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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41 "전과"

김유식 2010.05.11 08:01:37
조회 11040 추천 4 댓글 36


  11월 6일 금요일


  오늘의 설거지는 또 박경헌이 걸렸다. 박경헌은 설거지가 계속 걸려도 싱글벙글이다. 다음 주 화요일, 그러니까 10일이 선고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나갈 수 있을 사건이 아닌데도 박경헌은 15방 ‘드라큐라’의 이야기를 듣고 와서는 곧 나갈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이재헌 사장이 아예 박경헌의 꿈에 날개를 달아줬다.


  “박도사님, 제가 보니까 공무원 생활 20년 가까이 한 것도 있어서 무조건 다음 주 화요일에 출소하실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냥 월요일까지 3일 더 설거지 하시다가 나가세요. 방 사람들 위해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우리 사동에서 박경헌에게 나갈 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100% 증가했다. ‘드라큐라’에다가 이재헌 사장 한 명이 더 늘었다. 아주 신난 박경헌이 콧노래를 부르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제가 나갑니까?”


  “나가고말고요! 그게 무슨 큰 죄라고! 모르는 사람 사기 친 것도 아니고 애인이라면서요? 그리고 공무원을 그렇게 오래했는데! 내가 판사라도 출소시켜 줘야죠~ 그러니까 나갈 때까지는 그냥 설거지 더 하세요.”


  “아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곧 나갈 놈인데 그것도 못하겠습니까? 제가 나갈 때까지 설거지 다 하겠습니다.”


  창헌이과 두식이가 좋다고 탄성을 지른다. 박경헌은 100% 못 나간다. 박경헌만 빼고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내가 걱정스러워 한마디 던졌다.


  “그러다가 그냥 다시 들어오면 어쩌시려구요?”


  다시 들어오는 것은 징역을 선고 받았다는 뜻이다. 설거지를 하던 박경헌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얼굴을 찌푸리며 이재헌 사장을 보면서 물었다.


  “어? 진짜 징역 찍히면 어떻게 합니까?”


  이재헌 사장이 손을 내저으면서 말한다.


  “그럴 일 없어요. 초범이잖아요. 공무원도 했었고, 분명히 나갈 거예요.”


  다시 희색이 만연해진 얼굴로 바뀐 박경헌은 다시 설거지를 시작했다가 십초도 안 지나서 또 멈췄다.


  “그래도 혹시 찍히면 어떻게 합니까?”


  박경헌의 질문에 이재헌 사장이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뭐 어떻게 해요? 찍히면 찍혔으니까 설거지 삼일 빼주면 되지!”


  “아! 그렇군요! 그럼 약속한 겁니다. 찍혀서 돌아오면 설거지 삼일 빼주기로.”


  이런 단순한 면이 있는 박경헌이기에 방 사람들이 보고전을 내서 박경헌과 같이 못 살겠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늘은 아침식사로 연두부와 떡국 국물을 떠먹고 머리를 감았다. 며칠 전에는 무지 춥더니만 오늘은 또 날씨가 풀렸다. 라디오 뉴스를 들어보니 한 낮의 온도가 20도까지 올라간단다. 이런 날은 그저 미사리로 차타고 가서 쏘가리나 빠가사리 매운탕에 소주 한 잔 하든가, 아니면 남한산성으로 가서 닭도리탕에 산사춘 대여섯 병쯤 먹으면 딱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ㅠ.ㅠ 


  오전 점호를 마치니 인터넷 편지와 등기우편이 우르르 들어왔다. 편지 받은 김에 답장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더니 운동준비 하란다. 오늘은 오전 첫 번째 운동시간이다. 날씨도 좋고, 파자마 차림으로 나가서 운동장 철문을 열고 뛰었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 처음으로 달려 나가서 뛰는 맛이 좋다. 뭐 금방 뒤따라오는 죄수들로 채워지긴 하지만 처음부터 뛰다 보면 꼭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쌓인 길을 처음 밟는 느낌이랄까? 묶어 놓았다가 목사리를 푼 개죽이처럼 신이 나서 뛰는 것 같다.


  막내 두식이는 오늘 첫 출정이다. 상해, 절도, 주거침입, 재물손괴 등 모두 네 가지 죄목으로 기소됐는데 두 가지에 대해서는 부인하는 터라 오늘이 큰 고비였다. 나중에 돌아온 두식이의 말로는 판사가 증인을 부르라고 했다며 좋아하면서 돌아왔다. 피해자가 증인인데 이미 합의까지 한 마당이니 증인으로 신청해도 안 나올 이유가 없다. 출소날이 좀 느려지기는 하지만 석방에는 문제없을 듯 하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책이 들어와 있다. 본부장이 가수 윤건과 책을 냈다면서 보내준 “커피가 사랑에게 말했다”를 읽고 있다가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유모 사장이 TIME 잡지를 영문판으로 한권 넣어주긴 했는데 시기가 잘 맞지 않았는지 지난 주 것이 들어왔다. 그냥 두자니 아까운 것 같아서 창헌이에게 말해서 다른 경제방에 가져다 주라고 했다.


  점심 배식 시간을 10분 남겨두고 접견신청이 왔다. 아내와 본부장이다. 아내는 동생과 오전에 변호사를 만나고 왔지만 특별히 좋은 대답을 듣고 온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변호사도 최선을 다해 보자고 했을 것 같다. 어느 변호사나 확신을 주지는 못한다. 또 100%라고 말하는 변호사도 없다. 특히 유명 로펌이나 유명 변호사일수록 더욱 애매모호하게 대답한다. 게다가 우리 변호사는 이미 내가 1심에서 법정구속되었기 때문에 더욱 더 말하기를 조심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다.


  접견을 마치고 사방으로 돌아오니 점심밥을 남겨 놓았다. 어차피 남은 연두부를 까먹으면 되는데 굳이 남겨두지 말라고 말 했는데도 이렇게 남겨두면 눈치가 보여서 먹지 않을 수가 없다. 문제는 밥만 남긴 게 아니라 닭다리도 남겨 놓았다. 닭다리는 먹지 않겠다고 하니 조선생이 이미 뜯어놓아서 안 된단다. 살만 살살 뜯어 먹었는데도 배가 부르다. 이렇게 먹으면 살이 안 빠지는데. 오늘부터는 저녁식사를 더 줄여봐야 할 것 같다. 하루에 먹는 거라고는 연두부 두세 개에 땅콩 스무 알, 마른 오징어, 사과 한 개 정도인데도 살이 쉽게 빠지지 않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활동량이 부족해서 일 듯 하다. 잠시 창살운동을 하다가 지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내일부터는 운동도 없는 주말이다. 접견조차 없는 일요일은 진짜 시간이 안 간다. 주말을 이용해서 ‘탄원성 반성문’ 초안을 잡아야겠다. 키보드 없이 하려니 벌써부터 눈앞이 깜깜해 진다. 노트북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쉽게 해결될 것 같은데 손으로 쓰려면 고역이다.


  박경헌은 자신이 나갈 수밖에 없는 근거(?)로 계속 15방 죄수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15방이야 당연히 박경헌이 이것저것 먹을 것을 갖다 바치니 좋게 말해 줄 수밖에 없는데도 그런 내용은 모두 무시하고 단지 절도 누범들의 말이 무조건 맞다고 우긴다. 15방 죄수 여섯 명의 1인당 평균 전과가 5범씩이라면서 ‘오래된 빵잽이들은 판사와 동격이다.’는 교도소 진리를 맹신하는 듯 하다. 이재헌 사장이 코웃음을 쳤다.


  “15방이 평균 전과 5범이라고요? 우리방도 만만치는 않은 것 같은데? 세어 볼까요?”


  “제가 초범인데 무슨 전과들이 있습니까? 15방에 비하면 쨉도 안됩니다.”


  박경헌이 세어볼 필요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재헌 사장도 고집이라면 약하지 않다. 조선생을 보면서 물었다.


  “조선생님! 전과가 몇 개십니까?


  “나. 나야. 전과 많지. 어디 볼까? 하나, 둘, 셋, 넷, 다섯........모두 열 개네!”


  집시법, 국가보안법, 폭력, 공무집행방해 등등 많기도 하다.


  “창헌아~ 너는 몇 개냐?”


  이미 옆에서 세고 있던 창헌이가 쉽게 대답한다.


  “일곱 개요.”


  “김 대표님, 별이 몇 개죠?”


  나도 이미 세고 있다. 그런데 아리까리한 게 있다.


  “군대에서 영창 갔던 거 전과로 쳐 주나요? 긴급구속 당한 건요? 전과 아니라도 인정하나요?”


  “쳐 줄 테니까 몇 개예요?”


  이재헌 사장이 큰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면 나도 이번 것까지 여섯 번이네요. 벌금전과도 있으니까.”


  내가 대답하자 이재헌 사장이 박경헌을 보면서 큰 소리로 말한다.


  “우리 방이 15방 보다 전과가 더 많아요. 내가 5범이니까 나하고 조선생님, 김 대표님, 창헌이만 합쳐도 28범이고 두식이가 2범이니까 두식이까지 쳐도 별이 모두 서른 개네! 박도사님이 별이 한 개니까 박도사님 때문에 우리 방 평균 까먹는 거예요!”


  “아 그렇습니까?”


  “거 맨날 15방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쓸데없는 소리 듣지 말고 같은 방 사람들 이야기도 좀 듣고 그러세요.”


  박경헌이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나를 보며 말한다.


  “김 대표님, 오징어 안 드십니까?”


 - 계속 -

세 줄 요약.

1. 설거지는 박경헌이 출소 때까지 하기로 했다.
2. 우리 방이 15방 보다 전과 수가 더 많다.
3. 박경헌은 무안해지면 오징어를 뜯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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