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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

“어”

“응”

“일단 알았어”

“응”

“좀 있다 나와서 밥 먹어”

문 앞에 서려있던 인기척이 멀어졌다

“...”

“엄마랑 싸웠니?”

“...”

“일단 오늘은 집에 가”

지우는 색깔 없는 표정으로 수담을 넌지시 바라봤다

“그래”

수담은 멍하니 앉아있었다

바닥에 널부러진 모양새로

지우는 그 모습을 보고

“물 너무 많이 섞은 액체괴물 던져놓은 것 같네”

라고 말하는 자기 모습을 상상만 했다가

이내 머릿속에서 지웠다

“너네 엄마 집에 누구 데려오는 거 싫어해?”

“...”

“문 열었는데 갑자기 나 혼나는 거 아니지”

“몰라”

“만약 뭐라 하면 그냥 무시하고 나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뭐라 하실 것 같다”

“나 처음 보는 어른한테 그런 거 못하는데”

“엔간히 싸가지 없다 쳐도”

“하...”

“모르겠고 그냥 가”

“진짜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

“너가 시킨 거다”

“아 쫌!”

“...가”

“알았어”

지우는 방문을 열었다

정면에 어딘지 헐거워 보이는 현관문

왼쪽에 휑한 거실

오른쪽에 너저분하면서도 나름 깔끔한 부엌과 식탁

그리고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

얼굴은 별로 닮지 않은 것 같지만

맥락상 이 사람이 아닐 수가 없지

지우는 생각했다

“...”

“누구?”

“안녕하세요”

“친구에요”

“...친구?”

“큰 애 친구?”

“네 맞아요”

“저랑 수담이랑 친구에요”

짜증으로 꽉꽉 찬 한숨소리가 등 뒤에서 지우의 목덜미를 할퀴었다

“...”

“우리 집 강수담이랑 친구라 이거지?”

“주변에 강수담이 또 살아요?”

“...”

“야 그만하고 가라니까”

방금 전 한숨소리보다 가까운 곳에서 수담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는 짜증을 넘어 화가 나있다

“빨리 가”

지우의 뒤통수에 침이 튄다

“너”

“수담이 쟤가 뭐 했던 앤지는 아니?”

“그거 알고도 친구 하는 거야?”

“야, 가”

“제가 모르면 안 되는 게 있나요?”

“글쎄”

“궁금해?”

“엄마 얘 이제 갈 거야”

“빨리잇...쪼옴...!”

수담은 뒤에서 두 손으로 지우를 힘으로 밀었다

어깻죽지로 지우는 그 절박함을 받아냈다

도대체 강수담이 뭘 했었는데?

지우는 호기심의 힘으로 밀려나지 않고 버텼다

수담의 엄마에게 고정된 시선

“강수담 쟤는 있잖아”

지우는 침을 삼켰다

심장이 요동쳤고 시야각이 점점 좁아졌다

지우의 세상에 이 순간만큼은 자신과 수담의 엄마뿐이었다

머릿속엔 하나의 생각 뿐이다

강수담의 과거가 알고 싶다

강수담의 과거가 알고 싶다

강수담의 과거가 알고 싶

“제발!”

“...제발”

“...”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지우는 고개를 돌렸다

“제발... 제발 가줘”

“이제 좀...”

“좀 가줘”

지우는 수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

‘어제 이 여자한테 맞았을 때’

‘그 때 내 얼굴이 어땠을지 이제 와서 상상해본다면’

‘아마 지금 이 여자 얼굴에 떠있는 바로 이 표정이었겠구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정도 표정’

‘딱 이 정도 고통’

“아줌마”

“?”

“아줌마 딸래미”

“큰 딸래미”

“진짜 완전 악질인 거 알죠”

“...”

“하아, 하...”

수담은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기 직전이었다

“누구 닮았나 했더니”

“아줌만가봐”

“...뭐?”

매서워진 눈매를 지우는 피하지 않았다

“이 기집애가 뭘 하고 다녔는지”

“그건 나중에 본인한테 직접 듣든지 알아서 할 거니까”

“아줌만 그냥 가만히 있어요”

“...”

“끼리끼리 붙어 다니는 꼬라지 하곤”

“강수담 나 갈게”

“하”

“빨리 가”

수담의 손바닥이 지우의 어깨에서 떨어졌고

동시에 수담은 털썩 하며 바닥에 엉덩이를 추락시켰다

지우는 뒤돌아보지 않고 현관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문 앞 계단엔 동생인 수람이 서있었다

오면서 지나쳤던 마트의 이름이 손에 들린 봉지에 박혀있다

“아”

“그...”

“안녕히 가세요”

“강수람?”

“아, 네”

“맞아요”

“너는 너네 언니랑 친하니?”

“언니랑요?”

“네 뭐”

“많이?”

“그런 것 같아요”

“언니 사랑하니?”

“네?”

“너희 언니 사랑하냐구”

“그...럼요”

“사랑하죠”

“사랑해요”

“많이”

“그래서 살아있구나”

“너네 언니”

“...뭐라고요?”

“또 봐”

빌라 정문으로 깃털처럼 빠져나가는 지우의 모습을

수람은 멍하니 서서 바라보았다

그날 저녁

수람이 만든 음식들을 수담은 먹지 않았다

화장실을 빼면 딱 하나 있는 방

자매가 함께 쓰는 공간에서 수담은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끼기익’

잠들기엔 이른 늦은 밤

샤워를 마친 수람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이미 누군가 깔아놓은 이브자리에 누군가 죽은 새우처럼 누워있다

그 속으로 살며시 몸을 넣었다

먼저 누워있던 사람의 잠든 얼굴에 걱정 섞인 시선을 지긋이 보냈다

“...”

ㅡ그래서 살아있구나 너네 언니

“언니”

“...”

“언니”

수람은 언니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읏, 으응..”

“언니”

“...응”

“자?”

“푸흣”

“자는데”

“지가 깨워놓고...”

수담의 몽롱한 목소리가 수람의 몸을 살짝 뜨겁게 했다

“언니”

“응”

“괜찮아?”

“음...뭐가?”

“밥 안 먹었잖아”

“배 안 고파”

“안 씻고 바로 자는 거지”

“...응”

“미안”

“냄새나?”

“음”

“모르겠어”

“...”

“이리와”

수담은 수람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동생의 후신경이 언니의 채취를 빨아들였다

“냄새나?”

“응”

“좋은 냄새”

“다행이네”

“...”

“...”

따스하게 내려앉는 정적

“...”

“...”

“언니”

“응”

“엄마 모레 간대”

“그래?”

“응”

“알았어”

“언니”

“응”

“...”

“괜찮아?”

“...”

미세하게 강해지는 수담의 포옹

“괜찮아”

“언니 나는”

“언니가 힘들면”

“힘들다고 해줬으면 좋겠어”

“응”

“힘들어”

“힘든데 괜찮아”

“진짜 괜찮아”

“...”

“알았어”

수람은 수담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으흣”

“간지러워”

‘쪽’

수람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수담은 깊은 잠에 빨려 들어갔다

감긴 눈동자 저편의 어둠 속에서

수담은 꿈을 꿨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죽은 여동생이 나오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