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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으면 안면몰수

운영자 2012.11.06 17:56:15
조회 355 추천 0 댓글 0

  어느 날 오후 사무실로 삼십대 말쯤의 남자가 들어섰다. 작은 눈에 넓적한 턱이 만만치 않은 고집을 암시했다.

 

  “요즈음 변호사가 쏟아져 나온다고 하더니 이 세계가 이렇게 더러운 장사꾼 같은 세계인지 정말 몰랐어요. 변호사를 사고 뒷통수를 맞았어요.”

 

  환멸이 가득어린 표정이었다.

 

  “살면서 법이나 변호사는 나와 관계가 전혀 없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나에게도 소송이 다가오고 변호사를 만나보니 너무 실망스러운 거예요. 처음에는 잘하다가도 돈이 입금되니까 그때부터 막 대하더라구요. 저는 그걸 느끼죠. 속으로 힘든 사람과 정의를 위해 법을 공부했다는 변호사가 왜 저러지 하고 의문을 품었어요.”

 

  그의 말을 듣고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 중의 하나인 것 같았다. 착수금을 받을 때까지는 천사같이 친절하다가 일단 입금이 되면 무덤덤해 졌다. 의뢰인들의 신경줄은 바이올린의 현보다 예민했다. 그가 계속했다.

 

  “젊은 변호사는 그렇다 치고 이번에는 연세가 많으신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역시 입금될 때 까지는 친절하다가 돈이 들어간 후에는 사건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겁니다.”

 

  그랬다. 그냥 변호사에게는 일상의 일일 뿐이었다. 나는 의뢰인의 눈을 통해 변호사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어떤 답을 얻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고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틀림없었다.

 

  “변호사의 어떤 점이 가장 화가 나던가요?”

 

  내가 물었다. 내가 보는 나보다 남이 보는 나의 모습이 더 정확할 수 있다.

 

  “젊은 변호사들은 의뢰인의 아픔을 전혀 모르는 겁니다. 이해하려는 생각조차 없어요. 젊은 판사와 변호사들이 재판하는 법정에 가보면 나의 아픈 상처와 삶이 대상인데 끼리끼리 획일화된 판례를 가지고 스타디그룹에서 공부하는 것 같이 하더라구요. 좋은 게 좋은 건데 하면서 어설프게 조정을 강요하기도 하구요. 젊은 판사를 보면 더 한심했어요. 재판하는데 매뉴얼이라도 있는지 요건사실이라고 하면서 자기 보고 싶은 일부분만 보고 일을 다 마친 듯 판결을 선고하더라구요. 재판을 받으러간 사람이 어떻게 되든 말든 관심 없고 자신들 업종의 안위와 편리만을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가 잠시 말을 쉬었다 이렇게 덧붙였다.

 

  “상급심에서는 고교동창인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어요. 고등학교 때는 친했는데 이 친구도 변호사가 되니까 역시 다른 변호사들 하고 비슷한 것 같았어요. 법을 공부하면 다들 마음이 실종되고 해골 같은 몇 개의 판례와 전혀 엉뚱한 논리를 조작하는 것으로 돈 벌고 사나 봅니다. 마지막에는 마지막에는 제가 빈정댔죠. ‘돈 줄 테니까 시키는 대로 해. 너희 변호사들 돈이면 다 되잖아?’라고 소리쳤어요. 마음 같아서는 이혼소송에서 상대방 측 이혼전문 여자변호사의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막 때려주고 싶었죠.”

 

  그의 눈에는 법조인에 대한 역겨움이 가득 배어 있었다.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정면으로 그게 아니라고 반박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속으로 항변할 말도 있었다. 변호사는 사건을 수임하는 직업인이지 의뢰인의 고통과 인생을 대신 짊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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