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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40 "정두식"

김유식 2010.05.10 08:12:33
조회 11230 추천 5 댓글 44


  11월 5일 목요일.


  오늘은 정두식이가 가위바위보를 정상적으로 했다. 그래서 오늘치 세 번의 설거지는 박경헌이 하게 됐다. 박경헌이 화장실에 갔을 때 내일은 네 번째에 가위를 내도록 방 사람들과 범죄모의(?)를 했다. 두식이는 보, 가위, 바위, 가위, 창헌이는 바위, 보, 가위, 가위, 나는 가위, 바위, 보, 가위를 순서대로 내면 되고 이재헌 사장은 아무것이나 내다가 네 번째에 가위를 내면 된다.


  박경헌이 가위바위보를 첫 번째에 지면 서로 짜고 쳤다면서 의심을 해도, 세 번째에 지니까 당연히 짰을 리가 없다면서 자신의 진 손을 탓하며 군말 없이 설거지를 했다. 그런데 위생상의 문제가 좀 있어서 두식이와 창헌이가 번갈아 가면서 박경헌의 설거지를 감시했다. 특히 창헌이는 여러 차례 닦은 식기를 다시 닦도록 시키곤 했다.


  구속되고 나서 아내가 처음으로 혼자서 접견을 왔다. 그동안은 부사장 아니면 지인들하고 같이 와서 아내와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없었는데 그것도 4회차로 와서 12분간이나 단둘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밖에 있을 때는 새벽이 되어서야 술에 취해 집에 돌아가고, 집에 가서도 아내와 대화할 시간이 별로 없던 것에 대한 벌인지는 몰라도 12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접견을 마치고 방에 돌아와 있으려니 인터넷서신하고 접견서신이 우르르 들어온다. 하루에 적으면 두세 통, 많으면 십여 통씩 오는데 우리 사동에서는 거의 나와 창헌이가 받는 서신이 90%라고 한다. 창헌이는 여자친구가 하루에도 여러 통씩 편지를 써서 보낸다. 땅콩하고 오징어를 뜯으면서 답장을 쓰는데 구매품이 들어왔다. 쌓이는 먹을거리. 경제방 중에서도 1심방이라 그런지(재.초방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재산범죄, 초범이라는 뜻이다.) 사동에서 우리 5방이 제일 먹을 것이 많은 방이다. 뽕방인 12방도 구매품의 양이 만만치 않다. 경제방들 중에서 항소방이나 상고방들은 이미 어느 정도 구치소 생활에 적응이 됐고, 상고까지 하는 죄수들은 비교적 나이가 많으며, 또 오랜 기간 동안 구속생활을 하다 보면 지인, 친지, 가족들의 접견 횟수가 줄어들게 되므로 아무래도 차입, 영치품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흔히들 ‘오랜 질병에는 효자 없다’고들 하지만 오랜 징역에도 마찬가지다.


  폭력방은 주로 건달들이 많아서 먹을 것 보다는 맵시 꾸미는 곳에 돈이 더 많이 들어가고, 건달들 중 범털급의 고위층이나 먹을 것을 구매하는 편이지, 밑의 건달들은 ‘형님’이 계신데 자기의 것을 구매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방에 있는 형님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다. 예비 소지로 사동에서 일을 하는 창헌이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 사동의 7방 같이 경제 누범방이나 14방이나 15방 같이 잡범 누범 + 상고방은 들어가는 구매품이 거의 없다고 했다. 특히 15방은 구매품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으니 ‘드라큐라’ 같은 사람들이 박경헌과 같은 호구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다. 여담으로 박경헌이 사준 새 운동화는 ‘드라큐라’가 아직 신고 있지 않기에 그 이유를 박경헌에게 물어보니 박경헌도 모른다고 했다. 아마 아끼는 것이 아니겠냐고 하기에 이재헌 사장은 그 운동화를 먹을 것으로 바꾸어 먹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했다.


  방 안에 먹을 것은 쌓이지만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나는 하루 섭취 칼로리를 800Kcal 정도로 낮추기로 했다. 보통은 연두부와 국건더기로 한 끼니씩 때웠고 너무너무 배가 고파서 어지러울 때는 사과 한 개나 구매품인 콘푸라이트를 한 줌 집어 먹었다. 밖에서라면 800Kcal 정도로는 체력이 버티지 못하겠지만 여기는 2.17평 안의 조그만 방 안이다. 하루 종일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접견 갔다 오는 400m 정도의 거리와 운동 시간 30분뿐이다.


  막내 두식이는 접견을 다녀오더니 나를 붙들고는 피해자인 동거녀 여자친구와 합의가 됐다고 좋아한다. 얼마 전 두식이가 깊은 한숨을 쉬기에 사연을 물어보니 동거녀 하고는 연락이 두절됐고, 동거녀의 부모는 두식이의 어머니에게, 코를 얻어맞아 딸이 성형수술을 다시 해야 한다면서 무조건 천만 원이 아니면 합의는 꿈도 꾸지 말라고 말했단다.


  두식이의 집은 돈이 없고, 두식이가 현재 현금이 오백만 원밖에 없으니 이것을 먼저 내고 나중에 벌어서 갚겠다고 했는데도 동거녀의 부모님은 요지부동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실형이 확정되면 이전 집행유예 건까지 같이 살아야 한다면서 큰 걱정에 한숨을 쉬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동거녀의 부모와는 접촉하지 말고, 동거녀도 성인이니까 동거녀의 합의서만 받으면 된다고 하니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다.


  먼저 동거녀와 접촉할 수 있는 친구가 있냐고 물으니 동거녀가 살고 있을 만한 곳을 아는 친구가 한 명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대신 편지를 써서 두식이에게 줬고, 두식이는 그 내용을 자필로 옮겨 적어서 친구를 통해 동거녀에게 보냈다.


  써서 보냈던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박경헌의 ‘과거에도 사랑했고, 현재도 사랑하며, 미래에도 사랑할 것입니다. 저희의 사랑에는 죄가 없습니다.’와 멍멍이 같은 식이 아니라 심금을 울리도록 해보자고 했다. 먼저 두식이의 이야기를 쭉 들은 뒤, 처음 만났을 때, 처음 사랑을 나눴을 때, 그리고 즐거웠던 기억과 행복했던 추억들만 말해 보라고 했다.


  두식이는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아니면 고소인이 미워서 그런지 처음에는 입을 잘 열려고 하지 않았으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기도 예전 기억이 나는지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나는 그런 내용들을 정리해서 ‘아직도 널 사랑하며 깊은 후회와 반성을 하고 있다. 사실 예쁘고 착한 너에게 나 같이 폭력을 휘두른 놈은 여기에서 좀 더 반성하며 지내도 된다. 다만 네가 입었다는 상처가 걱정되고 합의금도 꼭 보내고 싶다. 합의금이 모자라는 것은 나가서 며칠 만 일해도 해결된다.’고 쓰면서 중간중간 애절한 표현을 섞었다.


  그 편지를 받은 동거녀는 부모의 의사와 관계없이 합의를 하겠다고 나섰다. 합의금은 결국 오백만 원으로 결정됐고, 합의서 외에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도 한 장 써서 보내주기로 했다면서 고마워했다. 두식이는,


  “김 대표님! 부천에 꼭 오시면 제가 윈저 한 병 시원하게 쏴 드릴게요. 꼭 오세요! 오실 거죠?”


라고 말하기에,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구치소 후배에게 술 얻어 마시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대답도 안 할 수는 없어서 다른 말로 되물었다.


  “나가면 여자친구 어떻게 할 거냐?”
 

  “아유~ 당연히 헤어져야죠. 미친 년. 고소할 게 따로 있지.”


  두식이는 분노하는 얼굴을 보이며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도 잘 생각해 보고 웬만하면 군대 가기 전까지는 다시 만나봐라. 편지 읽고 합의해 준다고 하는 걸 보면 걔도 정이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내 말에 두식이도 생각을 해 보겠다고 했다. 박경헌이 두식이에게 "야~ 나는 술은 잘 못 마시니 여자만 해줘라. 보도아가씨 두 명, 한 번에~ 꼴려죽겠다." 라고 말했다가 빈축만 샀다.

  두식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곧 나갈 듯싶다. 점심 식사 후에 잠시 쉬다가 오후 2시부터는 운동을 나갔다. 오늘은 20바퀴 뛰는 것이 목표였는데 살이 빠져서 그런지 비교적 수월하게 20바퀴를 다 뛰었다. 같이 운동을 하던 죄수들이 모두 하늘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기에 보니까 공중전이 벌어졌다. 매 한 마리가 나타나자 동네 까치들이 우르르 다가가서 쫓아버렸다. 무서운 텃세였다. 특히 까치 한 마리는 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쫓아가며 쪼아댔다. 우리 방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면서 서로들 박경헌도 저런 식으로 쫓아 보내야 한다고 이구동성이었다.
끝까지 쫓아가며 쪼아대던 까치는 아무래도 창헌인 듯싶다.


  저녁 메뉴는 청국장 찌개였는데 사실 청국장 향이 나는 찌개였다. 이것과 잡채를 조금 먹었다. 게시물 리플에 보면 구치소가 삼시 세 끼 제대로 잘 먹이고, 팔자 좋은 것처럼 알고 계시는 분이 많은 것 같은데 뭐 사실 잘 먹는다고 하면 잘 먹는다. 음식이 세 끼 꼬박꼬박 나온다. 장기수들은 그렇게만 먹어도 전혀 몸에 이상이 없는 것을 보니 징역 식사가 나쁜 일은 없겠다. 그런데 맛은 아무래도 문제다. 나처럼 밥투정, 반찬투정 없는 사람들이야 문제가 덜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잘 먹지 못할 수준의 맛이다. 특히 MSG를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건강에는 좋지만 맛은 사실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해가 없으시기 바란다. 만약 신혼여행에서 갓 돌아와서 아내가 그런 맛의 음식을 했다고 한다면 허허 웃으면서 맛있다고 그냥 먹을 사람이 한 명 정도고, 나머지 아홉 명은 ‘입맛도 없는데 짜장면이나 먹자’면서 전화기를 찾을 만한 수준이라고 보면 맞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아내가 혼자 접견을 왔다.
2. 정두식은 피해자와 합의가 됐다.
3. 구치소, 교도소 음식은 맛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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