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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30 "신민아"

김유식 2010.04.23 00:52:30
조회 14522 추천 5 댓글 56


  10월 26일. 월요일


  구속 19일째.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늘은 장소변경 접견이 있는 관계로 머리도 감고 면도도 했다. 신동아를 읽으려고 했더니 새 책이 들어온다. 그저께 왔었던 군대 쫄따구들이 넣어줬는데 TIME 잡지 한 부, 이기원의 장편소설 ‘제중원’ 1, 2권과 제목을 모르는 책 한 권이 더 있었는데 그것은 검열해야 들어올 수 있다고 해서 검열동의서에 ‘0’표를 했다. 하드커버로 된 책들은 마약이나 담배, 기타 부정한 서신 등이 끼어서 올 수 있기 때문에 칼집을 내서 확인을 해 보고 반입시켜 준다. 읽을거리가 부족했는데 잘 됐다 생각하며 ‘제중원’ 1권을 읽고 있는데 운동을 가란다.


  오늘도 오전 운동이다. 잽싸게 사동 입구 쪽으로 달려가서 다른 방 죄수들이 읽고 버린 신문을 한 무더기 가져와서 방안에다 던져두고 운동을 했다. 오늘 목표는 열두 바퀴~ 다섯 바퀴쯤 뛰고 힘들면 나누어 뛰려고 했더니 웬걸? 몸이 부쩍 가벼워졌는지 열 바퀴까지도 쉬지 않고 뛰었다. 운동을 마치고 사방으로 돌아오니 영치품과 구매품이 들어와 있다. 쫄따구들에게 살이 안 찌도록 오징어나 넣어 달랬더니 자그마치 22마리나 넣어줬다. 파자마와 붓펜도 들어왔다.


  붓펜을 받자마자 벽에 한마디 적었다. 그전에 벽에 누군가가, ‘여자는 입으로 말하고, 남자는 가슴으로 말한다.’라고 써두었는데 그 말이 유치한 것 같아서 안 보이도록 종이를 발라놓은 적이 있다. 내가 그 위에다 ‘모범수는 행동으로 말하고, 빵잽이는 입으로 말한다.’로 다시 써 놨다. 다분히 박경헌을 두고 하는 말이었지만 박경헌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좋은 말이라고 계속 중얼거린다.


  구매품 중에서는 박경헌이 노래를 부르던 맛동산도 열 봉지가 있었는데 박경헌은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면서 허겁지겁 다섯 봉지나 먹어댔다. 한 봉지에 500Kcal 이상 되는, 과자 중에서도 땅콩으로 버무린 고칼로리 튀김과자인데 다섯 봉지를 먹었다면 성인남자가 필요로 하는 하루치 열량이다. 물론 박경헌은 그 외에도 가나파이와 다른 과자나 초코바 등등을 아귀아귀 먹어치운다.


  나도 옆에서 맛동산 두어 개를 먹었는데 간만에 설탕과 기름이 발린 것을 입에 넣으니 짝짝 달라붙는다. 해물왕컵 라면도 스무 개나 들어왔지만 다이어트의 적인 라면은 쳐다보지도 말아야겠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책을 읽고 있는데 접견시간인 오후 2시가 넘었는데도 부르러 오질 않는다. 미리 옷도 다 입고 대기하고 있으려니 2시 10분쯤 되어 교도관이 데리러 왔다. 잘 알고 지내는 장모 사장님과 회사 부사장, 아내가 왔다. 금요일에도 특별면회를 했기 때문에 크게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이 없어서 일반적인 대화를 오랫동안 했더니 교도관이 대충하고 그만 마치란다. 옆에서 교도관이 대화 내용을 모두 듣고 뭔가를 적는 것 같은데 적는 시늉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를 제대로 다 적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오늘도 역시 아내의 손을 잡았다. *^^*


  접견을 마치고 사방에 돌아와 책을 읽고 있으려니 인터넷서신 두 통과 접견서신이 한 통이 들어온다. 오징어를 뜯으며 ‘제중원’을 계속 읽다가 점검시간인 오후 5시가 다 되어서 창살을 붙잡고 운동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눈에 익숙한 인물이 가슴에 파란 딱지를 붙이고 교도관과 함께 지나간다. 어라? 존형이다.


  “존!” 하고 큰 소리로 불렀더니 그도 역시 인사를 하면서 이따가 보자고 한다. 이따가 보자니? 운동도 끝났는데? 존은 신입방에서 헤어질 때 다른 사동으로 갔는데 이쪽으로 옮긴 것을 보니 아무래도 사고 쳐서 옮겨왔을 것 같다. 방 사람들이 아는 사람이냐고 물어서 존의 과거 행적을 이야기 해주니 우리 사동에도 그런 거물 마피아가 있었느냐며 놀라워 했다.


  잠시 후에는 소지가 와서 놀라운 소식을 전해줬다. 박경헌 앞으로 자그마치 30만 원이라는 거금의 영치금이 들어온 것이다. 박경헌이 호시탐탐 팔아먹으려고 노리는 회사의 오너 즉, 외삼촌이 넣어 준 돈이다. 마침 내일은 구매신청을 하는 날이다. 그동안 돈이 없었던 박경헌은 그 서러움을 한 번에 달래려는지 이것저것 엄청나게 구매신청용지에 적어댄다. 그런데 머리가 나쁘면 구매용지 작성하기도 힘들다. 먹을 것과 비 먹을 것을 나눠야 하는데다가 운동화 등 몇 가지는 또 따로 적어야 한다. 먹을 것을 구매하는 금액이 한도액인 3만 원을 넘지 않도록 덧셈도 잘해야 하는데 박경헌은 쓰다가 몇 번을 틀렸다. 옆에서 보다 못한 창헌이가 대신 적어주겠다며 부르라고 한다.


  박경헌은 정말 기인이다. 구치소에서 재소자마다 검정 고무신을 한 켤레씩 주기 때문에 요즘은 고무신을 사서 신는 죄수가 거의 없는데도 굳이 흰 고무신을 하나 사야겠다고 우긴다. 창헌이가,


  “그걸 왜 사요?” 하며 반대했으나 박경헌은,


  “넌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원래 도사들은 흰 고무신을 신는 거야.”라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요즘은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져서 더욱 신을 일이 없고 겨울에는 동상 걸리기에 딱 좋다. 이재헌 사장도 그걸 왜 사느냐고 말렸지만 박경헌의 개드립은 이어졌다.


  “제가 원래 죄가 없지 않습니까? 집행유예를 받으려면 아무래도 관복에 고무신을 신고 법정에 나가서 판사에게 최대한 불쌍하게 보여야겠죠. 저는 꼭 사야겠습니다.”


  이재헌 사장이 박경헌의 고집 꺾기를 단념했다. 이번엔 내가 나섰다.


  “그걸 왜 사요? 판사는 높은 법대에 앉아 있고, 피고인들은 책상에 가려져서 뭘 신었는지 보이지도 않아요. 부츠 신고 가든가 슬리퍼 신고 가든가 전혀 신경 쓰지도 않구요.”


  소귀에 경 읽기란 이런 것이다. 결국 박경헌의 고집대로 구매용지에 흰 고무신을 적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박경헌은 이 고무신을 딱 한 번 신었다. 그것도 구매품이 들어온 수요일 날 방 안에서 사이즈가 맞는지 확인하겠다면서 신은 것뿐이다. 사이즈가 큰 게 들어와서 그보다 작은 것으로 바꾸었는데 그 바꾼 것은 결국 한 번도 안 신었다. 나중에 보니 그 고무신은 우리 방 앞의 사동 복도에 먼지가 시커멓게 묻은 채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가엾은 흰 고무신의 일생이다.


  점검 후 저녁식사를 하면서 떡갈비 두 조각을 먹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추억으로 산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듯하다. 예전 26세 때 구속됐을 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만 머릿속이 꽉 찼었는데 이제는 미래 불안감보다는 예전 추억을 떠올리며 하루를 보내는 일이 많다. 특히 아내나 직원들과의 이런저런 여행이나 음식을 먹으러 다니던 생각이 소록소록 나는 것이 즐겁다. 밖에서라면 자칫 잊어먹을 수 있던 자잘한 기억들을 바로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떠올리게 되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VJ 특공대와 뉴스를 보고 있는데 이재헌 사장과 두식이, 창헌이가 배가 고프다면서 라면에 물을 붓는다. 밥도 많이 먹고 각종 간식에 라면까지 정말 대단하다. 예전의 나도 저렇게 먹어댔었는데. 특히 정두식은 하루에 거의 열두 개 들이 가나파이 한 통씩은 먹어대는 것 같다. 그래도 살이 찌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 어리기 때문에 기초대사량이 높은 걸까?


  자기 전에 화장실에 갔더니 화장실 위쪽 벽에 제법 야해 보이는 신민아의 속옷 광고가 떡하니 붙어 있다. 잡지에서 뜯어낸 광고다. 우리 방에 이걸 붙일 만한 인물은 한 사람뿐이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박경헌은 맛동산을 한 번에 다섯 봉지나 먹었다.
2. 신입방의 존 형이 우리 사동으로 옮겨왔다.
3. 박경헌은 화장실 벽에 신민아의 사진을 붙여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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