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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변호사 3

운영자 2010.02.09 14:37:05
조회 361 추천 0 댓글 0

   나는 K목사의 매형이 있다는 서울 변두리의 Y교도소를 찾아갔다. 아직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어서인지 접견실에서는 아직도 연탄난로를 때고 있었다. 좁은 칸막이로 되어 있는 방 전체에 연탄 냄새가 흘러 퍼지고 있었다. 이윽고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K목사의 매형이 나왔다. 이발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빡빡 깍은 머리에서는 푸른빛이 돌고 있었다. 눈동자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처남 되시는 K목사의 소송 건으로 찾아왔습니다. K목사는 매형께서 하라는 대로 서류에 사인만 해주었을 뿐인데 지금 피고로 소송이 제기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막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이고 이렇게 오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처남한테 소송이 걸렸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감옥 안에서 몇 날 몇 일을 지지 않을 궁리만 하고 있는 중입니다. 처남한테 손해를 보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변호사님, 도와주십시오. 제 말씀만 잘 들으시면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정말 주님의 은혜로 이겨야 할텐데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투에서 알지 못할 교활함이 들여다보이는 듯 했다. 변호사에게 진실을 말하기 이전에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니 어쩌니 하는 것도 그랬지만 그대로 실행하라는 태도에서 불쾌감이 엄습했다. 일단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는 축산조합의 사업 과장으로 있었다. 조합에서는 돼지고기와 쇠고기 등을 대량으로 여러 회사에 내다 팔기도 했다. 고기를 대량으로 사간 회사에서 물건 값을 갚지 못하자 그는 조합의 전무와 상의해서 그 회사 자체를 인수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을 보았다. 그는 인수한 회사의 대표 이사로 등기를 하고 실질적인 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인수는 했지만 업종의 경영에 경험이 없었던 그는 매달 운영비만 쏟아 부었다. 나오는 수익이 없었던 것이다. 조합에 다니던 그는 조합 돈에 손을 대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처남 등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조합 돈을 대출하는 것으로 서류를 꾸며 놓고는 그 돈을 사용해 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처남인 K목사를 조합 사무실에 오게 해서 금전소비대차약정서에 서명날인을 하게 한 것이었다.


  “조합에 비치되어 있는 서류에는 처남인 K목사가 돈을 대출받아 간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돈은 조합의 직원으로 있던 제가 받아다 써버렸습니다. 서류만 있지 돈도 안 건너간 대출 계약은 무효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제가 이렇게 몸으로 때우고 있는 마당에 제 집도 빼앗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조합 측에 어떤 잘못들이 있습니까?”

  “그거야 제가 조합의 사업을 직접 하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직접 하지 않고 직원들을 시켜 서류를 만들기는 했지만 조합 업무라면 그 약점이 전부 내 손 안에 있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먼저 조합이 대출을 하면 대체전표를 작성합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 자금을 수령한 사람의 사인을 하게하고 있습니다. 서류만으로 직원들이 대출한 것으로 정리하고 돈을 빼 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지요. 바로 이 건에서 그 대체전표가 없을 겁니다. 담당 직원이 미처 그것을 하지 못했을 걸요. 당연히 그 뒤에 처남의 사인이 없을 겁니다. 또 조합 규칙상 대출을 할 때는 대출 자금의 목적이나 사용방법을 본인에게 설명하고 본인이 돈을 수령했다는 사실들을 기재하게 되어 있는데 변호사님이 K목사에게 그런 사실을 들은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게 하면 될 겁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마음 저쪽 구석에서 은근히 부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먼저 일단 조합의 간부였던 그가 너무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합을 배신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여러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일하던 간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현실적 이익을 위해 몸을 담고 있는 조합이나 조합원은 이미 안중에 없던 것이다. 다음으로 그 자신의 돈을 빼내어 쓴 것이 사실임에도 처남을 앞세워 조합의 업무 절차상의 흠을 약점으로 삼으라는 것이었다. 그가 들추고 있는 조합의 약점이라는 것은 그가 간부로 있으면서 스스로 파 놓은 것이었는데도..


  그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였다.

  “저, 변호사님, 처남 명의로 되어 있던 저희 집은 만약을 위해서 제가 전세권자로, 처남과의 사이에 작성한 것으로 해서 전세계약서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전세보증금도 챙기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기어코 그에게 한마디 했다. 
  “도대체 변호사를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저는 처남인 K목사가 이 사건의 대출 관계 내막을 전혀 모른다고 해서 그 진실을 알아보려고 왔는데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금 변호사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철저히 이용하시려는 겁니까? 그런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대하실 때 세상이 그렇게 입맛대로 속아 넘어가리라고 판단하시는 겁니까? 정말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는 난데없는 내 말을 들으며 한방 맞은 듯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이고 변호사님, 제가 실례를 했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을 맡은 저로서는 제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소송을 수행해 갈 겁니다. 변호사는 일단 사건을 위임받으면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론을 진행합니다. 일일이 당사자의 지시나 감독을 받지는 않습니다. 만약 제가 가려고 하는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처남을 통해서 그 뜻을 전해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도 사건을 그만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단 법정에서 제가 증인으로 신청을 할 테니 법정에 나오셔서 사실대로 말씀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예, 예, 말하고말고요..”


  일단 내가 맡은 측으로서는 아무런 증거나 증인이 없는 상태에서 감옥에 있는 K목사의 매형이 중요한 증인이었다. 그를 어떻게 법정으로 나오게 하는가가 문제였다. 법원에서 소환장을 보내도 이탈 저탈 잡아 교도관들이 법정에 나오게 하지 않으면 그나마 증인신문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칙은 있어도 그것을 교묘하게 회피할 때 강제할 방법이 없으면 증명 부족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그 증언이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나는 교도소의 출정과를 찾아갔다. 한 직원이 책상 앞에 앉아 사무를 보고 있었다.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지원민사법정에서 여기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을 증인으로 신청하려고 하는데 정해진 기일에 법정으로 나갈 수 있습니까?”

  말은 듣던 그 직원은 얼굴을 내 쪽으로 돌리며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글쎄요.. 본원의 민사법정이라면 교도소에 가는 차편도 많고 다른 수감자들도 많이 가기 때문에 민사 법정에서 증인 소환장이 나오면 거의 대부분 가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원민사법정의 경우는 가는 차편도 없고 또 증인 하나를 위해 교도관 몇 명이 하루 종일 차출되야 하기 때문에 소환장을 받아도 사실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참작하시지요.”


  그 말에 나는 난감했다. 그나마 유일한 증인마저 법정에 나올 가능성이 희미한 것이었다. 나는 평소에 안면이 있던 변호사 접견실에 있는 교도관을 다시 찾아갔다. 마침 그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 출정과에서 말하는데 변호사가 지원의 민사법정에 수감자를 증인으로 신청할 경우 경비 문제나 차량 문제 때문에 보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증인으로 나오게 할 방법이 없을까요?”


  “변호사님, 그건 자기네들이 데리고 나가기 귀찮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법정에서 증인들이 소환되었을 때 수감자 본인이 동의하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수감자인 본인이 증인으로 나가는 데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출두 못한다고 핑계를 만들어 법정에 안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본인에게 반드시 동의하라고 다짐해 두시면 출정과에서 데리고 나갈 겁니다.”


  안면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대답이 하늘과 땅 사이 만큼이나 달라지는 것이다.


  교도소의 녹슨 철문을 뒤로하고 나는 사무실로 향했다. 어느덧 서쪽의 회색 빌딩들 사이로 불그스름한 해가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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