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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부대원과 인민군상좌

운영자 2024.03.19 10:22:08
조회 111 추천 2 댓글 0

내가 묵는 동해 실버타운의 한 칠십대 중반의 노인은 자신이 태극기부대라고 했다. 광화문에서 시위가 열리는 날은 기차를 타고 올라가 참여하기도 하고 후원금을 내기도 한다. 그는 평생 성실하게 회사원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가족사랑도 끔찍하다. 정치와는 관련성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나라를 위한다는 의식은 투철하다. 그는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한탄하면서 그 이유를 묻는다.

“어떻게 이 나라가 좌익이 잡고 빨갱이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이승만 대통령이 이 나라를 건국하고 미국이 공산주의로 넘어갈 뻔한 우리나라를 구해냈죠. 미국의 원조로 우리가 먹고 살았잖아요?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발전을 시켰구요. 그런데 젊은 놈들이 도대체 그걸 몰라요. 이게 다 전교조 교사 놈들이 빨갱이 교육을 시켜서 그래요.”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계속했다.

“소련의 앞잡이 김일성이란 놈이 육이오때 남침을 해서 수백만을 죽이고 아들 손자까지 세습해서 왕조를 이루고 자기네 국민 수백만이 굶어 죽는 사태가 일어나는 데도 핵을 개발해서 남한을 위협하잖아요? 그런 북한이 뭐가 좋다고 좌빨들이 찬양하는지 몰라. 그런 놈들은 모두 북으로 보내거기서 살게 해야 해. 나는 김대중 정권이 북한에 퍼주기를 한게 몹시 못마땅해요. 그 돈으로 핵을 개발했잖아?”

그게 대한민국 보수층 칠십대의 일반적인 인식이 아닐까.

내가 묵는 실버타운에는 오랫동안 미국 이민 생활을 하다가 늙어서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중 팔십대의 한 여성 노인이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미국에서 뉴스를 보면서 한국에서 좌파가 잡고 있으면 역이민을 오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우파 윤석열이 당선되는 걸 보고 왔어요. 한국은 사회뿐 아니라 청와대에도 빨갱이 조직이 있어서 김정은에게 바로바로 보고한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미국에 있을 때 한국이 곧 망할 것 같아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제 아버지가 북한에서 과수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주로 분류됐어요. 총살을 당했죠. 저희집은 빨갱이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켜요.”


내가 사는 동해시의 서민 아파트에는 몇년 전 북한에서 온 인민군 상좌 출신의 칠십대 남자가 살고 있다. 그와 만나 짜장면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의 말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김일성은 좋은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정신적 지주이자 이념의 확립자는 남한에 내려와 돌아가신 황장엽선생입니다. 육칠십년대는 북한이 훨씬 잘 살았습니다. 미국의 경제제재만 없으면 북한도 중국식 개방모델로 단번에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핵은 미국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남한을 때리기 위한 게 아니예요. 핵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작전일꾼 회의 때 김일성 수령의 말을 들었습니다. 주변이 온통 강대국인데 핵은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구요. 핵이 없으면 단번에 미국에 의해 초토화 될 걸 우리는 압니다.”

“그러면 왜 탈북을 했습니까?”

“김정일이 경제를 파탄시키고 인민을 굶게 했습니다. 나라를 망하게 한 거죠. 장성택이 권력을 탈취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김정은에게 죽었죠. 처음에는 남으로 넘어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넘어왔냐구요? 딸이 오니까 함께 넘어왔습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노는 자유죠. 저는 수급자가 되어 매월 사십이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임대아파트에서 사는데 약간의 관리비만 내면 됩니다. 한밤중에 편의점에 알바를 나가는데 딸한테 오히려 한 달에 이십만원씩 보내주고 있어요. 살만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빈곤한 층으로 살면서도 그는 가난보다 자유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 주변을 흐르는 자유의 공기란 그런 것인가. 북한 사회에서 영혼이 깨어있는 한 작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북은 모든 인민이 거대한 무대 위에 있는 배우라고 했다. 의미 있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사회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에 와서 과거를 돌이켜 본다.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 무거운 권위 아래서 세뇌되어 살아온 면이 있다. 시대적 편견이 담긴 일방적 관념의 두꺼운 벽 안에서 갇혀 살았던 것은 아닐까. 진실을 보지 못하고 기울어진 도로를 걸으면서도 의식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나를 세뇌시킨 자동 조정장치에 맡긴 채 나의 혼은 잠을 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자식 손자 세대는 깨어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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