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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 보다 장미로

ㅇㅇ(1.227) 2020.07.25 15:02:05
조회 252 추천 10 댓글 4
														

그래서 어쩌실 겁니까, 스승님?”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물었다. 하지만 스승님 역시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치하게 본드나 불고 앉아있는 스승의 모습에서 지성이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결국 참다못한 나는 고함을 질렸다.


스승님!”


, 또 왜. 고막 떨어질 뻔 했잖아.”


그게 사실이라면 한 번 더 소리를 질러주고 싶다. 이토록 중대한 판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서 저렇게 태평한 짓거리나 하고 있는 인간이 내 스승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스승님에게서 본드를 뺏었다. 그리곤 부드러운 어조로 타일렀다.


스승님, 어서 결단을 내리셔야지요. 그 지혜로운 머리와 고매한 인품을 본받고자 하는 달의 백성들이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슬퍼하겠습니까?”


너 뭐 잘못 먹었니?”


으르렁거리는 내 모습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스승님은 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폈다. 그리곤 귀를 파면서 말했다.


글쎄, 아마 죄를 지워주겠다는 말은 진심일 거야. 달의 도시도 지난번 이변으로 상당히 궁지에 몰린 것 같으니까.”


저는 통 모르겠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더러움을 없애주는 약이라니요.”


사실 그런 약이 있으면 환상향과 달의 도시가 그렇게 오랜 세월 간 서로 짖어댈 리도 없었다. 그러니 그런 망상에 가까운 약을 만들어 달라는 달의 요구는 솔직히 억지에 가까운 것이었다. 차라리 봉래의 약 쪽이 더 상식적이지 않을까?


불가능한 한 건 아니야. 실제로 시제품도 좀 있고.”


스승님의 무덤덤한 어조에 그냥 넘어갈 뻔 했다. 나는 경외감이 섞인 비명을 지르며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스승님은 귀를 막으며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고막 떨어진다고.”


아니, 그런 게 있다면 이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잖아요? 여태껏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거예요?”


그런 전설적인 약이 있다면 당장 쓰지 않고 무얼 했는가? 아니, 그럼 애당초 봉래의 약을 쓸 필요도 없었던 것 아닌가?


그게, 부작용이 좀 있거든.”


부작용?”


수명이 절반으로 줄어.”


나는 살아있는 생물의 더러움을 없애준다는 그 효능에 감탄할 지, 아니면 수명을 절반씩이나 깎아먹는 부작용에 경악할 지 고민하였다. 결국 나는 도덕성을 지향하는 의사 조수답게 반대 의사를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위험한 약을 납품한다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대체 그 월인 놈들이 어디에 그 약을 써먹으려고……”


나도 그 월인 놈들 중 하나거든? 아무튼, 환상향은 아니라잖아. 까짓 것 우리가 알 바는 아니지 않겠어?”


스승의 관자놀이에 총으로 구멍을 좀 내주면 어떨까, 하는 욕망을 느끼며 나는 그녀를 설득했다.


그래도 그 별에 사는 생물들은 무슨 죄입니까. 더구나 그 사실에 분노해서 우리를 죽이려 들지도 모르구요.”


우동게, 넌 한가지 사실을 간과했구나.”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스승을 쳐다보았다. 내가 기억에서 빠뜨린 정보가 있었나?


죽는 건 너지, 우리가 아냐. 너만 봉래인이 아니잖니.”


아아, 참으로 세상은 불공평하다. 어찌하여 악마를 낳고 또 인간을 낳으셨나이까. 아니면 인간의 타락 속도가 악마보다 빠른 것일까?


왜 그렇게 손가락을 꿈틀거려? 엿이라도 날리게?”


아뇨, 외계인 손 증후군이라서요.”


나는 부들거리는 손을 꽉 쥔 채 웃음을 지어보였다. 제길, 이딴 놈이 내 스승만 아니었어도.


어쨌든, 전 동의 못합니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이기적인 행보에는 저도 지쳤다구요. 월인들도 더 이상은 스승님을 호구로 보지 못하게 단단히 거절해야 합니다.”


스승님은 잠시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그야말로 현자와도 같은 위광이 나는 듯 하였다. 매일 저렇게 닥치고만 있으면 백배 나을텐데. 내가 스승의 날 선물로 구강 지퍼를 드리는 상상을 하고 있자니, 스승님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만약 그 생물들이 장미 6송이라면?”


?”


내가 예전에 그 행성에 잠시 들러본 적이 있는데, 사실 거긴 장미 밖에 없어. 그나마도 척박한 환경인지라 그 넓은 토지에 6송이 뿐이고.”


나는 잠시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스승님이 그 먼 곳까지 가본 적이 있다는 사실은 무시하더라도, 장미라니. 6송이의 장미가 어떤 생각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어이없다는 쪽이었다.


그게 전부입니까? 장미 6송이가요?”


그래, 6송이.”


“……확실히 적긴 하네요.”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껏 반대 쪽에 입장이 기울어져 있던 나조차도 마음이 혹하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장미 6송이를 희생해서, 아니 그마저도 생명을 뺏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수명을 줄이는 것으로 우리의 죗값을 치를 수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약한 꺼림칙함을 떨치고 약을 보내는 쪽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불편함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인간에게 제일 필요없는 것은 도덕성이라지.”


나는 스승님의 말에 반응하여 고개를 들었다.


도덕성은 합의와 환경의 결과물이고, 그 여건들이 안 갖추어 졌을 때 제일 먼저 버려지는 것 또한 도덕성이기에.”


스승님은 나를 곧게 쳐다보며 이어 말했다.


그냥 한 번 해 본 소리야.”


“…….”


난 결정했어. 나나 너를 위해서가 아닌, 공주님을 위해서 약을 납품하기로. 이의는 없지? 그럼 이상.”


나는 가볍게 목례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스승님은 약을 전달하기 위해 달로 향했다. 나는 공주님과 오랜만에 놀러온 테위의 저녁 식사를 차려 거실로 향했다.


에이린은? 다이어트라도 해?”


아뇨, 약을 납품하러 갔어요.”


나는 공주님께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드렸다. 그 말을 옆에서 듣던 테위가 오오 하는 감탄을 뱉으며 말했다.


다행이네, 이제 눈치 볼 것도 없어졌고 말이야. 완전 이득 보는 거래 아니야?”


그런 것 같아.”


나는 웃음 지으며 테위를 바라보았고,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한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카구야 공주님은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말했다.


이나바.”


? .”


갑자기 호명당한 나는 당황하며 어버버거렸다. 그런 나를 질책하지 않은 채, 공주님은 말을 이어나갔다.


한 가지 이야기를 해 줄게. 예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연방의회의 담화야.”


카구야 공주님께서 해주셨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패스토어: 이 가속기가 국가 안보에 어떤 식으로든 관계될 희망이 있습니까?

윌슨: 아니오. 그렇지 않을 겁니다.

패스토어: 전혀 아닙니까?

윌슨: 전혀 아닙니다.

패스토어: 그런 관점에서 전혀 가치가 없습니까?

윌슨: 저희가 생각하는 다른 관점에서만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 문화에 대한 사랑, 그런 것들과 연관되어야 합니다. 군사적인 면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패스토어: 아니, 미안해 하실 건 없습니다.

윌슨: 알겠습니다. 아무튼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응용될 수는 없습니다.

패스토어: 이 프로젝트가 소련과 경쟁 관계에 있는 우리에게 제시하는 바는 없습니까?

윌슨: 오직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기술 발전에 있어서만 그렇습니다. 그 외에는 가속기는 이런 것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화가인가, 좋은 조각가인가, 훌륭한 시인인가와 같은 것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 나라에서 우리가 진정 존중하고 명예롭게 여기는 것, 그것을 위해 나라를 사랑하게 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새로운 지식은 전적으로 국가의 명예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 나라를 지키는 일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도록 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나는 공주님이 이런 애기를 갑작스레 꺼내시는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다. 내가 벙찐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자니, 공주님께서는 한 마디를 더 붙였다.


결국 선택은 네 몫이야. 에이린을 쫓아가서 말리든, 아니면 여기서 관망하든.”


공주님의 말을 잠시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시일 뿐이었다. 나는 식탁에서 부리나케 일어났다. 그리곤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며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공주님!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테위, 너 공주님 잘 모셔!”


뒤에서 테위의 당혹스런 외침이 들려오는 것을 무시한 채 나는 날아올랐다. 저녁 공기는 다소 쌀쌀했다. 나는 끊임없이 비상했다. 이제는 지고있는 태양의 붉은 자취가 퍼져나갔다. 나는 구름 너머로, 지구 너머로 나아갔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폐가 쥐어짜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스승님이 보일 때까지 계속 날아갔다.


마침내 달이 보이고 지구가 까마득해졌을 때, 나는 스승님의 형체를 보았다.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목소리는 당연하게도 우주였기에 전달되지 못했다. 대신 나는 탄막을 쏘았다. 놀란 스승님이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헥헥거리면서도 손을 흔들며 스승님께 다가갔다. 그리곤 수화를 보냈다.


- 스승님!


- 우동게, 무슨 일이니?


- 스승님. 그 약을, 그 약을.


스승님은 어리둥절해 하며 약 봉투를 들어올렸다.


- ? 이 약이 왜?


나는 그 약을 낚아채서 그대로 삼켜버렸다. 이것으로 그 행성에 더러움을 남길 걱정은 없을 터이다.


스승님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빈 약 봉투를 에이린에게 건넸다. 그리곤 말했다.


- 다녀오겠습니다. 모레까진 돌아갈게요. 먼저 영원정에 가 계세요.


나는 스승님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향했다. 장미 6송이가 있는 그 행성으로. 준비해 왔던 모종삽과 화분들, 그리고 식물용 간이 위성이 배낭에서 덜그럭거렸다.


나는 스승님이 택한 길도, 공주님이 알려주신 길도 택하지 않았다.


스승님이 하신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도덕성은 늘 먼저 버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버려진 그것들을 주워주는 사람도 있어야 할 것이다.


내 약학은, 내 인생은 그것들을 위해 쓰일 것이다.


---------


쉬는 시간에 간단히 써봤습니다.

분량으로는 단편도 안 되는 짧은 작품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른 작품 보기 - 마법과 기술의 장 / 그 해 초여름 / 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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