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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50 "려샴푸"

김유식 2010.05.25 09:53:12
조회 10721 추천 5 댓글 26


  11월 17일 화요일


  기상하면서 창문을 여는데 한파가 몰아친다. 라디오 뉴스를 듣자하니 영하의 날씨란다. 자투리 시간에 편지를 쓰다가 아침식사로 떡국을 먹었다. 뜨거운 물로 양치와 세수를 하고, 머리 감는 것은 참았다. 물도 부족하고 내일이 목욕날이다.


  방의 기류가 뭔가 이상하다. 박경헌이 빠져서 다섯 명만 자는 것도 좋고, 멍멍이 드립을 듣지 않아서 좋고, 방 안의 위생상태가 한결 높아져서 좋은데도 뭔가 분위기는 무겁다. 다들 말이 없다. 박경헌이 멍멍이 드립을 날리면 그것을 되받아치는 재미가 쏠쏠했던 이재헌 사장이나 창헌이가 매우 침울해 보인다. 어렸을 때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초딩시절 반에서 엄청나게 말썽을 부렸던 친구가 가출하고 퇴학을 당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창헌이는 출정을 갔고, 오전 점검을 마치고 잠깐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데 운동이 오전 첫 시간이란다. 아오~ 이 추운데 안 나갈 수도 없고. 운동장을 뛰고 돌아와서 신문을 읽고 있는데 이번엔 변호사 접견이란다. 같은 법무법인이지만 이전의 권, 강 변호사 외에 새로 선임한 변호사다. 1976년 서울대 수석입학생이었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으로 법복을 벗은 지 2년 정도 됐다고 했다. 만나보고 나니 조금은 희망이 생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월간조선에서 이름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변호사 접견을 마치고 오니 구매품이 들어온다. 부산의 지인이 넣어준 멸치와 쏘세지, 닭다리도 받았다. 오늘 들어온 구매품 중에는 귀마개와 눈가리개, 반목 폴라티도 있다. 10색 향기펜도 샀는데 색연필인 줄 알고 조카한테 그림이라도 그려서 보내려고 했더니 그냥 볼펜이다. ㅠㅠ


  출정을 갔던 창헌이는 별일 없이 돌아왔고, 점심으로 닭다리를 하나씩 먹으려는데 아뿔싸! 오늘 점심 주 메뉴는 닭도리탕이다. 고기의 양은 비록 닭이 장화신고 지나가면서 털을 떨어뜨린 수준이지만 그래도 국물 맛은 괜찮은 편이다. 점심도 먹고 느긋하게 신문을 읽다가 책을 보다가 잠이 들려는 순간에 접견 신청이 왔다. 그것도 우연의 일치로 이재헌 사장과 창헌이와 같은 회차다. 한 방에서 세 명이나 같은 시간에 우르르 접견 나가기도 쉽지 않다. 꼭 세 명이서 소풍 가는 듯한 느낌이다. 조선생은 접견이 없고, 정두식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없다. 내가 창헌이한테 말했다.


  “창헌아, 내 영치금 좀 챙겨라. 접견 가는 김에 양수리에 가서 매운탕에 소주나 빨고 오자! 이 사장님 어때요? 붕어찜도 드실래요? 참붕어? 떡붕어?”


  “저는 매운탕도 좋은데 물회 먹고 싶어 죽겠습니다. 물회로 하면 안 될까요? 물회 한 사발에 소주 세 병!”


  나의 실없는 농담에 영덕 출신이라 물회를 좋아하는 이재헌 사장이 거든다. 그리고 덧붙인다.


  “두식이 니는 뭐 묵고 싶노? 말만 해라. 내가 다 사다주께.”


  두식이가 웃으면서 둘둘치킨이나 한 마리 사다 달라고 했다. 둘둘치킨이 없으면 교촌치킨도 괜찮다고 했다.


  접견장에 가서는 신모, 유모, 김모 사장을 만났다. 다시 방으로 돌아오니 오후 3시 30분. 편지를 쓸까 하다가 책을 읽었다. 저녁으로는 뼈다귀해장국과 갈치튀김이 나왔다. 오늘도 박경헌이 전방 간 기쁨에 설거지를 자청해서 하고는 계속 편지를 썼다. 두 시간여 편지를 쓰다 보니 팔다리가 저린다. 내일은 목욕의 날이자 아내를 4일 만에 보는 날이다.



  11월 18일 수요일.


  잠을 너무 많이 자서 눈이 자꾸 떠지는데 일어나기가 귀찮다. 시간을 보니 오전 5시 30분. 한 시간은 더 자겠구나 했는데 오전 6시 20분에 기상 노래가 나올 때까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 식사는 연두부. 간만에 내 주식이 들어왔다. 아욱국 건더기와 연두부로 아침을 먹고 책을 읽었다.


  오전에 편지 네 통과 신문을 받아 읽고 있는데 교도관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검방을 한다. 뭐 모범수 방이라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교도관들이 형광등을 가려주는 가리개를 뜯어갔고, 화장실에 붙여져 있던 신민아의 속옷 사진을 지적당해서 뜯어 버렸다. 박경헌은 전방 가서도 말썽이다.


  오전 11시부터는 운동이란다. 오늘도 역시 20바퀴.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니 곧 점심배식시간이다. 오늘 오후 출정이 있는 막내는 씻기에 바쁘고 창헌이는 계속 예비 소지로 나가서 사동 복도에서 일을 한다. 박경헌까지 전방을 가니 방이 훤하니 넓고 좋다. 넓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은 방 안이 조용해진 것이다.


  점심으로 나온 소고기무국은 너무 기름지다. 어묵 조림과 풋고추를 먹었는데 10월에는 커다란 아삭 고추를 주더니 이제는 완전 매운 작은 고추다. 건강을 생각해서 네 개를 베어 물고, 소고기무국의 느끼함을 없애고자 커피를 진하게 마셨다. 점심을 마친 후 창살을 붙잡고 운동을 하고 있는데 창헌이가 다가와서, “오늘 우리 방 전방 없네요,”라고 말했다.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정각. 아직 모르는 시간이다. 내가, “10분 더 기다려봐야 안다,”고 말했는데 말이 씨가 됐는지 5분이 지나서 신입이 들어왔다. 아웅~ 방도 넓게 쓰고 잠자기에도 편했는데 안타깝다.


  신입은 마흔 네 살의 연예계 관련 종사자다. 편의상 ‘용 이사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말로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연예인들을 모두 자기가 키웠다고 하는데 솔직히 믿음은 안 간다. 왜냐면 돈이 없어도 너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열아홉 살 먹은 남자 연예인 지망생의 아버지로부터 900만 원을 받았는데 어디에 출연시켜주기로 한 것이 잘 안 됐는지 지망생의 아버지가 사기죄로 고소를 했단다. 용 이사는 법정에서 자기가 지망생을 석 달 동안 데리고 있었으므로 900만 원 정도는 월급으로 쳐도 모자란다고 주장했고, 선고도 별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솔직히 기소금액 900만 원짜리 사기는 구속 사안도 아니다. 그런데 용 이사는 선고날에 늦잠을 자서 그만 법정에 가지 못했단다. 별일 없겠거니 했지만 선고 당일 법정에 나오지 않으면 판사는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때가 있다.


  집도 없고, 이혼을 해서 딸린 식구도 없는 용 이사는 후배의 오피스텔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몇 달 죽쳤는데 용 이사의 후배는 용 이사가 자신의 오피스텔에 와서 삐대는 것이 싫었는지 그만 경찰에 신고를 해 버렸다. 그래서 형사들이 찾아와서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들어왔는데 후배는 오피스텔을 빼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간 것 같다면서 오피스텔에 남겨놓은 자신의 짐은 어떻게 하느냐고 하소연이다. 혹시 후배가 그걸 옮겼다면 절도로 고소할 수 없느냐고 묻기도 했다. 방 사람들이 모두 어이 없어 한다.


  신입은 말도 많다. 잠시도 입을 쉬지 않는다. 그리고 말하는 중간에 굳이 필요도 없는 “씨팔~”. “좆도~” 와 같은 욕설을 섞어서 쓰다 보니 더더욱 같이 대화하기가 싫어진다. 신입의 이야기라고 처음에는 귀를 쫑긋 세워 들어주던 방 사람들도 이십 분여가 지나니 그냥 무시해 버렸다. 용 이사도 입을 닫을 수밖에.


  오후 1시 30분이 됐다. 목욕시간! 와! 몇 분 안 되는 목욕시간 인지라 쉬지 않고 때를 빡빡 밀었다. 다 밀고 머리를 감으려는데 으앗! 조선생이 챙겨온 샴푸가 빈 통이었다. 욕탕 안에는 4방과 5방 죄수들이 있는데 4방의 샴푸를 어떻게 빌려 쓸까 눈치를 보고 있는데 등과 가슴에 커다란 문신이 있는 죄수가 고급 “려샴푸”를 쓰라면서 짜준다. 고맙다고 했더니 자기는 2방이란다. 헉! 사형수다.


  사람을 죽여 간을 꺼내 먹은 그 사형수다. 그것도 그냥 사형수가 아니다. 그 전에도 살인을 저질러 12년 형을 받았으나 10년만 복역하고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이때의 나이가 서른 살. 출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후배 조직원을 살해하고 공범들의 입을 막기 위해 간을 꺼내서 썰어 먹은 뒤 붙잡혔다. 이른바 전국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다는 “살인 누범”이다. 재차 구속되어 지금까지 살고 있는 햇수가 12년이다. 그러니까 22년째 복역 중이다.


  세 명이서 간을 나누어 먹었는데 그 중 한 공범이 미쳐서 경찰서에 가서 불어버렸다고 했다. 1심의 형량은 무기징역. 그래서 항소를 했는데 항소심에서 올려쳐서 사형이 선고됐고, 대법원에서도 사형이 확정됐다. 사람의 인상은 의외로 선해 보인다. 듣자하니 기독교에 귀의하여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샴푸는 잘 썼다. 목욕을 마치고, 빨래를 정리하고, 방도 쓸고, 양치도 하고. 간만에 면도도 깔끔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제 구매한 예쁜(?) 반목 폴라티를 꺼내 입었다. 오늘은 4일 만에 아내가 오는 날! *^^* 아내가 올 때까지 편지를 쓰면서 기다렸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박경헌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2. 신입이 들어왔다.
3. 사형수로부터 샴푸를 얻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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