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딱 딱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이목사와 나는 광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아랍인 거리에 있는 빵집에서 무교병을 사고 그걸 찍어먹을 우슬초를 준비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먹던 음식이었다. 그 외 주전자와 컵라면 그리고 커피를 준비했다. 토요타 타코마의 짐칸에 물병과 식량을 실었다. 운전석에 올라가면서 이목사가 말했다.
“이제 광야를 달려가면 뜨거운 태양이 화물칸의 물병들을 데워줄 겁니다. 뜨뜻한 커피 물 정도 될 테니 한 번 보세요.”
손바닥으로 태양 쪽을 향해 봤다. 따끔따끔한 느낌이 들 정도의 열기였다. 다행히 습기가 없어 그늘에 들어서면 견딜만 했다. 우리가 탄 차는 암만시내를 빠져나가 왕의 도로에 진입했다. 구약시대부터 대상이 다니던 핵심도로였다. 군데군데 가지를 우산같이 비스듬히 아래로 향한 싯딤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간간이 고고히 서 있는 단아한 자태였다.
“우리가 지나는 곳은 구약의 갓지파와 르우벤 지파가 배정받은 땅 들입니다. 길 옆의 돌무더기 언덕만 약간 올라가도 당시의 유적들이 그대로 있습니다. 아말렉 족의 성들도 그대로구요.”
핸들을 잡은 이목사가 설명했다. 구약성경 속에 그대로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왕의 도로에서 사막도로 옮겨 타면서 남쪽의 미디안 광야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처음에 어떻게 목회를 하셨나 말씀해 주시죠.”
윈도우로 다가오는 도로 옆의 광경들을 보면서 이목사에게 물었다.
“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단 교회를 개척했죠. 건대입구인 화양리 먹자골목 4층 낡은 건물 옥탑방을 빌렸죠. 좁은 입구를 통해 계단으로 간신히 올라갈 수 있는데 장소가 으슥해서 불량청소년들이 본드를 하러 오는 곳이었어요. 근처에 창녀촌이 있는 우범지역이었죠. 작고 초라하지만 내 교회였어요. 아버지가 선물로 나무십자가를 조립식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앞으로 많이 옮겨 다닐 텐데 그때마다 가지고 다니라는 뜻이셨죠. 아버지는 믿지 않는 분이었어요. 저는 ‘빛과 소금교회’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스티로폴을 사다가 그걸 잘라 글자를 만들고 주황색으로 칠한 후 건물 벽에 붙였죠. 그때 저는 이미 결혼했었어요. 아내와 근처에 단칸방 하나를 얻고 매일 새벽기도를 인도하기 위해 옥탑방교회로 출근했어요, 그런데 가면 유리창이 깨져있고 불량소년들이 들어와 본드를 불고 늘어져 있더라구요. 다시 오지 말라고 해도 계속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그 짓을 하고 몽롱해서 널부러져 있더라구요. 그 아이들을 붙잡아 부모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요. 그래도 제가 레슬링선수 출신이고 쌈꾼인 게 한 몫 했어요. 그 부모들한테 아이들을 경찰에 넘길까요? 아니면 제가 맡을까요?라고 물었죠. 전부 목사님한테 맡긴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아이들 일곱 명이 제 첫 번째 성도가 됐습니다. 제 아내가 신도한명을 더 끌고 왔어요. 화양리 시장의 여자거지였죠. 형편없이 된 사람이었어요. 그 자리에서 먹고 싸고 할 정도로 피폐하게 된 사람이었어요. 네 사람이 그 거지를 옥탑까지 끌고 올라왔어요. 본드 하는 애들하고 정신이 나간 거지에게 목사인 제가 할 게 뭐가 있겠어요? 이성적인 설교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제가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성령님이 고쳐 주시라고 매일같이 안수기도를 했죠. 울고불고 소리치면서 요구했어요. 내가 그렇게 하니까 성령이 오셨는지 그 여자거지나 본드 하던 불량한 아이들이 반응을 보였어요. 모두 울고불고 소리치고 방언이 터지고 통변을 하고 난리였죠. 신고가 들어가 순찰차가 오고 경찰관들이 제 옥탑방 교회를 지켜보곤 했어요. 그런데 내가 봐도 신기한건 아이들이 정상이 되고 미친 거지여자도 제정신이 돌아오는 겁니다. 그 여자거지는 화양리 시장에서 도라지장사가 됐어요. 작은 교회라도 성령이 있으면 사람들이 오게 되어 있나 봐요. 제가 예수에 미치니까 옥탑방교회의 기적이 일어났죠. 방언이 터지고 귀신이 나가고 병이 낫는 거죠.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던 간호사 한명이 예배에 참석했죠. 다음 주에도 오더라구요. 그 간호사가 십일조로 내는 돈이 우리교회 재정이 된 겁니다. 그 돈으로 10만원씩 해외 선교비도 냈다니까요. 여기저기서 저를 오라는 초청이 왔어요. 가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말씀을 전하고 안수를 했죠. 국방대학원에 가서 장군들 앞에서 설교를 하고 양팔을 올리고 하나님께 성령을 내려달라고 기도를 하니까 앞에 있던 장군들이 퍽퍽 나가떨어지는 겁니다. 성령이 내리는 거죠. 아팠던 사람은 치유가 됐다고 하고 나도 깜짝깜짝 놀랐죠. 광주집회에 불려갔는데 거기서도 연일 기적이 일어났어요. 입에서 말이 나가는데 제가 하는 게 아니예요. 말하면서 저도 나를 통해 나오는 성령의 말씀을 함께 듣고 그렇구나 했으니까요.”
담백한 성격의 그가 내게 거짓이나 과장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문득 이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온 과학적 사고를 가진 변호사한테서 성령체험을 얘기 들었는데 한번 얘기해 볼까요?”
“그러시죠”
이목사의 눈이 반짝였다.
“수재인 그 변호사가 미국하버드대학에 유학을 하다가 전신에 하얀 반점이 생기는 원인모를 피부병에 걸렸답니다. 갑자기 형편도 나빠지구요. 절망하고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 LA에 성령이 충만한 목사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대요. 그래서 뉴욕에서 차를 운전해 LA까지 간 거죠. 그 능력을 가졌다는 목사는 일곱 살 때 미국으로 이민 와서 성장한 사람이죠. 자기가 옷장사를 하면서 가정교회를 이끌고 있었어요. 하바드에 유학을 간 변호사가 안수를 부탁했대요. 물론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미신같은 얘기를 듣고 시험 삼아 한번 찾아간 입장이죠. 속에 의심도 가득 찼을 겁니다. 그런데 안수를 받는 순간 몸에 진동이 오더라는 겁니다. 이상한 현상이 바로 와 버린 거죠. 물리학과 출신답게 자기가 우주 저쪽에서 보내는 어떤 파장에 반응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다음날부터 그는 자기 몸의 피부병이 있는 곳에 손을 대고 기도를 했대요. 그리고 그 피부병이 회복됐다는 간증을 들었죠. 개인적으로 내게 그렇게 말해주는데 믿을 수 밖에 없더라구요. 한편으로는 호기심도 나구요. 그래서 저는 어느날 그 목사를 만나 직접 안수를 받아보겠다고 소개해 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미국의 LA로 날아갔어요.”
“가서 어땠습니까?”
이목사가 물었다.
“LA외곽 지역의 멕시코풍의 집에서 그 목사가 살고 있더라구요. 어릴 때 미국에 가서 그런지 한국어가 유아어처럼 아주 어눌했습니다. 내가 얘기를 듣고 안수를 받겠다고 부탁을 했죠. 그랬더니 그 목사가 나와 먼저 대화를 하면서 누구에게나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자신의 믿음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다 다르다고 했어요. 그래도 막무가내로 안수를 청했어요. 그 목사가 한참동안 심사숙고 하더니 하겠다고 승낙을 하고 소파에서 일어서더라구요. 나는 그 앞에 서서 기도를 받기 위해 눈을 감았습니다. 그 순간 작은 기계음소리가 들리더라구요. ‘딱 딱 딱 딱’ 규칙적으로 나는 겁니다. 시계의 초침소리 비슷한 것 같기도 했구요. 저는 속으로 목사가 미국까지 찾아온 사람을 안수해 주면서 너무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구나 하고 조금은 불쾌했어요. 한편으로는 성령이나 신비주의에 대한 의심도 있었구요. 그냥 받아들이기 보다는 정확히 확인하자고 하는 생각에서 눈을 뜨고 말했어요. 목사님 시계나 소리가 나는 물체를 가지고 계시느냐고 물었죠. 아무것도 그런 걸 가진 게 없다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죄송하지만 몸을 좀 확인하자고 하고 확인해 봤어요. 목사는 바지와 티셔츠만 입고 있었죠. 그런 소리가 날 게 없었어요. 결국 그 딱 딱 딱이라는 소리는 나만 들은 거죠. 저는 그날이후 성령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현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구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딱 딱 딱’의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겪은 작은 신비체험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소중한 것이었다. 변호사인 내가 만난 흉악범들을 보면 눈에서 서늘한 퍼런 불꽃이 느껴졌다. 그들에게 살인을 하게 하는 존재는 무엇일까가 궁금했다. 귀신이 그들에게 들어간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귀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귀신론은 자칫 잘못하면 이단이라고 누명을 덮어쓰는 부분이라 조심해야 합니다. 제 경우는 안수를 갔는데 그 사람에게 귀신이 있으면 구역질이 나요. 마른 구역질을 하죠. 간음을 많이 한 사람한테서는 악취를 느낍니다. 저는 사람마다 그 영혼 속에 마귀한테 붙잡힌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쓴뿌리’라고 표현을 하는데 악한 영에게 점령을 당한 부분이죠. 그걸 뽑아내야 합니다. 예전 건달시절 나도 갑자기 분노해서 날뛰고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자주 있었죠. 그 원인은 간단해요. 예를 들어 팔에 종기가 나서 다른 부분은 만져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 부분만 건드리면 민감해지죠? 나의 속에 그런 데가 있고 그걸 건드리면 격렬한 분노가 터져 사고를 냈던 거예요. 저는 그게 더 심했어요. 오죽하면 교수를 때려 퇴학 당했겠습니까? 그러다 성령을 만나 신학교에 가게 됐는데 그 쓴 뿌리는 신학교에서도 빠지지 않고 남아 있더라구요. 제게 박혀 있는 그 쓴 뿌리가 얼마나 질겼는지 고백할까요? 신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앞에 앉은 신학생이 꾸벅꾸벅 졸고 있더라구요. 조금만 머리통을 더 흔들면 책상에 그냥 박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 기어코 쾅하고 박았어요. 그 순간 저는 ‘할렐루야’라고 응답했죠. 정신을 차린 그 신학생이 머쓱해 하다가 기분이 나빴는지 ‘할렐루야는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충고하더라구요. 그 순간 내 속에 있는 쓴 뿌리가 들고 일어난 거예요. 갑자기 분노가 폭발한 겁니다. 나보다 나이도 한참 어리고 약한 놈이 까분다 싶었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신학생을 잡아끌고 도서관화장실로 가서 그 목을 잡아 옆구리에 끼고 ‘앞으로 병신목사로 사역하고 싶으십니까?’라고 겁을 줬죠. 파랗게 질려서 싹싹 빌더라구요. 신학교를 다녀도 쓴 뿌리를 뽑지 못한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목사가 되도 영혼 속에 그 쓴 뿌리는 사람마다 남아 있더라구요. 목사가 간음을 하고 횡령을 하고 그리고 교만한 거 저는 다 그런 쓴 뿌리라고 봅니다.”
사막도로를 따라 내려가던 우리가 탄 도요타 타코마는 어느새 페트라를 지나 미디안 광야로 들어섰다. 붉은 모래바다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바위산들이 섬처럼 떠 있었다. 홍해 쪽으로 험한 바위산들의 첩첩연봉으로 물결치며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그 옆 지평선으로 내려앉는 불덩이 같은 석양 속에 낙타를 타고 가는 베두인들의 실루엣이 신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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