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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나폴리탄 괴담에 대한 잡설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1.04 00:00:11
조회 16275 추천 161 댓글 13
														






0. 근본적으로 무서워야 한다


나폴리탄 괴담은 호러 장르에 속해 있다. 애초에 나폴리탄 '괴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호러 장르에 속해 있으므로 무서워야 한다.


이건 '나폴리탄' 괴담이기 이전에 나폴리탄 '괴담'으로서 기능하기 위한 절대적 전제 조건이다. 무섭지 않으면 괴담이 아니다. 무서울수록 재밌어지는 게 호러 장르의 공통된 특성이다.


그렇다면 나폴리탄 괴담은 '어떻게' 무섭게 하는가? '왜' 무서운가?


*3줄 요약 있음



1. 흐릿함, 공백, 그리고 불쾌함


원조 나폴리탄을 먼저 살펴보자.


ある日、私は森に迷ってしまった。
어느 날, 나는 숲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夜になりお腹も減ってきた。
밤이 되어 배도 고파졌다.

そんな中、一軒のお店を見つけた。
그러던 중에, 한 가게를 찾아냈다.

「ここはとあるレストラン」
'여기는 어떤 레스토랑'

変な名前の店だ。
이상한 이름의 가게다.

私は人気メニューの「ナポリタン」を注文する。
나는 인기 메뉴인 '나폴리탄'을 주문한다.

数分後、ナポリタンがくる。私は食べる。
몇 분 후, 나폴리탄이 온다. 나는 먹는다.

……なんか変だ。しょっぱい。変にしょっぱい。頭が痛い。
……어쩐지 이상하다. 짜다. 이상하게 짜다. 머리가 아프다.

私は苦情を言った。
나는 불평을 늘어 놓았다.

店長「すみません。
作り直します。御代も結構です。」
점장: 죄송합니다. 다시 만들겠습니다. 돈은 안 내셔도 됩니다.

数分後、ナポリタンがくる。私は食べる。今度は平気みたいだ。
몇 분 후, 나폴리탄이 온다. 나는 먹는다. 이번에는 멀쩡한 것 같다.

私は店をでる。
나는 가게를 나온다.

しばらくして、私は気づいてしまった……
잠시 후, 나는 눈치채고 말았다……

ここはとあるレストラン……
여기는 어떤 레스토랑……


人気メニューは……ナポリタン……
인기 메뉴는……나폴리탄……


이 글의 특징이 곧 나폴리탄 괴담의 특징이다. 크게 세 가지(혹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흐릿한 진상, 정보의 공백,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쾌한 상상이다. 흐릿한 진상과 정보의 공백은 사실 정보의 공백 하나로 퉁쳐도 된다.


나폴리탄 괴담의 가장 큰 특징은 정보가 주어지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상상력을 불쾌하고 불안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일이다. 그건 단순히 작가의 노력도 있고, 독자가 그렇게 읽어야 완성되는 것도 있다.


나폴리탄 괴담에선 개연성, 핍진성, 현실성에 있어서 다소 자유로운 감이 있다. 왜냐면 오히려 그런 비현실적, 초현실적 상황이 맥락 없이 존재함으로 발생하는 모순이 정보의 공백을 야기하고, 그 공백은 다시 곧 불쾌한 상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조 나폴리탄 괴담에는 어떤 초현실적 요소가 없어 그 상상력이 현실에 기반한 불안임에도 불구하고(숲에서 길을 잃었는데 레스토랑이 나왔다는 비현실적 요소는 있지만), 나폴리탄 괴담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괴이, 초자연현상 등의 초현실적 요소가 적극적으로 이용된다.



2. 공포의 초점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건, 괴이나 초자연현상이 있어서 무서운 게 아니다. 그런 존재 자체로 무섭다면 그건 나폴리탄 괴담이 아니라 다른 호러 장르일 것이다. 원조 나폴리탄 괴담에는 '인물'도 강조되지 않고 '괴이'나 '초자연적 현상'도 강조되지 않는다.


알겠는가? 나폴리탄 괴담이 공포를 발생시키는 장치는 상황이다. 인물이 무섭다거나, 괴물이 무섭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비상식적, 비인간적, 비현실적 상황이 주어질 때 공포가 발생하는 것이다.


바꿔말하면 공포를 전달하는 상황 설정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괴이, 초자연현상 따위가 쓰이는 것이지, 괴이, 초자연현상을 넣어야만 공포가 전달되는 게 아니다.


종종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던 scp, 백룸, 잼민이 장르의 변질화도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괴이'나 '초자연현상'에 초점을 맞추니 발생하는 문제다.


괴이나 초자연현상은 어디까지나 '공포를 전달할 상황'에 대한 구성 요소이다. 따라서 이들은 "미지의 존재"여야 하고, "모호한 구석이 많아야" 하며, 그렇기에 이들이 불러일으킨 행위와 결과는 우리로 하여금 "불쾌한 상상"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괴이나 초자연현상에 대해 아무리 구체적으로 설정을 짰다고 하더라도 그걸 작중에 티를 낼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걸 티 내는 순간, 그들의 정체와 행동 원리와 특징 따위가 구체화되기 시작하면 그건 이제 공포의 구성 요소가 아니게 된다. 어반판타지, 호러 작품의 설정이 되겠지.



3. 공포는 공백의 감정이다


나폴리탄 괴담을 읽고 있는데 머릿속에 처리해야 할 정보가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 무서울 시간이 없어진다. 공포는 무서울 여유가 있어야 무서워진다. 공포란 감정은 배타적이기 때문에 다른 감정과 한 자리를 공유할 수 없다. 무서운 순간에는 오로지 무섭기만 하다.(비슷한 감정으로는 오싹함이나 스릴이 있는데, 이들은 공포에 비해 덜 배타적이다)


나폴리탄 괴담의 공포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공포는 복잡하고 자세할수록(처리해야 할 정보가 많을수록) 들어차기 쉽지 않다.


따라서 상황은 단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망대교의 경우 규칙서를 읽는 화자에게 주어진 상황 자체는 매우 단순하다. '살아 돌아가려면 소망대교를 끝까지 무사히 건너야 함.'이다.


다른 잘 쓴 나폴리탄 괴담들도 마찬가지다. 공포를 유발하는 상황들이 매우 단순하다. 당장 건물을 나온 뒤 파란 문을 찾아야 한다든지, 자는 척 누군가가 살인하고 있다든지, 점점 상식이 뒤틀린다든지 말이다.


나폴리탄 괴담을 쓰고 싶다면 공포를 전달하는 상황을 단순하게 설정하는 것이 좋다. 나머지는 그 상황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의 문제다.


하지만 전달할 때 잊지 마라. 흐릿함, 공백, 그리고 불쾌한 상상을.



4. 소재, 형식의 문제


가장 흔하게 창작될 수 있는 규칙서와 관련해서...... 어떤 소재, 형식을 쓰든지 정보를 너무 많이 주면 안 되고, 진상은 모호하게 처리해야 하며, 그로 인해 불쾌한 상상을 유도하게 하는 건 동일하다.


그런데 규칙서는 정보의 모순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서 나폴리탄 괴담에 애용되는 형식인데, 이 형식에 대해 약간의 이해가 필요한 것 같다.


단순하다. 규칙서는 '지켜야 할 사항'을 얘기하는 것이지 '정보를 전달'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규칙서에 들어갈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왜 지켜야 하는가이다. 굳이 하나 더 적자면 안 지키면 어떻게 되는가도 있다.


그리고 나폴리탄 괴담으로서 왜 지켜야 하는가는 빼버리는 게 좋다. 말할 필요가 없다. 안 지키면 어떻게 되는가도 굳이 적어야 하나 싶지만, 효과적인 문장을 떠올렸다면 적어도 된다. '그들과 하나가 되십시오'라든지, '관광을 즐기십시오'라든지.


중점적으로 적어야 할 건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이고,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는 자세히 적을 필요가 없다. 앞서 말했듯 공포는 공백의 감정이다. 어떻게 지켜야 할지 구구절절 설명하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느라 공포는 옅어진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도 굳이 상식을 벗어난 기행일 필요는 없다. 정보의 공백만 발생하면 평범한 수칙조차 공포의 규칙서로 탈바꿈된다. 소망대교의 '규정 속도를 준수하십시오'도 굉장히 상식적인, 평범한 규칙이지만 소망대교라는 공포를 일으키는 상황이 불안하고도 두려운 규칙으로 변하지 않았던가?


중요한 건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왜 지켜야 하는지, 안 지키면 어떻게 되는지 의도적으로 누락시킴으로써 정보의 공백이 발생하게 되고, 그 공백은 독자들이 자연스레 불쾌하고도 끔찍한 상상을 밀어넣을 것이다.


거기서 공포가 피어난다.



5. 3줄 요약


1. 나폴리탄 괴담이 전달하는 '공포'의 구성 요소는 크게 두 가지. 정보의 공백과 그로 인한 불쾌함.

2. 나폴리탄 괴담은 괴이나 초자연현상이 아닌 '상황'을 통해 공포를 전달한다.

3. 규칙서 형식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중점적으로 적고 나머진 무시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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