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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 개벽

ㅇㅇ(1.227) 2020.07.25 19:05:09
조회 219 추천 6 댓글 1
														

내가 그 무리를 처음 본 것은 7월 중순 무렵이었다. 비가 좍좍 쏟아지고 바람이 미친 듯이 불던 나날이 지날 무렵, 해가 따갑지 않게 내리쬐던 어느 날. 다수의 요괴 무리가 인간 마을을 찾았다. 때마침 친구를 만나러 마을 가에 내려와 있던 나는 그 치들을 볼 수 있었다. 요괴들치고는 퍽 점잖게 빼 입었던 그들은 연신 피켓을 쳐들며 외치고 다녔다.


국방비를 인하하라! 서로가 서로를 존엄한 생물로서 여기게끔 해달라!”


나는 대관절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환상향에 국방비라니. 더구나 후문의 존엄이 무엇을 의도하는지는 지레 짐작할 수도 없었다. 한차례 그렇게 떠들고 난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와 무어를 나눠주길, 보고 나니 공과금 청구서의 사본이었다. 실로 궁금증을 북돋는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그 중 한 명을 붙잡고 캐물으니, 그녀는 새초롬한 얼굴로 늑대 귀를 꿈틀거리며 대뜸 짜증을 내었다.


아니, 요즘 소식도 모르시나요?”


, 내가 원체 귀가 어두워서 그러니, 아가씨가 이해 좀 해주시구려. 대체 어인 일이오?”


내가 되려 살갑게 대하자, 그녀 또한 마음이 누그러진 듯 짐짓 날카로우면서도 간드러지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녀의 말을 듣자하니, 최근 환상향이 외부 세계와 교류를 시작한 것이 모든 일의 발단이라고 하였다.


대뜸 저희를 외부 세계의 침략으로부터 지켜줄 테니 세금을 걷겠다는 거 아니겠어요? 나 원, 어이가 없어서. 언제부터 우리 같은 요괴들에게 관심이 그리 많았다고.”


그녀는 투덜거리며 설명을 계속 했다. 환상향의 현자들은 국방이라는 명목 하에 인간을 제외한 모든 요괴, 요정, 유령 등의 종족에게 일괄적으로 세금을 징수했고, 당연히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하고 있는 운동 역시 그 일환이었고.


그네들 말로는 외부 세계의 힘은 강력하기에 불가피한 조처래요. 그래요, 거기까지는 어떻게든 이해를 하겠어요. 하지만 대체 돈을 걷어서는 어떻게 쓰겠다는 건지 도통 입을 안 여니, 오죽 속이 터지겠어요?”


사정을 잘 모르는 내가 듣기에도 참으로 의심스러울 만 하였다.


게다가 침략, 침략 하는데, 과연 그 침략이라는 게 실제로 있을까요?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수단에 지나는 것은 아닐까요?”


죽림에만 틀어박혀 있어 얼마 전까지 환상향이 개방된 사실도 몰랐던 나로서는 대답이 궁했다. 그저 우물거리고만 있자니, 그녀는 억울하게도 나를 닦달하며 몰아부쳤다.


당신 인간이죠? 전 이것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어째서 지켜준다면서 요괴에게는 돈을 짜모으고, 인간들은 방치하는 거죠? 일일이 구별해서 지켜주기라도 할 건가요? 현자들은 노망이 난 게 틀림없어요. 그런 엉터리 세무나 하다니!”


그녀는 크게 한 호흡 들이쉬고는 앙칼지게 내뱉었다.


당신도 처신 잘 하도록 해요.”


나는 그녀의 말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녀들은 그렇게 떠나갔다. 나는 친구를 불러 이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 그래. 내게도 그런 것이 왔었지.”


그녀 역시 똑같이 생긴 서류를 꺼내며 말했다. 불로불사이긴 했으나, 종족상으로는 인간이었기에 나에게는 오지 않은 듯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참으로 안되었다며 위로를 하고, 현자들이 성시 탐욕적이라며 화를 내었다. 그런데 정작 내 친구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건 자네의 생각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서 빌려낸 생각인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황망하여 어찌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녀는 내 속내를 꿰뚫어 본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마 세속엔 별 관심도 없는 자네가 그런 사상을 취했을 것 같지는 않고, 분명 오늘 시위대의 구호를 본 뜬 것이겠지. 날 생각해서 그런 말은 한 것은 알겠지만, 글쎄, 굳이 말하자면 필요 없는 위로였네.”


친구의 말에 내심 상처를 받으면서도 나는 그 의도가 궁금해져 묻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나는 직설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건 무엇 때문인가? 내 오래 살았지만, 하다하다 증세에 동의하는 자는 처음 보네. 더군다나 목적도 불분명한 징세 아닌가?”


일반적으로는 반대하겠지, 그래. 하지만 나는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좇는 일을 더 중시한다네.”


이건 또 무슨 봉사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나는 그녀의 나쁜 기질, 그러니까 말을 비비 꼬아서 하는 습관에 불이 들어온 것을 눈치챘다. 예전에도 워낙 많이 당해온 터라 가능한 말려들고 싶지 않았기에, 부러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매길 수 없다면 그게 무슨 가치인가? 나와 선문답을 하고 싶은 거라면 극구 사양하겠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사과를 하였다.


미안하네. 자네 말이 약소 요괴들의 말과 워낙 똑같아서 말이야.”


그녀는 큼큼 헛기침을 하고는 이어 말했다.


자네는 국방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라를 지키는 힘이지, 그 외에 무에 있겠나?”


그러자 친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길,


자네 말은 반만 맞은 것이네.”


나는 아무 말 없이 담뱃갑에서 한 개피를 꺼냈다. 입에 물자 늘상 그러하듯 저절로 불이 일어났다. 한 모금 주욱 빨아들인 뒤, 그녀에게 채근했다.


계속해보게, 케이네.”


, 일단 자네가 내렸던 정의부터 시작해보지. 나라를 지키는 힘. 참으로 명료한 뜻이네만, 실상 그 이상의 의미가 함유되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지. 나라가 다 무엇인가?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의 집합체가 아닌가?”


가끔씩은 국민들의 분란을 조장하기 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만.”


이 사람 참, 말을 해도. 자네가 그렇게 윗대가리들에게 적개심을 품는 것도 다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길 원하기 때문 아닌가? 그러니 자네도 나라 자체를 사랑하고 나라 그 이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지.”


나는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할 정도의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력이 필요하지. 여기서 국력은 비단 군사력만은 아니야. 경제력이든, 예술-문화이든,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지.”


나는 어쩐지 친구가 할 말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았기에 조급하게 튀어오르는 내 마음을 조심히 억눌렀다. 잠시간의 침묵 후에,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그 중 필수로 꼽히는 것이 군사력이지. 이건 어쩔 수가 없어.”


어쩔 수 없긴 하지.”


그렇지. 결국 더럽다 추악하다 하지마는, 자신의 것을 보존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국방은 필요한 거야. 그걸 위해서 지금 국방비를 걷는 것이고. 물론 왜 인간들은 내버려두고, 요괴들만 긁어대냐고 불평하는 이도 있지. 하지만, , 미안하네. 딱히 내가 본질적으로 요괴라거나 자네가 인간이라는 문제를 건드리려는 건 아니야. 단지 이건 종국에는 요괴와 인간의 첨예한 대립 구조로 귀결될 것이란 얘기지.”


여기까지 듣고난 나는 담배를 다시 한 모금 머금고는 말했다.


본론만 말하게, 본론만. 자네가 불투명한 징세를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래야 우리가 명예롭게 여기는 것들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야. , 정확히는 사태가 워낙 급하기 때문도 있지만. 지금 외부 세계는 우리의 존재에 경악하고 있지만, 그 혼란이 잦아들면 환상향을 좋은 개척지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을 걸세. 그것을 막기 위해선, 적어도 대등한 입장에서 외교를 하기 위해선, 조금의 부정 정도는 눈감아 줄 수 밖에 없네.”


나는 침묵했다. 내가 지나치게 이상을 좇는 탓일까? 그녀의 말은 빛 좋은 개살구처럼 들릴 뿐이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저녁을 먹고는 그 집을 나섰다. 낮게 깔린 밤이 지붕들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부분부분 현대화된 건물들이 어둠 속에서도 발광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어둠을 불렀다.


루미아.”


검은 구의 형체를 하고 있는 그것은 내게 허겁지겁 달려오는 듯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챙겨놓았던 육포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육포는 칠흑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육포가 찢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맴돌았다. 나는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아서 말헀다.


오늘 시위대를 보았어.”


찌익, 찌익.


그들은 지금의 이익에 급급하여 미래를 보지 못하더군. 나도 그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고, 솔직히 어느 정도 공감은 하네. 그런 불합리함은 최종적으로는 고쳐야겠지. 하지만 당장은 바르지 않아, 당장은. 결국 파국에 이를 어린 양 떼들.”


질겅, 질겅.


친구는 지금의 체제를 옹호하더군. 존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급박한 시국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말이야. 어리석은 나로서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수 밖에 없었지. 나는 마지막까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어. 세속에 찌든 내 친구여.”


소리가 멎었다. 나는 루미아를 힘껏 부둥켜 안았다. 그리곤 그녀의 어둠 속에 고개를 파묻곤 중얼거렸다.


나는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혼란스럽기만 해. 이 세상에 내가 추구할 수 있는 이상이란 없는 걸까? 정녕 현실은 현실로만 남아야 하는 걸까? 난 이제 더 이상 결정을 내릴 수 없어.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체계들이 모조리 붕괴하는 느낌이야.”


내 머리에 육포가 떨어졌다. 나는 어리둥절해 하며 머리를 들었다. 주위를 감싸고 있어야 할 어둠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달빛이 루미아의 옷자락에 스며들고 있었다. 어느새 훌쩍 자라난 그녀는 성숙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모코우.”


나는 잠시 얼빠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이지, 모코우?”


나는 월광에 홀린 듯 저도 모르게 말했다.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 그러기 위해 필요로 되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


그런 것이 있을까? 내가 그런 일을,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루미아는 빙긋 웃으며 말하였다.


만약 네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세상을 원한다면, 세상을 위해 살았다는 것이 실로 영예로움이 되길 원한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사랑으로 매듭지어지길 원한다면.”


나는 숨을 멎었다.


루미아는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


빛이 있으라.”


다른 작품 보기 - 마법과 기술의 장 / 그 해 초여름 / 보다 장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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