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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법정

운영자 2019.01.07 11:34:08
조회 160 추천 1 댓글 0
나이 일흔 살이 넘는 지방도시의 늙은 의사의 호소를 들었다. 법인체에서 운영하는 그 병원은 한 임원이 전횡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의사를 휘하에 두려고 하고 병원여직원을 시녀같이 부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역의 기관장들에게 수시로 술과 밥을 사면서 그들에게는 고분고분했다. 그가 어느 날 늙은 의사의 방으로 들어와 행패를 부렸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의사 책상위에 있던 의학 서적을 들어 늙은 의사를 때린 것이다. 나는 지역의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변호사생활을 하다보면 은밀한 곳에서 두 명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사건을 보면서 십 년 전 사법고시가 있던 시절 면접시험관일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는 판사를 지망한다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당신이 따귀를 얻어맞았습니다. 본 사람도 없고 상처의 흔적도 없습니다. 당신은 맞은 겁니까? 안 맞은 겁니까?”

법의 현장에서 보면 판사들은 모든 걸 법률지식을 통해 스크린해서 보는 것 같았다. 꽃이 있어도 그냥 그걸 보지 않고 머리 속에 있는 백과사전적 지식을 통해서 그 꽃을 정의하려고 했다. 면접관인 나는 판사들이 일단 빈 마음으로 눈앞에 있는 진실을 그대로 봐 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소망이었다. 현실 재판은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그럴 듯한 허위증거를 통해 진실이 거짓으로 거짓이 진실이 되기도 했다. 거짓말에 오염된 판사들 중에는 진실을 보는 시력이 상실된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판사를 지망하는 많은 응시생들은 얻어맞지 않았다는 대답을 했다. 자기가 얻어맞았는데도 알량한 증거법이 진실 위에 서 버린 것이다. 현실에서 법을 찾지 않고 법적용이 어려우면 현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판사가 되고 늙은 변호사인 나는 현실에 부딪쳤다. 지방도시의 법대위에 앉아 있는 판사의 표정과 어조에서는 교만의 냄새가 희미하게 풍기는 것 같았다. 판사는 그 지역 도시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 측 변호사에게 자꾸만 암시를 주었다. 어떤 점을 체크해 보라느니 하면서 노골적으로 기우는 느낌이었다. 변호사 생활 30년에 독특한 촉이 생겼다. 욕심만 비우고 판사를 보면 몇 분 안에 결론이 어떻게 날지 감이 오는 것이다. 판사 자체의 인격이 결론이었다. 법대 중앙에서 경멸의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 얼마 후 판결이 선고됐다. 핵심내용은 이랬다.

‘의사는 폭행과 모욕을 당했다고 주장하나 CCTV같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한 이를 인정할 수 없다.’

진실은 분명 맞았는데 판결은 얻어맞지 않았다는 결론 이었다.

판사는 처음부터 결론을 내려놓고 다른 것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었던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이 칠십대의 늙은 의사는 분노했다. 그의 자존심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따금씩 불량품 판사들을 발견한다.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기도 하고 철없는 경솔한 말을 판결문에 써서 사람들이 한을 어리게 하기도 한다. 소송을 제기한 교수에 대한 판결문에 ‘교육적 자질이 부족한 인간’이라는 독설을 푼 판사도 있었다. 개결한 자존심을 가진 그 교수는 판사에게 테러를 가하기 위해 그 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사법부의 신뢰가 금이 가고 있다. 오랫동안 나는 거짓말로 가득찬 시궁창 같은 법정에서 일했다. 미세 먼지 같은 허위의 공기로 판사들의 영혼이 마비된 경우가 많다. 코 앞에 들이댈 정도의 물적 증거가 없으면 간단한 진실조차 받아들일 능력이 없는 법관들도 많았다. 악령이 깃든 한 형사가 차디찬 웃음을 흘리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살인 현장에 엉뚱한 놈 머리카락 몇 개를 뿌려놓고 DNA검사 결과서를 법원에 내면 그걸 뛰어 넘을 판사 놈 한명도 없어요. 그 놈들은 남이야 억울하든 말든 자기 책임만 없으면 되니까.”

그런 형사보다 더한 악마들이 법정주변을 배회하면서 나 같은 변호사들을 농락하고 절망하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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