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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여자 살인 사건 8

운영자 2009.12.01 14:47:30
조회 2582 추천 2 댓글 2

8


  2002년 3월6일 새벽 5시. 어둠 속에서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살인청부 대상인 여대생 정혜경의 아파트 방에 사흘 만에 불이 깜박하고 켜졌다. 오늘은 정혜경이 새벽수영을 갈 모양이었다. 그들은 벌써 3일째 밤을 꼬박 새가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김용국만 빼놓고 마기룡이 동원한 세 명의 건달을 데리고 차에서 튀어 나갔다. 두 명이 아파트 문기둥 그늘 뒤에 재빨리 몸을 숨겼다. 도로변에 바짝 댄 그레이스 뒤에 마기룡과 건달 한명이 긴장한 시선을 정문쪽으로 던졌다. 정혜경이 아파트 문에서 나와 몇 발자국 딛는 순간 일제히 덤벼들어 괴물의 입같이 벌어지는 차 속에 집어 던지기로 했다. 그레이스 안에서 김용국은 문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그때 야구르트 배달 아줌마가 아파트 문 쪽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김용국은 급하게 핸드폰으로 마기룡을 불렀다.


  “조심해 정문으로 누가 들어간다. 여의치 않으면 하지말자.”

  “나도 봤다. 알았다.”


  물러날 기색이 없는 마기룡의 어조였다. 어둠 속에서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렸다. 그때였다. 우산을 쓰고 아파트 문을 나와 걸어가는 여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어깨에는 가방을 걸치고 있었다. 정혜경이었다. 기둥 뒤에 숨어있던 건달들이 나와 뒤에서 접근했다. 마기룡이 반대방향에서 정혜경 쪽으로 다가갔다. 정혜경이 그레이스 옆을 스치는 순간 네 명의 남자가 달려들었다. 차안에 있던 김용국이 번개같이 차문을 활짝 열면서 정혜경을 잡아끌었다. 정혜경이 “흑”하고 놀라면서도 소리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비명을 자제하는 눈치였다. 김용국은 재빨리 운전석으로 넘어가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정혜경이 머리채를 잡은 마기료에게 다급하게 사정했다.


  “아저씨 10억 줄 테니까 나 그냥 놔줘요.”

  마기룡은 정혜경을 바닥에 엎어뜨려 무릎으로 등을 누르고 팔을 뒤로 꺽은 채 나일론 줄로 팔목을 묶기 시작했다.


  “돈 요구 하는 대로 줄께요. 우리 아버지 부자예요”

  정혜경이 다시 애원했다. 마기룡이 청 테이프를 찢어 입에 부였다. 조용해 졌다. 동원한 건달들은 현장에서 돌아가고 그레이스는 어느새 코엑스 사거리를 지나 잠실운동장 쪽으로 가다 정지신호에 걸렸다. 김용국이 백밀러를 통해 뒤를 봤다. 마기룡이 정혜경에게 포대자루를 뒤집어씌우는 중이었다. 어느새 온몸에는 노란 질긴 테이프가 감겨져 있었다.


  이른 새벽 88도로는 한적했다. 미사리 까페길을 지나 검단산 입구 공사장 안쪽에 도착하는데 이십분도 안 걸렸다. 왼쪽으로 북한강줄기가 번들거리며 흘러갔다. 산을 파헤친 흙바닥 여기저기에 판넬들이 야적된 채 있었다. 마기룡이 차에서 내려 정혜경이 든 포대자루를 끌어내  얼른 어깨에 들춰 멨다.


  “야 총가지고 따라와”

  그가 김용국에게 명령했다. 그들은 잡목이 우거진 계곡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새벽등산객의 눈에 띄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사람을 들고 산길을 가기란 쉽지 않았다. 마기룡이 뒤뚱거리며 백미터쯤 가자 더 이상 못가겠는지 정혜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좀 쉬었다 교대하자.” 

  마기룡이 헐떡이며 내뱉었다. 거뭇한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달이 떠 있었다. 달빛을 받은 마기룡의 이마가 땀으로 번질거렸다. 포대자루속의 정혜경은 움직이지 않았다.


  “난 다리가 후들거려서 못하겠어.”

  김용국이 겁먹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시 쉰 마기룡은 다시 정혜경을 들춰 멨다. 다시 오십미터쯤 가다가 마기룡은 땅에 주저앉았다. 완전히 지진 표정으로 말했다.


  “차 안에서 너무 힘을 뺏는지 도저히 못 올라가겠어. 총 줘”

  마기룡은 건네받은 총의 노리쇠를 후퇴 전진시켰다. 자루 속의 정혜경의 얼굴이 하늘 쪽을 향하고 있었다. 마기룡은 총구를 정혜경의 귀 뒷부분 쪽에 갖다 댔다. “퍽”하고 총알이 나가는 둔탁음이 났다. 포대자루가 순간 펄쩍 뛰어올랐다. 마기룡은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탄창에 든 6발을 그렇게 한발 한발 정확히 머리에 대고 확인사살을 했다. 그들은 주위의 낙엽을 긁어 정혜경이 든 포대자루를 덮었다.


  한 시간 후 그들이 탄 그레이스는 인천 쪽을 향해 외곽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마기룡은 차 안에 두었던 정혜경의 가방과 외투 그리고 우산을 검은 쓰레기 봉지에 담았다. 잠시 후 그들은 길거리에 보이는 세차장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썬팅을 벗기고 내부세차를 부탁한 후 근처의 된장찌개 집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마기룡은 들고 나온 쓰레기 봉투를 음식점 근처의 골목에 버렸다. 증거인멸까지 모든 게 끝이 났다.

  오전 9시. 공중전화에서 김용국이 회장부인에게 연락했다.


  “물건을 팔았습니다.”

  살인에 성공했다는 그들 사이의 암호였다.


  “알았다. 다시 통화하자”

  회장부인이 박아둔 정보원을 통해 직접 확인을 하려는 것 같았다. 30분후 회장부인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물어보니까 정혜경이를 봤다고 하던데?”

  회장부인은 의심하는 어조였다.


  “정말 죽였다니까요. 나 참”

  김용국이 버럭 화를 내면서 되쏘았다.


  “하여튼 내가 더 확인해 본 후에 믿겠다.”

  회장부인은 아직도 믿지 않았다.

  그날 낮12시. 정의택씨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 점심 밖에서 같이 먹읍시다.”


  “알았어요. 그럼 혜경이도 같이 먹어야 겠네”

  혜경이가 고시공부하는 독서실은 아빠사무실과 집 사이에 있었다. 시간을 아낀다고 집 근처의 독서실을 잡고 점심은 집에 와서 먹었다. 잠시 후 아내가 정의택씨에게 전화했다.


  “이상하네. 혜경이가 올 시간인데 안 오네”

  혜경이의 행동은 늘 시계바늘처럼 정확했다.


  “오늘 데이트약속인데 바로 거기로 가나보지”

  정의택씨는 남자친구와 오후 1시30분에 만나기로 했다는 딸의 말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딸은 사생활도 아빠엄마에게 말했었다. 오후2시경. 혜경이가  약속시간에 나오지를 않는다고 남자친구가 집에 연락했다. 정의택씨는 갑자기 불안했다. 그럴 딸이 아니었다. 정의택씨는 바로 딸이 아침에 갔을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강습회원명부에 혜경의 싸인이 없었다. 새벽에 분명히 나갔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독서실로 달려갔다. 거기서도 혜경이가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먼저 뺑소니사고가 떠올랐다. 동시에 그의 뇌리에는 회장부인의 잔혹한 표정이 겹쳐서 다가오는 것이다. 정의택씨는 경찰서를 찾아가 뺑소니 아니면 납치라고 하면서 빨리 수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파트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으면 운전자가 혜경이를 싣고 도주할 길은 올림픽대로를 따라 미사리부근으로 가는 길 뿐이었다. 사고가 틀림없었다.


  “우리 아이에게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없습니다. 바로 수사를 좀 해주세요. 미사리 부근 산을 뒤지면 살 지도 몰라요”

  아버지의 절규였다. 그러나 형사들은 근거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 날 밤 혜경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정의택씨는 딸의 새벽길을 구역별로 담당하는 청소부도 만나고 길거리의 오뎅 장사도 찾아 딸을 물었다. 모두들 좌우로 흔들었다. 그는 고위경찰직에 있는 후배에게 부탁을 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단순실종신고는 수사할 사항이 아니라는게 관할 경찰서의 의견이었다. 온 가족이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 꺼 놓는 때가 많지만 어쩌면 경비실의 CCTV에 지혜의 모습이 잡혔을지도 몰랐다. 천만다행으로 3월6일 새벽의 녹화장면이 있었다. 치직 거리는 흑백의 모니터 구석에 우산을 쓴 지혜의 모습이 나타났다. 순간 그 뒤로 두 명의 남자가 급하게 따라붙었다. 잠시 후 헤드라이트 불빛이 하얗게 터지면서 급발진하는 차가 보였다. 분명 회장부인의 짓이었다. 정의택씨는 접근금지가처분 기록들과 CCTV필름을 경찰서에 가서 보이며 울부짖었다.


  그 며칠 후 회장부인은 판사 사위로부터 혜경의 실종소식과 함께 경찰에서는 자기를 의심하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위의 말에 회장부인은 비로서 정혜경의 죽음을 확신했다. 그 전까지는 김용국과 마기룡이 혹시 혜경이를 어디 숨겨놓고  거짓말 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었다. 잔금을 줘야 했다.


  2002년3월10일 울산고속버스터미널 부근의 중국음식점. 허름한 차림으로 변장한 채 혼자 내려온 회장부인이 앞에 앉은 김용국에게 다짐하듯 주의를 주었다.


  “혹시라도 아직 죽이지 않고 데리고 있다면 꼭 죽여야 한다. 그년은 요부고 영악하니까 살려뒀다가는 너와 마기룡이 다 그 잔꾀에 넘어가 당하게 된단 말이다. 팔아먹기 위해 데리고 있거나 장난치면 절대 안돼.”

  회장부인은 현찰이 든 쇼핑빽을 건네주었다. 김용국이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삼천만원정도 있었다.


  “아니 나머지 잔금을 다 주셔야지 이거 밖에 안주십니까?”

  김용국의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스쳤다.


  “당장 현찰을 많이 뺄 수가 없어서 그래. 기다려.”

  며칠 후 다시 회장부인은 현찰을 만들어 건네면서 물었다.


  “정말 죽인 게 맞냐?”

  “맞다니까요”


  “그러면 시체가 빨리 발견되는 게 좋으냐 아니면 그냥 이대로 놔두는 게 좋으냐?”

  혐의를 받고 있는 회장부인의 의미 있는 질문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김용국이 퉁명스럽게 되받았다.


  3월 16일 오전 8시 30분경. 검단산을 올라가던 등산객에 의해 정혜경의 시체가 발견됐다. 여대생살인사건이 오후부터 대대적으로 뉴스를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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