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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상플이얌 96화-1

ral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4.21 08:12:20
조회 463 추천 0 댓글 0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여름의 저녁.

복닥복닥한 식사자리에서 한나가 음식을 든 젓가락을 내밀었다.


한나 "아저씨 아~"

해준 "아~ 음 맛있다"


다혜의 집.

그녀의 가족과 해준은 한 식탁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해준 "지난번엔 많이 못먹었었는데. 너희 엄마 음식 엄청 맛있다"

한나 "그쵸? 우리 엄마 음식 엄청 잘해요!"


점심을 넘어서도 다혜를 붙잡고 있던 해준이 

급기야는 한나와 노갑에게 해명을 댄다는 핑계로 집까지 따라온 것이였다.

막무가내로 우기길래 결국 끌려가듯이 집으로 들였는데. 

참 왜이러는건지 모를 일이였다.


다혜 "제가 한게 뭐가 있다구요. 홍난이 요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해준 "에헤이. 충분히 맛있기만 한데요 뭐"

다혜 "아 네...."


잘도 능글맞은 말을 한다.

대체 언제까지 붙어다닐건지. 

그녀는 해준의 질척임에 혀를 내둘렀다.

한나가 해준에게 말했다.


한나 "그래서. 우리 아빠가 아저씨 행세할 때 뭐뭐 했어요?"


영수의 행동에 대해 많이 궁금한 듯 한나는 해준을 살살 꼬시며 물었다.


해준 "휴게실도 만들었고, 창고도 위험하지 않게 싹 바꾸고. 주식도 나눠주고?"

한나 "그리고요?"

해준 "사원 복지랑.... 계약 할 때의 공정함이랑.... 비리 조사한거랑.... 당장 기억나는건 이정도네?"

한나 "당장이요?"

해준 "응. 정리하긴 했는데 여기저기 세세한 것들이라...."


일일히는 기억 못하겠다는 해준의 말에 한나는 실망했지만 수긍하는 투였다.


한나 "으이. 착해 빠져가지고. 꽉 막힌게 딱 우리 아빠답네요"


다혜 뿐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한없이 좋은 사람이였던 영수. 

쓸쓸한 한나의 말에 해준이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해준 "하하. 그래도 좋은 일이잖아. 나도 그게 좋아서 유지하고 있는건데"

한나 "진짜죠? 한개라도 바꾸면 제가 신문에 다 이를거에요. 알았죠?"


이른다니?

한나의 협박에 해준이 호언장담했다.


해준 "바꾸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다혜가 이죽거렸다.


다혜 "장은 제가 특별히 사갈게요"

해준 "다혜씨가 직접 담근 장이요?"

다혜 "제가 무슨 종갓집 며느리도 아니고. 그런거 없고 그냥 마트에서 하나 사갈게요"

해준 "아. 그럼 지지는 맛이 없는데"

다혜 "맛은 무슨.... ㅎㅎㅎㅎ"


한나도 같이 웃었다.


한나 "ㅎㅎㅎㅎ"


그렇게 왁자지껄하게.

밥을 먹으며 영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혜와 가족들이 개인적으로 봤었던 영수의 모습과. 

해준이 조사했었던 영수를 대 봐가며 그들은 각자 영수를 생각했다.

한나. 

관람차에서의 일이 기억났는지 씩씩하게 말했지만 눈이 약간 그렁그렁했다.


한나 "그래도 마지막에라도 말해주고 가지.... 너무하게...."


해준이 한나를 달랬다.


해준 "말해주면 안되는 이유가 있었겠지. 영수씨도 홍난이도 서로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숨기려고 하기 바빴으니까.

      아마도 들키면 엄청난 대가가 따르거나 그랬을거야"

다혜 "그럴거야 한나야"


그러나 한나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아서.

해준은 다른 방법으로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로 했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 


해준 "그래도 결국은 알았잖아? 너희 아버지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안 그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는 것. 

알려줄 순 없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 모두 사랑이 묻어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자

한나가 약간 슬프게 웃었다.


한나 "네 알아요 ㅎㅎ"


씩씩해보이려고 밥을 떠먹는데.

그 모습이 초연했다.

나이답지 않은 조숙함에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위안 삼아 줄만한 말을 찾는데.

옆에서 노갑이 해준에게 물었다.


노갑 "근데 그....젊은 양반은.... 그래서.... 우리랑 계속 이렇게 지낼건가?"

해준 "예?"


영수가 아닌 해준이라도. 여전히 자신들과 잘 지낼수 있겠냐는 물음이였다.

해준의 몸을 빌린 영수처럼.

해준이 질문을 이해하고 답했다.


해준 "네. 아버님이 제가 싫지 않으시다면요"

노갑 "나야 상관없네만...."


회한이 담긴 눈으로.

노갑이 밥먹는 한나를 바라봤다.


노갑 "그래 좋은게 좋은거겠지. 앞으로도 우리 한나랑 잘 지내주게. 그리고 애미랑도 잘 지내주고"


해준이 답했다.


해준 "네 알겠습니다"


그가 그대로 다혜에게 말했다.


해준 "그런 관계로. 잘 지내봅시다 신다혜씨 ㅎㅎ"


다혜. 

어이없었지만 받아쳐주었다.


다혜 "네~ 이해준 점장님"


빈정.

하지만 해준은 여전히 웃을 따름이였다.

알수없는 마음.

다혜는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다시금 복닥복닥.

시간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



홍난 "응 다왔는데" 


인적이 없는 한적한 주차장.

나는 엄마 집 안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있었다.


홍난 "뭐? 시간 더걸린다고? 오라고 할땐 언제고...."


통화를 하고 있는 상대는 엄마.

촬영중에 왠일로 전화가 와서 이런 저런 잡담을 했었는데. 

엄마 집 가까운데서 찍는다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잠깐 집에 들리라고 한 것이였다.

그렇게까지 오고 싶지 않았지만....

옆에서 듣던 언니가 어머님 뵈러가자고 막 꼬셔서 오게됐다. 

아마 엄마에게 잘보이기 위함인듯 싶었다.


홍난 "확 집에 가버린다?"

연정 "얼씨구? 너 집에 가면 카드 내가 끊어버릴거야"

홍난 "진짜 그러기야? 맨날 이런걸로 딸내미한테 협박이나 하구...."


틱틱거리는데 언니가 말을 가로챘다.


이연 "어머님~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것도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나한테도 저런 영업용 목소리 별로 들려준 적 없었는데....

그렇지만 언니는 어머님에게 너무 막대하지말라는 듯. 

눈으로 콕콕 나를 구박했다.

흐흠....

살짝 질투나지만 적당히 납득했다.


연정 "금방 갈게요. 홍난이랑 둘이서 차 마시면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요"

이연 "네 어머님. 조심해서 오세요"


그래도 너무 기다리긴 싫어서.

나는 전화기를 끊기전에 한 마디를 더했다.


홍난 "차 다 마시기 전에 꼭 와야한다?"

연정 "걱정마. 금방 가니까"

홍난 "응~"


그렇게 끊고나서.

나는 웃고 있는 언니에게 말했다.


홍난 "언니도 참 지극정성이라니까요. 촬영 막 끝나서 피곤한데 굳이 엄마 보러오고...."

이연 "뭐 어때. 내일 촬영도 없는데. 실컷 퍼질러 자면 되지"

홍난 "그럴까요? ㅎㅎ"


말만으로도 좋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고 퍼질러 잘 생각을 하니 입이 절로 귀에 걸린다.

흐흐흐흐 내일 점심 넘어서까지 자야지!

악동같은 내 표정을 봤는지 언니가 나에게 꾸지람섞인 말을 건냈다.


이연 "맨날 자면서도.... 그렇게 잠이 좋니?"

홍난 "네! 완전 좋아요. ㅎㅎㅎㅎ 나무늘보처럼 사는게 제 꿈중에 하나거든요"

이연 "에에? 언제는 나무늘보처럼 될까봐 겁난다더니? 내숭이였어?"

홍난 "그거야 저랑 같이 언니가 나무늘보처럼 되니까 그렇죠. 저만 그렇게 되는건 상관없어요 헤헤"

이연 "왜? 나는 너 먹여살려야 되서?"

홍난 "ㅎㅎㅎㅎ"


대답대신 웃음을 지었지만 알아들었는지 언니는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삐죽삐죽

너무 귀여워서 나는 언니를 꼭 껴안았다.


이연 "뭐야 뇌물이야? 포옹했으니 따지지 말라는거야?"

홍난 "아뇨~ 그냥요. 그냥 귀여워서요 ㅎㅎ 우리 언니 어쩜 이렇게 화내는 것도 귀여울까 ㅎㅎ"


언니의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다.


이연 "귀.... 귀엽긴 뭐가 귀엽다고 그래...."


변명해봤자 다 들켰거든요? 당황하신거 ㅎㅎ

떨리는 목소리도 엄청 귀여워서. 

나는 언니의 말랑말랑한 입술에 쪽하고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빨갛게 익은 언니의 입술.

몽클하게.

왠지 찐하게 하고 싶어서 다가가는데 언니가 나를 말렸다.


이연 "어.... 엉덩이. 손! 바.... 밖이거든?"


자연스럽게 언니의 허리 아래로 향한 내 손을 타박한 거였다.

만진다고 닳는것도 아닌데 치사하게....

하지만 표현하진 않고, 나는 도도하게 언니를 떠봤다.


홍난 "밖이 뭐 어때서요?"

이연 "어떻긴! 그러고보니까 너 완전 응큼하다? 애들 있을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완전 밝히...."

홍난 "지금은 둘밖에 없는데 뭐 어때요~ 그래서. 싫어요?"


똘망똘망하게 바라보자 언니 눈빛이 마구 흔들렸다.


이연 "아.... 아니이.... 그.... 그건 아닌데...."

홍난 "좋으시면서. 좋으면 그냥 계속 즐기시면 되지. 그런걸 왜 따져요?"

이연 "그래도 사람들 있는데...."

홍난 "에이~ 이 시간에 누가 본다고 그래요. 언니 허리 이렇게 잘 빠졌는데 조금만 만지면 안돼요?"

이연 "안돼!" 


단호히 거부한 언니.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이연 "참나.... 고양인줄 알았더니 늑대였어. 그것도 이제 처음 고기맛 본 흉폭한 늑대!"


어흥! 

흉내를 내는데 그 모습이 앙큼했다.


홍난 "늑대요? 그럼 저 늑대니까 오늘은...."


눈을 빛내면서 말하는데 언니가 내 말을 끊었다.


이연 "됐네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내리기나 해"


말을 마치곤 언니는 쑥하고 차에서 내렸다.

거부.

어깨가 처진다.

분명히 언니도 좋을텐데....

좀처럼 넘어오지 않아서 자꾸 나를 안달나게 만든다.


홍난 '아니 먼저 같이 자자고 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저러는거야....'


그땐 분명히 언니가 먼저 나한테 막 대쉬했었는데....

지금 이 상황과 같은 일이 나랑 언니의 위치만 바꾼채 그대로 있었던 것 같은데.

하룻밤 찐하게 관계를 가진 뒤로는 묘하게 나랑 거리를 두려고 해서 솔직히 서운했다.


홍난 '나는 하루종일 그 생각만 나는데.... 언니는 아닌가....'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몸을 섞었던 그 기억이 하루종일 내내 떠오르는데.

언니는 아닌거 같아서 뽈뽈 심술이 난다.

내가 첫 연애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언니가 첫 연애가 아니라서 덤덤한가 싶기도 하고. 

정말이지 별 생각이 다들었다.


홍난 '아니면 혹시 내가 다 잡은 고기가 되서 그런건가? 이제 확실히 잡았으니까 안해주는건가?'


아으.... 역시 연애는 잘 모르겠다.

대체 그 놈의 밀당이라는게 뭔지.... 

나는 좋으면 좋은건데.... 그냥 그러고 싶은데....

안해주는 언니의 마음을 도통 모르겠다.

그렇다고 대놓고 따져볼 수도 없고. 

에휴....

아쉬움 가득한 채로 나는 차에서 내렸다.


삐빅 

 

차문까지 잠그자 먼저 내린 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이연 "무슨 생각하는데 그렇게 늦게 내려?"

홍난 "언니 생각요. 언니는 언니 뒷모습이 얼마나 섹시한지 알아요?"


둘러대는 말에 언니가 반응했다.


이연 "그래서? 심장 막 콩닥콩닥하니? 만지고 싶고? 이정도로 참으세요 홍난 어린이~"


대신.

나에게 다가와 팔짱을 껴주었다.

만지고 싶지만.

만졌다간 팔짱까지 풀까봐 팔짱에 만족하기로 했다.


조금 걸으니 익숙하지만 낮선 엄마 집이 보인다.

밝게 켜진 조명들.

대기하고 있던 수행원이 바로 마중을 나왔다. 


수행원 "오셨습니까"

홍난 "아 네. 엄마가 안에서 먼저 기다리라고 하더라구요. 들어갈게요"

수행원 "알겠습니다"


또각또각 


언니와 나는 수행원을 따라 걸었다.

지난번에 왔을땐 잔뜩 긴장해서 왔었는데....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온 터라 한결 몸이 홀가분했다.

그대로 응접실까지.

수행원이 돌아가자 언니가 투덜거렸다.


이연 "홍나니 방도 보고 싶은데...."


지난 번에 엄마에게 붙잡혀 있느랴 미처 보지 못한 내 방이 궁금했나보다.

궁금해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끊었다.


홍난 "볼거 없어요 제 방. 싹 다 치워놔서"

이연 "응? 왜?"

홍난 "미국 갈 때 그냥 싹 다 치웠었어요. 옮기기 힘든 큰 가구 빼구요. 미련 남기지 말자는 의미에서요"


사진도 편지도 모두.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쓱 훓어봤었었는데.

그 재미가 꽤 쏠쏠했었던 기억이 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연 "싹 다? 전부 다 정리한거야?"

홍난 "네. 버리진 않고 안쓰는 방에 쌓아놓긴 했는데.... 밑에 쌓아서 꺼내기 어려울거에요"


언니가 나에게 졸랐다.


이연 "어떻게.... 그래도 꺼낼 수 없니?"

홍난 "네. 진짜로 밑에다 쌓아놨어요. 못꺼내요 못꺼내"

이연 "힝.... 앨범 사진 보고 싶었는데...."


입이 뾰루퉁 나와서는 토라지는 언니.

무지하게 귀엽지만 일단은 달래주는게 먼저라 나는 언니에게 사근사근히 말을 걸었다.


홍난 "뭐에요 그 입? 많이 아쉬워요?"

이연 "응. 많이. 홍나니 너 어린시절 보고 싶었단 말이야. 교복입은 것도 보고싶구!"

홍난 "안돼요~ 그땐 완전 선머슴처럼 살은데다가. 화장도 안해서 이쁘지 않단 말이에요~"


학생.

누구에게나 서투른 시간이 있다.

나에게도 고등학교 시절은 서투름 많았던 시절이였다.

화장도 처음 배우고, 꾸미는 것도 잘 모르던 어린애라. 

아무래도 언니에게 보여주기엔 수수함이 많이 묻어나와서 부끄러웠다.


이연 "지금도 선머슴 같은데? 너 맨날 자켓에 바지만 입잖아. 안그래?"

홍난 "그래도 지금은 그거에 맞춰 꾸민거란 말이에요.... 그땐 진짜...."

이연 "화장이야 지금도 잘 못하고"

홍난 "화장 그래도 할땐 하는데.... 뭐라구요?!"


툴툴대자 언니가 가볍게 농을 던졌다.


이연 "장난이야 ㅎㅎㅎㅎ"

홍난 "너무해!"


지은 죄가 있어서 참는다.

넘어가주기로 마음먹는데 언니가 낮은 목소리로 하소연을 해왔다.


이연 "아쉽다...."


뚝뚝

아쉬움이 떨어진다.

이러다간 이따 집에가서도 아쉬워할 것 같아서 나는 언니에게 뭔가 자랑할만한 것이 있는지 곰곰히 고민했다.

추억거리.... 뭐가 있더라....


홍난 '아.... 음.... 음.... 아! 그거!'


생각났다.

언니에게 보여줄만한 거.

쌓아둔 방 구석에 있을텐데.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홍난 "저 잠깐만 안쓰는 방 좀 갔다 올게요. 기다리고 있어요"


언니가 답했다.


이연 "응? 같이 가~"

홍난 "아니에요. 진짜 잠깐 가지러 올 거 있어서 가는거라. 금방 올게요!"

이연 "홍나나!"


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혹시라도 따라와서 앨범을 보자고 할까봐서 나는 언니를 남기고 바람같이 방을 나갔다.



-------------------------------------------



이연 "아...."


미처 말릴새도 없이 홍난이 방을 나갔다. 

조용해진 응접실.

혼자 남아버린 이연은 푸푸 한숨같은 푸념을 했다.


이연 "에휴.... 참...."


실없는 웃음이지만 그래도 미소가 지어진다.

눈치를 보아하니 자랑할만한 것을 가지러 간 듯 한데.

그 마음이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그래서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이연 "나보고 지극정성이라고 하더니.... 자기가 더 지극정성이라니까...."


조금 아쉬워한다고 저렇게 안절부절하다니.

반쯤은 장난이였는데....

미안함이 이연의 마음을 쿡쿡 찔러대기 시작했다.


이연 '계속 받기만 하네.... 그때도 받기만 했던 거 같았는데....'


기억난다.

송이연.

작은 화면으로 보았던 홍난의 목소리가.

모종의 이유로 잊고 있었지만 다시는 잊지 못할 그 소리가 생각나 기분이 묘했다.


'''''''''''''''''''''''''''''''''''''''''''''''''''''''''''''''''''''''''''''''''''''''''

홍난 "송이연. 살 수 있는 방법. 이것 뿐이야. 내 여자한테 해줄 수 있는게 이거 뿐이라고"

'''''''''''''''''''''''''''''''''''''''''''''''''''''''''''''''''''''''''''''''''''''''''


다 같이 모였던 그날.

이미 이연은 믿기로 했었지만. 

혹시 몰라서 다혜가 해준을 통해 준비해둔 영상이 있었다.

로비 스테어의 cctv.

cctv 음성녹음은 불법이였지만 선진은 생각보다 불법을 잘 저지르는 회사였다. 

영수와 홍난이 떠들던 말들이 녹음되어 있었는데 

날짜를 보아하니 아마도 유혁을 낚아서 자신의 무고를 밝혀준 것에 대한 것 같았다.


이연 '한홍난.... 정말.... 대단하다.... 계속 주기만하고....'


받은게 너무 많아서 이젠 자신이 주려고 해도.

저렇게 또 다시 뭔가를 주려고 쌩 나간걸 보면 정말 날 사랑해주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연 "목소리도 어쩜 그리 똑같은지...."


물론 같은 사람이니까 그런거겠지만.

직접 그 입으로 들어보고 싶어서.

그래서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무심하게 송이연. 이라 부르라고 시켰었다.

그런데 푹.


송이연.


한 마디에 와르르.

목소리도 그렇지만 느낌이 똑같아서 가슴에 깊이 박혀왔었다.


조금은 서글프지만.

동시에 매우 따뜻한.

처연하면서도 서글픈 뚝뚝 떨어지는 시큰한 느낌.


쿵. 

이연은 치이듯 그 목소리에 빠져들었었다.


이연 "어이없다 송이연. 너는 그런 목소리를 듣고도 욕심내니? 주책맞게...."


귀여운 얼굴에서 나오는 시크한 매력에 꽂힌건지...

세차게 뛰는 심장 때문에 티내지 않으려고 끙끙댔었다.

물론 다들키긴 했지만 말이다.


이연 "이십년 연기생활 헛했다 송이연. 그거 하나 못감추고...."


설레이는 느낌. 

그렇게까지 못숨기는 자신이 아닌데....

왜 송이연. 이라는 말만 들으면 그렇게 주체를 못하겠는건지.

온 몸이 다 빨개져서 고생이 이만저만도 아니였다.


이연 "그런 언니한테 장난이나 치고 있고 말이야.... 괘씸하다니까...."


하여튼 장난꾸러기!

장난기 가득한 홍난의 모습이 떠올라 괜시리 마음이 뜨뜻해져서.

이연 역시 열심히 홍난에게 장난쳐야 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두고봐라! 아주 짖굳은 장난을 쳐줄테니!


이연 "아니다. 이걸 시키는게 이미 걔한텐 장난으로 보일려나? 흐음...."


계속 듣고 싶어서 짬만 나면 송이연. 을 시켰었는데

장난으로 여겼는지 홍난은 별 의심없이 계속 불러주었으니까.

콩닥콩닥 

덕분에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지경이였다.


이연 '이렇게 쿵쾅거리는걸 보면.... 예전의 홍난이가 그런 목소리로 나를 많이 불러줬던 거 아닐까?'


설핏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한데....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집으며 이연은 웃었다.


슥슥


그리곤 가지고 있는 수첩을 꺼내 다시금 홍난의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다.

오랫만에 그녀의 손에 쥐어진 수첩은 소명을 다하겠다는 듯이 한장씩 이연에게 열심히 쓰여지기 시작했다.

끼적끼적

다 쓴 이연이 천천히 수첩을 둘러봤다.


이연 "여기도 저기도.... 다 니가 날 사랑해준 것들 뿐이구나?"


한 장 한 장.

수첩에 적힌 희미한 기억들은 모두 사랑받았던 기억들이여서.

또 다시 마음이 따뜻해져왔다.

포근한 느낌.

이연은 다짐하듯 혼잣말을 했다.


이연 "홍난이 너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도 그래오고 있는것처럼. 언니도 너 많이 많이 사랑해줄게"


어떤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반드시 사랑해줘서. 

다시는 혼자 외롭게 하지 않기를. 

그래서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기를.

부탁하는대로 다 이뤄주며.

절대로 그렇게 만드리라. 


생각하던 이연의 뇌리에.

문득.

망측한 부탁이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이연 "아.... 부탁.... 같이 자자고 계속 조르던데...."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자신에게 달라붙어서 쩔쩔매면서 자자고 조르는 홍난. 

엄청나게 도발적이고 야해보여서 이연은 내내 그녀를 잡아먹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이연 '맘 같아서는 나도 잔뜩 홍난이랑 하고 싶은데....'


그러나 안될만한 이유가 있었다.


첫 날. 

그 목덜미의 흔적들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이연은 이미 한번 감독에게 양해까지 구한 판이였다.

아무리 좋다지만 이연은 프로. 

드라마를 위해 홍난과의 관계를 꾹꾹 참는 중이였다. 

이런 마음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모르니까 자꾸 조르는거겠지?

정말이지 피하는 것도 고역이였다.


이연 '그 생각 안하려고 일부러 피하는건데....'


이연 그녀도 홍난처럼 하루종일 그 생각만 났었으니까.

조금씩 받아주면 결국 해버릴 것 같아서.

필사적인 자제심으로 거부하고 있을 뿐이였다.


이연 '드라마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그렇다고 드라마 다 끝날 때까지 계속 안받아줄수도 없고.

먼저 자자고 꼬셔서 잔 건 자신인데.... 

어쩌다 이리 되었는지 모를 일이였다.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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