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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조선시대 난민촌
고려말 혼란한 시기가 지나고 조선이 건국되며 여러 개혁으로 사회도 안정을 되찾아가는 한편 여전히 남은 한가지의 문제가 있었다. 바로 혼란한 일본을 틈타 번성하는 왜구활동이다. 왜구로 인한 피해가 문제인 이유는 그들이 군사적으로 토벌못할 조직은 아니나 평시에는 일본에서 온 상선 인척 거래를하며 바다를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돌변해 항구도시를 약탈하고 도망가버리는 범죄자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왜구때문에 매번 중앙군을 파견하기엔 피로도가 쌓인다. 그럼 이런 왜구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우선 명나라의 경우엔 그냥 일본과 단교해서 왜구들의 "상선" 위장을 무력화했다. 그리고 일본선박이 보이면 공격했다. 어차피 일본과 거래안해도 손해는 없다는 입장이였다. 조선의 경우도 처음엔 강경책을 고수하며 왜구활동을 막아보려했으나 일본의 불안정한 정치상황과 지리적 밀접함을 고려하면 그냥 밑빠진 독에 물 붓기임을 깨닫고 좀더 다른 방법으로 문제해결에 접근해본다. 일본은 왜 왜구를 통제 못 하는가? A. 불안정한 쇼군의 막부 통치 특성상 중앙통제가 어렵고 매번 전쟁에 휩싸여 범죄자 단속이 힘들기때문 그렇다면 왜인들은 왜 왜구가 되는가? A. 아시가루로 평생 전장에서 활동하며 칠공삼민(세금 70% 사유 30%)의 높은 세율의 열악한 환경을 버티다 못해 탈주하거나 전쟁에서 진다면 기반을 잃은 후 왜구활동이 유일한 밥벌이 수단이기때문. Ans.그럼 탈주한 왜인들이 좀 살만해지면 왜구활동을 안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조선은 오히려 제포, 부산포, 염포 3개의 항구를 개방해 왜인들을 받아주는 관용정책을 편다. <당시 부산포왜관의 전경> 또한 이들이 머무를 곳도 내어주며 정착촌 왜관을 건설해준다. 왜관의 왜인들은 기존 일본식 생활방식을 유지해도 간섭받지않았다. 물론 잘못을 저지르면 조선관가에서 처벌받긴하지만 기본적으로 세금이 면제되고 일정 세금을 낸다면 조선 바다서 어업활동에 종사할수있도록 일자리도 열어줬다. 정책의 결과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조선을 약탈하는 왜구 활동은 상당히 감소했으며 개항한 항구에서 일본상인들이 조선산 면포를 일본의 은, 구리, 황과 같은 재물로 구매하였으므로 이들을 이용해 명나라로부터 서적이나 비단 등을 구매하며 중계무역의 중간지점으로서 많은 이득을 봤다. 조선에서 살만하다는 소문은 금방 퍼져 왜관으로 이주하는 왜인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세종 말기때는 왜관 하나에 불법거주자가 2,000명까지 늘어난다. 부담을 느낀 조선 조정은 대마도주에게 이들을 좀 데려가라고 했으나 좀처럼 이뤄지지않았다. 왜인들에 대한 부산 백성들의 시선 또한 당연히 곱지않았다. 실제로 대다수가 범죄자 출신인 이들이 세금 면제 및 혜택을 받아 역차별을 느꼈고 왜관에 거주하면서도 해적질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다 잡히는 일이 종종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감정의 골이 깊어진 부산의 관리들은 왜인을 처벌할때 더욱 혹독하게 처벌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종이 즉위하게 된다. 중종은 삼포의 왜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기존 왜관의 왜인들에게 줬던 혜택들을 하나씩 줄여나가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세금 면제의 혜택마저도 거두고 조선인들과 똑같은 세율을 책정하는 결정을 내린다. 중종의 이런 조치에 적반하장으로 분노한 왜인들은 대마도 주 다이묘의 아들 소 모리히로가 부산에 도착해있을때 5,000명 가량 왜인을 선동해 폭동을 일으켰다. 선의로 받아준 이들이 쌓여 5,000명의 규모의 왜구 습격으로 변한것이다. 이 때문에 부산포와 제포가 점령되고 많은 백성들이 사망하고 건물이 불타는 피해를 입는다. 이들의 적반하장식 폭동은 조선조정의 분노를 불러와 조선은 진압군을 파견한다. 폭동은 왜인 300명 가량이 죽고 15일만에 끝났으며 그 과정에서 소 모리히로도 전사한다. 또한 조선은 대마도 주와 무로마치 막부에 단교를 통보하며 왜관을 폐쇄해버린다. 조선에 경제적으로도 식량으로도 크게 의존하고 있던 대마도 주는 일을 이렇게 키울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도망쳐온 폭동의 주동자들의 수급을 베어 조선에 바치며 사과하면서 다시 교역을 하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조선은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조선의 단교 선언은 무로마치 막부에게도 날벼락같은 소식이였다. 명나라로부터 단교당한 이후 유일하게 외교 및 통상권을 행할수있는 조선을 통해 막부의 위엄을 세워야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면 도전자들에게 좋은 빌미를 내어주는것이니 말이다. 무로마치 막부는 조공과 사신을 매년 지속적으로 파견하여 낯부끄러운 아첨을 해가며 교역을 재개하러 애원했고 사과를 받아들인 조선 조정은 일본과의 교역을 재개하는 한편 새로운 조약을 체결한다. 1. 앞으로 삼포에서의 거주는 허락되지않으며 제포 하나만 개항해 거래한다. 2. 대마도주가 보낼수있는 무역선을 50척에서 25척으로 줄인다. 3. 대마도주에 하사하는 쌀과 콩(세사미두)을 200석에서 100석으로 줄인다. 4. 제포 이외의 장소에서 거래는 금지하며, 이를 어기는 선박은 왜구로 간주하여 공격한다. 라는 내용으로 임신약조를 체결하며 조선의 난민촌 왜관은 거래처로만 남게된다.
작성자 : ddd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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