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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54 "김치찌개"

김유식 2010.05.31 10:15:03
조회 12697 추천 4 댓글 33


  11월 27일 금요일


  간만에 새벽에 깨지 않고 편하게 퍼질러 잤다. 기상 노래가 나올 때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당분간 신입이 안 들어오면 좋겠다. 제발 들어오더라도 코는 골지 않는 죄수가 들어오면 좋겠다.


  오늘 아침 메뉴는 떡국이라 두부는 먹지 않고 떡국과 참치 한 덩이를 먹었다. 오전 점검 마치고는 책이라도 읽으려고 했는데 바로 운동시간이다. 20바퀴 뛰고 돌아왔는데 존형이 접견민원서신을 보내줬다. 어제 구치소에 왔다갔나 보다.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유식아 형이다. 왔다간다. 건강하고 연락해” 뿐이다. 사실 한글로 편지 쓰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다. 연락을 하려고 해도 연락처라고는 LA의 주소와 전화번호뿐이다. 한국주소라도 있어야 편지라도 쓸 텐데.


  아내의 인터넷서신도 받았고 신문을 읽고 있다가 변호사 접견을 하러 나갔다. 강 변호사와 항소이유서를 같이 검토했다. 대충 훑어보는데도 틀린 내용이 있기에 주말에 계속 수정하겠다고 했더니 월요일에 다시 오겠단다. 강 변호사가 변호사 대기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다 줬는데 두 달 만에 마시는 자판기 커피라 그런지 단맛이 각별하다. 사실 밖에서도 자판기 커피는 잘 안 마신다. 평소 단맛을 싫어해서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한달 보름 동안 몸에서 당분이 빠져나가니 단맛이 어찌나 맛있게 느껴지는지 신기하다. 꿀단지가 있다면 빨간색 티셔츠 입고 ‘푸우’처럼 끌어안고 퍼 먹을 수도 있겠다.


  점심시간이 되었는지 아직 이야기 거리가 남았는데도 교도관들이 빨리 끝내라고 성화다. 정오까지 변호사 접견을 하고 나면 다시 오후 1시부터 가능하지만 바쁜 변호사들이 한 시간씩이나 기다려 주기는 어렵다. 돈이 많은 범털 죄수들은 방 안에서만 있는 것이 답답하니까 돈을 써서 변호사를 통해 자신을 부르도록 시킨다. 원하는 시간에 맞춰서 변호사 접견실로 가서 농담을 주고받고 오는 거다. 믿기 어려울 테지만 이렇게 불러대는 변호사들 중에는 젊고 늘씬하고 예쁜 여자 변호사들도 있다. 예를 들면 사법연수원을 갓 나와서 변호사가 된, 외모는 나경원 의원 같은 사람이랄까?

  나도 변호사 접견 횟수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변호사 접견실에 보면 거의 매일 와서 사는 범털들이 있다. 이들은 변호사들도 거의 매번 바뀐다. 아마 밖에서 심심할까봐 계속 변호사를 보내서 접견을 하도록 하는 것 같다. 예전 이모 게이트로 유명했던 이 모씨는 변호사더러 노트북 컴퓨터를 가져오도록 시킨 다음에 주가를 물어보고 주식 거래를 하도록 했단다. 빵 안에서도 주가 조작질을 해대는 것이다.


  변호사한테 받은 항소이유서를 가지고 방으로 가려니 교도관이 접수하라고 해서 도장을 찍고 나왔다. 서류 하나라도 그냥 가지고 나오면 안 된다. 변호사 접견실을 나오는데 인상 좋은 JU의 주수도 회장이 한 젊은 여자 변호사의 어깨를 다독이며 인사를 나눈다. 변호사 접견을 가면 꼭 있는 사람이 주수도 씨인데 오늘도 역시 사람 좋은 미소로 이리저리 인사하기에 바쁘다. 12년형을 선고받아서 대법원에서 확정까지 됐는데도 그다지 걱정은 없는 얼굴이다. 얼굴에서 빛도 나고 눈빛도 좋다. 주수도 회장인 것을 몰랐을 때도 온 몸에서 아우라가 나는 듯 했다. 나중에 출소해도 그냥 늙어 지내지는 않을 것 같은 사람이다.


  방으로 돌아오니 점심을 남겨 놨다.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나오는 날인데 내 몫으로 특별히 돼지고기를 많이 남겨 놨다. 자판기 커피를 마신 죄가 있으니 연두부는 먹지 않고 국으로만 때웠다. 두식이는 오늘 출정이고, 창헌이는 소지 출력이고, 용 이사는 출소해서 방이 넓다. 이재헌 사장과 조선생, 그리고 나뿐이다. 점심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 한 잔 마신 뒤에 신문을 읽었다. 전자신문, 조선일보, 매일경제, 일간스포츠까지 다 읽고나니 접견신청이다.


  접견표에는 아내의 이름만 적혀 있었는데 게임회사를 운영하는 신모 사장도 같이 왔다. 앞선 회차의 접견실에 사람이 없었기에 미리 들어가 앉아 큰소리로 대화했다. 방으로 돌아오니 1번 독거실의 국가보안법 위반 죄수가 오늘 보석으로 출소한다고 방 안에 쌓여 있던 먹을 것을 사동 식구들에게 나눠준다. 창헌이가 빵과 커피 등을 받아왔다.


  동생과 아내, 친구들이 보내준 인터넷서신을 읽고 있으려니 두식이가 출정을 마치고 실실 웃으면서 돌아왔다. 검사가 징역 10월을 구형했다고 한다. 선고일은 12월 9일이란다. 벌금형으로 출소할 것이 틀림없다. 왕 부럽다. 이재헌 사장은 두식이에게 잘못해서 찍히면 이전에 집행유예 받았던 징역까지 같이 살 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러면서 두식이더러 판사에게 탄원서를 써서 제발 검사 구형대로 징역을 살게 해달라고 간청하라고 했다. 이번에 징역 10월을 받게되면 이전에 받았던 것이 8월이므로 도합 18월이다. 그러면 군대를 면제 받을 수 있다.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긴장하던 두식이도 이제 더이상 농담에 휘둘리지 않는다. 하하 웃으면서 "누가 검사 구형대로 징역을 다 줘요?" 하면서 받아친다. 내가 끼어들어서 말했다.


  “야~ 내가 2년 6월 구형에 2년 6월 선고 받았어.


  잠시 두식이의 표정이 어두워지긴 했지만 이내 곧 출소를 생각하는 것인지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오후 점검을 마치고 저녁 배식 준비를 하고 있는데 키 작은 소지가 와서 김치찌개 한 그릇을 주고 갔다. 어디서 몰래 끓였나보다. 연두부를 뜯고 김치찌개와 같이 먹었는데 와~ 완전 꿀맛. 사실 김치찌개라고 해봤자 화장지가 들어있던 비닐봉지에 마늘과 떡갈비, 쏘세지를 으깨어 넣고 김치와 라면 스프 등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정도다. 이것을 물통에 넣고 뜨거운 물에 담아 둔다. 일종의 중탕이다. 뜨거운 물이 식으면 다시 물을 갈아준다. 서너 번 갈아주다보면 비닐봉지 안의 찌개 국물(?)도 데워져서 뜨거운 찌개 맛이 난다. 아마 섭씨 7~80도까지는 데워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사동 복도에 연탄난로가 있어서 교도관이나 소지에게 잘 보이면 주전자에 앞서 말한 재료들을 다 부어넣고 난로에서 팔팔 끓여다줬으나 서울구치소에는 난로가 없다. 소지들이 대기하고 있는 소지간에는 ‘오뚜기’라고 불리는 커다란 물 끓이는 통이 있다. 전기로 뜨겁게 물을 끓여서 커피물이라며 나눠주는 것인데 소지에게 잘 보이면 비닐봉지에 들은 재료들을 저 오뚜기 통에 넣고 물을 끓이면 된다. 비닐봉지 안의 재료까지 같이 끓어 익으므로 진짜 사 먹는 것 같은 김치찌개 맛이 난다. 그런데 이렇게 해 먹을 수 있는 것도 소지간과 가까운 4방이나 5방 정도다. 다른 방에서는 해 먹자니 김치찌개 재료가 들은 비닐봉지를 들고 또 다른 방 앞을 지나야 하니 형평성에 문제가 생겨서 아예 해 주질 않는다. 또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소지들도 비닐봉지를 들고 사동 복도를 다니기에는 좀 위험하다. 경비교도대가 들이닥치면 영락없는 징벌감이다.


  이번 김치찌개는 오뚜기에 끓인 것이 아닌 중탕 찌개였지만 그래도 두 달 만에 먹는 맛이라 파블로프가 기르던 개죽이처럼 군침이 절로 흐른다. 잠깐 밥도 같이 먹어볼까 하는 강렬한 유혹이 있었지만 참고 견뎠다. 설거지도 마치고 죄수들이 제일 좋아하는 ‘아이리스’ 4, 5회를 보면서 일기와 편지를 썼다. 출소날이 잡힌 두식이는 얼굴에서 웃음꽃이 떠나질 않는다. 12월 9일 출소하면 연말 대목에 장사를 할 수 있다면서 한 달 동안 최소 천만 원은 벌겠다고 큰소리쳤다. 사람마다 제각각 먹고 사는 방법이 다른 것도 재미있다. 누구는 그렇게 번 돈을 사기 쳐서 먹고 사는데.... 갑자기 연속 두 번의 사기를 맞은 내 신세가 처량해졌다. 훌쩍.



 - 계속 -

세 줄 요약.

1. 변호사가 접견을 왔다.
2. 두식이의 선고날이 잡혔다.
3. 김치찌개가 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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