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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총리재판 - 20 논객 조갑제

운영자 2010.07.15 12:38:08
조회 382 추천 0 댓글 0

  붉은 해가 도심의 빌딩위로 천천히 내려않고 있었다. 저녁 6시 30분이었다. 나는 광화문에 있는 에스타워빌딩 지하식당에서 조갑제씨를 만났다. 그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 육사를 졸업했어요. 그런 일본 육사출신들이 대한민국 군대를 세계적 강군으로 만들어 낸 겁니다. 일제 때 사범학교출신들이 광복 뒤에 우리나라의 초등, 중등교육을 주도했죠. 이들이 길러낸 인재들이 박정희가 이끈 근대화혁명의 선두에 서게 된 거죠. 일제시대 많은 분들은 공부를 해서 실력을 쌓아야 진짜 독립을 할 수 있다고 자각한 분들이죠. 실력이 독립운동이라는 현실주의자죠. 이런 분들을 지금시점에서 특정한 친일의 틀 속에 무리하게 넣고 빼다가 보면 실존으로서의 인간은 없어지는 겁니다.”


  단죄하려는 그들은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라 착각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얘기였다. 그가 계속했다.

 “고종이 나라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그러면 그 밑에 있던 항복한 신민들의 태도는 어때야 하겠습니까? 전쟁에서 장수가 항복을 했을 때 그 밑에 있던 졸병들에게 각자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적과 싸우라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에 순응했던 것과 친일은 분명히 구별해야 됩니다.”


  조갑제씨가 쓴 책의 내용 중에 영친왕에 대한 얘기가 들어있다. 고종이 엄비에게서 난 셋째아들 이은을 일본에 보낸 것은 1907년이었다. 영친왕인 이은은 일본육사를 졸업하고 연대장, 사단장을 역임한 후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육군중장으로 제1항공군 사령관을 지냈다. 해방 후 영친왕의 저택은 도쿄의 노른자위 땅인 아카사카에 있었다. 대지가 약 2만평에 건평이 5백평이나 됐다. 영친왕의 아들 이구는 MIT공대 건축과를 졸업했다. 졸업당시 미국의 대학총장이 영친왕 내외를 초청했다. 영친왕은 그 당시 일본으로 아예 귀화하고 일본여권으로 미국의 아들졸업식에 갔었다. 당시 서울신문 도쿄 특파원을 하던 김을한 기자가 영친왕을 찾아가 항의했다.

 “전하는 체통을 지키셔야 할 것 아닙니까? 나라가 있었으면 28대 왕이 되셨을 전하가 일본인으로 귀화하였다는 것을 알면 태조대왕 이하 열성조의 임금들이 얼마나 슬퍼하셨겠습니까?”


  논객 조갑제씨는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친일파를 척결하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완벽주의를 고집하고 있죠. 조금의 흠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한 인생에 있어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친일파의 단정을 그런 식으로 하는 건 오류고 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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