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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나폴리탄 괴담에 대한 고찰 번외 - 감정의 실패편

나폴리탄국수주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3.22 00:45:21
조회 1968 추천 17 댓글 26
														







나는 낲갤 전 완장 시절, 그러니까 23년 12월에 개최한 괴담대회 시즌2에서도 나폴리탄에 대한 잡설을 기준으로 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고,


그때도 한 번 공포에 대해서 분명히 말했음. 공포는 배타적인 감정이라고.


그러니 "공포는 배타적인 감정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이 글을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들 거란 걸 미리 밝힘.


그런데 공포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누가 '괴담의 정의역'을 물어보기도 했어서, 그 얘기를 잠깐 짚고 넘어가볼까 함.


왜냐면 공포를 다루기 전에 좋은 서론이 될 것 같거든.



서론: 괴담은 무엇인가?


하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면, 나는 괴담은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임. 정확히는 괴담에 소설 형식이 얼마든지 쓰일 수 있지만, 괴담이 소설이냐고 하면 아니라고 부정함.


창작의 영역에선 분명히 맞닿아있고, 모 고닉은 아예 장르 문법 구조를 이용해서 창작하기도 하지만......


모든 괴담이 그런 방식으로 창작되는 것도 아니고, 따지면 시각화, 사례, 보고서, 규칙서는 소설로 치기엔 잘 쳐줘야 애매하고, 솔직히 아니잖슴.


그러니 괴담에게 있어서 소설은 어디까지나 형식의 일환에 불과함. 괴담은 형식이 정해지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임.


소설은 이야기에 줄글(묘사+대사)이란 형식이 가미된 것이고. 즉, 소설은 형식+내용이고, 괴담은 형식이 없는 내용임.


그렇기에 둘은 교집합을 이룰 순 있어도, 괴담=소설이 성립하는 건 그 교집합에서 한정함.


이걸 구구절절 언급하는 이유가 뭐냐면, 괴담은 소설이 가지는 서사의 제약을 얼마든지 뛰어넘고 무시하고 비틀 수 있기 때문임.


(뭐 소설도 사조를 따지고 들면 괴담과 얼마든지 맞닿은 것들이 있긴 하지만 이건 진짜 삼천포니까 대충 넘어가자)


괴담은 서사를 반드시 추구하지 않아도 되고, 서사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뭔지 몰라도 됨. 서사를 이루는 구성 요소 역시 마찬가지로 갖고 놀아도 됨.


개인적으로 서사를 공포에 닿을 도구적 요소로 활용하는 작가가 괴담을 잘 창작한다고 생각함.


서사는 양날의 검이라 잘 쓰면 모든 요소가 공포로 치환되지만, (괴담을 기준으로) 못 쓰면 공포로 치환되지 않고 다른 감정으로 잔류하게 됨.


중요한 건 나폴리탄 괴담에서 '공포'는 그 자체로 치환하기 어려워서 그 주변부의 감정을 건드림으로써 유도하게 됨.


여기서 이제 양날의 검으로서 단점이 부각되는 거임. 도대체 공포의 주변부 감정이 뭔데? 공포는 배타적이라며?


이 질문에 좋은 답을 내린 괴담도 있고, 나쁜 답을 내린 괴담도 있음. 나쁜 답을 내렸으니 나쁜 괴담이지만, 나쁜 작품은 아닐 수 있음.


공포가 아닌 다른 감정을 우리가 좋게 여긴다면, 그건 나쁜 괴담일지언정 좋은 작품이겠지?


다만 나는 줄곧 일관되게 나폴리탄 괴담의 공포를 추구하니 여기선 그냥 나쁜 괴담이라고만 하겠음.


솔직히 그냥 호러갤이었으면 이렇게까지 보수적으로 말하진 않을 텐데(욕 먹기 딱 좋은 태도지), 여기 시작은 나폴리탄 괴담이고, 정체성도 나폴리탄 괴담이기에 과감하게 정통주의적으로 나가는 거임.




본론: 공포는 배타적이지만 이웃은 많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공포는 배타적인 감정임.


공포를 느낀 순간에는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고, 다른 감정이 끼어들기 힘듦.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포가 모든 감정을 저만치 떼어놓고 고고하게 존재하는 감정은 아님.


감정이 무슨 스위치도 아니고 말이야. 감정은 스펙트럼에 가까움. 공포는 따지면 수동적인 부정적 감정의 극한이라고 볼 수 있음.


그럼 이제 대충 감이 오겠지. 공포가 배척하는 감정들이 뭔지. 공포가 배척하는 감정의 종류는 두 가지, 능동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임.


능동적인 부정적 감정을 먼저 살피면, 분노가 있음.


아, 착각하면 안 되는 게, 감정과 행동은 별개임. 공포에 질린 사람이 화를 낼 수 있음.


근데 패닉에 빠져서 내는 화와 진짜 빡쳐서 내는 화가 다르듯, 행동의 바탕에 깔린 감정의 성질은 상당히 중요한 거임.


어쨌든 얘기로 돌아가서, 분노하면 무서워하지 않음. 분노하는 사람은 능동적으로 움직임. 능동적인 감정은 적극적으로 해소됨.


자, 이걸 괴담에 적용하면...... 괴담을 봤는데 짜증나고 화가 나는 글은 안 무서움.


괴담 주인공이 분노하는 건 아~무 상관 없음. 의외로 독자들은 주인공과 분노 포인트가 같으면 화를 안 냄. 공감하는 순간 통쾌해하지.


하지만 보통 괴담을 읽었는데 분노가 유발된다면 실망을 넘어서 스트레스를 받게 했다는 건데,


이미 그렇게 된 시점에서 작품의 퀄리티는...... 유감이겠지......


그럼 또 다른 반대 예시로 수동적인 긍정적 감정은 뭐냐, 감동, 감격이 있음.


이거에 대한 아주 좋은 표현이 있음. 신파임.


능동적인 부정적 감정인 분노는 사람들이 확실히 배격함. 왜냐면 나한테 스트레스를 주니까.


내 귀한 시간 쪼개서 낲갤 들어왔는데 보이는 거라곤 애1널 터널에 수준 미달 스윗 괴이에 잼민이들의 scp 설정딸 세계관으로 가득하다면 화가 나겠음, 안 나겠음?


괜히 낲갤에 주기적으로 "요즘 괴담 퀄리티 맘에 안 듦"이라고 글 올라오는 게 아님.


능동적인 부정적 감정은 적극적으로 해소되니까.


하 지 만, 수동적인 긍정적 감정인 신파는 얘기가 전혀 다름. 오히려 개추도 많이 받고 어느 의미론 창작자에게 권장되기까지 하는 영역임.


공통점이라면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수동성 뿐인데, 왜 권장되냐고?


긍정적인 감정이니까. 내 마음이 그 감정을 마음에 들어하니까. 읽고 흑흑 감동이야, 눈물 쓱 하면서 "별점 1점" 하진 않잖아?


우린 부정적인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웠어도 긍정적인 감정을 통제하는 법은 잘 안 배웠음.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처럼, 긍정적인 감정이 들면 웬만해서 무마되거나 용인되는 경향이 생김.


이거의 되게 안 좋은 예시가 23낲갤의 과도한 캐빨로 인한 방역 사건이긴 함.


까놓고 말해서 잘 쓰기만 하면 캐빨 좋잖아? 재밌잖아? 매력적이잖아?


근데 좋긴 좋아도 적당히 해야지. 결국 캐빨은 탄압되고 지금은 캐빨의 ㅋ조차 보기 힘들어졌음.


왜냐면 우리가 즐기는 건 무서운 이야기인 괴담이지, 무섭기도 한 소설이 아니거든.


특히 신파가 다루는 영역인 감동/감격은 괴담에선 단순히 교훈적이고 숭고하고 명예로운...... 그런 공적인 영역보다는 사적인 영역을 자주 건드림.


괴담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겪는 이야기 때문에, 이야기 단위도 보통은 개인의 범주에서 확장되는 식으로 전개됨.


그러니 공포의 단위도 개인, 가족, 친구, 이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


그리고...... 신파의 원조인 한국영화를 생각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알 거임.


신파가 다루는 관계는 늘 사적인 관계, 가장 작은 단위에서 시작하거든.


사적인 관계에 위기가 발생하고, 그걸 극복하면서 감동이 발생함.


근데 바꿔말하면 이걸 극복 못하게 만들면? 슬프겠지? 절망적이겠지? 그리고 우연찮게도 슬픔과 절망은 수동적인 부정적 감정임.


즉, 신파는 전부 호러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라는 것.


뭐, 단순히 슬프기만 하면 호러가 되긴 좀 애매하긴 함. 나폴리탄 괴담으로선 유도가 약하긴 해도 껴줄 수 있긴 한데......


앞서 말했듯 감정은 스위치가 아니라 스펙트럼인데, 슬픔은 수동적인 부정적 감정 중에선 약한 축이거든.


그래서 감정적으로 공포를 확실하게 유도하려면 슬픔보단 강도가 센 걸로 유도해야 함.


그게 이제 공포 이전의 단계인 절망이라고 할 수 있음.


하나 말하자면, 감동적인 괴담은 어불성설이지만, 슬픈 괴담은 있을 수 있음.


이건 공포와 절망이 맞닿은 감정이고, 슬픔과 절망 역시 맞닿은 감정이라 공포=슬픔으로 직결될 수 있는 기적의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임.


근데 문제는 공포=슬픔 공식엔 함정이 숨겨져 있음. 공포와 슬픔 사이에는 절망이란 다리가 있어야 함. 그냥 슬프면 솔직히 신파랑 다를 게 없거든...


즉, 슬픈 괴담이 성립하려면 그 슬픔은 절망적인 수준이어야 하고, 그 절망적인 수준은 곧 공포로 유도될 수준이어야 한다는 거임.


절망은 여러 차원에서 발생할 수 있음. 대표적인 게 나폴리탄 괴담의 한 축인 '진상의 부재'를 상징하는 불가해함이 그러함.


이해하기 싫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는 걸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이 곧 절망의 한 차원임.


혹은 절망의 이름 그대로 희망이 끊겼을 때의 낙차 역시 절망의 한 차원이고.


예시로 두 개만 들었지만, 이를 실제로 구현할 방법은 더 다양하고, 이런 절망 외에 다른 형태의 절망 역시 존재함.


불가해함과 맞닿아있는 불변함(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음) 마찬가지고. 불변함의 친구인 무력함 역시 절망의 일환이지. 무력함은 무기력함과 구분할 필요가 있긴 함.(당연하지만 무기력함은 정말 얕은 수준의 수동적인 부정적 감정임)


중요한 건 다양한 형태의 절망을 통해 공포를 유도하는 거임.


사실 이에 관해서 씹덕 쪽에 좋은 명대사 하나가 있음.


"공포에는 신선도가 있습니다. 두려워하면 두려워할수록 감정은 죽어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공포란 정적인 상태가 아닌 변화의 동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그 순간을 말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핵심은 공포는 정적인 상태가 아닌 변화의 동태라는 말임.


알기 쉽게 말하자면, 대뜸 무섭게 제시하는 것(점프 스케어)보다 한순간에 무서워지는 것(반전)이 더 무섭고, 대놓고 무서우라고 하는 것(정보 제시)보다 무섭게끔 유도하는 것(상황 변화)이 더 무섭다는 얘기임.


무섭게 하고 싶다면,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임.


더 안 좋게, 더 위험하게, 더 절망적이게 변화시킬 때, 우리는 무서워한다는 것.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 감정의 변화는 그 낙폭이 클수록 더욱 큰 공포가 발생함.


왜냐면 공포는 '변화의 크기'가 결정하지, '도달한 위치'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임.


그래서 좋은 괴담은 두 부류로 나뉠 수 있음.


1. 끊임없이 불안을 쌓아 갉아먹는 쪽

2. 어느 쪽으로든 빌드업을 쌓다가 터트리는 쪽


전자는 낙폭을 크게 잡지 않는 대신, 일정하게 꾸준히 낙차를 발생시키면서 수렁에 빠지는 느낌을 들게 하는 거고, 후자는 완만하게 잡다가(오히려 상승하기까지 하다가) 팍 떨어뜨려 낙폭을 크게 잡는 쪽임.


중요한 건 어느 쪽이든 '괴담으로서 해내야 하는 감정의 유도'를 의식 중에든 무의식 중에든 해내는 사람이 아니면 힘듦.


그리고 괴담이라서 굳이 공포와 절망으로 초점을 잡아놨지, 전반적인 창작의 영역에서도 이걸 해내는 작가는 잘 쓰는 작가임.




결론: 그래서 3줄 요약 좀


1. 공포는 수동적인 부정적 감정의 극한이며, 이 스펙트럼에 위치한 감정은 절망, 슬픔이 있다.


2. 긍정적인 부정적 감정인 분노와 수동적인 긍정적 감정인 신파를 조심하면 좋은 괴담을 쓸 수 있다.


3. 공포와 절망은 정적인 상태가 아닌 변화의 낙폭이기에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p.s. 질문, 태클, 의견 개진 얼마든지 환영함


p.s.2. 피드백은 따로 받는 글을 올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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