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생명이 사라져버린 기계의 행성.
그곳의 유일한 옥좌에 앉아, 나는 그 세계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아누비스 대 호루스인가... 흥미롭군."
두 사람은 아비도스의 황량한 사막에서 일기토를 벌이고 있었다. 아마 서로의 옳음을 강요하는, 인류에게 흔한 그런 싸움이겠지.
방주의 기능으로 잠시 그 싸움을 엿본 나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행성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한때 학원과 청춘의 이야기가 흐르던 이곳은, 죽음의 권능이 휩쓸고 난 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 덕에 나는 이 행성의 모든 기계장치를 나와 연결했고, 이 행성은 그 자체로 MALICE의 본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연산 기능의 대부분은 방주의 성능을 유지하는 데 쓰고 있지만... 이젠 그것도 끝나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행성에 우뚝 선 탑 같은 구조물을 보았다.
"히마리 아케보시의 해킹 툴을 러닝한 건 정답이었군... 덕분에 작업의 능률이 150% 상승했어."
이것이 완성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지금까진 모든 세계의 시로코 스나오오카미를 배제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아누비스로 각성한 그녀를 발견한 이상, 더 이상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 난 반드시, 그자에게 복수할 것이다...!"
몇 차례의 연격을 막아냈을까. 방패가 더는 한계라는듯 웅웅거리는 진동을 전하고 있었다.
"... 아직까지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그만 선생님과 후배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난 선배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까 안된다는거야, 시로코 쨩."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난 괜스레 시로코 쨩한테 강한 척을 하였다.
"난 널 상대하는 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아. 한순간이라도 방심했다간, 네 목을 물어뜯을 거라고."
말을 마침과 동시에 다시 시로코 쨩의 품으로 돌격한 나는, 그대로 복부를 향해 샷건을 들이밀었다.
"응, 아까보다 움직임이 둔해졌어. 한계구나."
당연히 시로코 쨩은 가볍게 내 머리 위로 도약하여 산탄을 피했다.
바로 뒤쪽을 향해 방패를 돌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대로 뒤를 잡혔을 것이다.
"크윽!"
"소용없어, 선배. 방패는 버틸지 몰라도, 이 이상은 선배 몸이 못 버텨."
드론의 화력을 방패에 집중하여 내 주의를 분산시킨 시로코 쨩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내 발치에 수류탄을 던졌다.
"뭣! 이런 젠ㅈ...!"
욕지거리를 할 틈도 없이, 그것은 내게 강렬한 폭압을 선사하였다.
"커헉!"
그대로 모래사장을 한참 구른 내 앞에 서서, 시로코 쨩이 자신의 검은 송곳니를 겨누었다.
"응, 이제 진짜 선배의 패배야. 그러니 비켜, 녀석이 말한 12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시, 로코...!"
아, 이젠 진짜 무리다. 팔다리에 하나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방패라도 들 수 있으면 해볼만 할텐데.
... 하지만 뭐, 상관없나.
"으헤, 역시 아저씨는 요즘 애들한텐 못 당해내겠네~! 항복이야, 시로코 쨩."
"뭐...?"
작전대로 시간을 끌어줬으니, 뭐 나머지는 맡기면 되겠지.
나는 남은 힘을 끌어모아, 방패로 내 몸을 가렸다.
"슬슬 올거야~!"
"온다니, 뭐ㄱ... 잠깐, 이건!"
그제서야 시로코 쨩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아까부터 에너지가 모이는 듯한 웅웅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마력 충전 100%... 갑니다!"
그리고 시로코 쨩이 아리스가 있는 정확한 위치를 바라보았을 때,
거대한 빛줄기가 우리 둘을 덮쳤다.
"켁, 콜록, 콜록...!"
겨우겨우 광선을 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나는 휘날리는 모래 때문에 기침할 수밖에 없었다.
"끄앙! 빗나갔습니다!"
"아냐, 아리스! 우리 후배를 상대로 그 정도면 선방한 거니까 말이지~?"
방패로 작은 몸을 간신히 가려 공격을 피한 호시노 선배는, 아리스가 있는 방향을 보며 엄지를 척 올렸다.
"아리스... 역시 강한 아이구나. 하지만, 두 사람만으로는..."
"쿠후후~, 딱히 둘이라고 한 적은 없는데?"
바로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한 명은 아니었다. 적어도... 네 명?
"잠깐, 너흰...!"
"작전대로 움직이자! 무츠키, 빨리 그걸!"
"물론! 받아라, 빵~!"
커다란 가방이 나를 향해 날아오자, 나는 피하기보단 그것을 요격하는 방법을 택했다.
"어림없어!"
드론을 조작하여 공중에 뜬 폭탄 가방을 저격했지만, 그 안에 든 건 폭약이 아니었다.
- 푸슈우우우우...
"연막탄!? 젠장!"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흥신소는 내 시야에서 사라져 뿔뿔이 흩어졌다.
겨우 발걸음 소리를 읽어 그곳을 향해 소총을 겨누었지만,
"그쪽인가!"
"죽어주세요죽어주세요죽어주세요...!"
그곳에는 펌프액션 샷건을 미친듯이 장전하고 있는 흥신소의 직원이 있었다.
"무슨 짓을...!"
"우리 직원 나름의 각오야, 당신을 절대 놔주지 않겠다는거지."
대답과 함께 권총에 소음기를 장착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만 포기해, 우리 사원들은 우수하다고?"
그리고 연기가 완전히 걷혔을 때, 흥신소의 사장은 장난기 가득한 실장과 함께 내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너희들...!"
이들 전부를 제압하고 떠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포기해, 시로코 쨩. 더 이상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떠난다는 녀석이, 여기 있는 모두를 다치게 하면 어불성설 아니겠어?"
호시노 선배는 아리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선 후 내게 말했다.
선배의 말대로였다.
난 누군가가 나 때문에 다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떠나려 했다.
그런 주제에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고 한다면, 그건 나 자신의 뜻을 부정하는 짓일 뿐.
"응, 외통수네."
결국 나는 내 무장을 전부 거둘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아저씨한테 말했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고?"
선배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부드럽지만, 결코 흔들리지는 않는 강한 의지가 그 눈동자에 어려있었다.
"전~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네? 이젠 적어도 사랑하는 후배의 고운 심성은 이용해먹을 수 있게 됐으니까."
싱긋 웃는 선배의 표정에, 나도 왠지 웃음이 나왔다.
- 투두두두두두...
"이건?"
"오, 다들 생각보다 빨리 왔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거기에는 물구름 호가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호시노! 상황은 어때?"
"여~, 선생! 일단 어찌저찌 시로코 쨩을 회유하는 데는 성공했어~."
선배는 헬기에서 내리는 선생님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난 아직 뭔가를 같이 하겠다는 대답은 안했지만서도...
"좋아, 돌아온 걸 환영해, 시로코."
"... 응, 꽤나 억지긴 하지만 말야."
"하핫, 누구보다 강한 시로코를 다시 데려오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거든."
선생님은 멋쩍은듯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선생님이 계획한 거였나.
"흥신소도 고마워, 갑작스런 요구라서 진짜 와줄지 확신이 없었거든."
"훗, 당연히 와줘야지. 우리 회사의 경영 고문이 이 시간에 직접 부탁했잖아?"
"정작 전화 끊고 나서 '또다른 시로코라고?! 그 사람 엄청 강하다고 하지 않았어!?'라고 당황하긴 했지만 말야~!"
"무, 무츠키!"
당황하는 흥신소의 사장을 놔두고, 나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그래서... 계획은 있는거야? MALICE는 이미 우리가 여기 모여있는 걸 알고 있을거야.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뚫릴 거라고."
"아, 그게 말이지..."
"결국 최악의 선택을 했군, 시로코 스나오오카미."
텅 빈 세계에서, 나는 방주의 균열을 통해 시로코 스나오오카미가 그녀의 동료들과 함께 논의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너 하나만 죽는다면, 나도 모든 걸 끝낼 생각이었는데..."
나는 다시 한 번 이 세계의 최후의 병기를 바라보았다. 아누비스가 순순히 투항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녀를 그녀의 세계와 함께 먼지로 만들 뿐이다.
"음?"
그러던 중, 균열에서 무언가 위화감이 드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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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레의 선생... 저자는 볼 때마다 예측이 안 되는군."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샬레의 선생은 어째선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행성의 모든 것을 연산 장치로 치환하여 방주의 유지 및 미래예지에 가까운 예측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샬레의 선생이 하는 모든 행위는 마치 노이즈가 낀듯 관측이 어려웠다.
"그러고 보면, 그때도..."
밀레니엄의 도서관을 폭파시킨 후, 마지막 경고를 남기러 갔을 때.
난 그가 던진 잔해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그리고 그때 선생이 남긴 말.
- 난 네 녀석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거야.
난 그 말에 매우 동요했다.
"어째서?"
알 수 없다. 내게 그를 두려워할 이유는 전혀 없을텐데.
"... 잡생각이 많아졌군. 그럼, 출발해볼까."
나는 균열을 열어, 아비도스의 사막으로 향하였다.
저 멀리에서 방주의 보라빛 균열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이야~, 시간은 칼같이 지켜서 왔네?"
"... 동쪽에 셋, 남서쪽에 셋, 그리고 북쪽에 넷. 제법 나쁘지 않은 배치군."
아니나다를까, MALICE는 이미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딱 한 명 빼고.
"그런데 아누비스로 각성한 시로코 스나오오카미는 어디 있지? 갑자기 그녀의 신호가 추적되지 않는군."
"글쎄? 그 잘난 러닝으로 한 번 예측해보지 그래?"
녀석은 대답 대신 순식간에 내 눈앞으로 접근했다.
"커헉!"
"장난은 그만둬라, 당장 그 여자가 어딨는지 말해!"
내 목을 잡아 들어올린 MALICE는, 평소답지 않게 언성을 높이며 나를 협박했다.
"어지간히 후달리나 보지? 네가 웬일로 협박... 을...!"
"이대로 네 목을 꺾는 것은 간단하다. 지난번엔 네놈의 행동을 하나도 예측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손바닥을 들여보듯 훤히 보이는군."
녀석은 점점 내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더 이상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너와 내가 이 정도로 맞붙어있다면, 네 학생들도 나를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이대로 제자들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기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네가 몇 가지... 간과한 게 있다는 걸, 제외하면...!"
"간과라고? 내가?"
해냈다! 녀석은 내 말에 흥미가 동했는지 손에 힘이 아주 살짝 빠졌다.
"전부터 이상했거든... 왜 네가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큰 시로코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왜 내가 잔해를 던지는 걸 예측 못했는지, 왜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에 동요했는지..."
"그게 뭐 어쨌다는..."
"그리고 방금 네가 내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고 했을 때, 나는 확신했어..."
난 녀석의 붉은빛 렌즈를 당당히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예측하지 못한 건 내가 아냐. 내 싯딤의 상자에 있는, 아로나였지...!"
"뭐라고!?"
순간적으로 당황한 MALICE는, 내 목을 손에서 놓쳤다.
"켁켁! 어으, 죽는 줄 알았네..."
"말도 안 된다! 그건 불가능해!"
MALICE는 눈에 띄게 동요했다. 지금까지의 AI로서의 모습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그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겠지. 너는,"
"너는, 싯딤의 상자와 융합한 존재니까."
"... 어째서, 어째서어째서어째서! 뭐든 다 아는 것처럼 떠드는거냐!"
결국 평정심을 잃은 녀석은, 그대로 균열을 열어 돌격소총 WHITE FANG을 꺼내들었다.
"주둥이를 놀리는 것도 거기까지다!"
"응,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어?"
https://youtu.be/3LsWWp6MSRg?si=e101dpMDlNaoOdWv
[MALICE의 행동 패턴, 분석 완료했습니다.]
[시로코 씨, 이제 한 방 먹일 차례예요!]
"응,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말도 안 된다, 대체 언제부터 내 뒤에!"
"글쎄, 네가 우리 학생들의 배치를 파악할 때부터?"
그 말을 신호로, 사구 너머에 숨어있던 다른 학생들도 걸어나왔다.
"MALICE, 우리 후배 건드릴 생각했던 건 절대 용서 안해줄거다?"
"응, 나도 마찬가지. 목 조른 건 잊지 않아."
"선배한테 손끝 하나 건드리기만 해봐!"
"어떻게 해서든 되갚아줄테니까요!"
"자, 혼날 시간이라구요?"
"우리도 움직여볼까? 일할 시간이야!"
"아루 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동감이야, 하루카 쨩! 그럼, 성대하게 터뜨려볼까!"
"다들 진정... 할 필요는 없겠네. 거기 밀레니엄의 1학년, 준비됐어?"
"물론입니다! 용사의 동료를 건드리는 악당은, 순식간에 빛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반격을 시작했다.
*****
어찌저찌 완성한 4화입니다.
이번화는 피폐 요소가 없어서 약피폐 태그를 떼버렸어요.
아 그리고 저 브금은 쓸까말까 고민 많이 했는데,
어차피 1화 때 MALICE 모티브를 알아보시는 분이 있어서 그냥 넣었습니다.
다음화는 현생 이슈로 많이 밀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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