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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제 2

운영자 2010.02.02 12:40:53
조회 433 추천 0 댓글 2

     그 청년은 살인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형의 변호를 부탁하기 위해서 나의 사무실을 찾은 것이었다. 그의 형 역시 동생보다 한 발 앞서 기구한 운명을 맞았던 것 같았다. 학교시절 동네 강가에서 수영을 하다가 귀에 물이 들어가 심한 중이염을 앓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귀머거리가 되었다. 

     그 후 남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하고 동생과 함께 가평 근처의 백여 평 되는 밭에서 부추를 심어 서울로 내다 팔면서 생활을 했다. 그들 형제는 남들이 자신을 병신으로 보는 차가운 눈길이 너무 싫었다. 귀머거리가 된 형은 동네 사람이 주선해서 색시로 데려다 준 지체부자유자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장애자 취급을 당하는 자신의 처지에 그만큼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 것이다. 

     1995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그는 서울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 때 바로 앞에 한 청년이 그의 앞에서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그는 솟구치는 격정을 참을 수 없었다. 벌써 몇 번째 동네에서 보는데 볼 때마다 싱글싱글 웃으면서 병신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귀머거리가 된 자신을 놀리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손짓과 몸짓으로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눈을 부라렸다. 그걸 본 상대방은 더욱 재미있다는 듯 병신 흉내를 내면서 낄낄 웃는 것이었다.

     그는 눈에 불이 일었다. 격분한 그는 가까운 집으로 뛰어가 바깥마루에 놓여 있던 장도를 들고 놀리는 상대방 청년을 향해 정신없이 휘둘렀다. 상대방 청년은 ‘퍽’하는 소리와 함께 사르르 땅에 넘어졌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청년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경찰에서 살인사건으로 수사가 시작되었다. 귀머거리가 되어 등지 못하는 그는 자기가 장도리를 휘두른 사실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법정에서 그는 살인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죽은 청년이 놀린 것이 아니고 간질병을 가진 지체장애자라는 것이었다. 열등감에서 온 오해가 살인을 불러일으키고 그나마 편하지 못한 인생을 지옥 같은 가옥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우리 형제는 무슨 운명을 지고 태어났는지 저는 팔 병신이 되고 형은 귀머거리에다가 살인범까지 됐는지 모르겠어요.. 사는 게 정말 힘들어요, 변호사님..”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그들은 남들이 가지 못하는 삶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 보았으므로. 그리고 같은 처지가 아닌 한 그 어떤 말도 그들을 위로하지는 못할 것이므로.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지요. 시체가 돼서 거적때기까지 뒤집어 쓴 놈인데..”


     그는 이미 고민 뿐 아니라 답까지 내놓고 있었다. 사건을 맡기고 담담하게 사무실을 나가는 그의 표정은 평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는 필시 팔 병신이 된 걸 원망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걸 감사하는 지혜를 얻은 사람이라는 걸 분명히 느꼈다. 나는 그의 형을 변호한다지만 그는 나에게 삶의 한 형태를 알려주고 갔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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