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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상플이얌 196화

ral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4.18 15:39:29
조회 515 추천 2 댓글 2


간간히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리는 새벽의 vip실.

선선한 바람이 비스듬히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들어와 곤히 잠든 이연의 콧등을 간질였다.


이연 "으으음...."


아직은 병색이 완연한 얼굴.

비몽사몽에 여기가 어딘지도 재대로 분간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나마 눈을 떳다.


이연 "으읏...."


쿡쿡 옆구리를 찌르는 아픔에 찌푸려진 미간.

아픔이 먼저 다가오니 자연스레 몸의 감각이 먼저 깨어났다.

몸 전체에서 약간은 까슬까슬한 촉감과 죄어오지 않는 헐렁한 핏감이 느껴졌는데 

덕분에 조금 쌀쌀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피부 온도가 낮아져 있었다. 



코를 훌쩍이던 이연은 눈을 굴려 이곳이 어디인지를 우선 확인했다.


똑딱똑딱


삐.... 

삐....


이연 "침대.... 병원에서나 보는 게.... 팔에 꽂혀진 링거도 그렇고.... 아.... 나 실려왔었지...."


그래. 홍난이를 구하고 구급차로 실려왔었나....


조금은 몽롱한 머릿속. 

정신을 차리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다 힘에 부쳐 다시 누웠다.

지금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는 몰랐으나,

이렇게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걸 보면 심각하게 나쁜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살짝만 움직여도 옆구리가 쑤신건 불편했다만....


이연 "하아...."


한숨을 쉬며 회색빛 천장을 보니 비로소 현실감이 느껴졌다.

가볍게 움직여보는 어깨의 느낌이라던지, 코를 시리게 만드는 미묘한 습도라던지.

다양한 것들의 느낌이 그녀를 현실로 불러들여 오는 것 같아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사실 총인지 뭔지에 홍난 대신 맞고나서. 

그때부턴 계속 꿈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출혈로 인해서 피가 모자라서 그런듯 했으나....

어쨌든 세상이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뭉개지고 느려져서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됐었다.


그래서 더 애틋한 마음이였고....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들을 했던 것 같은데....

정확히 뭐라고 자신이 말했는지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너무 솔직했었다는 느낌만큼은 아련하게나마 기억으로 남아 지금 이연의 마음을 부끄럽게 했다.


이연 "좀 더 잘 말했으면 좋았을걸.... 하아...."


그렇게 후회로 입술을 곱씹다보니 불현듯 홍난의 생각이 났다.

혹시 홍난이 지금 옆에 있나 두리번두리번 

복부의 아픔을 참고 억지로 고개를 올려 둘러보았다.

그랬더니 꼬옥하니 자신의 손을 잡고 자고 있는 누군가의 정수리가 보였다.

정신이 하도 없어서 손이 잡히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연 "ㅎㅎㅎㅎ"


동그랗고 귀여운 두상과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예쁜 귀에 이연은 한눈에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홍난이였다.


이연 "많이 피곤했나보네.... 홍난이...."


살짝.

아주 살짝.

비록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연은 홍난을 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혹여나 홍난이 깰까 잡히지 않은 반대편 손으로 그녀의 턱을 살짝 받혀서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게 했다.

그냥.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랬다.


홍난 "으으응...."


폴폴


다행히 홍난은 잠에서 깨지 않았다. 

대신 귀여운 잠꼬대를 하면서 입을 삐죽일 뿐이였다.


동글동글한 이목구비를 한 채로 잘도 잠을 자는 홍난.

하지만 곳곳에 상처가 나 밴드를 붙인 모습에 이연의 마음이 아팠다.

물론 멋있기야 엄청 멋있었지만....

이연은 홍난에게 잡힌 손을 살살 빼서 그녀를 머리를 쓰다듬었다.


새근새근


정말 잘도 잔다.

그 모습을 보자니 자신이 한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차올랐다.

자는 모습이 토끼처럼 귀여워서 이연은 저도 모르게 귀여운 마음에 홍난의 볼을 살살 꼬집었다.


꼬옥


그런데 살살 꼬집는다고 꼬집었는데 홍난이 잠을 깼다.


홍난 "츠.... 츠읍...."


끔뻑끔뻑


그녀는 잠깐동안 잠에서 덜깼는지 이연을 보고도 반응이 없었지만.


홍난 "어.... 어.어.어. 언니! 일.... 일어났어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허둥대는 모습에 이연이 웃으며 답했다.


이연 "응 ㅎㅎ"

홍난 "괜찮.... 아요.... 언니....?"


홍난은 이연의 몸 상태부터 물어왔다.

뭐 그런거부터 물어보나 싶었으나 홍난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이연은 지금 자신이 체감하고 있는 바를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이연 "으음.... 조금 춥긴한데...."

홍난 "아. 네네!"


이연이 말하자마자 홍난이 재빨리 달려가 온도계를 만지고 왔다.

확 죽어버린 에어컨에 이연은 과하다고 느꼈으나 나름 귀여운 맛이 있어서 그냥 지켜보았다.

홍난이 다시 와서 물었다.


홍난 "그리고요?"

이연 "아냐. 그정도면 됐어"

홍난 "빼지 말구요. 어디 또 불편한 데 없어요 언니?"

이연 "응. 진짜 괜찮아"

홍난 "진짜죠?"


하지만 극구 사양해도 홍난은 여전히 열의에 가득차 있었다.

어떻게든 이연의 편함을 보장하겠다는 그 기세에 이연은 조금 쫄아서 움츠러들었다.


홍난 "아니다. 아! 물이라도 마실래요? 언니 입술 다 말랐는데. 목 마르지 않아요?"


말을 하더니 홍난은 고개를 돌려 커피포트를 찾았다.

환자에게 어떤 물이 좋을지 몰라 미지근한 물을 따라주었다는데

사실 이연은 별로 목이 마르진 않았지만 그 정성이 갸륵해서 홍난이 준 미지근한 물을 마셨다.


꿀꺽꿀꺽


이연 "...."

홍난 "...."


그렇게 물 한컵을 마시니 홍난이 이연 자신을 강아지처럼 올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마치 무슨 부탁이던 다 들어주겠다는 듯한 포즈로.

어제와 180도 확 달라진 태도에 이연은 어쩐지 기분이 머쓱했다.

그래서 그녀는 괜히 말을 돌렸다.


이연 "홍나나~"

홍난 "네! 언니!"

이연 "그러는 너야말로 괜찮니?"

홍난 "아. 저는...."


홍난이 손사레를 치려는데 이연이 먼저 홍난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이연 "밴드 여기저기 잔뜩 붙이고 있고.... 많이 쓰라렸겠다...."

홍난 "아니에요. 예전에 한창 권투 할때도 이렇게 막 다치고 까지고 그랬는걸요. 언니에 비하면야 저는....

이연 "하지만 너 어제 정말 많이 다쳤잖아. 멍도 많이 든거 아냐?"

홍난 "그것도요. 그것도 운동 배울때 많이 들어봐서 괜찮아요. 그보다 언니...."

이연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젠 진짜 언니 지켜준다고...."

홍난 "언니야말로...."


서로의 걱정을 하다보니 어째 꼬리물기가 되서 말이 안끝났다.

이대로는 서로 다친 이야기만 내내 할 것 같아 둘은 결국 말을 멈췄다.

병실의 온도는 올라가고 있었지만 어쩐지 분위기는 아직도 어색했다.


이연 "...."

홍난 "...."


물론 홍난도 홍난 나름대로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었다.

이연이 일어나면 막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이제 열심히 회복해보자고 많이많이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이연의 눈을 마주하고 보니 어떻게 그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그녀는 입을 다문 체 눈만 도로롱 굴렸다.

언니가 먼저 괜찮냐고 물어보지 않았으면 말할 수 있었는데....

느닷없지만 그런 얄궂은 마음이 살짝 들어 그녀는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이연 "....응?"


그리고 이연은 그 귀여운 투정을 바로 읽었다.

뭔가 할 말 많은데 못해서 지은 표정이라는 걸.

비록 정신이 아직 몽롱했지만 사랑하는 연인의 투정을 못알아 볼 정도는 아니였다.


이연 "ㅎㅎㅎㅎ"


이연이 웃었다.

홍난은 그 웃음이 놀리는 웃음인줄 알고 대꾸했지만.


홍난 "언니이~ 왜 웃...."

이연 "걱정되니까. 난 너밖에 없는 걸?"


이연의 말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대신 부끄러운 마음에 입을 삐죽였다.


홍난 "치이.... 말은...."


그 반응이 하도 귀여워서 이연은 이번엔 진짜로 놀렸다.


이연 "말은? 언니 여기 지금 아파서 실려온건데?"


그 말에 홍난이 허둥지둥했다.


홍난 "어.... 어 어! 미안해요 언니! 그.... 그런 뜻은 아니였는데...."


홍난의 말에 이연이 다시 웃었다.


이연 "ㅎㅎㅎㅎ 장난이야 ㅎㅎㅎㅎ"

홍난 "언니 진짜!"

이연 "ㅎㅎㅎ.... 아읏...."


그러나 너무 웃었는지 배가 땡겨서 상처를 자극했다.

이연이 찡그리며 신음소리를 내자 홍난이 다시 돌변했다.


홍난 "어.... 언니! 괜찮아요?"

이연 "으.... 으응.... 괜찮아...."


이연이 괜찮다고 말을 했지만.

홍난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이연을 한사코 무시했다.

그리고 환자는 안정이 제일 중요해요! 라고 하며 그녀를 다시 침대에 눞혔다.

별로 눞고싶은 마음은 아니였지만 저렇게 누우라니 이연도 별 수 없이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녀 옆에서 홍난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홍난 "간호사님 부를까요?"

이연 "아니야. 됐어. 그냥 갑자기 웃어서. 좀 땡겨서 그래. 그보다 내가 다쳤는데 왜 니가 유난이야"

홍난 "아니 그치만...."


유난이라는 이연의 말에 홍난은 이연을 정말 많이 걱정하는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뒤늦게 표정을 고쳤다.

사실 정말 많이 걱정한거 맞고, 지금도 걱정 많이 하고 있다만 이연이 너무 장난스러운 분위기라 어쩐지 그런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이연이 보기엔 이미 티는 한 바가지로 냈지만....

어쨌든 안그런 척~ 새침한 표정을 짓는 그녀였지만 그래도 이연을 보는 눈 만큼은 걱정이 한가득이였다.


이연 "푸우.... 언닌 홍난이 얼굴 재대로 보고 싶었는데...."

홍난 "지금도 재대로 보시고 있는 거거든요?"

이연 "아니. 누워서는 제대로 못봐. 그러니까 제대로 볼 수 있게 좀 더 올라올래?"

홍난 "에휴...."


한숨을 쉬면서도 홍난은 기꺼이 이연을 위해 일어나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주었다.

이연이 툴툴댔다.


이연 "더~ 더~ 조금만 더 와바~"

홍난 "얼마나 더요. 지금도 충분히 가깝지 않아요?"

이연 "그래도~ 좀 더 와바아~"


이연의 성화에 홍난은 어깨 하나 정도만을 사이에 둘 정도로 가까이 이연에게 다가갔다.

물끄러미 홍난을 바라보는 이연의 눈빛.

눈 코 입 하나하나 뜯어보는 그 눈빛에 홍난은 수줍음을 느꼈다.


홍난 "저.... 언니.... 너무 쳐다보시는 것 같은데...."

이연 "왜애~ 언니가 보겠다는데 왜 자꾸 피해~"

홍난 "아니....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시니까...."

이연 "홍난이 너도 나 자고 있을때 내 얼굴 무지무지 많이 봤을거 아냐? 안그래? 내가 니 성격 다 아는데. 응? 언니도 좀 보자아~"

홍난 "아니 그건 맞긴 한데...."


이연의 논리정연한 말에 홍난은 결국 얌전히 일일사진이 되어주었다.

차라리 나 자고 있을때 관찰하지.... 나는 언니 자고 있을때 본건데....

속으로는 그런 마음이였지만 홍난 본인도 이미 이연을 아주 많이 본 죄가 있어서 내색하진 않았다.

물론 눈은 여전히 어디로 둬야할지 몰라 많이 깜빡이고 흔들렸지만.


이연 "ㅎㅎ 예쁘다 우리 홍난이 ㅎㅎㅎㅎ"

홍난 "예쁘긴요. 저도 거울 봤거든요. 지금 제 얼굴 다 붓고 상처나고 난리 났던데...."

이연 "아냐. 그래도 예뻐. 정말 예뻐. 언니 눈에 홍난이 네가 최고야 ㅎㅎㅎㅎ"

홍난 "...."


....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홍난의 볼이 터질 듯 빠르게 달아올랐다.

참으려는지 입을 꼭 다무는 모양이 꼭 다람쥐 같았다.


이연 "어? 오늘은 뺨 안가려? 이상하다? 부끄러우면 뺨 가리는게 우리 홍난인데....?"


이연의 말에 홍난이 발끈해서 터졌다.


홍난 "어.... 언니가 제 얼굴 보시고 싶다면서요! 그래서 부끄러워도 안가리는건데 사람 맘도 모르구...."

이연 "아! 언니 위해서 안가린거였어? 오올~ ㅎㅎㅎㅎ 고마워 홍나나~"

홍난 "으휴.... ㅎㅎ 자꾸 웃지나 마요. 상처 아프잖아요~"

이연 "너도 웃었으면서...."


찌릿!


홍난이 이연을 째려봤다.

이연이 홍난을 나무랬다.


이연 "알았어 알았어~ ㅎㅎㅎㅎ"


그렇게 둘은 잠깐 한적한 새벽을 즐겼다.

시덥잖은 농담과 서로를 걱정하는 말들.

한 잔의 미지근한 물과 뜨거운 차의 시간이 지나고

새벽의 한 가운데를 지날 무렵.


불현듯 이연은 홍난에게 뜬금없이 사과를 건넸다.


이연 "미안해 홍난아...."

홍난 "네?"

이연 "언니가 너무 언니 생각만 해서. 그래서 너 이렇게 마음 고생 시켜서 정말 미안해"


그건 이연의 고백이였다.

너무 늦었지만 사그라들지는 않은.

마지막이라 느끼던 따뜻함을 뒤로한 체 그녀는 그 가시에 스스로를 찔렀다.


이연 "너도 너 나름대로 생각이 다 있었을텐데.... 항상 언니가 너무 밀어붙이기만 한 거 같아서. 그래서 더 미안해"

홍난 "...."

이연 "그래서 너한테 항상 상처주고.... 언니가 항상 인생 선배인 척 했지만.... 사실 언니도 너무 서툴러서. 아무것도 몰라서.

      변명이라고 해도 어쩔수 없는데 그래도 그런거 하나하나가 너한테 정말 상처가 되었다면 미안해...."


다시 만나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이연이 내내 속으로 고심하고 또 고심했던 말들.

진솔한 마음으로 이연은 홍난에게 부딫혀왔다.


이연 "언니. 아니 나.... 지금 이런 이야기 하는거 무서워. 마음 같아선 그냥 너랑 좋은 이야기만하고, 같이 있고 싶어....

      그치만.... 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이야기 하는거야.

      예전에 너한테서 다른 사람을 찾아서, 그래서 상처를 준것도 너무 미안하고.

      너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숨겨서 널 소외감 들게 한 것도 정말 미안해.

      그리고 어제도 .... 내가 너를 그 곳에 데려가지만 않았어도.... 넌 아무 상처도 없이 안전하게 경호원분들이 보호해줬을거야.

      지금 너 이렇게 힘들고. 다치고 그런 거.... 다 내탓이야.... 정말 미안해...."

홍난 "언...."


홍난이 뭐라 말할려 했으나 이연이 홍난의 손을 잡고 한마디를 더 했다.


이연 "하지만 사랑해"

홍난 "...."


이연의 말에 홍난의 입이 닫혔다.

그녀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연 "진심이야"


꼬옥.

지긋이 힘을 준 손이 이연의 굳은 마음이였다.


이연 "정말로. 정말로 사랑해 홍난아. 그러니까 너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언니는 홍난이 너 원망 안할거야...."


마치 당연히 버려질 것처럼 먹먹히 눈이 젖어들어갔지만.

그래도 그녀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껏 줄곳 미루어 왔던 자신의 잘못들에 대한 벌을

그녀는 이제는 직시하려고 했다.


....

....


지금 이 순간에는 서로의 숨소리만 들렸다.

초조한 마음으로. 

이연은 홍난이 뭐라 말할지 듣기 위해 온 신경을 그녀의 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홍난이 슬며시 손을 뺐다.


이연 ".... 하아...."


그것을 거절이라고 받아들인 이연이 울려는 찰나,


홍난 "어째 이런거까지 똑같은지...."


홍난이 먼저 이연의 이마를 가볍게 딱콩 때렸다.


이연 "으앗...."


울먹이던 이연이 어리둥절해했다.


홍난 "언니! 그거 알아요? 저 언니 자고 있을때 무슨 생각했는지?"


홍난의 말에 이연이 풀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이연 "아니...."

홍난 "저.... 언니랑 같은 생각했어요. 나는 언니에게 아픔만 주는구나. 내가 버려져도 당연하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요"

이연 "홍난이 니가 왜...."

홍난 "근데 있죠. 그렇게 한참을 하던 고민이 갑자기 사라지지 뭐에요. 언니는 혹시 그 이유 알아요?"

이연 "....."


이연은 몰랐으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 사라졌는지, 지금 홍난의 마음이 어느쪽인지 그녀가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였다.

그런데 홍난이 갑자기 일어나 이연의 옆에 비집고 앉았다.


홍난 "좀만 옆으로 가봐요!"

이연 "어? 어어...."


이연이 쮸뼛쮸뼛 홍난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자리에 앉은 홍난은 아예 이연의 옆에 눕더니 천장을 보고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홍난 "아 좋다. 침대가 의외로 푹신하네요. 그리고 오늘 하루종일 쪼그려 있었더니 스트레칭도 되구...."

이연 "...."


이연은 대답없이 침만 삼켰다.


꼴깍


홍난 "이것도 기분이 색다르네요. 그동안 연애할 땐 항상 언니가 저보다 몇걸음 앞서서 생각했었잖아요.

      그래서 저는 늘 언니가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따라가기 바빴는데.... 

      오늘은 제가 먼저 생각했으니까 언니가 따라오는거네요 ㅎㅎㅎㅎ"


그녀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나른한 모습으로,

동글동글하지만 오똑한 코와 물 머금은 것 같은 입술, 우아하게 닫힌 속눈썹과 눈꺼풀이 이연의 눈에 들어왔다.


홍난 "언니 지금 저 보고 있어요?"


이연이 소심하게 대답했다.


이연 "으응...."

홍난 "그럼 더 많이 봐요. 저 보다보면 제가 왜 그때 그런 고민이 사라졌고, 이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됐는지 알게 될거에요"


가만히. 

그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홀가분하게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은 홍난.

이연은 그녀를 보며 대체 왜 자신에게 홍난이 그녀 자신의 얼굴을 보라는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


이연 '그냥.... 귀엽고 예쁘기만 한데....'


그동안 그녀와 있었던 추억들이 기억나기도 하고 그랬지만

그래도 여전히 홍난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초조함인지 뭔지 묘한 마음에 가슴만 콩닥거릴 뿐이였다.


이연 '아니.... 이와중에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하면 어쩌자는건데.... 빨리 무슨 말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치만 점점.

그냥 홍난에게 빠져들었다.

분명 문제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그녀를 보면 자꾸 다른 모든 생각들이 뒤로 밀려서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만 잔뜩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몇 분이 지날 때 쯤 홍난은 눈을 떠 이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장난스러운 눈을 하고선 이연에게 딱 한마디를 했다.


홍난 "언니 저 포기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순간.

이연의 심장이 완전히 멈췄다.

영원처럼 빛나는 그녀의 말에,

완전히 압도되어 확 끌려가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홍난은 이연에게 모든 것이였다.


이연 "...."


비로소 이연은 홍난이 무슨 뜻으로 그녀를 가만히 보라는 건지 알았다.

그냥....

그저 반한 것이였다.

거부할 수 없는 마력에.

벗어나지 못하고 완벽하게 빠져든 것이였다.


이연 ".... 아니...."

홍난 "ㅎㅎㅎㅎ"


배시시 웃는 홍난.

그녀는 아름다웠다.

아니 아름답다는 말로도 미처 다 채우지 못할 무언가가 있었다.

춤추는 불처럼 아른거리는 빛을 비추어내는데, 

그건 바로 언젠가 이연이 홍난에게 주었던 바로 그 빛이였다.

줄 땐 별 마음없이 그저 힘이 되어주고 싶었던 바로 그 따뜻한 온정이.

받을 땐 온 마음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거대한 해일이 되어 있었다.


홍난 "그러니까. 한번만이에요!"


한번만이라는 말에 이연이 반문했다.


이연 "응?"

홍난 "한번만이라구요. 저 구해줘서 그런것도 아니구, 언니 용서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내가 언니 정말 사랑하니까.

       딱 한번 용서해주는거에요. 알았죠?"


그 말에 이연은 홍난이 말하는 한번이라는 것이 자신의 잘못들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연 "아...."

홍난 "그리고 그런 말도 하지마요. 어떤 선택을 하니 마니 하는 그런 말. 저도 제가 좋아서 언니 선택한거에요.

      그러니까 절대로 언니 탓 아니에요. 따지고 보면 그놈들 제 악연...."


그 뒤로 홍난이 뭐라 넋두리를 했으나 이연은 잘 듣지 못했다.

오직 이번 한 번. 

다시 한 번 사랑을 주겠다는 말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맴돌았다.

내심 거절당할거라 생각해서 전혀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전혀 기대도 안하던 결말이 나와서 그녀의 뇌가 뒤늦게 과부하에서 풀렸다.


홍난 "알았죠? 그러니까...."

이연 "고마워!"


그대로 몸을 돌려 그녀는 홍난을 마구 껴안았다.

상처가 여전히 많이 쓰라렸으나 지금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 이연은 홍난을 부서져라 껴안았다.


이연 "고마워 홍나나! 정말.... 정말 진짜 진짜 고마워! 고마워...."

홍난 "언니 잠깐...."


안긴 홍난도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이내 이연이 자신을 잘 안을수 있도록 옆으로 누워 자세를 고쳤다.

당연히 이연은 다시 또 마구 껴안았다.

안긴 홍난의 입엔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연 "진짜루.... 언니가 진짜루 잘할게.... 하고 싶은거 있으면 다 말하구 가지고 싶은거 있으면 다 말해 언니가 어떻게든 다 들어줄게...."

홍난 "언니가 무슨 슈퍼맨이에요? 제 소원 다 들어주게 ㅎㅎㅎㅎ"

이연 "아냐. 진짜루 다 들어줄거야! 우리 홍난이가 원하는건데! 홍난이 니가 원하면 언니가 밤하늘의 별도 다 따줄거야"

 

이연이 한팔로 하늘을 가리키며 과장된 몸짓을 하자 홍난이 핏 하고 웃었다.


홍난 "으.... 옛날사람~ 밤하늘의 별이 뭐에요~ 하여간. 묘한데서 옛날마인드라니까 ㅎㅎ"

이연 "왜애~ 그럼 다른거, 언니가 너 원하는거 다 사줄까? 언니가 정말 열심히 일해서라도...."

홍난 "됐네요. 언니보다 제가 더 돈 많거든요? 우리 엄마돈이긴 하지만.... ㅎㅎㅎㅎ"


홍난의 말에 이연이 시무룩해했다.

그런 이연의 기운을 홍난이 북돋았다.


홍난 "언닌 그냥 저 많이 사랑해주시면 돼요. 제 속 썩이지 말구요. 

      아! 속 썩이지 말라는 말. 이거 언니가 항상 저한테 했던 말인데.... 이것도 제가 하게 되네요 ㅎㅎㅎㅎ

      아무튼 사랑만 주시면 되니까. 사랑 열심히 저한테 주세요. 알았죠 언니? ㅎㅎ"


생글생글 웃는 홍난.

이연이 다시 한 번 팔을 크게 벌렸다.


이연 "그야 당연하지! 언니가 이만큼! 이만큼 사랑해줄테니까 홍난이 넌 그냥...."


그런데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 상처가 갑자기 쿡 쑤셨다.


이연 "아읏...."


옆구리를 부여잡고 쓰러지듯 눕자 홍난이 깜짝 놀랐다.


홍난 "아.... 아파요 언니?"


허둥지둥.

방금전까지 보여줬던 여유는 어디갔는지.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괜찮아요? 간호사님 부를까요? 그런 말들을 했다.

얘도 참....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연은 장난기가 돋아서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이연 "홍난아...."

홍난 "네네!"

이연 "언니.... 부탁이 있는데 혹시 들어줄 수 있어?"


그치만 아프긴 여전히 아파서 그녀의 미간은 아직 찌푸려진 채였다.

그래서 홍난은 이연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홍난 "네네! 무슨 부탁인데요?"

이연 "그러니까 언니가 말이야.... 콜록콜록"

홍난 "언니!"

이연 "조금 추운데...."

홍난 "지금 방 온도 더 올리고 올게요!"


이연이 일어나려던 홍난을 만류했다.


이연 "아냐 그냥 안아줘. 조금 추운거니까...."

홍난 "언니...."


그래서 이번엔 홍난이 이연을 꼬옥 안아주게 되었다.

춥다고 했으니까. 

머리와 어깨쪽만 안아주는게 아니라 허리까지 당겨 몸 전체를 완전히 밀착시켰다.


홍난 "언니 이제 덜 추워요?"

이연 "으응.... 확실히. 따뜻해...."

홍난 "저 몸 많이 차가운 편인데.... 하아.... 제가 따뜻할 정도면 언니는...."


몸이 차갑다는 이야기.

아마 처음 만났을때 말했던 손과 발의 냉증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 것 까지 신경쓰다니.

참 착한 아이였다.

순간 장난을 치려는 마음이 흔들렸으나 어차피 거의 다 온 장난.

이연은 내색하지 않고 홍난에게 계속 연기를 했다.


이연 "아냐 괜찮아.... 그리구.... 이렇게 안은 김에 언니 부탁 하나만 더 들어줘...."


이연의 말에 홍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난 "뭔데요?"


그런데

동글동글하게 말하는 그녀.

고작 한 치. 

뺨 앞에서 말하는 그녀의 말이 너무 귀여웠다.


이연 "크.... 크흠...."

홍난 "언니?"


어리둥절한 모습도 그렇고.

웃음이 안나오려고 해도 자꾸 나와서, 결국 이연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연 "ㅎㅎㅎㅎ 여기 호~ 해주면 다 나을 것 같은데 ㅎㅎㅎㅎ 언니 이마에 호~ 한번만 해주면 안돼? ㅎㅎㅎㅎ"


그러니 당연히 장난이라는 걸 들킬 수 밖에 없었다.


홍난 "언니!"


홍난이 짜증을 부리며 이연을 밀쳐내려 했으나.

밀쳐내려다 이연이 환자라는걸 깨달았는지 그냥 본인이 멀어졌다.


이연 "왜애~ 호오~ 해줘~ 응? 해줘어~"

홍난 "으~ 진짜. 걱정한 내가 멍청이지.... 맨날 나 놀리는 재미로 연애했던 언닌데.... 에휴...."

이연 "ㅎㅎㅎㅎ 응? 호오~ 해주라 홍나나아~"


도리도리 고개를 젓던 홍난이 체념했다.


홍난 "에휴.... 환자 부탁이니까 그래도 들어줄게요. 이리 오.... 아니 제가 갈게요"


부끄러운 듯 뺨이 또 발그레 해졌지만 그래도 그녀는 이연의 이마에 가볍게 숨을 불어주었다.


호오~


이연 "으으~"


정작 받은 이연은 아쉬워했다.


홍난 "참나. 받아놓은 사람이 아쉬워하는건 뭐에요?"

이연 "아니 난. 홍난이 니가 절대 못하겠다고 버틸 줄 알았거든. 쩝.... 부끄러워 하는 홍난이 모습 보고 싶었는데...."

홍난 "그러기엔 앞에서 너~ 무 장난치셨거든요? 하도 장난을 치셔서 저는 이제 인이 박였어요"

이연 "치이.... 무효야! 물러 물러!"

홍난 "에에?"

이연 "물러어~ 부탁 안한걸로 할래!"


그러더니 이번에도 슬쩍 다시 홍난에게 부탁을 해왔다.


이연 "대신 다른거! 다른거 부탁할거야! 들어줄래 홍나나?"

홍난 "이번에도 장난이면 진짜 국물도 없을 줄 알아요?"

이연 "아냐! 장난 아냐!"


갑자기 이연이 홍난의 손을 잡아왔다.

그리고 분위기도 진지하게 잡았다.


이연 "그러니까. 들어줄래 홍난아?"

홍난 "...."


자연히 홍난도 진지해져서 이연의 말을 듣기 위해 집중했다.


....

....

....


그러나 이연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고....

침묵 사이에서 결국 이연은 했던 말을 접었다.


이연 "으음.... 아니다. 나중에 말할래"


똑같이 말이 없던 홍난이 조심스레 이연의 부탁을 추측해왔다.


홍난 "저.... 가지말라는 부탁 할 거 아니였어요?"


이연이 크게 반응했다.


이연 "뭐야? 갈거였어?"


홍난이 얼른 부정했다.


홍난 "그건 아니지만요"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이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연 "그건 부탁 아니야. 명령이야! 가지마 홍난아! 알았지?"



%%%%%%%%%%%%%%%%%%%%%%%%%%%%%%%%%%



오늘은 2화 분량!


사실 원래 더 써야하는데 쓰다보니 길어져서 끊었음 


그리고 다음화는 마지막 화야!


마지막 화 다음엔 에필로그가 조금 더 있을 예정!




그거 알아? 4일전이 돌저씨 막방 6년 째였다는거?


언제나 이맘때면 돌저씨 본방 달리던 때가 생각나 ㅋㅋㅋㅋ



시간나면 구질이들도 다들 정주행 한번씩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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