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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도둑과 황소 도둑 2

운영자 2010.01.19 12:52:51
조회 342 추천 0 댓글 0

    그는 마치 스포츠를 하듯 자기의 절도 사실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에 이미 절도는 대수롭지 않은 하나의 자기 행동이지 특별히 창피한 다른 그 무엇도 아니었다. 감옥에 들어가는 것은 재수 없이 잡혔을 때 한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인 것이었다.

    “담당 수사검사는 제 범행이 계획적이라고 하지만, 저는 극장이 들어있는 빌딩에서 매장 건물이 베니어판으로 되어 있는 걸 보고 순간적으로 그렇게 한 거예요.”

    “에이, 이 사람아! 그게 계획적으로 노린거지 어떻게 우연히 순간적으로 한 거야, 안 그래?”


    “그게 그렇게 돼나요? 하여튼 잘 모르겠어요.”

    “자네가 어려서부터 살아온 얘기를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해 줄 수 있나? 흔히 검사나 판사 앞에서 연극조로 타령같이 하는 얘기 말고 말이야. 그렇다고 감옥 안에 있는 빵잽이들이 약은 체 하고 시나리오 써 주는 거 말고 진짜배기로 말야. 나는 변호사니까 솔직히 얘기해도 상관없어.”

    나는 서서히 그의 마음 문이 열리는 것을 감지했다. 그가 간단히 말한 삶의 자취는 이랬다. 그는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어머니를 때렸다. 집이 재미가 없었다. 중학교에 진학했으나 공부에도 재미가 붙지 않았다. 한 달을 결석하고 학교에 나갔더니 집에 한 번 연락도 안 하고 퇴한 처분이 내려져 있었다. 그 뒤로 혼자 집을 나와 변두리 구두공장 등에서 한 달에 삼십만원을 받고 시다일을 해주고 더러 부업으로 도둑질을 해 왔던 것이다.

    “자네, 한두 번도 아니고 말이야. 이제 여러 번 이 짓을 하다가 걸렸는데 계속 그렇게 하면 앞으로 청송에 있는 보호감호소로 가서 평생 햇빛보기 힘들텐데, 인생을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힐난하듯 말했다.

    “정말 이제 이 짓 그만둬야지요. 나도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고 싶어요.”

    그의 표정에서 순간적으로 후회의 그림자가 스쳐가는 것이 보였다.

    “그래, 막말로 도둑질을 여러 번 했는데 조직에 있어서 불가피하게 했던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버릇이 들게 됐어?”

    “어렸을 때 어머니 지갑에서 몇 백원씩 가지고 나가 사 먹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점점 크니까 담이 세지더라구요. 옆집 것도 건드리게 되고 나중에는 빽치기도 하구요.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소리가 정말 딱 맞는 소리더라구요.”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심각하게 내게 말했다. 마치 커다란 진리를 발견한 사람의 진지한 얼굴 모습이었다.

    “그러면 남의 물건을 가져갈 때 아무 걱정도 없이 그냥 버릇으로 가져가게 되나?”

    “그건 아니죠. 나도 남의 물건을 볼 땐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싸워요. 하나는 가지고 싶다는 거죠. 다른 하나는 그러면 못쓴다는 거지요. 그런데 여직껏 살아오면서 보면 거의 다 남의 물건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이겨요. 그래서 훔치는 거지요. 고쳐 보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 돼요..”


    “그러면 도둑질만 하지 칼은 왜 들고 다니다 걸려?”

    “칼이요? 그건 불안해서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이런 짓 하다 보면 마음이 불안하거든요. 남한테 맞을 수 도 있고 하여간 편치를 못해요. 그럴 때 칼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그래서 가지고 다니는 거지 단번에 죽일려고 하는 건 아녀요.”


    “....”

    나는 생각해 본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 속에 인간으로서의 온갖 성질의 싹을 지니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의 성질이 나타나고 다른 경우는 또 다른 성질이 나타난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경우가 몹시 심한 사람이 있다. 이 청년의 경우가 그런 경우인지도 모른다. 모든 게 조용해지고 가라앉으면 착한 심성이 나온다. 그러나 그를 유혹하는 환경에 처하게 되면 악마가 그를 지배해 버리는 것이다. 착한 자, 악한 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팔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 나는 영등포 교도소를 나온다. 하얀 햇살이 교도소의 모래 섞인 바닥을 퉁겨나오고 있다.

    “변호사님, 진짜 도둑을 안 할테니 어떻게 좀 해주세요..”

    다시 후텁지근한 감방으로 들어가면서 그는 응석을 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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