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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번역] 뼈형제가 프리스크 키우는 소설 -7-

ㅃㅂㅎ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4.20 22:35:45
조회 4499 추천 85 댓글 21
														

저자 LeiaLibelle
원제 Puzzles might be fun if you tried them
출처 http://archiveofourown.org/works/5205647


* 번역 지적은 언제나 환영한다.


1-2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288663
3-4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292633
5-6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308974
7-8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318762
9-10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331889
11-12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345127



퍼즐도 해 보면 재밌을 거야


파피루스는 인간을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고 약속했지만,
끊임없이 누굴 죽이려는 아이를 키우기는 역시 만만치 않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말자.




13.



  너는 이불을 둘둘 감고 소파에 앉아 있다. 파피루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핫초코를 마시라고 가져다 준다. 머그잔을 받아 보니 손이 따뜻해서 좋은데 아직 마시고 싶진 않다. 샌즈는 옆자리에서 너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너는 무슨 얘길 해야 할지 모르겠고 마음이 편치 않다.


  “야 팝. 지금 생각난 건데, 워터폴에 나는 식물 중에 인간 병에 좋은 약초가 있다더라.”


  “형 바보 맞지! 그걸 왜 이제 얘기해? 당장 가서 구해 올게!”


  파피루스는 샌즈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후다닥 달려나가 문을 꽝 닫는다. 샌즈는 미소 짓는다.


  “헤, 진짜 너 낫게 해주고 싶은가 보다……. 근데 거짓말이야. 우리끼리만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너는 샌즈를 마주보지 못한다. 네 손에는 여전히 따뜻한 머그잔이 들려 있다. 너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샌즈가 물어볼 것들이 무섭다.


  “그럼 시작할까?”


  언제나처럼 웃는 얼굴로 묻는다. 너는 말없이 기다린다.


  “나 먼저 얘기한다.”


  샌즈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고 네가 아닌 자기 앞을 본다. 그러니까 너는 왠지 몰라도 조금 더 편해진다. 샌즈는 방금 말한 대로 먼저 얘기하기 시작한다.


  “나는 얼마 전에 폐허 앞에서 요상한 인간 꼬맹이를 만났어. 애가 참 살벌한 데다가, 내 기막힌 장난을 보고도 표정 하나 안 바뀌더라. 진짜 인간 맞나 헷갈릴 정도였어.”


  너는 핫초코를 계속 들여다본다. 손을 덥혀주던 잔이 점점 식어 간다.


  “걔가 나타나고 나서부터 이 동네 괴물들이 하나둘씩 사라졌어. 인간 꼬마가 괴물을 죽이고 다닌다는 소문이 났고, 마을 사람들은 무서워서 다 도망갔다. 그래도 내 동생은……. 음, 너도 이제 알 만큼 알 거야. 걘 그런 인간한테도 기회를 주고 싶어 했어. 만나 보고 설득하고 싶어 했어. 그런데 내 생각엔 걔가 바란 대로는 안 될 것 같았어. 몇 번을 만나 봐도 그 꼬마는 남이 하는 얘길 들을 마음이 없어 보였거든.”


  너는 마른침을 삼킨다. 머릿속에 파피루스를 죽이던 기억들이 펼쳐진다. 이젠 그 기억들이 괴롭다.


  “그런데 안 죽이더라? 엄청 놀랐다.”


  물론이다. 샌즈는 네가 로드한 시간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너는 그래서 더 미안해진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게 다가 아닌 것 같기는 했어. 몇 분 전엔 그런 표정이 아니었거든. 그 사이에 많이 화가 난 것 같았어.”


  샌즈는 잠시 말을 멈춘다. 너는 이야기를 아주 그만두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 때 일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샌즈도 기억하지 말아 주면 좋겠다. 다시는 미움 받고 싶지 않다.


  “이상한 소리긴 한데, 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너는 놀라 고개 든다.


  “그니까, 분노도 감정이잖아? ‘화난다’는 것만이라도 느끼긴 느낀단 거니까, 계기만 생기면 다른 것들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짜증난다, 창피하다, 심심하다……. 그런 건 유도하기 쉬웠지. 그런 거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다른 감정들도 찾아 가더니, 결국에는 죄책감도 느끼고, 남한테 공감할 줄도 알게 된 것 같아.”


  어느새 샌즈가 너를 쳐다보고 있단 걸 깨닫고 너는 다시 고개 숙인다.


  “그래도 말이 안 되는 게 있어. 후회하고 죄책감 느낄 거면서, 그런 짓을 애초에 왜 했을까? 아무것도 느낄 줄 몰랐던 애가, 왜 그랬을까? 누가 시켜서 그랬을까?”


  너는 손이 아플 만큼 머그잔을 꽉 움켜쥔다. 그만 하면 좋겠다. 도망치고 싶다. 샌즈의 얼굴엔 으스스한 웃음이 걸려 있고, 눈은 너만을 바라본다.


  그런데…


  지금 ‘너’ 보는 거 맞아?


  “꼬맹이.”


  돌연 차갑고 날카롭게 말한다.


  “진짜 너는 누구야?”


  재밌네. 저 웃음이며 말투며…… 꼭 ‘나’한테 하는 얘기 같잖아.


  너는 내 생각을 무시하곤 고개 들어 샌즈를 마주본다. 너 스스로 행동하다니 너답지 않다. 너한테 하는 얘기 아니니까 대답할 필요 없어. 사실 지금까지 너한테 얘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얼마 전부터 아니라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천만에. 기억 안 나? 네 몸은 네 게 아니야. 네가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서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단 뜻은 아니야.


  그래도 되찾고 싶겠지. 그렇지? 다시 너로 돌아가고 싶겠지. 잊어버렸던 쓸데없는 감정들이 돌아왔으니까 시시한 행복 따위 다시 갖고 싶겠지. 그렇지만 친구 한둘 생겼다고 앞으론 다 괜찮을 거란 거, 너만의 착각이다.


  나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할게. 계속 내 말 안 들었다간…… 후회하게 될 거야.


  “샌즈…….”


  너는 떨리는 목소리로 종알거린다.


  “나, 다시 내가 될 수 있을까?”


  그러다 큰코다칠걸.


  “나쁜 짓은 그만 하고 싶어.”


  이젠 돌아갈 수 없어. 다신 도망칠 수 없어. 네가 한 짓 하나하나 모두 네가 책임져야 해. 전부 네 책임이야.


  “나 좀,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목소리가 갈라지고 손이 후들거린다. 흔들리는 잔에서 핫초코가 쏟아지기 직전, 샌즈가 잔을 잡았다가 바닥에 내려 놓는다. 샌즈의 눈은 놀라 휘둥그레졌고 웃음은 온데간데없다. 너는 다시 고개 숙인다. 후회되기 시작한다. 샌즈가 너를 도와줄 이유도 믿어줄 이유도 없다. 설령 그럴 이유가 있다 한들 그러지 말아야지 않겠어? 네 편 들었다가는 저 자식도 다칠걸. 너도 알잖아. 그걸 알면서도 도와달라고 하다니, 너 정말 이기적이다.


  문득 샌즈가 네 팔을 잡는다. 너는 무슨 말이 더 나오기 전에 그를 꽉 끌어안는다. 샌즈는 잠시 미동도 없다가 머뭇머뭇 팔을 들어 너를 마주 안아 준다. 너는 바보같아 보여도 불쌍하게 보여도 상관 없을 것 같다. 그저 이 품에 얼굴을 묻고 이대로 있고 싶다. 잠시 후 나지막한 목소리가 말한다.


  “괜찮아, 꼬맹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우리가 지켜 줄게.”


  너는 흐느끼며 더 매달린다. 샌즈는 손을 어디 둘지 모르겠다는 듯 서툴게 등을 토닥인다. 어색하지만 괜찮다. 괜찮다…….


  얼마 뒤 파피루스가 빈손으로 돌아와 숨을 고르며, 찾아야 할 식물이 어떤 건지 알려주지 않았다며 샌즈를 다그친다. 샌즈는 착각이었다고 대꾸하고, 파피루스는 몇 시간 동안 형은 바보라고 투덜거린다.


  너는 전보다 훨씬 개운해졌다. 열은 확실히 떨어졌고 온몸에 기운이 넘친다. 맛없는 스파게티 한 접시를 다 먹으니까 파피루스도 네 감기가 나았다고 믿고 종이와 크레파스를 준다. 드디어 놀 수 있다. 네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검은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네 모습을 보자 화면 속 너도 너를 마주본다. 너는 이제 두렵지 않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샌즈와 파피루스가 도와 줄 테니, 너는 다시 너로 돌아가면 된다. 네 생각은 그렇겠지.




  다음날이 오자 네 감기는 깨끗이 나은 것 같다. 파피루스가 혹시 모르니 밖에 나가지는 말래서, 종일 집안에 얌전히 있는다.


  샌즈가 좀 달라졌다. 너를 대하는 분위기가 좀더 느긋해졌다. 어제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네가 말을 많이 한 건 아니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던 것 같다. 어쩌면 다 이해해준 걸지도.


  그날 밤 잠자리에 누운 너는 문득 깨닫는다. 얼마 전부터 머릿속이 쑤시거나 근질거리지 않는다는 거.


 


  그다음 날 아침, 너는 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샌즈는 텔레비전을 보는데, 파피루스가 달려온다.


  “둘 다 여깄네! 잘 됐다! 굉장히 좋은 생각이 났으니까 얘기해 줄게!”


  “뭔데?”


  샌즈는 여느 때처럼 웃는 얼굴로 묻는다.


  “우리 집 개조하자! 인간이 계속 소파에서 자는 것도 그렇고, 좀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방을 만들어 주자! 어때? 근사하지 않아?”


  “좋은데, 인간 생각도 들어 보자.”


  파피루스는 샌즈 대답을 듣고 이번에는 너를 본다. 너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파피루스 말을 듣는다. 녀석은 잔뜩 신이 나 있다.


  “인간, 네 생각은 어때?”


  너는 멍하니 쳐다본다. 네…… 방?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지만, 이 집에 네 방이 생긴다면, 그건 마치…… 마치 가족이 된 것 같잖아.


  “나, 나도, 좋아.”


  더듬더듬 대답한다. 파피루스는 환하게 웃고, 넌 얼굴이 화끈거린다.


  “만장일치! 우와앗, 진짜 너무 좋다!”


  너는 눈을 떨군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다가 양 끝이 살포시 올라간다. 네 방……. 네 방을 만들어 준단다. 너하고 계속 같이 있고 싶단다. 내가 아니고,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너하고.




  결국 네가 원한 건 그게 다일지도 모른다. 네가 아프면 돌봐 줄 사람, 네가 잠 못 자면 책 읽어 주거나 TV 같이 볼 사람. 네가 손을 다치면 호들갑 떨 만큼 걱정해 줄 사람, 네가 퍼즐을 풀면 칭찬해 줄 사람.


  너는 이대로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게 ‘가족’이 생길지도 모른다. 너는 다시는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고 나쁜 짓을 하고 싶지도 않다. 물론 네가 이미 저지른 짓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너를 용서하지 못할 거고, 어떤 사람들은 너를 미워하거나 아니면 무서워하겠지만, 그래도 파피루스, 샌즈와 함께라면 괜찮지 않을까? 다른 모든 사람들이 너를 싫어하더라도 이 둘이 널 용서해 준다면, 네겐 그뿐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 너는 네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너는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좋았어, 그럼 다녀올게! 아주 중요한 볼일이 있어!”


  파피루스가 활짝 웃으며 외친다. 샌즈도 미소 띤 채 대꾸한다.


  “무슨 볼일?”


  “그건…… 비밀이야! 아무튼 엄청나게 중요한 거, 그러니까 나 위대하신 파피루스 님만큼 중요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거야!”


  샌즈는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 텔레비전을 본다. 파피루스는 다시 너를 본다.


  “나 없는 동안 착한 인간으로 있으렴! 그리고 형 양말 아무데나 못 두게 좀 말려 줘! 너만 믿는다!”


  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인다. 현관문이 열리고, 샌즈는 소파 팔걸이에 기대며 파피루스에게 한 번 더 묻는다.


  “그 중요한 볼일, 정말로 형이 안 도와줘도 돼?”


  “형은 어차피 게으름만 부릴 거잖아! 그리고 물어봐도 소용 없어. 비밀 작전이니까 절대로 안 알려 줄 거야!”


  “그럼 비밀 지켜 줄게.”


  그림이 다 그려졌다. 너는 흐뭇하게 바라본다. 파피루스와 샌즈가 네 양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다. 처음으로 너를 그린 그림이다. 내가 아닌, 너. 셋은 다 웃고 있다. 너는 파피루스가 돌아오면 그 그림을 보여주기로 한다. 보고 기뻐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너무너무 궁금하지? 친구 만난다는 거까지만 알려 줄게! 한 송이 ‘꽃’ 같은 친구야! 녜헤헤헤!”


  파피루스는 자랑스레 외친 다음 꽝 소리 나게 문을 닫는다. 너는 숨이 멎는다. 서서히 고개를 든다. 식은땀이 네 등에 흘러내린다. 말을 해야 하는데 네 입에선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텔레비전 소리도 네 귀엔 여린 메아리처럼 아득하다.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정적만이 방을 메운다.


  프리스크. 내가 여러 번 말했지. 우린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어.




14.



  너는 일어서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숨쉬기가 어렵다. 꽃, 파피루스, 꽃. 다리는 왜 안 움직일까?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렇게 될 줄은 너도 알고 있었지. 싫다고? 그래봤자 뭐가 달라져? 결국에는 전부 다 사라질 텐데. 이 부질없고 잔인한 세상, 하룻밤 악몽 꾼 셈 치면 돼. 우리 약속했잖아. 전부 없애 버리기로 했잖아. 아니야? 어차피 여기까지 와 버린 이상 돌아가긴 늦었어.


  샌즈는 네가 고민하는 걸 알아봤는지 텔레비전을 끄고 네 옆자리로 온다. 떨리는 손을 주먹 쥐어 멈춰 보려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너는 말을 하고 싶다. 샌즈에게 말을 하면 어떻게든 해 줄 것 같다. 너를 도와주겠다고 했으니까.


  “왜 그래?”


  샌즈는 네 어깨를 잡으며 묻는다.


  “파, 파피루스. 꽃…….”


  “꽃?”


  샌즈는 생각에 잠기듯 얼굴을 굳히다, 네 양 어깨를 잡고 네 눈을 똑바로 들여다본다.


  “진정해. 말해 봐. 꽃이 왜?”


  “위험해.”


  숨막히는 와중에 가까스로 한 마디씩 뱉는다.


  “아무것도 못하겠어……. 죽으면 안 돼…….”


  샌즈는 너를 놓고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연다. 찬바람이 훅 들이닥치고, 딸려 온 눈송이가 바닥에 닿아 녹는다. 샌즈는 밖을 내다보고 얼굴을 찌푸린다.


  전부 네 잘못이다.


  “미안.”


  눈물이 네 뺨을 적신다. 너무 늦었다. 너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도 싫은데, 내가…….”


  샌즈는 너를 돌아본다. 무슨 표정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의심하는 걸까? 걱정하는 걸까? 모른다.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럴 줄은 몰랐다. 겨우 감정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는데, 겨우 파피루스를 이해하고 샌즈하고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벌써 끝날 수는 없다. 이제야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네가 할 수 있는 게 무언가는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뭘까? 너 혼자서는 자신 없고 힘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할 거다. 실패하면 어떡해? 너는 세이브를 하려 하는데―


  너에게는 의지가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샌즈가 난데없이 킬킬댄다. 네 귀가 믿기지 않아 고개 들고 쳐다보니, 얼굴도 웃고 있다. 땀이 좀 맺히기는 했지만. 샌즈는 미소 띤 채 눈을 감는다.




  “진정해, 꼬마야. 너 그렇게 겁쟁인 줄은 몰랐다. 너는 싸워 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내 동생 꽤 세. 나하곤 다르게 포기하지도 않아.”


  눈물이 그친다. 포기하지 않는다……. 맞다. 수없이 많이 보아 너도 이제 알고 있다. 수십 번 죽이려고 했지만, 그 녀석은 그때마다 너를 믿는다며 안아 주려 했다. 너만 기억하는 일이라도 분명히 사실이었다. 같이 지내면서는 끊임없이 너를 격려해 주었다. 아무리 네가 자길 해치거나 죽이려고 해도, 그 녀석은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 넌 어떻게 할 거야?”


  샌즈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묻는다. 너는 눈물을 닦는다. 다리에 힘이 돌아온다. 아직은 네가 할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그런 건 없어. 너는 탁자 위 큐브를 본다. 계속 노력한다면, 최선을 다한다면, 무언가는 네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다—사람은 바뀌지 않아. 파피루스는 네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너는 그걸 믿고 싶다.


  너는 일어나 달려간다. 신발 신느라 잠깐 멈추었다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얼굴을 모질게 때리는 바람 세기를 보니 곧 눈보라가 칠 것 같다. 너는 샌즈를 돌아본다.


  “따라간다. 앞장서.”


  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턱을 넘어, 눈보라 한가운데로 달려 나간다.




  파피루스가 어디 가는지 힌트라도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발길 닿는 대로 달려 다니면서 이쪽이 맞기를 비는 수밖에 없다. 얼마 안 가 마을 밖에 나오기에 이른다. 너는 뭘 하려는 거야?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주제에,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운 좋게 걔 하나를 구한다고 해도, 그러면 다야? 평생 여기 눌러앉아 행복한 척, 아무 잘못 없는 척 하고 살 거야? 뻔뻔스럽긴. 그런 짓들을 해놓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니야!”


  너는 바람살에 대고 소리 지른다.


  그러면 다야? 네가 아니고 내가 했다는 거야? 전부 다 내 탓이란 거야? 불쌍하고 한심한 프리스크. 너는 아무도 해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억지로 시켰다고 하고 싶은 거야? ‘파피루스, 제발 나를 미워하지 마! 나는 아무 잘못 없어!’ ……이렇게? 원한다면 남들 다 속일 수도 있겠지. 전부 내가 그랬다고 하면 되겠지. 그런데 너 자신을 속일 수는 없어. 먼지를 뒤집어쓴 건 너야. 칼을 휘두른 건 너야. 내가 그러라고 하긴 했지만, 너는 안 그럴 수도 있었어.


  “조용해!”


  너는 나를 멈추려고 하지 않았어. 그건 사실이잖아! 너는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너 대신 내가 결정하게 했어. 네가 한 게 아니라 전부 내가 한 거라고 내빼기밖에 하지 않았어. 네가 했던 일들, 네가 죽인 사람들, ‘네가’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훨씬 편했어. 네 몸을 내가 조종했던 거라고 치면 아무도 네 탓이라곤 안 할 테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건 내 책임일 테니까. 그래서 넌 진실을 이해하기를, 감정을 느끼기를 그만두었어. 그러면 고통이나 죄책감이 들지 않았으니까. 네가 도망쳤어. ‘네가 나한테 시킨’ 선택들을 가지고, 이제 와서 전부 내 잘못이란 거야? 웃기지 마.


  칼을 쥔 건 언제나 너였어.


  “조용해. 조용해!”


  너는 귀를 막고 악을 쓴다.


  하고 싶은 대로 해. 평생 착한 척만 하고 사는 게 속 편할 것 같으면 그렇게 살아. 그런데 넌 그것들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어. 네가 그것들이 죽든 말든 내버려 뒀고, 네 손으로 그것들을 찔러 죽였어. 다른 애가 그러라고 시키는데 마다할 용기가 없단 이유만으로. 아무리 리셋을 하더라도 그것만은 단 한 가지 변치 않을 진실이란다. 모든 걸 취소하는 방법은, 네 죄를 영원히 씻을 방법은, 이 세상을 없애버리는 것뿐이야. 그러면 아무것도 남지 않잖아. 과거든 미래든 선이든 악이든 다 없어지잖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네가 원래 원했던 게 그런 거 아냐? 전부 다 멈춰 버리고—


  “아니야!”


  너는 고개 젓는다. 그러다 뭔가 밟고 중심을 잃어 눈밭에 쓰러진다. 무릎 꿇고 엉거주춤 일어나서 얼굴과 옷에 묻은 눈을 턴다. 그럼 너는 여기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짓을 해 놓고? 그런 죄가 용서받고 잊힐 것 같아? 앞으로 안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폐허의 아주머니 생각을 해 봐. 동료들이 몰살당한 파란 괴물 생각을 해 봐.


  살릴 사람 죽일 사람 네 맘대로 고르면 다야? 그래 놓고 뭐가 다 괜찮아?


  “아니야…….”


  문득 네 뒤에 샌즈가 있는 게 느껴진다. 따라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건 바람이 워낙 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너는 일어서서 해골을 마주본다. 말은 오가지 않고, 그저 다시 걸어 간다. 둘이서 나란히.




  오 분쯤 지났을까, 샌즈가 나직이 묻는다.


  “야, 네 능력… 그건 안 통해? 동생이 나가기 전으로 돌아간다거나 할 순 없을까?”


  놀라운 이야기다. 너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아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세이브를 못 했어…….”


  잠시 말이 끊긴다. 너는 바람 소리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크게 말해야 한다. 답답하다.


  “우리가 싸웠던 그 날로밖에 못 돌아가.”


  너에겐 아무것도 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지. 의지를 갖고 있던 건 언제나 나야.


  “그럼 너흰 나를 잊어버릴 텐데. 우린 다시 적이 될 텐데…….”


  샌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네 목소릴 못 들었을 수도 있다.


  처음 만난 날의 샌즈는 어땠나. 수도 없이 너를 찢어 죽였다. 차가운 눈으로 오로지 의심하고 경계했다. 친해지기까진 또 얼마나 오래 걸렸나. 너는 예전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파피루스도 너에 대해 조금도 기억하지 못할 거다. 완전히 남남으로 돌아갈 거다. 너는 그것만은 싫다.


  세이브 파일은 소용이 없다. 너무 늦기 전에 너 스스로 해내야 한다. 방법은 있을 거다.


  “나는 행복해질 수 있어.”


  너는 너에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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