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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37 "스컹크"

김유식 2010.05.04 09:36:52
조회 10957 추천 3 댓글 54


  “너 내가 이 손 폈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어떻게 할 거냐? 아까 딴 영치금 퉁 쳐주는 거냐?”


  수세에 몰리던 박경헌이 새로운 내기를 제안했다. 손바닥을 폈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잃었던 영치금을 없던 것으로 해달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창헌이는 그런 말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놀라운 반응 속도였다.


  “여기에 뭐가 들었다는 것에 제 손목하고 남은 영치금 다 걸게요. 도사님 뭐 거실래요? 영치금 20만 원쯤 남았어요? 그거 다 거세요.”


  세게 나오면 주춤할 줄 알았던 창헌이의 반격에 박경헌은 잠시 당황하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졌다. 졌어.”


  손바닥을 보니 박경헌의 왼손 안에는 에이스 두 개의 바둑알이 숨겨져 있었다. 홀덤에서 220번을 해야 한 번 받을 수 있다는 ‘포켓 에이스’다. 정두식에게도 계속 지자, 박경헌은 이렇게 해서라도 이기고 싶었나 보다. 하우스 도박장이라면 손목을 잘라야 하거나 판돈을 몰수하는 상황이지만 이곳은 서울구치소 12중 5방이다. 그리고 박경헌은 자신의 잘못을 어물쩡 넘기기 위해서 창헌이가 간파한 것을 대단하게 추켜세우면서 큰 소리로 웃고 있는 중이었다. 그 웃음은 너무 인위적이라 소리는 크지만 처량하고도 공허했다. 보통 포커판에서 높은 패를 갖고 무식을 섞어 저돌적으로 베팅하다가 그보다 높은 패를 가진 사람한테 졌을 때 나오는 웃음과 비슷한 종류였다.


  정두식의 표정이 바뀌면서 바둑알을 내던졌다. 창헌이는 에이스 바둑알 두 개를 손에 들고 박경헌의 눈에 들이대면서 “이게 뭐냐?”며 다그쳤다. 박경헌이 어설프게 웃는 모습으로 능구렁이 담타고 넘어가는 것을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창헌이가 세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벽에 박경헌이 등을 대고 반 정도 누운 상태였고 창헌이는 그 위에 올라타서 바둑알을 박경헌의 눈에 찔러 넣을 태세였다.


  “이게 뭐냐구요? 왜 말을 안 해요?”

  

   “하하하하! 하하하하!”

 

  박경헌의 웃음이 계속 터져 나왔지만 사람이 계속 웃기에는 시간적인 한계가 있다. 계속 웃다 보면 배가 아프고, 호흡에도 문제가 생긴다. 거기에 박경헌의 배 위에는 창헌이가 올라타 있다. 박경헌이 웃음을 그치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려는데 창헌의 몸무게 때문에 쉽지 않았는지 사레들린 것처럼 ‘컥컥’ 거린다. 나와 이재헌, 정두식이 보기에는 너무나 어설픈 연기였지만 창헌이가 약간 미안했는지 자신의 몸무게 배분을 좀 아래로 내려준다. 그러면서도 계속 물어봤다.


  “빨리 말해 봐요! 이게 뭐냐구요!”


  ‘컥컥’ 대던 것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르던 박경헌이 힘들게 대답했다.


  “뭐긴 뭐냐? 바둑알이지.”


  “이게 그냥 바둑알이예요? 여기 에이스라고 써 있잖아요! 이걸 왜 두 개나 도사님이 들고 있냐구요!”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그 전판에 하던 게 제대로 안 섞였나 보지. 그게 왜 내 손이 있대냐?”


  세계 뻔뻔선수권대회가 있었더라면 당연 김연아 급이다. 포켓 에이스로 출발해서 막내 두식이의 돈을 따먹으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박경헌은 오리발 작전으로 나가려고 생각했나 보다. 그때였다! 창헌이의 배 밑에서 “뿌우우우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창헌이의 포지션 상 그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나나, 이재헌 사장, 정두식보다는 한발 늦을 수밖에 없었다. 창헌의 코는 반대 방향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2.17평의 좁은 방 안에서 그 소리는 냄새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밝혔다. 박경헌의 평소 행실에 불만이 많았던 다혈질 조선생이 호통을 쳤다.


  “거! 방귀는 화장실 가서 뀌고 오라고 했잖아! 왜 지킬 것을 안 지켜?”


  박경헌이 모른 척 가만히 있었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표현이 적당하다. 바둑알 두 개 숨긴 것에 대해서 오리발 내미는 박경헌에 대해서 화가 스물스물 올라오던 창헌이에게 공격할 빌미가 하나 더 생겼다.


  “뭐예요? 지금 방귀까지 뀐 거예요?”


  박경헌이 정색을 하면서 외쳤다.


  “뭐? 나? 나 아냐! 나 아냐!”


  세계 뻔뻔선수권 말고도 같은 종목의 올림픽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방 사람들의 분노 게이지가 한 단계씩 더 상승했다. 그런데 박경헌은 이번 사태를 우기고 싶어도 그럴 만한 상황이 못 되었다. 이미 소리는 크게 났고, 냄새는 방 안 가득 퍼졌으며, 추운 날씨지만 이미 나는 개수대 위의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는 중이었다. 또 코를 막으면서도 다들 박경헌을 쳐다보고 있으니 박경헌도 더 이상 우겨대기가 쉽지 않았을 듯 하다.


  “사기도박을 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방귀까지 뀌어 대고! 아오!”


  창헌이의 말에 박경헌이 더 이상 우기기를 포기했다.


  “나냐? 그게 나였어? 몰랐다야~! 난 넌 줄 알았지. 내가 뀐 거였구나?”


  방 사람들의 분노 게이지는 MAX를 가리키고 있었다. 박경헌은 스컹크처럼 방귀로 바둑알 사건을 무마시켰다.


  바둑알 홀덤은 박경헌이 창헌이와 두식이에게 각각 2만 원어치의 영치품을 사주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바둑알 놀이라도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서 어느덧 오후 8시가 됐다. 지난주 방영했던 개그콘서트를 녹화방송해주는 시간. 그거 볼 때면 전 사동이 조용해진다.


  금요일에 의료보고전을 내서 금요일 저녁부터는 다시 약을 주기 시작했는데 금방 나을 것 같던 비염이 일요일 오후부터 크게 도졌다. 아무래도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 것 같다. 내일 의료보고전을 다시 내보고 가능하면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 의무실로 한 번 데려가 주었으면 좋겠는데 약만 받으니 제대로 낫지 않는 것 같다.


  구매품으로 휴지를 매주 열 개씩 주문하는데 거의 대부분을 내가 쓰는 듯하다. 모두 콧물 때문이다. 훌쩍~ 내일은 월요일이라서 구매품 정리를 했다. 먹성 좋은 죄수들이 네 명이나 있어서 먹을 것도 금방금방 사라진다. 나도 밖에 있었을 때처럼 먹었다면 아마 누구보다도 많이 먹었을 듯.


  11월에는 나의 첫 공판이 있을 예정이다. 아직 서류를 받지 못했지만 아내가 고등법원 형사 3부로 사건이 배정됐다고 알려줬다. 역시 항소심을 기다리는 헨리가 말하길, 고등법원 형사 1, 2부가 다소 보수적이고 3부가 좀 더 선처를 잘 해준다고 하는데 아무튼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아마 재판의 향방은 달이 바뀌는 게 아니라 해가 바뀌어야 제대로 알 수 있을 듯 하다.


  오늘 저녁부터는 ||||| 형태로 자던 것을 == 형태로 바꾸어 보기로 했다. 아직 어느 것이 더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훨씬 넓게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 대신에 발은 서로 섞여서 좀 불편할 수 있겠다. 잠자리 포지션을 바꾸는 바람에 이불이 하나 모자라서 내가 샀던 새 담요를 꺼냈다. 오자마자 주문했던 것인데 받고 나서도 혹시 전방가게 될지 몰라서 꺼내놓지는 않았었다. 박경헌은 아직도 벌건 자국이 남아있는 이마를 문지르며 벽을 보고 합장기도를 하고 잤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박경헌은 사기도박을 하려고 했다.
2. 박경헌은 스컹크다.
3. 잠자는 방식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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