형사한테 내쫓기는 변호사 운영자 12.11.06 403 0
616 해적사고 전문변호사 운영자 12.11.06 329 0
615 찬물 뒤집어 쓴 ‘더 웨이’ 운영자 12.11.06 211 0
614 새로운 회장의 자질감별법 운영자 12.11.06 305 0
613 돈 받으면 안면몰수 운영자 12.11.06 356 0
612 죽은 시인의 마지막 노래 운영자 12.11.06 217 0
611 화물선 타고 오천킬로 운영자 12.11.06 237 0
610 물안개 피는 강길 3백리 운영자 12.11.06 220 0
608 저질 의뢰인 [4] 운영자 12.09.20 614 1
607 상 받을 만한 훌륭한 변호사 운영자 12.09.20 539 1
606 엉터리 종교지도자들 [1] 운영자 12.09.20 378 0
605 상큼한 여름날의 향기 운영자 12.09.20 178 0
604 속까지 맑고 투명한 사회를 [1] 운영자 12.09.20 225 0
603 변호사들이 빼앗기는 것 [1] 운영자 12.09.20 348 1
602 좋은 선생님은 어디에? [2] 운영자 12.08.10 493 1
601 자존심 운영자 12.08.10 346 0
600 재벌공화국의 유치한 영웅 운영자 12.08.10 612 0
599 변호사의 자존심 운영자 12.08.10 350 1
598 법쟁이들이 못 보는 것 [1] 운영자 12.08.10 386 0
597 둘 레 길 운영자 12.08.10 220 0
594 정치발전위원회 [2] 운영자 12.05.31 522 0
592 호두과자 만들기 운영자 12.05.31 695 1
591 대통령과 헌법 운영자 12.03.20 336 0
590 변호사도 좌우렌즈로 보는 사회 운영자 12.03.20 291 0
589 정당한 재판과 비판 운영자 12.03.12 295 0
588 용의 고향이 개천? [1] 운영자 12.03.12 323 0
587 논설위원실장의 칼에 맞아 피 봤다 운영자 12.03.12 280 0
586 사법부를 겨냥하는 영화 석궁 [1] 운영자 12.03.12 324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