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Review 2024년 12월호 기사에서 임윤찬 관련 기사 올립니다.
직접 언급된 부분은 텍스트로 올리는데 꽤 깁니다





10대 인생에 개입하는 것, 가장 큰 보람
'임윤찬 군은 중2 때 제가 담임일 때 '물건'(?)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반백의 단발이 오히려 지식과 영화의 면류관처럼 빛나 보이는 예원학교 조윤수 음악부장을 만나자마자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예원 시절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음악부장에 대한 인터뷰를 하려다 주객이 전도된 질문이라고나 할까?
"예원에서 피아노 실기 1등 하는 학생들이 윤찬이만 있는 게 아니에요.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한 학생이 독점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정기연주회 협연자를 선발할 때 직전 학기 동안 2번 1등 한 친구가 자동적으로 협연자가 됩니다. 그런데 윤찬이가 3학년 1학기 때 정기연주회 시간이 됐을 때였어요. 직전 학기라면 2학년 2학기인데 이때 한번은 1등을 못했습니다. 이럴 때는 오디션을 해야 합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데이터만 보고 오디션을 하자고 주장했을 때였어요."
조윤수 부장은 임윤찬은 오디션을 볼 필요 없이 바로 선발돼야 하는 아이라고 주장했다. 이건 명백히 민원의 대상이 될 것이 번연한 일. 선생님들은 오디션 없이 협연자로 선발될 경우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릴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조윤수 부장은 '오디션은 윤찬이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나중에 임윤찬이 이렇게 큰 인물이 될 줄 예상하고서 내건 조치가 아니었다. 전 학기에 어쩌다 2등을 했는지 모르지만, 오디션을 봐야 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협연자가 선정되는 과정에 어떤 비리가 있다면 모르겠는데 전임들이 의논해서 모두가 납득할 만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서 선발했다면 그것은 우리 선생님들이 행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권리 행사를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정도의 판단도 못해서 주어진 정량평가만 한다면 굳이 이런 회의를 할 필요가 없지 않으냐며 민원이 들어오면 음악부장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밀어붙였다.
그 당시 임윤찬은 연주자로서 운이 좋았다고 회고한다. 당시 조윤수의 천거 덕분에 임윤찬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설 수 있었다.
"임윤찬의 협연이 예원이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 이후 롯데 콘서트홀로 옮겼거든요."
임윤찬의 당당한 음악 철학과 독창적 해석
임윤찬에 대한 이야기가 기왕 나왔으니 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지 않을까 물었는데 동공을 크게 뜨며 손가락을 튕긴다.
"아! 있어요. 있어. 담임하다 보면 아이들이 교실에 떠드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그때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윤찬이 본인은 초등학교 때 이화경향 콩쿠르에서 등위에 들지 못했는데 그 이후 다시는 콩쿠르에 나가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자기의 음악을 알아주지 않는 그런 곳에 굳이 도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에요."
조윤수는 그 말을 듣고 윤찬의 심지를 엿보게 되었다. 대부분 콩쿠르에 떨어지면 학부모는 무슨 비리가 있다는 식으로 오해하고 학생은 자신을 폄훼하거나 자존감이 뚝 떨어지곤 한다. 그러나 임윤찬은 그 어린 나이에도 실패에 자존감이 꺾이기는커녕 자신의 음악성을 몰라준다며 웃고 지나가지 않는가.
그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조윤수 부장에게는 무척 인상적으로 보였다. 자기 음악에 저 정도의 줏대가 있다면, 저 나이에 저렇다면 뭘 해도 하겠다고 생각했다.
임윤찬은 곡을 주어진 악보대로 연주하기도 하지만 어떤 곡은 그 해석이 매우 독특하다. 악보와 전혀 다르기도 하다. 이는 주어진 악보를 토대로 청중에게 전달할 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효과적일까를 늘 생각하는 것 같다.
"음악 발표회는 남의 원고를 보고 연설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봐요. 연사는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어떻게 해야 대중을 설득할까? 등 원고를 쓴 사람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도 1차적으로 중요하지만, 때로는 전달의 극적 효과를 위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이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원고를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든 다음 내가 이렇게 전달하면 100% 전달이 되어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윤찬은 그런 자세로 콩쿠르도 준비했기 때문에 '나를 몰라줘?(흥), 난 콩쿨은 안 나가! 라는 자신감 있는 태도가 나올 수 있겠죠."
지난 24년 동안 예원의 음악부장을 하면서 수많은 학생들을 지도했을 그에게 임윤찬만한 제자가 또 있지 않았을까 묻자, 임윤찬만큼 강렬한 친구는 없었다고 답한다. 물론 음악을 갖고 노는, 소위 잘 치는 아이들은 많았다. 연주자들마다 자기 나름의 해석과 연주력도 아주 훌륭하다. 그러나 임윤찬은 단순히 연주를 잘하는 아이들과는 남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음악을 요리와 비교하자면 레시피대로 맛있게 요리하는 수준을 넘어, 레시피대로 하지 않고 그 레시피에 자신만의 독특한 것을 응용해서 표현하는데 그게 예원학교 그 어린 나이에 쉽지 않거든요."
'학교 이탈'의 명암과 위험성
시대가 변하면서 예원의 학생들도 변하고, 학부모도 변하고 강사선생님도 변한다. 그중 가장 안타까운 변화를 꼽으라면 '학교 이탈'이다.
보통은 큰 기대를 갖고 자녀들을 예원에 입학시키지만, 실력이 모두 출중한 아이들 사이에서 기대만큼 성적이 좋지 않을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은 특별한 영재가 아닌 한 학교생활은 실력 향상을 위한 하나의 과정만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실기시험에서 제대로 그 평가가 양이 차지 않는다고 해서 그 시험을 끝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있다. 즉 학교생활을 중도에 포기하고 홈스쿨로 전향해 버린다. 학력이야 검정고시로 간단히 취득하면 된다는 설익은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포기는 자녀의 소셜라이징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입니다. 실력으로만 세상을 사는 게 아니잖아요. 설령 실력이 출중하더라도 그 실력을 인정받으려면 인정해 주는 객체 사이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게 바로 사회화 능력인데 사회활동을 잘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으로 자녀를 오히려 불행하게 히는 일이죠."
음악인은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를 대변해 주는 매니저와의 소통도, 청중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성공적인 연주자가 되면 미디어와의 노출, 인터뷰어와의 소통, 또한 사생활도 잘 관리해야 한다. 음악 실력으로야 출중하지만, 소통이 안 되어 실패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학교생활을 배신한 학생들이 이럴 가능성이 높다.
"요즘은 어느 정도냐 하면요,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는 학부모들을 만나 설득을 하려고 해도 아예 학교를 나오질 않아요. 수업 중에 '아니. 얘가 언제 사라졌어?' 이럴 정도입니다. 학교를 그만두어도 최소한 선생님께 인사라도 해야 하는데 그 정도 상식도 안 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게다가 레슨 선생님들도 문제가 많을 때가 있어요. 부모도 책임을 못 지는 게 각자의 인생인데 제자에게 홈스쿨을 하면 실기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며 유혹하는 분들이 많아요. 본인이 책임지지 않으면서 학생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죠"
학교는 가지 않고도 실기만 주구장창해서 뛰어난 실력자가 될 수 있다. 또래들이 고1일 때 벌써 대학교 1학년생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균형 잡힌 인성과 지성, 상황 판단 능력 등을 두루 갖추려면 일정한 나이에는 소위 말하는 '군집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군집 안에서 자기 역할을 찾고 갈등 해소법, 고난 극복법 등을 배우는데 그 중요한 청소년기에 얄팍한 공부와 실력만 쌓는다면 개인으로서는 불행한 일이 아닐까?
졸더라도 학교는 빠지지 않아
이 대목에서 다시 임윤찬의 일화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임윤찬은 분명 영재였지만 그 영재성만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것은 아니다. 영재임에도 여전히 스스로, 또는 학교에서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냥 앉아서 피아노 치고 레슨받고 또다시 와서 피아노 연습하는 과정만 반복해서 오늘에 이른 것은 아니거든요. 당시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하기에는 힘들었습니다. 예원 다닐 때도 새벽 2시, 3시까지 연습했고 학교에 오면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비록 졸지언정 학교를 빠지는 일이 없었다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통학 시간도 1시간 30분씩이나 되기 때문에 늘 피곤했거든요. 그러면서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빠지지 않고 웬만한 학교 행사는 모두 참여했습니다."
예원뿐 아니라 어느 학교든 요즘 아이들은 "뺀질"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공결이 다반사다. '공결'은 인정결석을 의미하는데 상급학교 진학에 불리해지는 케이스만 '쏙' 빼고 나머지는 거짓 핑계를 대며 공결을 남용하곤 한다. 아프지도 않은데 아는 병원에 가서 서류 떼어 병결 처리하는 등의 공결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연습하고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극단적으로 쓸 수밖에 없다면 모르지만, 이런 공결 처리가 과연 아이에게 어떤 교육적 메시지를 줄까 생각하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정말 그렇게 해서 그 아이가 영재가 될까?
영재와 평범의 경계, 영재의 진정한 의미
조윤수 부장은 앞서 예원에 입학한 아이들 중 영재는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과연 영재는 어떤 아이들일까? 영재는 천재와 달리 정말 극소수의 아이들이다. 영재는 어릴 때 천재성을 발현하는 아이들이다. 소위 말해 영재란 갈고닦아서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영재성을 감각적 직관으로 느끼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예원에 입학하면 일단 영재로 오인할 수 있지만 모두가 영재일 수는 없다.
"첫째는 부모들도 그렇고 학생 본인도 영재라는 말이 본인에게 합당한 언어인지 객관화하는 작업이 되게 중요한 거고요. 왜냐하면 분명히 영재가 아닌데 영재를 꿈꾸는 것이 문제거든요. '저 친구는 영재가 아니야'가 현실인데, 그게 열심히 공부하면 바뀔 수 있다는 말이 어불성설입니다. 영재는 천부적인 재능이 주어지는 재능입니다. 슬프지만 본인이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뛰어난 연주자 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영재를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인색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영재라는 의미에 대해서 부모님들이 냉철하게 영재와 내 아이가 과연 매칭이 되는지 판단을 잘하셔야 해요."
영재가 아니라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to be 영재"라고 생각해 예원에 입학했지만. 영재가 아니어도 훌륭한 연주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다른 전공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에 연습에 출석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 학교를 당장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저는 우리나라의 이 제도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흔히 이를 미국의 월반제'로 착각할 수 있는데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미국의 월반제는 학생이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닙니다. 학교 안에서 움직이니까 여전히 학교 안에서 사회성을 계속 배울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다면 조윤수 음악부장은 임윤찬을 영재라고 보았을까? 그렇다고 말한다. 임윤찬에 대해 조 부장은 놀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특히 음악의 깊이가 나이에 비해서 슬플 정도로 깊다는 것이다. 어떨게 저 나이에 저런 생각을 하고 저런 얘기를 하지, 저 정도가 되려면 내적으로도 굉장히 많은 상처도 있겠고, 쓰라린 경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깊다는 것이다.
예원학교와 영재 교육의 한계
지금은 임윤찬 이후로부터 K-클래식. K-피아노가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이럴수록 예원학교가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뛰어난 음악가를 더 많이 배출해서 세계로 내보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교육제도 안에서는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워낙 규제가 많은 데다 갑종학교인 까닭에 교육청, 또는 교육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학교는 사립보다 공립 시설이 휠씬 좋아요. 세금으로 다 지원해주는 반면 갑종학교에 대한 별개의 규정이 없어서 일반 학교에 적용되는 그런 규제나 혜택도 없답니다."
(이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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