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팝콘 다 됐어!"
"아, 정말요? 잠깐 기다려요, 우리 딸!"
하나코와 소녀는 꽤나 분주했다.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는 그 모습은, 꼭 바늘에 실이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전자레인지에서 팝콘을 조심스레 꺼낸 하나코는, 그릇에 옮겨담아 거실 테이블로 가져갔다.
거기서 선생은, 테이블에 음료와 컵을 세팅하는 중이었다.
"보자, 딸은 오렌지 주스면 될거고, 맥주는 조금만..."
"여보, 이거 한 입 먹으면서 하지 그래요? 자, 아~ 하세요."
"오, 고마워. 음~, 괜찮은데?"
하나코가 가져온 팝콘을 먹은 선생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는 동안, 소녀는 나초와 치즈 소스를 들고 왔다.
"아빠! 이거 어디 놓으면 돼?"
"아, 그건 테이블 가운데에 놔둬. 좋아, 준비는 다 끝났나?"
BD를 꺼내든 선생은, 곧 TV를 틀어 화면을 조정했다. 이제, 영화를 감상하는 일만 남았다.
[이, 이봐! 도대체 왜 이러는거야? 우리가 무슨 원한이 있다고!]
[원한? 진짜로 몰라서 묻나?]
"이, 이거 생각보다 섬뜩한데..."
영화를 준비한 것은 선생이었지만, 어깨가 요동치는 그 모습은 꽤나 겁먹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선생이 빌려온 BD는 B급 코미디 호러 영화. 이런저런 클리셰를 꼬아둔 유쾌한 영화였지만, 이 장면만큼은 호러 매니아인 선생도 꽤 긴장했다.
"우, 우으... 우리 딸, 무서우면 엄마한테 붙어요?"
"으응, 후아암~... 알겠어..."
마구 흔들리는 동공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하나코와 달리, 소녀는 잘 시간을 넘긴지라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네가 인터넷에서 찾아낸 분홍색 교복 코스프레 사진... 그게 누구였다고 생각하나?]
[... 거짓말이야. 말도 안돼!]
[돼. 넌 날 두 번 죽인 꼴이라고!]
[하지만, 하지만...! 그 사진 속 남자는 머리숱이 많던데?]
[... 이걸로 넌 날 세 번 죽인거다.]
코미디 호러답게 가당찮은 범행 동기였지만, 이후 범인이 전기톱을 들어올리는 장면은 확실히 소름이 끼쳤다.
부우우웅! 전기톱이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마지막 소원이라도 있나? 들어는 주지.]
[살려줘!]
[잘 들었다.]
그리고 그 전기톱이, 희생자를 향해 내리치는 순간!
"꺄악!"
"어, 뭐야! 비명?"
"코오오... 어, 으에? 방금 뭔 소리야?"
선생과 소녀는 비명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소리는 분명, TV 화면이 아닌 소파 쪽에서 들렸다.
"어... 방금 그거, 당신이었어?"
"엄마, 무서워?"
"어, 아니 그게, 저기..."
하나코는 우물쭈물하며,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생각보다 무서운 영화였네, 그치?"
"음... 난 사실 중간부터 뭔 내용인지 모르겠어. 엄마는 괜찮아?"
"아, 그, 그럼요! 재밌었죠, 특히 마지막 장면!"
여전히 말을 더듬는 걸 보니 어지간히 무서웠나보네, 라고 선생은 생각했다.
"확실히 첫 번째 희생자인줄 알았던 커플이 진짜로 경찰을 끌고와서 범인을 제압하는 장면은, 꽤 신선했지? 그래봤자 B급이지만."
"그래도 가족이 다 같이 봐서 즐거웠어요. 슬슬 정리하고 잘까요?"
"후아암... 응, 빨리 양치하고 잘래..."
각자 자리에서 일어난 세 사람은, 자리를 정리하느라 다시금 바빠졌다.
"남은 나초는 여기 옮겨담으면 되고..."
"접시는 이리 줘요, 설거지해야 하니까."
한참 테이블 정리에 몰두하던 선생은, 설거지를 하는 하나코의 뒷모습을 보고 장난기가 동했다.
"흐음... 왁!"
"꺅! 당신 진짜!"
선생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하나코를 껴안은 바람에, 그녀는 하마터면 들고있던 접시를 깨트릴 뻔했다.
"아무리 당신이어도 이런 장난은 곤란하다구요? 이웃에게도 민폐고..."
"하하핫, 미안미안. 행주 좀 줄래? 닦기만 하면 테이블 정리는 끝이거든."
"거기 옆에 있어요. 알아서 가져가시든가요! 흥!"
"아하하..."
하나코는 생각보다 화가 많이 난 모양이라, 선생은 난처하게 웃을 뿐이었다.
"여보, 벌써 자?"
간단히 세수를 마치고 나온 선생은, 자신을 등진 채 먼저 누운 하나코를 발견했다.
"저기 당신, 진짜 미안하다니까... 그만 화 풀어."
"몰라요, 진짜..."
하나코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선생과는 눈도 마주치기 싫다는듯이.
선생은 그런 하나코에게 무안해 볼만 긁적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 끼이익...
"엄마, 자?"
자신의 하니와 씨 베개를 들고온 소녀는, 조용히 안방 문을 열었다.
"어라? 우리 딸, 무슨 일 있어요?"
"엄마, 있지... 오늘은 엄마랑 같이 자도 돼?"
누운 자리에서 상반신만 일으킨 하나코는, 염려스러운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머나, 영화 때문에 무서웠나요? 그러면 엄마 옆에 와서 누워도..."
"으응, 사실 나는 괜찮은데... 엄마가 엄청 무서워했으니까, 내가 같이 있어줄래."
"에? 저를요?"
"오~, 우리 딸 기특한데?"
졸음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엄마를 걱정하는 딸의 모습은, 부모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럼 아빠랑 엄마 사이에서 같이 잘래? 베개는 이 사이에 놔두고."
"응, 좋아... 양치도 했으니까, 어서 잘... 래..."
그대로 쓰러져 잠들 것 같은 소녀를 안아올린 선생은, 하나코가 있는 침대로 향했다.
"여보, 애도 재워야 되니까... 이제 용서해줄거지?"
"후후후... 이번 한 번만이에요?"
처음부터 별로 화나지 않았다는듯, 하나코는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코오오... 후우우..."
"어라, 벌써 잠든 모양이네요."
"아까 영화볼 때도 계속 졸고 있었으니까. 꽤 피곤했겠지."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든 소녀를, 하나코는 조용히 토닥여주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행복한 미소로 가득했다.
"뭐랄까... 옛날 생각나네요."
"옛날? 혹시..."
"네, 이 아이가 아직 뱃속에 있을 때 말이에요."
한때 하나코는 어머니가 되는 것에 큰 불안감을 느꼈다. 아이를 책임 있게 기를 수 있을지, 선생과의 사랑이 변치 않을지.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한 침대에 누워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던 소녀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가족이 생겼다.
"제가 불안해할 때 당신이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역시 이런 삶은 꿈꿀 수 없었겠죠."
"그럴 리가. 당신이 날 믿어줬으니까... 난 거기 보답하고 싶었을 뿐이야."
두 사람이 맞잡은 손에는, 온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만 갔다.
*****
https://gall.dcinside.com/m/projectmx/15190394
오늘의 소설은 전에 쓴 단편과 연계되게끔 써봤습니다.
본 시리즈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되어준 작품인데, 어땠나요.
아 그리고 본 소설에 나온 공포영화의 살인마는 절대 청계천과 관련이 없습니다. 용하형님 사랑해요.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다음 작품도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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