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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대 노인의 촉

운영자 2024.02.05 10:48:00
조회 142 추천 3 댓글 0

한 심리학자가 강연을 하고 있었다. 노인 세대를 연구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젊은이들이 없는 독특한 능력이 칠십대 노인들에게 있어요. 나쁜 놈을 알아본다는 거죠. 예를 들면 딸이 결혼할 남자를 데리고 왔을 때 엄마는 직감적으로 나쁜 남자를 알아차리는 거예요. 칠십대 노인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어요. 만일 그런 게 없으면 그 분은 인생을 헛 살아온 사람일지도 몰라요.”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사람을 분별하는 어떤 내면의 눈이 열렸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분별력이 있는 걸까. 내가 오랫동안 해온 변호사라는 직업은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정말 나쁜 놈을 만나는 직업이기도 했다. 나는 살인범 강간범을 비롯해서 여러명의 사이코패스와 만나기도 했다. 남몰래 이유 없는 잔인한 살인과 상습적으로 강간을 한 남자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 짓을 하니까 마음이 어때요?”

내가 물었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나는 양심이 아프다는 걸 몰라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죽은 사람이나 강간당한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어떤 감정이겠어요?”

“그런 생각 해 보지 않았어요.”

사이코패스에게는 양심이 없고 공감능력이나 연민이 없었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도덕성 자체가 없는 나쁜 사람도 있었다. 여대생을 납치해서 잔인하게 죽인 청부살인범을 만난 적이 있었다.

“왜 그랬어요?”

내가 그에게 물었었다.

“계약을 했으니까 이행해야죠. 돈 때문이죠”

그의 대답이었다. 그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어도 그 뒤의 영혼은 여러 종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나쁜 사람들과 만나고 있으면 그에게서 쥐의 영혼이나 독사 아니면 늑대나 여우의 영혼같은 것을 느끼는 때도 있다.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독특한 감정이라고 할까. 어떤 사람은 독특한 체취를 풍기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주위에 적막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실제로 그런게 아니라 나의 직감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젊은 시절은 상대방의 그런 내면이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 보이고 거기에 현혹된 적도 많았다. 속을 보지 못하고 행동하다 보면 삶의 골목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도 했다.

사십대초쯤 인생의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사업을 하는 친구가 찾아와 보증을 서달라고 했다.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중학 시절부터의 친구였다. 내가 형편이 좋지 않아 돈을 구하지 못해 절절 맨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돈을 구해 밤중에 내게 가져다 준 적이 있다.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언젠가 그 은혜를 갚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고마운 건 고맙지만 그가 더 이상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고 할까. 당시 그 보증은 포괄근보증이었다. 서명한 번 잘못하면 일생 동안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는 빚을 지고 붕괴되는 운명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보증을 거절하고 그에게 돈을 꾸어주었다. 얼마 후 그가 여러명에게 피해를 입히고 미국으로 도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 대신 보증해준 다른 친구는 대기업 간부직에서 사표를 내고 일평생 숨어다니는 그늘인생이 됐다. 내가 그렇게 될 뻔했다.


세월 길을 걸어 칠십 고개를 넘어섰다. 얼마전 동해 바닷가에 낡은 집을 한 채 구입해 수리에 들어갔다.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해 지역의 공사업자를 소개받았다. 얼굴도 잘생기고 대답도 시원시원하게 잘하는 중년의 남자였다. 건축에 대해 모르는 나는 모든 걸 그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의식적으로 그 메시지를 부정했다. 소개자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면에서 메시지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와 만나는 어느 순간이었다. 그가 나를 예민하게 살피는 것 같았다. 나는 다음에 인연을 맺자고 하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만나는 기간이 길어지면 악연이 깊어질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업자에게 도급을 주지 않고 한번 직접 해 보기로 작정했다. 인력사무실을 통해 그날 그날 쓸 인부들을 고용하고 소규모업체와 직접 계약을 했다. 철거, 배관, 설비, 조적, 미장, 타일, 전기, 도색, 창호, 청소등 의외로 많았다. 재료들도 내가 사다 주었다. 시멘트, 벽돌, 파이프, 고체연료, 페인트, 변기, 타일등 여러종류였다. 내가 직접 바닥을 쓸고 쓰레기를 치우고 일용 잡부노릇을 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나쁜 놈은 피하기로 했다. 모든 성공과 실패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일은 저절로 된다는 생각이었다. 살아보면 될 건 되고 안될 건 안 된다. 어떤 환난도 피할 수는 없다. 올 건 온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럭저럭 공사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칠십대노인들은 정말 나쁜놈은 알아보는 촉이 있더라는 그 심리학자의 말이 맞는 게 아닐까. 좋지 않은 사람을 보면 내면에서 뭔가가 막 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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