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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디지털 문명의 선구자 IBM 연대기
'빅 블루'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기업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으며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1911년 당시 천공 카드로 데이터를 계산하던 세 개의 회사가 합쳐져 탄생한 기업이 바로 IBM이다.초창기 IBM은 Computing Tabulating Recording Co. 라는 업체로 시작하게 된다.이후 1924년, IBM의 전설적인 CEO, 토머스 왓슨 시니어가 지휘봉을 잡으면서 회사 이름을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현재의 IBM으로 바꾸게 된다.이후 그는 "THINK"라는 슬로건을 회사 곳곳에 붙이며 직원들에게 단순 노동이 아님을 강조했다.1930년대, IBM의 진가가 빛을 발한다.1930년대 미국 대공황이 찾아오고 정부가 사회보장법을 시행하면서 수천만 명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되게 된다.이때 IBM의 기술력이 투입되면서 미국 행정 시스템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었다.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며 IBM의 계산 능력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자산으로 취급받을 수 있었다.1960년대 초, IBM은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당시에는 컴퓨터마다 구조가 달라서, 성능이 더 좋은 컴퓨터로 바꾸려면 기존에 짜놓은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모두 새로 만들어야 했는데 IBM 역시 모델별로 제각각 소프트웨어를 만드느라 효율성이 극도로 떨어졌다.이때 IBM의 수장 토머스 왓슨 주니어는 기존의 모든 제품 라인업을 폐기하고 모든 모델이 같은 소프트웨어를 공유하는 단 하나의 시리즈를 만들기로 한다.여기에는 무려 50억 달러가 투입되었는데 이는 당시 원자폭탄을 개발했던 '맨해튼 프로젝트'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 수준이였다.결과는 압도적인 대성공이였다.이 시스템은 한 번 프로그램을 짜두면, 나중에 더 비싸고 빠른 IBM 컴퓨터를 사더라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기업들은 열광했다.이 성공으로 IBM은 전 세계 대형 컴퓨터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게 된다.1960년대 IBM의 업적은 이것 뿐만이 아니였다.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할 때, 복잡한 우주 궤도를 실시간으로 계산해낸 것이 바로 IBM의 컴퓨터였다.당시 NASA의 기술자들은 IBM 컴퓨터의 기술력을 칭찬하며 그들이 없었다면 달 착륙에 실패했을 것이라 얘기했다.이런 IBM의 몰락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다.
1970년대 IBM은 전 세계 메인프레임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한 존재였고,미국 정부는 IBM의 독점을 막기 위해 1969년부터 1982년까지 무려 13년 동안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다.또한 1970년대 중반 성공이 너무 길어지자 IBM 내부에는 관료주의가 판을 치기 시작한다.결재 하나를 받기 위해 수십 명의 동의가 필요했고, 모든 직원은 고객의 요구보다 사내 정치를 우선시한다.IBM 방식이 아니라면 어떤 혁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철학에 빠져미니컴퓨터의 등장 등을 무시하는 오만에 빠진다.(대한민국에서 제작된 국내 최초의 상용 개인용 컴퓨터 - SE-8001)1980년대 들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급성장하자, 뒤늦게 위기감을 느낀 IBM은 1년 만에 'IBM PC'를 급하게 만들어낸다.(IBM PC/ MODEL 5150)평소 같으면 모든 부품을 직접 만들었을 IBM이, 시간을 단축한다는 명목으로 CPU는 인텔에,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아웃소싱을 준다.IBM은 하드웨어 표준만 우리가 잡으면 시장을 지배할 줄 알았지만실제 권력은 소프트웨어와 칩으로 이동하고 있었다.IBM이 PC의 아키텍처를 공개형으로 만든 덕분에, 전 세계에서 IBM PC와 똑같은 기능을 가진 '호환 기종'들이 쏟아져 나왔다.IBM은 자신들이 만든 시장에서 정작 돈은 인텔과 MS가 다 벌어가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결국 1993년, IBM은 기록적인 적자를 내며 파산 직전까지 내몰린다. 이 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루 거스너였다. 그는 IBM을 여러 개로 쪼개야 한다는 주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하나의 IBM"을 강조하며 제품 제조사가 아닌 서비스와 컨설팅 회사로의 대전환을 단행하게 된다.1997년에는 슈퍼컴퓨터 '딥 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을 꺾으며 인공지능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21세기에 들어서며 IBM은 또 한 번의 충격적인 결단을 내린다.2005년, IBM은 PC 사업부를 중국 레노버에 매각하게 된다.이는 클라우드, 보안, 분석 서비스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였다.비록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신흥 강자들에게 밀려 고전하기도 했지만,2019년 레드햇을 인수하며 다시 한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현재 IBM은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뽐내고 있다.IBM의 100년 역사는 아무리 거대한 기업이라도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를 거부하면 반드시 무너지게 된다는 진리이다.하지만 IBM은 달랐고, 자신들의 가장 찬란했던 영광을 떼어내 자기 파괴적 혁신을 이뤄낼 수 있었다.
작성자 : [%]고정닉
로드FC, SNS 글만 보면 피해자?.. 경찰은 송치 결정
https://www.youtube.com/watch?v=srDcgTkpPL0자원봉사자 이름을 빌려 선수 대전료 대리 수령 + 페이백을 한 의혹으로 수사 받고 있는 상태 18일 로드 FC 대표 인스타에 의혹 해소 된것처럼 증거불충분 받았다고 글 올림 근데 다음 날인 19일 보조금법 위반 등 3가지 혐의로 검찰 송치 보도가 나옴 알고 보니 대표 인스타에 올린 글은 위 사안과 상관없는 아마추어 대회 증거불충분 글 이었음 -> 단체한테 치명타인 핵심 의혹은 해소 된 것처럼 언플해서 시선 돌릴려다가 다음 날 바로 들통남. 뒤늦게 로드 FC는 해당 게시글에 대해 모든 사건이 불입건 결정이 내려졌다는 건 아니었다고 해명 - 로드FC 무혐의 자질 없는 시의원이 던진 돌 하나, 그 참혹한 결과얼마나 많은 사람과 기관이 이용당했고,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들이 상처를 입어야 했습니까.시의원의 지속적인 압박에 못 이겨 무리하게 수사를 의뢰할 수밖에 없었던 시청 공무원들, 그로 인해 수년간 애먼 곳에 수사력을 소모해야 했던 경찰 수사관들, 그리고 자극적인 이슈를 위해 한 단체를 범죄 집단으로 몰아세운 지역 언론들…. 도대체 이 모든 소모전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습니까.이것은 명백한 행정 낭비, 경찰력 낭비, 언론 낭비였으며, 결국 시민 혈세의 낭비였습니다.아무런 죄 없이 경찰서에 불려 가 조사를 받아야 했던 지역 업체 사장님들, 대가 없이 헌신했던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평생 경찰서 구경조차 해본 적 없던 어린 직원들까지 조사실에 앉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무엇보다 저를 믿고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전국의 관장님들과 선수들이 입은 명예의 상처는 과연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그들이 겪은 고통 앞에서 제 개인의 억울함은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는 사치였습니다.지난 3년간, 시민의 세금으로 의정 활동을 해야 할 시의원이 한 일이라곤 오직 '로드FC'를 붙잡고 늘어진 것뿐입니다. 분탕질에 익숙한 이들이 남발한 여러 건의 '묻지마식 고발'은 그 내용조차 하나같이 터무니없었습니다.저는 이 모든 허위 사실을 하나하나 끝까지 바로잡겠습니다.제 고향 강원도 원주는 인구 38만의 중소도시입니다. 이곳에서 로드FC가 취할 사사로운 이득은 없습니다. 오히려 지역 발전을 위해 의무에도 없던 7억 2천만 원이라는 금액을 부담했을 뿐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횡령'이라는 파렴치한 프레임을 씌워 망신을 주고, 이를 본인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 했던 자들, 그리고 그 뒤에서 협잡하던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당신들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지역 발전을 위해, 단돈 10원 한 푼이라도 내놓은 적이 있습니까?"정문홍대표 글- '보조금 편취 의혹' 정문홍 로드FC 회장 등 3명 검찰송치'보조금 편취 의혹' 정문홍 로드FC 회장 등 3명 검찰송치 - 뉴스1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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