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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의 통찰] 쿠팡 사태가 묻는 기업 윤리의 기준

ceonew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12.30 12:18:10
조회 1051 추천 3 댓글 39


김병조 본지 총괄 에디터


[CEONEWS=김병조 기자]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기업의 '사고'가 아니라 '자격'을 묻는 사건이다. 수천만 명의 정보를 관리해온 플랫폼 기업이 그 정보를 지켜내지 못했을 때, 사회는 단순한 사과가 아니라 책임의 실체를 요구한다. 그러나 쿠팡의 대응은 이 기본 원칙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쿠팡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김범석은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나서야 사과했다. 그것도 직접 국민 앞에 서지 않았다. 얼굴 없는 사과문은 사과가 아니라 거리두기다. 책임자가 등장하지 않는 사과는 기업이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택하는 가장 전형적인 위기관리 수법이다. 이는 진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 인식의 문제다.


쿠팡은 더 이상 '성장 중인 스타트업'이 아니다. 한국 유통 생태계와 고용 구조, 소비 패턴에 구조적 영향을 미치는 사실상의 공공재적 플랫폼이다. 그런 기업의 최고 책임자가 국회 청문회에 불참했다는 사실은 명백한 메시지를 던진다. 쿠팡은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민주적 통제에는 응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이라는 지위는 책임 회피의 면허가 아니다. 오히려 규모가 클수록, 영향력이 클수록 공적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 국회의 질문을 피하는 CEO는 투자자에게는 편할지 몰라도, 시민에게는 위험하다.

보상안은 이 사태의 윤리적 빈곤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쿠팡이 내놓은 '1인당 5만원 보상'은 사실상 착시다. 실제로 현금성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5천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쿠팡 내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이다. 이는 피해 회복이 아니라 재구매 유도다. 개인정보를 유출당한 소비자에게 다시 그 플랫폼 안에서 소비하라고 요구하는 방식은 보상이라기보다 기만에 가깝다.

이 대목에서 기업 윤리는 완전히 실종된다. 개인정보는 쿠팡의 마케팅 자산이 아니라, 소비자의 권리다. 그 권리가 침해됐을 때 기업이 해야 할 일은 쿠폰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책임자를 세우고 재발 방지와 제도 개선을 약속하는 것이다. 쿠폰은 신뢰를 대신할 수 없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에서 김범석이라는 이름이 끝내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은 쿠팡의 상징적 책임자다. 성과는 공유하면서, 위기에서는 조직 뒤에 숨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이는 개인의 태도를 넘어 기업 지배구조의 결함이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가장 큰 위험은 힘의 비대칭이다. 소비자는 선택권이 있지만, 플랫폼은 지배력을 가진다. 그 지배력 위에 윤리와 책임이 얹히지 않을 때, 혁신은 곧 독선으로 변한다. 쿠팡 사태는 바로 그 경계선을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지금 쿠팡에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PR도, 더 많은 쿠폰도 아니다. 최고 책임자의 공개적 책임 인정, 국회와 사회 앞에 서는 태도, 그리고 피해자 중심의 실질적 보상이다. 그것이 없다면 이번 사태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는 기준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쿠팡 창업자 김범석은 선택해야 한다. 플랫폼 권력의 그림자 속에 숨을 것인가, 아니면 책임의 빛 아래로 나올 것인가. 지금의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방기다.

쿠팡에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쿠폰이 아니다. 책임의 언어, 그리고 공적 신뢰를 회복하려는 태도다. 플랫폼 권력의 시대일수록 기업 윤리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 된다.



▶ [김병조의 통찰] '주몽'과 '소서노'의 차이▶ [김병조의 통찰 8] 이재명 정부의 위험한 도박▶ [김병조의 통찰 7] '라면경제학'과 '라면인문학'의 차이▶ [김병조의 통찰 6] 알파고와 이세돌의 경쟁은 끝났는가?▶ [김병조의 통찰 5] "너희는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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