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시젠타이

운영자 2017.09.18 09:49:35
조회 211 추천 0 댓글 1
시젠타이

  

화면에서 정치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노조위원장과 미모의 여성국회의원과의 정책토론이었다. 일류대를 나온 변호사출신의 여성의원은 분장과 옷 그리고 토론을 진행할 자료까지도 완벽하게 갖춘 것 같았다. 토론이 시작되고 사회자가 질문을 던지자 여성국회의원은 국제수지나 외환문제 물가안정 등에 관한 통계수치를 제시하며 날카롭게 정책적인 핵심을 얘기했다. 그녀가 쓰는 해박한 경제 전문용어들은 논쟁의 상대방인 중졸출신 노조위원장을 주눅 들게 하고 있었다. 대응하는 중졸출신 노조위원장이 전문용어를 틀리게 말하자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말이 꼬이고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게임이 되지 않았다. 여성의원의 표정에 순간 경멸이 스쳐지나갔다. 밀리고 있던 노조위원장이 태도가 바뀌었다. 

“저는 무식해서 복잡한 전문용어를 몰라요. 그렇지만 공장의 바닥에서 평생 지낸 놈이니까 내 식대로 얘기할 께요.자동차를 양쪽에서 똑같은 바퀴를 끼우는 일을 하는데 비정규지근 월급을 반도 못 받아요. 그 기분이 어떻겠어요. 식당도 한사람은 좋은 식당가고 다른 한 사람은 개밥을 먹는 기분 이예요. 그게 좋겠습니까?” 

그는 자기 방식대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가고 있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솔직한 표현이었다. 문제점이 투박한 용어로 정확히 지적됐다. 논쟁은 의외로 노조위원장의 승리였다. 우연히 본 정치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

그 며칠후 이웃에 사는 대학선배와 바둑을 두고 밥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을 때였다. 기자출신인 그 선배는 정부대변인을 오랫동안 지낸 경력이 있었다. 그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유학간 아들이 일본의 노무라 증권에 가서 면접시험을 봤는데 뜻하지도 않게 합격을 했어. 합격시키고 회사에서 기다릴 테니까 졸업하고 와서 일하라고 하더래.”

스펙을 잔뜩 요구하는 우리의 경우와는 다른 것 같았다. 

“일본회사에서는 면접 때 어떤 점을 보더랍니까?”

내가 물었다.

“일본에서는 전혀 꾸미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정직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야. 그걸 일본에서는 ‘시젠타이’라고 부른다는 거야. 그게 합격의 동기지. 내가 얼마 전 홍콩에 묵을 때 호주방송을 비롯해서 영어권 방송을 여럿 봤는데 사회자랑 출연진들이 아주 자연스러워. 속에 있는 걸 솔직히 드러내고 감정표현도 진솔해. 연설이나 대중 앞에서의 인사도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지 않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자연스럽게 해. 그 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야. 그건 쉽게 되는 게 아니지. 끊임없이 내공을 닦고 속에 내용물이 꽉 찼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는 거지. 그걸 보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그들이 우리보다 질이 높은 거구나 하고 느꼈어. 그걸 보면서 나이 칠십이 넘은 지금에야 후회를 하는 거야. 젊었을 때 대변인을 하면서 난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야. 말 한마디라도 꾸미지 말고 진심으로 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삼십년 드나든 법정풍경을 떠올렸다. 법정은 판검사나 변호사들이 하는 법률용어와 공허한 관념만 가득 찬 것 같았다. 거짓말로 법정의 공기는 오염되어 있었다. 눈물과 정직한 호소는 시궁창 같은 거짓 속에 매몰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법정의 변론태도를 바꾸었다. 그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짜 말을 한마디라도 하자고 마음먹었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연인과 헤어지고 뒤끝 작렬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2 - -
3330 인권변호사의 첫걸음 운영자 24.04.22 36 0
3329 깨어있는 시민의 의무 운영자 24.04.22 27 0
3328 죄수가 전하는 사회정의 운영자 24.04.22 41 0
3327 이민자의 슬픔 운영자 24.04.22 35 1
3326 강도에게 성질을 냈었다. 운영자 24.04.22 33 0
3325 외국의 감옥 운영자 24.04.22 34 0
3324 벗꽃 잎 같이 진 친구 운영자 24.04.15 66 1
3323 조용한 기적 운영자 24.04.15 68 2
3322 감옥은 좋은 독서실 운영자 24.04.15 52 0
3321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 운영자 24.04.15 50 0
3320 미녀 탈랜트의 숨겨진 사랑 운영자 24.04.15 59 1
3319 두 건달의 독백 운영자 24.04.15 53 1
3318 명품이 갑옷인가 운영자 24.04.15 46 1
3317 나는 될 것이라는 믿음 운영자 24.04.15 51 1
3316 오랜 꿈 운영자 24.04.08 70 2
3315 그들은 각자 소설이 됐다. 운영자 24.04.08 78 1
3314 나이 값 [1] 운영자 24.04.08 106 1
3313 검은 은혜 [1] 운영자 24.04.08 90 3
3312 실버타운은 반은 천국 반은 지옥 [1] 운영자 24.04.08 103 2
3311 늙어서 만난 친구 운영자 24.04.08 53 1
3310 그들을 이어주는 끈 [1] 운영자 24.04.01 207 2
3309 그가 노숙자가 됐다 [1] 운영자 24.04.01 126 3
3308 밥벌이를 졸업하려고 한다 [1] 운영자 24.04.01 135 2
3307 허망한 부자 [1] 운영자 24.04.01 146 2
3306 죽은 소설가가 말을 걸었다. [1] 운영자 24.04.01 131 2
3305 개인의 신비체험 [2] 운영자 24.04.01 139 2
3304 나는 책장을 정리하고 있다. [1] 운영자 24.04.01 121 2
3303 노인의 집짓기 [1] 운영자 24.04.01 121 1
3302 똑똑한 노인 [1] 운영자 24.03.25 155 2
3301 곱게 늙어간다는 것 [1] 운영자 24.03.25 164 4
3300 두 명의 교주 [1] 운영자 24.03.25 156 1
3299 영혼이 살아있는 착한 노숙자 [1] 운영자 24.03.25 142 1
3298 팥 빵 [1] 운영자 24.03.25 135 0
3297 얼굴 [1] 운영자 24.03.19 166 1
3296 이별의 기술 운영자 24.03.19 124 1
3295 노년에 맞이하는 친구들 운영자 24.03.19 118 1
3294 노년의 진짜 공부 운영자 24.03.19 110 0
3293 주는 즐거움 운영자 24.03.19 102 1
3292 장사꾼 대통령 운영자 24.03.19 125 1
3291 나는 어떻게 크리스챤이 됐을까. 운영자 24.03.19 141 1
3290 태극기부대원과 인민군상좌 운영자 24.03.19 109 2
3289 결혼관을 묻는 청년에게 [4] 운영자 24.03.11 312 0
3288 손자의 마음 밭 갈기 운영자 24.03.11 140 1
3287 어떤 여행길 운영자 24.03.11 147 2
3286 나의 돈 쓰는 방법 [5] 운영자 24.03.11 2261 12
3285 순간 순간 몰입하기 운영자 24.03.11 146 1
3284 먼지 덮인 수필집으로 남은 남자 운영자 24.03.11 136 1
3283 아버지 제사 운영자 24.03.11 136 2
3282 속을 털어놓기 운영자 24.03.04 154 1
3281 반전의 묘미 운영자 24.03.04 141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