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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약피폐) 선생님이 우울장애를 진단받는 이야기(107)

슈퍼물라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9.27 21: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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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 XX월 XX+120일 12:00


선생 치료 시작 120일 째, 중립 경비 구역 '에덴보육원' 


전면전 개시



미디어에서 다루는 폭발의 특징은 무엇일까.


붉은 화염과, 검은 연기,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파괴력.


코미디가 아닌 이상 적어도 저 중 두 가지 이상은 반드시 포함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을 재현하는 것은 적어도 폭발이라는 영역이 있는 한 미디어가 아직 넘보지 못하는 영역일 것이다.


그 이유는, 미디어의 폭발에서 담지 못하는 현실의 그것은


-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


그저 '펑'으로 담을 수 없는 음역대의 울림과


- 화아아아아아악!


순간적으로 터져나오는 폭압과,


- 타탁.... 탁 탁....


이 모든 것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열기까지.


그리고 다른 많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건물 한 채를 완벽히 박살낼 수 있을 정도의 폭발은 키보토스인에게도 흔치 않은 경험에 속한다.


곳곳에 생채기가 나고, 이마에서는 피가 흐른다. 의복의 일부는 찢겨나가고 더러는 불에 그을렸다.


그러나 보여지는 것에 예민한 이 나이대의 소녀들에게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선생님...!! 선생님.... 허억..... 들리십니까!!"


자신들과 함께하는 어른은 그들보다 육체적으로 훨씬 세심하게 다루어야 할, 손으로 꽉 쥐면 터져버리는 물풍선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기, 선생을 애타게 찾는 치나츠 역시 자신의 어디론가 사라진 안경보다 선생의 신변을 확보하기 위해 무너진 잔해를 헤집고 있었다.


(안 돼..... 두 번은 안 돼....)


좀처럼 잡히지 않는 자신의 평정심을 다스리며 헤메던 그 때,


"ㅇ.... 여기.... 여김다...."


힘 없는 목소리가 치나츠의 귀에 살짝 얹힌다.


"지금 바로 그리로 가겠습니다. 선생님은 무사하신가요?!"


"미네.....미네 단장님이......."


잔해 속에서 들려오는 이치카의 힘없는 목소리의 의미를 아는 치나츠에게 다른 부상자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만... 잠시만요...!!"


이미 상처투성이의 손으로 크고 작은 잔해와 파편들을 걷어내고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요..... 조금만 더.....)


긁히고 페이는 상처따위, 흐르는 땀과 피 따위는 이미 잊은지 오래. 본인의 힘으로 걷어내기 어려운 크기의 콘크리트 덩어리를 마주하자 온 몸을 이용해 밀어내려 한다.


(진짜 조금이면 되니까요.... 버텨주세요 선생님.... 제발....!!)


"끄으으......으으윽.....!!"


절로 나오는 신음소리는 이미 그녀의 대략적인 신체적 한계를 규정하는 듯했으나, 위기의 상황임을 직감한 몸이 리미터를 풀어내고 나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으으으.... 으아아아아아!!!!!"


신음이 기합찬 소리로 바뀌고, 이제 얼핏 보이는 틈새로 익숙한 디자인의 진압 방패가 보이기 시작한다.


(미네 단장님이라고 말씀하셨다면...!)


- 투콰쾅!


바로 그 순간, 건축자재들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밀려내려간다. 의탁할 곳이 사라진 치나츠의 몸 역시 그 앞으로 넘어진다.


- 철퍼덕!


"으으..... 으아......"


(된.... 건가요....)


굴러떨어진 채 본능이 풀어낸 리미터의 반동을 그대로 받고 있는 치나츠가 신음소리만을 내지르던 그 때.


- 우득... 우드득.....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 파파파파파팟.....


다시금 그녀의 얼굴 위로 크고 작은 파편들이 날아온다. 겨우 팔을 들어 파편들을 막아내는 치나츠.


"....... 으윽.."


"치나츠 씨! 그 쪽에 계십니까!"


"..... ㄴ... 네....."


(미네 씨....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에 힘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최악의 상태까지는 아님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반대급부로 모든 힘을 쏟아내고 탈진 직전에 놓인 치나츠는 완벽한 그로기 상태였고, 그 뒤로 미네가 무어라 외치는 말은 그녀에게 들리지 않았다.


(.......... 됐네요.)



~~~



한편, 미네의 시점


방금 전까지 진압방패로 선생과 이치카가 쓰러진 공간을 겨우 지탱하던 그녀.


치나츠의 헌신은 그녀로 하여금 진압방패에 같은 힘을 주고 있음에도 무언가 위로 들린다는 느낌을 받게 하기 충분했고, 방패를 내질러 갇힌 공간의 '뚜껑을 따는데' 성공했다.


(허억..... 후우.... 쉽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선생과 이치카의 상태를 번갈아 쳐다보는 미네.


이치카의 부상은 경미한 수준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폭발을 직격으로 맞은 탓인지 한 쪽 팔에서 시작된 화상은 등으로까지 이어진 듯했다.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기적으로 보일 지경.


"이치카 씨....?"


".... 저는 괜찮슴다. 그보다 선생님을..."


그녀의 말에 이번에 선생을 쳐다본다. 얼핏 보기에 큰 상처는 없어보였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기이할 정도로 멀쩡'했다. 단지 의식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도의 치료가 필요하지 않을 수준.


분명 이 상황에서 트리아지*를 시행한다면 선생을 그린 존, 이치카는 최소 옐로우 존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 트리아지(Triage): 응급 상황 발생 시 환자의 치료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분류 체계


"..... 선생님이 우선임다 단장님.. 지금은 그게 맞슴다."


"이치카 씨의 상태를 본인이 보지 못해서 하는 말이에요. 이치카 씨도 후송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밖에 들리던 목소리로 보아 치나츠 씨는 아직 괜찮은 듯하니, 응급의학부의 조치를ㅡ"


"단장님."


"...네?"


서열로 따지자면 구호기사단의 수장이자 요한 분파의 수장인 미네에게 일개 정의실현부원이 말을 끊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 생각하겠지만, 절박함이 묻어나오는 눈빛을 본 미네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어떻게든 해보겠슴다 저는. 당장 2차 폭발이 있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두 번의 기적을 기대할 순 없슴다."


"크윽......."


정론이었다. 선생의 상태는 기이할 정도로 멀쩡했다. '기적'이라고 불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지경.


그러나 그 매커니즘을 모르는 미네의 입장에서 이는 천운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현상이었고, 이치카의 말처럼 두 번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는 보장 역시 없다.


둘은 모르지만 이미 에덴조약 당시 순항미사일의 폭발을 막은 반동으로 아로나가 다운된 것 역시 사실이었음을 고려할 때 이치카의 판단은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크게 흠이 없었다.


무언가 결심한 듯 미네가 구덩이 밖으로 소리를 지른다.


".... 선생님을 빨리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 합니다! 치나츠 씨,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구멍 밖에서 답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분명, 무거운 지붕을 뜯어내듯 열어준 것은 치나츠였을 터인데, 그녀의 시선은 물론 귀에도 치나츠의 기척은 잡히지 않았다.


"치나츠 씨!!..... 치나츠 씨....? 상태를 알려주세요!"


한참을 되풀이하여 불러보지만 여전히 답이 없는 바깥. 미네의 입장에서 현 상황은 참으로 골치 아픈 상황이다.


높은 우선 순위를 가진 후송 대상은 부상의 정도는 경미하다 못해 없는 수준이나 의식이 없고, 의식이 있는 후송 대상은 부상이 심각하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명과 아이들의 울음이 산발적으로 들려오고 있었고, 익숙한 구호기사단원 몇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구호활동 전체가 타격을 받지 않은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그리고 그 때, 방금 전까지 뚫린 천장을 공허하게 쳐다보던 이치카가 미네의 치마 소매를 잡아당긴다.


".... 이치카 씨?"


"........ 제가 돕겠슴다."


"안 돼요. 그건 절대 안 됩니다."


"....... 대안이 없슴다. 지금 그 누구에게도 우리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저희가 직접 해결하는 것이 맞슴다...."


"그건....!"


무어라 항변하고자 했던 미네도 차마 그 이상을 넘어가진 못했다. 


이치카의 말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거니와, 부상에도 불구하고 나서겠다는 본인의 의지까지 차마 꺾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물론 이치카 역시 쉬이 이 결론에 다다른 것은 아니었다.


고통스러웠다.


작열통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견디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한 쪽 어깨는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힘을 주려 하면 찌르는 듯한 고통이 그녀를 덮친다.


(확실히.... 이번에는 힘들지도 모르겠는데 말임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든.


의식이라면 의식일 것이고 임무라면 임무일 것이었을 그녀의 '포기에 대한 갈망'은 다른 이들이 쉬이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 역시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말임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을 때, 세상 모르고 기절해있는 그녀의 어른을 본 이상 그것은 포기의 대상에서 열외되었다.


이제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 집으로 돌아가는검다. 선생님.)


딱 한 가지면 되었다. 


결심을 마친 이치카에게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하는 미네와, 그런 미네를 보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이치카


"끄으....."


"무리하지 마세요 이치카 씨. 먼저 올려보내드리죠. 그리고 부디 권하건대,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를 찾아주길."


미네의 당부에 잠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치카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한다.


주변을 둘러본다. 치나츠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 다른 이들은 여전히 바쁘다. 세리나는 중상자들을 분류하고 있었고 하나에는 박살난 건물의 잔해를 전기톱으로 뚫어내고 있었다. 어렴풋이, 안 쪽에서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비틀, 그리고 다시 비틀. 어딜 찾아보아도 손에 여유가 있어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초소에 있던 선도부원과 정의실현부원까지 달려와 일을 돕고 있지만 진전이 느린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결국 자신이 해내야 했다.


고개를 돌려 다시 비탈진 잔해더미로 올라간다. 마치 화산의 분화구처럼 움푹 패인 곳에 홀로 나타난 이치카를 보자 경악하는 미네를 보며 애써 너스레를 떤다.


"이야~.... 다들 열심이지 말임다. 저라도 힘내지 않음 안 되겠슴다."


"이치카 씨....."


"죽기야 하겠슴까. 어서 시작하시죠."



~~~



20XX년 XX월 XX+120일 12:01


선생 치료 시작 120일 째,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 지하 벙커 'B-1'


전면전 개시 M+1분



"..........."


".........."


".........."


벙커 안의 사람들은 물론 화상회의로 이 보고를 생생히 들은 이들까지,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종전의 폭발로 발생한 버섯 구름은 밀레니엄 외곽의 CCTV로도 무리 없이 관측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생존을 기대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감히 허락되지 않았다.


"......... 리오."


단 한 사람만 빼고.


"스미레 씨의 주력을 계산했을 때 아마 5분 뒤면 도착할 거에요. 총학생회와의 연락망은 리오 당신에게 맡길게요."


"............"


"치 쨩은 생텀 타워의 권한을 양도받는 대로 가용한 모든 영역대로 쏴줘요. 시간이 많지 않을 거에요."


"....... 히마리. 저기ㅡ"


"마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한 번 더 고생해줘요. 리오 정도의 여자라면 엔지니어부가 무리없이 작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벙커 어딘가에 마련했을 거에요. 셋을 모두 불러와주고, 공격 수단과 예상되는 피해 상황을 하레와 함께 분석하세요. 그리고, 밀레니엄이 발신자인 만큼 수많은 통신들이 쉴 새 없이 밀려올 거에요. 코유키를 붙여줄테니 부탁해요 코타마."


"........ 네 부장."


"저기, 히마ㅡ"


"알아요."


".........."


"알아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생존을 기대하는 건 커녕 시체라도 찾을 수 있으면 다행인 수준이라는 걸 잘 안다고요."


"........ 그럼에도ㅡ"


"그럼에도 해야죠."


"........."


"선생님은 살아계실거에요. 저 아케보시 히마리가 보증해요. 분명 살아계실테니, 이 곳으로 안전하게 모신다는 우리의 목표는 변함이 없어요. 아시겠어요?"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와, 그와 함께 떨리는 손등이 그녀의 불안감을 상징하고 있음에도 그녀의 입은 멈출 줄 몰랐다.


"정말로, 만약 정말로 선생님께서 살아계시지 않다면 시신이라도 온전히 수습할거에요. 되살릴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할 거고 하다 못해 정신이라도 어딘가에 이식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거에요."


"...... 선배. 그건ㅡ"


"그렇게라도 해야!!!"


얼핏 읽기에 분노에 차 버럭 소리를 지른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지만, 고함을 치는 히마리의 두 볼에는 이미 강 두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 그렇게라도 해야.... 그렇게라도 해야 해요. 어떻게든 살아계실 거라고 저와 약속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죽어도 살려낼 거에요. 잊었어요? 선생님이 우리에게 무슨 존재인지? 다들 까먹었냐고요. 아직은 안 돼요. 아직 우리는 선생님께서 주신 것의 반의 반의 반도 못 갚았어요. 물론 바보같은 선생님은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시겠죠. 그럼 이렇게 떠나보낼까요? 그러길 원해요 다들?"


".........."


"적어도....... 적어도 저는 아직 선생님께 갚아야 할 것이 많아요. 함께........ 보냈던 시간에서 느꼈던 행복의 절반이라도 되돌려드리고 싶어요......... 같이 하고 싶은 것도........ 더 많다고요. 여러분이 뭐라고 생각하든간에 저는 포기 안 해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 도와줘요 다들."


울먹거리며 겨우 말을 마친 히마리를 본 그 누구도 그녀를 힐난하거나 그녀에게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 마키가 가장 먼저 엔지니어부를 소집하기 위해 자리를 뜨고, 리오 역시 주어진 일에 집중하려 한다.


유우카와 노아 역시 이미 눈물로 얼굴이 범벅이 되었지만 이를 꽉 깨물고 눈 앞의 콘솔에 집중한다.


"...... 샬레는, 선생님께 진 빚이 많은 걸로 알아."


[......... 맞습니다.]


"선생님께서 바라지 않는 일이실지도 몰라. 어쩌면 여전히 위험할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만큼은 우리가 선생님을 구하는 게 맞아. 그 빚을 갚으려면 우선 갚아야 할 대상이 있어야 하잖아."


[역시 동의합니다.]


[여기는 FOX 소대, 동의한다.]


[아리우스 스쿼드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전 방위실장. 그 자리에 있는 거 알아. 괜찮다면 등장해줘."


[................]


"총학생회장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행정 사무원이라면 일일 비행 계획 정도는 승인할 수 있지?"


[...... 무슨 생각인지는 압니다만ㅡ]


"... 월권 해본 적 있잖아. 두 번은 어렵지 않을 거야."


[.... 이런 상황에서까지 저를 멕여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알면 해줘. 어차피 한 번이나 두 번이나 그게 그거잖아."


[...... 무선망이 복구되었을 때에 한하겠습니다.]



~~~



20XX년 XX월 XX+120일 12:06


선생 치료 시작 120일 째, 티파티 테라스


전면전 개시 M+6분



"..... 네. 네 그렇게 하시죠. 저희 쪽도 가용한 전력을 총동원하겠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 탈깍.


다소 거친 마찰음을 일으키며 수화기를 찾는 것이 마치 방금 전까지 수화기를 쥐고 있던 이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저기.... 나기사 님...?"


"게헨나 측도 상황을 인지하고 있고, 소속을 가리지 않고 일단 인명 구조를, 그리고 선생님의 신변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비서실장, 츠루기 씨에게 정의실현부 인원들도 증파가 가능한지 여쭤봐주세요."


"...... 네.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이 자리로 복귀한 뒤에야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는 나기사였다.


솔직히, 당장에라도 뛰어가고 싶었다.


본인 역시 에덴조약 당시 비슷한 공격에 휘말린 적이 있다.



~~~



(몸이......)


(뭔가요 이 상황은...)


나기사의 회상 속 그녀는 잔해에 파묻혀있었다.


마지막으로 생채기가 난 것이 언제인지는 오늘 이후로 강렬히 각인될 것임을 암시하듯 온 몸에 긁히고 찢긴 상처, 피가 흐르는 자국이 선명하다.


그러나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다. 키보토스인의 신체적 특성이 아니었다면 진작 뼈와 살이 모두 증발했을 터. 


(일단 침착하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태평한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강경파라든지, 아니면 저희 몸값을 노린 테러리스트라든지,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을 테지만, 그 배후를 찾아내서 엄벌에 처한다면 회담 자체는 충분히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거에요.)


다년의 티파티 생활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것은 일정 수준 이하의 위기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침착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강점이었다. 지금의 그녀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회담이나 국가원수급 인물의 공식 일정에 테러를 가하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었고, 티파티와 만마전, 선도부와 정의실현부, 그리고 샬레ㅡ


(잠시만요. 샬레?)


순간 나기사의 머리 속에 존재하던 기억, 선생의 존재가 되살아났다. 


(.......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요. 정의실현부가 건재하고 선도부도 선생님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더랬죠. 폭발에 휘말리지 않은 인원이 분명 있을 것이고, 구조ㅡ)


구조라는 용어의 등장이 그 때까지 소통원활하던 나기사의 두뇌 속 도로에 꽉 막힌 정체를 불러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그 순간


"선도부장!!!!!"


(..... 이 목소리는...하스미 씨?)


밖의 상황을 알지 못하니 지금 그녀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최근 들어 부쩍 게헨나에 대한 혐오감정이 악화된 하스미가 선도부장을 저런 목소리로 불렀다면 뭔가 일이 발생했다는 뜻.


(....... 부디 하스미 씨가 오해하진 않았으면 하는데요.)


"선생님을 부탁합니다!!!!!"


(...... 뭐라고요?)


선생님, 구조, 부탁. 지금까지 나기사의 사고를 멈추게 했던 세 가지 요소를 머릿속에서 조합해보았지만, 도무지 긍정적인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의 구조를 부탁한다...?)


(선생님을 구조했으니 이 뒤를 부탁한다...?)


(선생님의 구조에 실패했으니 구조를 부탁한다...?)


애써 부정적인 결말을 빼보려는 하스미였지만, 적어도 선생이 '구조를 요하는 상태'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선생...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선도부장의 목소리...!)


"저깁니다! 선도부의 소라사키 히나, 발견했습니다."


(...... 이건 누구의 목소리죠?)


"마담은 당신이 그녀의 계획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말하더군."


(...... 마담? 대체 이건 또 무슨)


- 타앙!


"세나!!!"


(.....어?)


순간 나기사의 세상이 멈췄다.


누군가 선도부장과 같이 있는 히나에게 총격을 가한 것. 그게 아니고서야 낯선 목소리들이 히나를 찾았다고 말할 리 없었고 (아마도 선생으로 추정되는 '당신'에게) 계획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 터. 나기사의 직감에 저들은 테러리스트들이었다.


그리고


(세나...... 게헨나의 응급의학부....장?)


순간 떠올려버린 세나의 신원은 나기사의 세상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무어라도 해야 했다.


당장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테러범을 직접 잡지는 못하더라도 티파티의 호스트가 건재함을 알려야 한다.


선생에게 공격이 집중되고 있다면 더더욱 그리 해야 했다. 그와 키보토스인의 차이는 그녀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기에.


"여... 여기이힉..... 쿨럭...."


그러나 그들에게 닿을 정도의 큰 소리는 그녀가 깔린 자세에서 불가능한 것이었다. 시선을 아래로 하자 이미 복부가 잔해더미에 짓눌려있었고, 목 역시 좌우로는 사실상 움직일 수 없는 상황. 배에 힘을 주어 소리치는 것은 커녕 지금의 데시벨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 제발..... 누구든.... 허억.... 허....."


힘없는 그녀의 목소리는 2차적인 폭발과 앰뷸런스가 내는 사이렌, 시작된 총격전 속에 서서히 묻혀갔다. 


상황이 정리되고, 나기사가 발견되었을 때 그녀는 이미 구조 신호를 보내다 지쳐 의식을 잃은 채였다.



~~~



그 때의 그녀는 무력했다. 


미카 정도의 완력이 있었더라면 그까짓 잔해더미 따위 걷어낼 수 있었다.


세이아 정도의 예지 능력이 있었다면 더 좋은 판단을 이끌어낼 수도 있었다.


그 자리에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대신 깔려 있었다면 선생의 배에 끔찍한 흉터가 남지 않을 수도 있었다.


결국 정치적 수완이라는, 상황에 전혀 매치되지 않는 그녀의 능력은 선생이 응급의학부로 실려가기까지 그저 무기력하게 이를 지켜보게끔 만드는 요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적어도 지금은


그녀가 일단 큰 문제 없이 살아있고


무선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큰 이상이 없으며


주요 간부진과 트리니티 방위군 역시 수뇌부가 건재하다.



두 번의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에덴조약 이후 묵었던 앙금을 풀었고, 이제 정말로 꽃길만 걸으면 되는 미래만을 남겨둔 선생과 자신의 관계를 영영 지키지 못할 곳으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미카에게 장난조로 했던 '선생 쟁탈전'에 참여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벼운 분위기에서 서로의 옛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좋은 분위기의 카페나 전시회를 함께 가고 싶었다.


어렵사리 얻어낸 관계의 정상화를 가져버린 이상, 그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 나기사 님. 방금 정의실현부의 증원이 중립 경비 구역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아마 늦어도 15분 뒤면 도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주요 간부진은 함께 하나요?"


"하스미 부부장이 함께할 예정입니다."


"......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츠루기 씨가 갖는 무게감이 있으니 적절한 인선이네요. 알았어요. 상황이 진척되는 대로 알려주세요."


고개를 깍듯하게 숙이고 물러나는 비서실장. 


(좋아요. 일단 이 정도로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에요. 후속 공격이 들어오지만 않는다면 아직까지는 해볼 만한 싸움이에요.)


상황을 무턱대고 낙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은 나기사의 모습.


이대로면 그녀의 계산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


선생을 구호기사단이 구출해낸다면 더욱 좋을 것이며, 그것이 아니더라도 우선 선생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기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기사는 이 시점에서 깨달았어야 했다.


너무나도 순조롭게 상황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적어도 한 번 이상 의심해보아야 한다는 것을.




~~~



20XX년 XX월 XX+120일 12:15


선생 치료 시작 120일 째, 게헨나-트리니티 접경지대 동쪽 끝


전면전 개시 M+15분




"전방 적 출현! 이동 중인 기계화 병력 다수! 교전 허가 바람!"



~~~



약(한 자들은 버틸 수 없는)피폐로 갑시다


이번 주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다음 주, 추석 연휴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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