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응? 왜 그래요, 우리 딸?"
거실의 소파에 앉아 책을 읽던 하나코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는 소녀를 보았다.
책을 잠시 덮어두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소녀는 기분 좋은듯 얼굴을 치맛자락에 부볐다.
"에헤헤... 헉, 맞다! 뭐 물어보려 그랬는데, 뭐였지?"
"엄마가 맞춰볼까요? 아마도... 오늘 저녁이라던가?"
"어! 맞아, 그거!"
하나코는 그저 감으로 맞췄을 뿐이지만, 소녀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는 대단하다~, 어떻게 알았어?"
"후훗, 글쎄요? 엄마는 마음의 눈이 있으니까 말이죠?"
"마음의 눈? 어디? 여기?"
어느 새 하나코의 무릎 위로 올라온 소녀는,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듯 하나코의 가슴을 주물거렸다.
"네, 거기에 꼭꼭 숨겨놨죠.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왜요?"
"응! 오늘은 아빠랑 같이 저녁 먹는다고 했으니까, 뭐 먹을지 궁금해서! 그래서 뭐야?"
"잠시만요... 우리 딸, 눈 감고 있어볼래요?"
"알겠어! 지금 눈 감았어!"
"네~, 잠시만요..."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주방에 간 하나코는, 찬장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고왔다.
"자, 이제 눈 떠볼래요?"
"그래! 근데 뭐길래... 우와, 카레다!"
하나코가 들고온 것은 카레 가루, 그것도 꽤 고급이었다.
"오늘은 다 같이 카레 파티예요~, 맛있겠죠?"
"응, 응응!"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는 소녀가 너무 귀여웠던 나머지, 하나코는 조금 짖궂은 장난을 치기로 했다.
"아아~, 그런데 어쩌죠? 집에 채소랑 고기가 부족해서 이대로면 카레를 만들 수 없는걸요?"
"어? 진짜...?"
소녀는 확실히 실망한 눈치였다. 정수리의 뻗친머리가 그대로 가라앉아버릴 정도였다.
"그, 래, 서. 엄마가 우리 딸한테 심부름을 맡기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어? 심부름? 그러면, 카레 먹을 수 있어?"
"그럼요~,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이에요?"
아까까지의 낙심은 온데간데없이, 하나코와 새끼손가락을 거는 소녀의 표정은 환해졌다.
"그러면, 할래! 카레 꼭~ 먹고 싶어!"
"우후후, 옳지옳지... 정말 고마워요, 우리 딸!"
다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나코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길 다닐 때 차 조심하고, 거스름돈 받는 거 있지 말고요!"
"네~!"
그렇게 쪽지와 동전 지갑, 장바구니와 조그만 파우치를 챙긴 소녀는 상점가로 향했다.
"흥흥흥~, 심부름, 심부름..."
콧노래를 부르는 소녀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상점가에 심부름을 가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소녀는 그 길이 언제나 새로웠다.
"어? 달팽이다! 귀여워~!"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들과, 화단에서 숨쉬는 동식물들. 그 모든 것이 계속 변화한다는 사실이, 소녀를 설레게 했다.
"헛!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디, 상점가는..."
하지만 즐거움이 과하면 목적을 잊기 마련.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소녀는, 다시 상점가를 향해 걸어갔다.
"어디, 감자랑 당근은 샀고... 정육점이..."
엄마가 써준 쪽지를 들고 상점가를 돌아다니는 소녀. 사람이 많아 겁을 먹을 법도 하지만, 엄마와 자주 와본 곳이기에 소녀는 무섭지 않았다.
"아, 저기 있다! 정육점 아저씨, 안녕하세요~!"
소녀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고기를 썰던 정육점 사장 안드로이드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반겼다.
"어이구, 오랜만이구나! 엄마는 오늘 안 오셨니?"
"응! 엄마 대신 심부름 왔어. 잠깐만... 돼지고기 앞다리살 150그램, 주세요~!"
"앞다리살? 아아, 오늘 카레라도 먹는거니?"
"응! 아빠랑 같이 먹을거야!"
해맑게 웃는 소녀의 모습에, 정육점 사장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그래, 보자... 선생 양반이라면 전에 신세를 졌으니까, 이만큼이면 되겠지?"
정육점 사장은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고기를 썰었다. 아이는 눈치채지 못할만큼, 그러나 확실히 많은 양이었다.
"에헤헤... 감사합니다, 아저씨!"
"어이구, 별 말씀을... 에이, 기분이다! 이것도 받아가라!"
"어? 이건... 고로케!"
"아저씨가 방금 튀긴 건데, 아주 기가 막힐 거란다? 내 자신작이지!"
그 말대로, 소녀가 받아든 고로케는 포장지 너머로 열기를 뿜어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라!"
그렇게 소녀는 저녁거리와 고로케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보자, 우유는 샀고... 조금 산책이나 하다 들어갈... 어라?"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
"으음... 어쩌지..."
고로케를 먹으며 집에 가던 소녀는, 꽤 큰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이거... 느끼해...! 거기다 엄청 커...!"
그랬다. 정육점에서 파는 고로케는, 아이가 혼자 다 먹기엔 꽤 무리였던 것이다.
"우으... 아저씨가 공짜로 준 건데... 하지만 다 못 먹겠어..."
"도움이 필요한가, 아가씨?"
"어?"
구원의 목소리는, 의외로 뒤쪽에서 들려왔다.
"누구... 세요?"
"누구긴, 너랑 즐거운 걸 하러 온 유괴범이지. 순순히 잡히라고, 아가씨."
연분홍빛 생머리를 오른쪽으로 묶은 그 사람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는, 그 사람을 어디서 본듯한 기분이 들었다.
"... 나츠 이모?"
"어, 어? 이렇게 빨리? 아, 아니! 그러니까..."
잠시 허둥지둥대다 곧 선글라스를 고쳐쓴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고 짐짓 폼을 잡았다.
"지금의 난 미스 썸머라떼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냐."
"이모, 뭐 해?"
"... 역시 선생님의 딸이라고 해도 똑같은 리액션을 기대할 순 없는건가. 뭐 좋아, 개개인의 로망은 다른 법이니까."
선글라스를 벗어 외투 주머니에 넣은 나츠는, 소녀에게 브이 사인을 보냈다.
"아무튼, 뭔가 곤란해하지 않았어? 내 생각엔... 그 고로케 때문 같은데."
"아, 응! 고로케가 느끼해서, 어떡하면 좋을지 고민 중이었어."
"호오...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먹지 못한다, 결코 로망이라고 할 수 없지."
눈을 감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나츠는, 무릎을 꿇어 소녀와 눈높이를 맞춘 후 말했다.
"너는 왜 고로케를 다 먹고 싶은거지?"
"응? 그야... 정육점 아저씨가 먹으라고 준 거니까?"
"그렇다면... 내게 제안이 있어."
"... 이모, 말투 완전 이상해."
"최근에 본 재미없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대사야. 그런 걸 정주행하는 것도 로망이니까."
소녀의 머리를 토닥이며 일어선 나츠는, 소녀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향했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D.U 근교의 조그만 카페였다. 케이크 위에 미소짓는 얼굴이 그려진 크림과, 그 밑에 'SUGAR!'라고 적힌 로고가 인상적이었다.
"여긴...?"
"개업했을 때 선생님이랑 같이 왔었을텐데, 그 이후로 넌 몇 번 안 와서 모르려나? 아무튼 들어가자."
소녀는 나츠의 손을 꼬옥 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몇 분이신... 나츠? 일찍 들어왔네."
"여어, 점원 나리. 스마일 한 잔 부탁하지."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그것보다 옆은..."
치렁치렁한 금발을 양갈래로 묶고 로고가 찍힌 앞치마를 두른 점원은, 소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잠깐, 이 눈... 아! 선생님 딸이구나! 오랜만이네, 이모 기억나?"
"어, 그러니까... 요시미ㅊ..."
"요시미야, 그냥 요시미. 한 번 더 실수하면 이모 화낸다?"
머리에 양손 검지손가락을 딱 붙이며 화난 척을 하는 요시미였지만, 한 번 올라간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오는 일이 없었다.
"여긴 무슨 일이야? 보아하니, 엄마 심부름 다녀오는 길?"
"응! 오늘 저녁은 카레래!"
소녀는 자랑스럽게 자신이 장을 봐온 식재료들을 들어올렸다. 흙이 묻은 채소와 신선한 돼지고기가 그 안에 있었다.
"헤에, 맛있겠는걸? 우리도 이따 카레 해먹을까... 근데 잠깐."
"응? 무슨 문제라도?"
"문제야 많지! 야, 나츠! 심부름하고 돌아가는 애를 데려오면 어떡해!"
전혀 위기의식이 없는 나츠를, 요시미가 꾸짖었다.
"분명 애 엄마가 걱정할 거 아냐! 하나코 선배가 애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
"그, 그렇긴 한데..."
"저, 저기! 그러니까!"
나츠를 쏘아붙이는 요시미를, 소녀가 손을 들어 멈춰세웠다.
"어? 아, 이모 화난 거 아냐! 그냥 걱정돼서..."
"그, 그게 아니라! 사실은 내가, 고로케를 다 못 먹겠다고 해서... 그래서 나츠 이모는 도와주려고 한 거니까..."
고로케를 들고 쭈뼛거리는 소녀를 보고 있자니, 요시미도 더 이상은 큰 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하아... 뭐 그래, 대신 잠깐만 있다 가야된다? 연락은 내가 선생님을 통해서..."
"뭐야, 요시미? 밖이 뭔가 시끄러운데, 스케반이라도 온거야? 아니면... 어?"
"어라? 요시미 쨩, 그 아이는..."
"아, 미안. 시끄러웠어? 별건 아니고..."
직원 휴게실 쪽에서 걸어나온 두 사람은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분홍색의 고양이귀의 점원과 민트초코 액세서리를 장식한 점원, 카즈사와 아이리였다.
"어라? 선생님 딸이잖아? 오랜만이네."
"여긴 무슨 일이야? 혹시 길을 잃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다섯 사람은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그렇구나, 고로케 때문에 그런 거라면... 잠깐만 기다려봐!"
주방으로 들어간 아이리는, 곧 어떤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그마한 잔에 음료를 따라, 소녀 앞에 서빙했다.
"우와! 이게 뭐야?"
"모히또라는 음료야. 라임과 민트가 들어가서, 아마 고기 요리랑 어울릴거야. 원래는 술도 들어가지만... 그건 어른이 된 다음에 마시자?"
음료에 대해 설명해준 아이리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서 마시고 반응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듯했다.
"무심코 민트를 많이 넣어서 향이 꽤 셀 수도 있으니까, 못 마시겠으면 남겨도..."
"쭈웁... 우와, 맛있다! 입에서 팡팡 터져!"
빨대로 음료를 한 모금 빨아올린 소녀는, 그 맛에 깜짝 놀랐다. 톡 쏘는 탄산수와 상큼한 라임, 그리고 무엇보다 강렬한 민트 향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지, 진짜? 맛있어?"
"응! 입이 시원해져서 고로케도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워!"
고로케를 한 입 크게 베어문 소녀는, 모히또를 곁들여 그대로 완식하였다. 그런 소녀를, 아이리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푸하... 엄청 맛있어..."
"저, 저기! 그럼 있잖아! 아직 가지 말고 있어봐!"
흥분으로 얼굴을 붉히던 아이리는, 다급히 직원 휴게실로 뛰어갔다.
"어라? 이모 왜 저래?"
"어... 아이리가 저런 표정을 짓는다면..."
"아무래도... 그거겠지? 포교..."
"포... 교? 가 뭐야?"
"아이리의 로망이지. 보면 알거야."
"다들, 기다렸지!"
직원 휴게실에서 다시 나온 아이리는, 사탕이나 초콜릿, 껌 같은 걸 잔뜩 들고 나왔다.
"이모, 이게 뭐야?"
"아까 입이 시원해지는 게 좋다고 했지? 이것들도 비슷한 맛이 나니까 아마 입에 맞을거야. 이건 박하사탕, 이건 민트초코바, 이건 민트껌... 집에 다 가져가도 돼!"
"우와, 이걸 다? 고마워, 이모!"
소녀의 순진무구한 미소를 본 아이리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혹시 그건 좀 부족하지 않아? 필요하면 더 갖다줄 테니까..."
"잠깐, 아이리. 설마 그것보다 더 있어?"
"뭐, 아이리가 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는데..."
"으음, 역시 아이리의 로망은 꾸준한가."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왠지 모두가 수긍하는 듯했다...
"아빠한텐 이모가 연락해뒀어. 퇴근할 때 데리러 오신다네?"
"어? 아빠가? 신난다!"
"으이구 욘석, 그렇게 신나?"
테이블에 마주 앉은 소녀를 보며, 요시미는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에잇! 요시미 집게 발사!"
"어? 잠ㄲ... 으에에, 놔줘~!"
결국 장난기를 참지 못한 요시미는, 소녀의 볼을 꼬집고 마구마구 비볐다.
"요시미, 너무 짖궂은 장난은 안된다? 애 다치면 책임 못 진다고."
"늬에늬에, 알겠슴다~. 내가 자기처럼 양아치인줄 아나?"
"야, 너 진짜!"
"어? 카즈사 이모가 왜?"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의 질문에, 카즈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 저기! 진짜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제발 조용히..."
"그걸 설명하자면... 역시 마수의 전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군."
"잠깐, 나츠!!"
카즈사의 손을 잽싸게 요리조리 피한 나츠는, 자리에 앉아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저 하늘..."
"하늘? 저건 천장인데?"
"처음부터 하늘엔 그 누구도 서 있지 않았어. 너도, 나도, 선생님조차도. 하지만, 그 견디기 힘든 천좌의 공백을 깬 자가 있었으니..."
"너, 그 이상 말하기만 해봐!"
제 풀에 지친 카즈사는 그저 으르렁대며 나츠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게 바로 트리니티의 전설적인 마수, 카스팔루그였다는거지...!"
"마, 마수!?"
"야!!! 너 진짜 가만 안 ㄷ... 아."
"우, 우으..."
포효하던 마수는, 소녀의 표정을 보고 멈칫했다. 땡그래진 그 눈에는, 두려움인지 뭔지 모를 감정이 비쳤다.
"저, 저기 그러니까... 미안, 이모가 무섭게 했다면..."
"우와아~! 이모, 그럼 설마 파워애니멀 같은거야?"
"그래, 사실 파워... 잠깐, 뭐?"
소녀를 달래주려던 카즈사는, 뭐가 뭔지 모를 질문을 듣고 벙쪄버렸다.
"혹시 그럼 보주도 있어? 합체도 해?"
"... 뭐 그래, 그런걸로 하자."
"푸하핫! 그럼그럼, 지난번에 카즈사 이모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도 봤어야 했는데!"
"그야말로 로망의 결정체였지. 장관이었어..."
"느는 즘 으뜨 브즈..."
여하튼 애를 울린 건 아니어서, 카즈사는 안도했다.
물론 몇 분 후, 요시미와 나츠는 카즈사에게 백초크를 당해야만 했다.
"우으, 심심해..."
아빠를 기다리던 소녀는, 꽤 지루한듯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후후, 귀여워... 아빠 지금 퇴근하신다고 연락 왔으니까, 조금만 참자?"
"응..."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아이리는, 곧 소녀가 재밌어할만한 무언가를 찾았다.
"아! 혹시 지루하면, 이모랑 그림 그릴래?"
"응? 그림?"
"그래, 별건 아니고..."
아이리는 메모지와 펜을 들고와 소녀에게 주었다.
"우리 가게는 손님들의 간단한 메모를 벽에 붙여둘 수 있거든. 저기 보이지?"
그 말대로, 가게의 한쪽 벽에는 메모지가 빼곡하게 붙어있었다.
[페로로 님 라떼 아트 고마워요, 아이리 쨩! 다음에 또 올게요! - H. A.]
[하스미가 멋대로 파르페를 먹어치운 건 미안하게 됐다. 다음엔 주의하도록 하지. - 전임 정의실현부장 켄자키 츠루기]
[생각보다 괜찮은 차였어. 트리니티 출신 중에도 이 정도 솜씨가 있는 사람들이 있을 줄은... 다음엔 부원들도 데려올게. - CAT0808]
"사람들이 엄청 많이 왔었나 봐..."
"그럼, 선생님이랑 연이 있던 분들이 많이들 찾아와주셨어. 아무리 평범해도, 인연은 인연이니까."
아이리는 소녀를 들어올려, 메모지가 붙은 벽 앞의 의자에 앉혀주었다.
"그, 래, 서. 오늘의 인연도 이모는 소중히 하고 싶으니까, 아무거나 적어서 여기 붙여주면 좋겠는데. 해줄 수 있을까?"
"응! 맡겨줘!"
소녀는 곧, 메모지에 간단한 그림과 함께 격려의 문구를 적어주었다.
[마음에 눈으로 보는 중! 항상 행복하새요! ⊙⊙]
메모지를 받아든 아이리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입을 다무는 것도 깜빡했다.
"어때? 잘 썼지?"
"우와, 훌륭한데? 특히 이 눈 그림이라던가, 엄청 귀여워~! 잠깐만, 테이프가..."
바로 옆 테이블에서 테이프를 하나 뗀 아이리는, 벽의 빈 공간에 메모지를 붙여주었다.
"됐다! 잘 붙었네~! 그나저나 진짜 잘 그렸다, 마음의 눈을 그린거야?"
아이리는 그림의 설명을 듣고자 소녀에게 질문했지만, 그 대답은 의외였다.
"응? 저거 눈 아닌데?"
"어라? 그럼 뭐야?"
소녀는 그 말에 해맑게 대답했다.
"엄마 쭈쭈!"
"아~, 쭈ㅉ... 뭐뭐뭣!?"
아이리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오늘 엄마가 그랬는데, 엄마는 쭈쭈에 마음의 눈이 있대! 그래서 나도, 마음의 눈으로 이모들 가게를 보고 싶어!"
"그거, 분명 그런 의미가 아닐거야...! 그래도..."
아이리는 차마 소녀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 메모에서는, 이 가게를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졌으니까.
"다들 고마워, 우리 딸 돌봐줘서."
가게 앞에 차를 세운 선생은, 잠이 든 소녀를 들어안았다.
"아니에요, 선생님. 덕분에 저희도 재밌었는걸요?"
"뭐, 우린 좀 힘들었지만 말이지..."
"켁켁! 아직도 숨이 제대로 안 쉬어져..."
"완벽하게 자업자득이잖아! 아무튼 선생님,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 요."
"선생님도 마찬가지야. 앞으로 종종 찾아올게."
잠든 딸을 유아용 카시트에 앉히고 저녁거리를 뒷좌석에 실은 선생은, 곧 차의 시동을 걸었다.
왜인지 아이리는, 그 모습을 서글프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기! 선생님!"
차가 떠나기 전, 아이리는 선생을 불러세웠다. 그 큰 목소리에 선생은 차창을 열어 아이리를 바라보았다.
"어? 왜 그래, 아이리? 혹시 우리 애가 뭐 놓고간 거라도..."
"그, 그게 아니라! 저희 사실, 다음 주말에 오랜만에 버스킹을 하려고요. 그... 와주실 수, 있죠?"
아이리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선생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선생은.
"음... 그럼, 물론이지! 식구들 데리고 꼭 갈게. 요샌 업무량이 줄어서 말야."
"와, 와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몇 번이고 고개를 꾸벅인 아이리를, 선생이 말렸다. 숙녀가 그러면 못 쓴다면서.
"아무튼, 이제 갈게! 애엄마가 카레 해준다고 했거든?"
"네!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아이리는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그녀의 친구들은...
"어... 저기, 아이리."
"어? 왜, 요시미 쨩?"
"선생님한테, 살갑게 구는 게 나쁜 건 아닌데 말야..."
"그, 일단 선생님은 유부남이다?"
"물론 그런 로망이 생각보다 흔하긴 하지만... 용서받기 힘들거야."
"어, 어?"
아무래도 친구들은, 아이리에게 오해 아닌 오해를 해버린 모양이었다.
"아, 아냐! 그런 거 진짜 아니니까!"
"뭐 그래, 아니라고 하면야. 그나저나 오늘 저녁 뭐 먹을래?"
"카레 어때? 왠지 나도 먹고 싶어졌는데."
"저녁 식사에서 퍼져나가는 카레 냄새... 로망이지. 오늘은 가게 일찍 닫을까?"
"저, 저기 얘들아! 같이 가~!"
네 사람은 그렇게, 가게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
네, 선생은 죄 많은 남자입니다.
일섭은 밴디부 복각이라길래 간단히 쓰려 그랬는데, 어쩌다보니 예상보다 분량이 길어졌네요.
하지만 즐거우셨다면 오케이입니다.
앞으로도 즐거운 일상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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